출처를 남기지 않을 시 무통보삭제 될 수 있습니다.사이트명만이라도 출처를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출처 : 필사노트 속 문장들
노란 손목을 가진 아이가 노란 길을 골랐다. 얼굴이 붉은 아이는 붉은 길을 골랐다.
푸른 손자국이 있는 아이는 버티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이는 떠나고 , 어떤 이는 남는다.
우리는 서로 오해할 시간에 도달했다. 우리는 코 웃음을 친다.
그리고 더 이상 쓸쓸해지지 않으려고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가서, 누군가와 함께 사는 꿈을 꾼다.
십일월은 마른 강물처럼 느리게 흐른다.
십일월은 강물 위를 지나가는 바람처럼 빠르게 사라진다.
십일월이 오기 전에 수첩을 펴고 나는
적었다. 푸른 물감이 공기 속으로 풀어지던 날에 대해, 형태는 푸른 천막 아래 그늘에.
포근한 담요 같던
거대한 안개가 우리를 덮고 있던 날에 대해.
싸늘한 화로 앞에서 펴본 수첩에는
아무 이름도 적혀 있지 않다.
십일월 / 이성미
스스로의 타살을 실천하려고, 이 뻔한 계절을 키운 것은 흐르는 물이다, 술이다
고여 있는 낙서들이다
말을 배우기 전, 천연성으로, 나는 꽤 오래 태어나지 않은 짐승처럼, 혀가 험하다
내 사랑했던 청춘아 아름다워 위험하다 엎질러진 그릇이 궁금하지 않은 밤이다
바람이 얼면서 고백을 해오니, 사랑한다, 살아 있겠다
데몬에서 말을 빼앗긴 취객들이 맹신하는 기이한 사랑의 하염없음 / 박성준
지진계를 좋아해서 펜을 잡았다. 펜은 지진계의 바늘이니까. 펜은 자꾸 떨고 있다.
심장을 통해. 지진계는 여진도 적어두니까. 심장아. 이제 무엇을 쓸까.
학생의 시점으로 마무리할까? 선생의 시점으로 마무리할까? 심장아,심장아, 너는 모르지, 네가 다음 순간에 어떻게 뛸지. 학생은 언제까지 시인 노릇을. 선생은 언제까지 수학과외를. 지속하는가? 무너진 가슴에다 손을 얹고서 .
그러고서 당신은 비로소 쓴다. 어? 내가슴이 무너졌구나.
내 가슴이 무너진거.
너 알았냐고.
알면서 고개만 끄덕였냐고.
펜은 심장의 지진계 / 김승일
너는 밤과 낮이라고 한다
너는 그게 사랑이라고 한다
아니야 사랑은 기다리는 거지
기다릴 것이 없어질때까지
고층 건물이 세찬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본다고
네 비밀을 내가 다알면
내 비밀을 네가 다알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래도 우린 잠든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서로의 꿈에서 등을 돌린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천막 위로 빗줄기가 쏟아진다 투둑투둑 천장과 바닥이
호응하고 우리는 그사이에 누워 기다린다
열매가 떨어지기를 뗄감이 모자라기를 마른풀이 전부 젖어버리기를 우리를 관통하는 물방울들
모두 서로 배반할 거라고 맨 뒷장에 씌어져 있었지
우리는 기다린다
우리가 서로를 죽이기 전에
너희가 서로를 죽이기를
떠오를 때는 가라앉는 느낌도 들곤 해
저 산산이 부서지는 아름다운 창들을 보렴
이토록 커다란 텅 빔을
끝과 끝이 연쇄하는 꼴을
다 지워버릴 것을 계속해서 적어 내려가는 저 불쌍한 손들을 이미 씌어진 것들을
다시 반복하는 아무도 붙잡아 주지 않는 차가운 마디를 아름다운 것은 참으로 무서운것이구나 그렇지 않니
네가 나를 죽이는 꿈을 꿨고 그 꿈을 믿어 그래서 더 큰 기다림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그렇게 사랑해
이것은 언어가 아니고 이것은 빛이 아니고
이것은 거울이 아니고 이것은 칫솔이 아니고
이것은 향기가 아니고 이것은 십자가가 아니고
엎드린 너희가 포개져 있을때
나는 인생이란 뭘까 생각해
밤과 낮이라고 두 번 말하지 / 백은선
그곳은 어두웠는데 어둠이 어둠의 윤곽을 만들고있다
사라진 것이 환기하는 이미지처럼
비를 신고 돌아다니는 발소리 처럼
매일매일 부질없는 꿈을 꾸었다
매일매일 다시 시작되었다
다른 색은 말했지만 다른 색은 없었다
모두 연습이었지만 연습은 없었다
어둠 속으로 누군가 걸어들어 간다
그를 따라 수평선을 끌고 간일이 있다
월요일 / 박지혜
지붕을 만든다 멀리서 빗줄기가 몰려오고, 태풍이 달려오고 뜨거운 태양이 굴러온다 사막을 딛고
서서 나는 머리 위에 지붕을 만든다 맑고 고요한 수평의 물체 혹은 몸이 수평으로 뜨는 어떤 공기의
이야기, 나는 사막을 딛고 서서 물로 지붕을 짓는다 빛나는 지붕, 빗줄기를 만나 춤을추고, 태풍에
안겨 멀리 날아가고, 뜨거운 태양 아래 반짝 사라지기도 하는
아름다운 지붕 / 신영배
과거는 왜 항상 부끄러운가?
미래는 왜 항상 불투명한가?
방문을 열면
얼굴이 화끈
배 속이 발끈
허기를 참지못하고 또 다시
너를, 너희들을 소환한다 오늘
누구나 소유할수있지만
아무나 소유하지는 않는
새로운 친구가 왔단다
너희들은 서로 인사를 하지 않는다
지분을 배정 받은 공유자처럼
묵묵하고 꿋꿋하다
우정 따위의 지나친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너희들이 더 많아질수록
너희들이 더 다양해질수록
나는 더 작아지고 적어진다
재능이 넘치면 노력이 부족해
시작이 창대하면 끝이 미약해
어떤 경지에 오르려다
어떤 지경에 이를 수도 있지
현재는 왜 항상 불완전한가?
배속을 다 채우면
나는 예정대로 구역질을 한다
신물 나는 완벽함을 향해
빗나가면서 빗나갈때
뒤처지면서 뒤처질때
놀랍게도
나는 방안에서 놀라워진다
내 방을 누가 들여다볼까봐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진다
눈을감아도 네가 보인다
너희들이 빤히 보인다
아 대체 나는 어디에 발을 들였단 말인가
내앞에 도래하는
백지상태의 내일앞에서
새로운 친구같이 어색하기만 한 나는
분더캄머 / 오은
지루해 너는 언제 어른이 될까 엄마는 늘 내게 물었다 나도 모르죠 엄마는 언제 어른이 되었나요
지루해 너는 지루함을 모르는구나 너는 도무지 자라지가 않는구나 얘야 그건 셔틀콕이 아니야
그저 한마리 작은 새란다 이제 저녁이 되었으니 집으로 날아간 게지
나의 셔틀콕 / 강성은
첫댓글 불완전한 현재 단박에 와닿는 표현이네요
한번보고 두번보고 다르지만 오은시는 정말 매번다름이있네요
펜은 심장의 지진계 너무 좋네요..... 좋은시 알아갑니당!!
첫댓글 불완전한 현재 단박에 와닿는 표현이네요
한번보고 두번보고 다르지만 오은시는 정말 매번다름이있네요
펜은 심장의 지진계 너무 좋네요..... 좋은시 알아갑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