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약도 정박지, 영종도가 바라보이는 작약도의 남쪽 해안
현재 선착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곳이다.
작약도에는 광성보 전투(6월 11일)에서 전사한 하마한과 알렌 및 그 전(6월 2일)에 열병으로 병사한 드라이버 등 미군 사병 세구의 시체가 함께 묻혀져 있다고 한다.
아시아함대의 전함들/병력
아시아 함대의 기함 콜로라도호는 작약도 근해에 정박하면서 강화도 전투를 총지휘하였다.
보조 증기 기관과 3개의 마스트를 가진 3,425톤급 프리깃(frigate) 전함. 대포 44문 장착, 병력 650명 탑승.
◆ 알래스카호
2,400톤급의 슬로우프(sloop)형 전함으로 대포 8문 장착, 병력 270명 탑승했다.
◆ 베네시아호
2,400톤급의 슬루우푸 형 전함으로 대포 14문 장착, 병력 290명 탑승했다.
◆ 조선 원정의 지휘관인 '로우 조선 특파 전권공사'
주청 미국공사인 로우 공사는 조선 원정의 총 책임자로서 조선과 조약을 맺는 전권을 위임받고 있었다.
왼쪽에 서있는 사람이 로우 공사이고, 중앙에는 드루 서기관과 그 양쪽에는 두 명의 중국인 통역관이 앉아 있다.
◆ 조선 원정의 지휘관들이 기함 콜로라도에서 강화도 상륙작전회의를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 의자에 무릎을 구부린채 강화도 지도 위에 손을 얹고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사람이 로저스 제독이다.
◆ 강화도 지도를 보면서 작전을 토의하는 위관급 장교들
오른쪽 두번째 앉아 있는 카이젤 수염의 인물이 미국 장교로서는 유일하게 전사한 맥키 중위이다.
맥키 중위의 시신은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송환되어
고향인 켄터키주 렉싱턴 국립묘지에 이장되었다.
◆ 상투머리에 담뱃대, 그리고 맥주병(1871년 5월 30일)
기함 콜로라도에 조선 대표의 선발대로 승선한 조선인 관리 중 한 명이 맥주 등을 대접받고 난 후 찍은 기념사진.
서구 문명의 상징물인 맥주병과 도양 문명의 상징물인 상투와 긴 담뱃대가 기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 초지진의 초지돈대
미군은 6월 10일 약 2시간 동안 먼저 맹렬한 함포 사격을 가하여 조선군을 파괴시킨 후에 상륙하였기 때문에 오후 4시 경 초지돈에 전투없이 무혈입성하였다.
이 사진은 포격을 받지않은 돈대의 일부를 찍은 것인데 성문과 성벽 모습이 완벽하게 남아있다.
◆ 초지돈대를 점령한 미군들
미군들은 돈대를 점령한 후에 돈대내의 무기고 등 군사 시설을 모조리 파괴하고 포대에 남아 있는 대포들을 파괴하거나 강화해협으로 굴려 버렸다.
사진 왼쪽에 조선군이 사용하던 불랑기포 1문이 놓여져 있다.
◆ 점령당한 후 손돌목 돈대와 조선군 시체들(1871년 6월 11일)
신미양요 기간 동안 조선군과 미군이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은 광성보였다.
특히 손돌목 돈대는 조선군 사령관인 중군 어재연 장군이 직접 지휘하며 격렬하게 반격을 가하던 요새로서 미군 측에서는 맥키(Hugh McKee) 해군 중위와 두 명의 수병이 전사하고, 조선측에서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대부분의 조선군이 장렬히 전사한 곳이다.
흰옷 차림의 조선군 전사자 시체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는 모습이 처참하기 그지없다.
◆ 포연이 아직 걷히지 않은 손돌목 돈대의 내부 모습
성벽을 따라서 내부에 긴 참호가 파여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주변에 시체들이 즐비하게 흩어져 있다.
◆ 조선군 부상병 포로들
조선군의 연령대는 적게는 10대부터 많게는 50대까지 다양했다.
◆ 포로가 된 조선인 군사들과 이들을 인수하기 위하여 승선한 조선인 관리
광성보 전투에서 부상당한 채 붙잡힌 포로들은 약 20명이었는데 기함 콜로라도호에서 치료를 받은 후 6월 14일 조선측에 9명이 인도되었고, 나머지는 함상에 남아 치료를 계속 받았다.
◆ 콜로라도호의 조선군 포로들과 관리들
◆ 콜로라도 함상의 수자기(帥字旗)
수자기를 최초로 끌어 내린 퍼비스 일병(왼쪽)과 그를 도운 브라운 상병(오른쪽)이 총을 짚고 서 있다.
이 수자기는 미국 해군 사관학교가 보관하고 있다가 2007년 우리나라로 반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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