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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통일의 파랑새 원문보기 글쓴이: 푸르허
이 글은 재일교포 군사외교평론가 김명철씨가 최근(2004)에 일본에서 출판한 저서<김정일 핵의 음모>의 일부를 간추려 요약,번역,편집한것이다.
글의 순서와 목차는 원문과는 달리 편집,작성되였음을 알리면서 독자제현의 양해를 얻고저 한다. (윤일생)
<김정일의 핵전략>
목차
앞말
[1]초대국을 몰아세우는 세계에서 단 하나의 소국
[2]미본토를 겨냥한 핵무기 개발
#서양식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이북민중의 사상정신적무장
#핵무기 개발의 3대 이유
[3]미국의 멱살을 잡아라-극비 핵개발의 경위
#기초연구기=원자력연구소 설치,핵전문가 양성
#극비 핵개발기=김정일장군이 83년에 전군의 작전지휘권을 장악한 이유
#후림 핵계획기=노리는 사냥감은 초대국 미국
[4]역대 미정부의 대응
#레이건=조용히 접촉을 하다
#아버지 부시=한국 배치 핵무기 철수
#클린턴=처음엔 위협,나중에는 교섭
#제네바 핵합의가 이북의 승리로 되는 이유
[5]무혈승리-김정일장군의 목표
#대미승리를 위한 세가지 필수조건
#핵억제력 강화
[6]비참한 결론-부시 주니어가 행한 전쟁 씨뮤레이션
#국제전략연구소-유효한 군사적선택지가 없다
#펜타곤-"We're Going to Be Fucked" 미국은 참패한다
#<북조선을 매수하라>싸울수 없는 상대
[7]만만한 적수-철부지 부시 주니어
#매파이기에 매파들을 설득시키기 쉽다
#<북조선은 젊은 범,그에 비하면 일본군은 고양이>미군의 토라우마
[8]김정일-그는 어떤 사나이인가?
#살아있는 김일성
#항일전쟁의 불길속에서 태여나
#현지지도 따라 산 군사,정치학 배워
앞말
1993년 봄. 미국이 강제핵사찰을 강요하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전쟁을 하겠다고 위협한데 맞서 북조선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여 정면으로 대결하였다.전쟁의 먹구름이 감도는 긴장된 그 무렵 조선인민군 차수,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일성주석이 물었다.
<그래 적들이 핵전쟁을 일으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래 여러 차수들과 대장들 대답해보오.적들이 미친듯 핵무기를 퍼부어 우리 조국땅을 불모지로 만들려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자리는 숨소리조차 없는 정적속에 묻혀버렸다.침묵,또 침묵---바로 그때 김정일최고사령관이 한걸음 앞으로 나서 침묵을 깨뜨리며 불을 토하듯 말하였다.
<수령님!만약 적들이 핵무기를 퍼부어 이 땅을 불모지로 만들려 든다면 미국도 결코 무사치 못할것입니다.조선이 없는 지구는 있을수 없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탄을 떨구어 수십만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미국이 오늘까지 50여년간이나 폭탄 한발 맞지 않고 살아오다보니 오만해질대로 오만해졌지만---안될것입니다.이 땅에 단 한알갱이의 핵먼지라도 떨구는 날엔 미국은 불바다가 되고 말것입니다!>
(실록소설<력사의 대하>319페이지 _320페이지,정기종저,평양,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7년발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부시정권을 수세에 몰아 넣고 의기양양하다.
1]초대국을 몰아세우는 세계에서 단 하나의 소국
필자(김명철)는 몇해전에 발행한 2권의 저서<김정일 조선통일의 날>과 <한국 붕괴>(한국어판 제목은 <김정일의 통일전략>)에서 일련의 예측을 한바 있다.
그 예측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어떤 의미에서는 "파격적인""상식을 벗어난"예측이었다. 부시정권이 등장하여 4년째로 접어드는데 우리가 눈앞에 보고있는것은 강한 미국이 아니라 온순한 미국 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정일정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몰리우기만 하고 이렇다할 효과적인 대응을 못하면서 고심하고있는 부시정권을 우리는 보고있는것이다.
언제인지 미국정부의 어느 고관이 필자를 보고 "미스터 김, 결국 당신의 예측이 옳았소"라고 했다.그러나 사실은 필자가 옳았다기보다 김정일의 타산이 옳았다고 해야 정확할것이다.
북조선은 세계유일초대국을 몰아세워 끌고 다니는 "세계유일소국"으로 되였다.
필자가 일관하게 지적해온 것은 다음 세가지이다.
1)북조선은 붕괴하지 않으며 조미대결에서 김정일이 무혈승리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북조선이 붕괴하고 한국이 주도권을 잡을것이라고 예측했다. 결과는 일목요연하다.첫째 북조선은 붕괴하지 않으며 연이은 위기를 훌륭히 극복하고있다.
둘째 NPT(핵확산 방지조약)를 탈퇴하고 사용후핵연료봉을 재처리하며 핵실험도 불사하겠다고 나서고있는 북조선에 대하여 부시정권은 선제공격은커녕 교섭에 응해나서고있다. 2003년에 조미관계에는 결정적,질적 변화가 생겼다.
북조선이 핵보유를 밝힘으로써 미국의 핵우산에 구멍을 뚫고 무력화시킨것이다.금후 미국이 북조선과의 평화공존을 계속 거부한다면 동아시아에서 핵군비경쟁이 일어날것이며,그렇게 되면 미국은 초대국의 지위,헤게모니를 내줄 수 밖에 없게 될것이다.
부시정권에는 북조선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평하공존을 택하는 외에 다른 길은 없다.부시는 북조선에 대해서 는 외교적해결을 구한다고 재삼 강조하고있다.북조선에 대해서는 부시독토린이 사실상 포기되고있다.
2)한국은 붕괴하고 조선반도는 하나로 된다.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과 친미이다.이를 안받침하는것이 미군의 한국주둔이다.이 국시와 안받침이 소리내여 무너져 가고있다.필자는 조미관계에서 북조선이 주도권을 쥐고 미국의 대조선군사간섭정책을 무력화하면 한국은 붕괴한다고 지적했다.
2000년6월에 있은 김정일-김대중 수뇌자회담 이후 남북교류와 화해는 극적으로 진전되고있다.한국국민은 미국과 당당히 맞서 싸우는 김정일의 민족주의적군사우선정책에 기쁨을 느끼며 김정일의 핵전략에 동조하고있다.
조미핵대결에서도 남북이 은근히 연계를 취하고있으며 이에 대하여 일본과 미국은 경계심을 높이고있다. 한국내의 반공주의는 크게 후퇴하고있다.그 반면에 반미가 확산되고있다
.한국국민은 자기들에게 있어서 이제 최대의 적은 북조선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보게 되었다. 재한미군은 군사분계선 가까이로부터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이것은 삭감,나아가서 철퇴의 전주곡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3)북조선의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은 미본토 전역을 사정거리내에 두고있다.
많은 이들은 북조선엔 그러한 미사일은 없고 핵 탄두의 경량화는 기술적으로 무리하며 미사일의 정밀도는 너무 낮아서 날려도 어데 떨어지겠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들은 북조선 공군기는 기름 부족과 부품부족으로 날을 수 없다고까지 했다. 필자만이 미본토 전역을 표적삼은 ICBM가 이미 실전배치되어 있다고 지적하였으며 그 정밀도가 아주 높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93년에는 북조선 미사일이 일본열도를 넘어 하와이 앞바다와 괌도 앞바다에 착탄했음을 밝혔다.필자만이 날아오는 미군기를 북조선공군이 언제든지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 CIA와 국방정보국이 북조선 미사일은 미본토 전역을 공격할 수 있으며 그 정밀도가 현저히 높아졌다고 인정하였다.그들은 북조선이 핵탄두의 경량화에도 성공했다고 인정하였다.
2003년 3월에는 북조선공군기 4톨이 동해상공에서 미군 전자정찰기 <코블라볼>을 20분동안이나 포착, 요격하였다.미군은 대규모 군사충돌이 두려워서 재일,재한 미 공군에 스클랜블을 명령하지 않았다.
그후 정찰비행은 재개되였으나 전투기 호위를 붙이지 않고있다.북조선공군과 맞서 대규모 군사충돌로 번지기를 두려워 해서이다.
일본의 많은 전문가들은 이라크전쟁후 부시정권은 다음 표적으로서 북조선에 군사적압력을 가할것이라고 논평 하였다.그러나 부시는 그러한 위험행위를 범하지 않고 있다.
올해 2004년에 부시정권은 적대시정책을 포기하여 북조선과의 평화공존의 길을 택하겠느냐 핵전쟁을 택하겠 느냐,그렇지 않으면 핵우산 무력화와 초대국의 지위상실를 감수하겠느냐,어째튼 결단의 해로 될 것이다.
[2]미본토를 겨냥한 핵무기 개발
<핵능력을 개발하여 미군을 무력화하고 우리세대에 조국을 자주적 평화적으로 통일하여야 한다>
김정일
<우리의 과업은 우리 나라를 핵과 우주과학 분야에서 세계일등국으로 발전시키는것이다>
김정일
<북조선은 핵확산방지조약에서 탈퇴하였는데 그것은 합법적권리의 행사였다.-----부시정권 고관들의 과격한 발언이나 핵선제공격정책으로 말미암아 각국은 세계가 무정부상태에 들어섰다고 판단하고 그에 대응하여 행동하게 되였다>
(영국)왕립통합방위연구소 다니엘 프렛슈연구원
BBC TV 2003년1월10일
<북조선의 공식발표는 조잡하지만 논리성이 있는것은 사실이다.북조선은 자기 나라가 미국군사력의 다음 공격 목표로 되여 있다고 주장하는데 부시의 "악의 축"나라로 지목되고 있는 이상 타당한 인식이다.
북조선은 유일한 방위책이 핵무기보유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태도 변경"과 그에 따르는 불가침보증이라고 말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사설 2003년4월29일
<이렇게 된것은 부시정권에 책임이 있다.부시정권은 클린턴정권이 해온 모든것을 다 내던져 버렸다.----부시 는 북조선을 혼내준다고 했는데 거꾸로 지금 북조선이 미국을 혼내주고 있다>
미국)벌치모어산 논설 2003년1월14일
<북조선은 부시가 하겠다고 공약한 핵선제공격을 회피하기 위하여 핵무장을 요란하게 서둘고 있다.판단력이 있는 나라라면 다 그와 같은 행동을 할것이다>
캐나다)토론토스타 논설 2003년1월10일
서양식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김정일의 핵전략이란 미본토를 표적으로 삼은 핵폭탄을 개발,배치하는것이다.초대국 미국을 적으로 하여 맞서는 전략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상식으로 봐 "승산 제로"일것이다.서양적인 사고방식이라면 김정일의 전략은 "광기어린 전략"이라고 불러도 옳을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달리 생각한다.그가 념두에 두고 있는 상대는 로봇도 아니고 기계도 아니며 아주 동물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김정일의 눈으로 볼 때 미국은 결코 광신적 기독교원리주의 나라는 아니다.최종적으로 그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요소는 단적으로 말해서 리스크,손익계산이다.
김정일은 말한다.<불을 무서워 하지 않는 짐승은 없다.한번 덴 짐승은 다시는 불곁에 안간다>.이 북조선의 지도자는 미국인에게 특유한 심리와 행동방식에 착목하여 핵전략을 책정하였다.때문에 그는 최종적 대미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 김정일의 전략수법은 세단계로 이루어져 있다.제1단계에서는 시간을 들이면서 상대가 알아 차리지 못하도록 조용히 착실히 싸움 채비를 갖춘다.
제2단계는 상대가 북조선을 건들도록 만들어 차근차근 상대를 불리한 상황에 꾀어 들인다.제3단계는 더이상 빠져 나갈 구멍이 없는 상태에 상대를 몰아 넣고 압도적인 정치력과 군사력으로 결판을 낸다.
러시아도 겁을 먹은 초대국 미국을 공략하는 김정일핵전략은 무모하고 "광기어린 짓"이 아니라 치밀하게 모든 요소들을 타산한 토대우에서 짜여 진것이다.그것은 우리 민족과 세계민중들을 "광희"시키는 핵전략이기도 하다. 미국의 100분지 1밖에 안되는 예산으로 미국의 팔을 비틀어 엎어누르니 말이다.
이북 민중의 사상정신적무장
김정일이 대미전략을 수행하는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그것은 전국민의 사상정신적무장이다. 북조선국민들은 이 사상정신적무장이 있기 때문에 50년을 넘는 긴 세월 미국의 핵공갈에도 끄떡하지 않고 헌신적 으로 싸울 수 있었다.
북동아시아문제 전문가인 오스트랄리아 국립대학 교수 가반 마코막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조선이 딴나라와 다른 점은 그 어느 나라보다 긴 세월 미국으로부터 핵위협을 받아 왔다는것이다.그러면서도 북조선이 노이로제에 걸리지도 않고 정신불안으로도 되지 않았는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람을 욕망의 덩어리로 보고 교환가치와 개인이기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는 구미나 일본같은 나라가 북조선과 같은 처지에 놓였더라면 벌써 전에 폭동이 일어나거나 난민이 대량유출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노이로제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북조선국민들은 자기들이 민족의 자주성을 수호하기 위해 한목숨 바칠 각오를 가지고 김일성,김정일을 중심으로 단결해왔다고 주장한다.
또 민족자주성수호를 위해 모든것을 바쳐 싸우는 정신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전통적 미덕이라고 강조한다.북조선국민들은 김일성,김정일과 일체감을 느끼고 있다.국민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이야 말로 외래침략자와 싸우는 광복의 구세주이기 때문이다.
흔히 서방세계 사람들은 김일성,김정일을 중심으로 하는 북조선 국민의 단결을 가리켜 "개인숭배"라고 한다.그러나 그것은 "Love Corean Policy"라고 할까,"조선지상주의" 정신 의 표현이라고 봐야 옳을것이다.
서울에 있는 고려대학에서 북한문제를 가르치는 브라이언 마이어즈 조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두 김에 대한 숭배는 결코 사회주의적개인숭배가 아니다.
쓰딸린과 모택동은 변증법적유물론을 완벽하게 파악함으로써 존경받았다. 김정일과 고 김일성은 민족적미덕을 완벽하게 구현함으로써 군주와 같이 존경받고 있다>(Prof.R.Myers,a North Korean specialist at Korea University, Seoul,notes[12].뉴욕타임스2003년5월19일)
물질적자원은 한계가 있지만 민족의 자주성을 위해 싸우는 인간의 사상정신적자원은 무한대이다.김정일과 북조선 국민들은 이 무한 대한 자원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핵무기개발의 3대 이유
김정일이 핵무기개발을 결심한 이유는 세가지를 올릴 수 있다.그 세가지는 다 조선반도가 놓인 지정학적상황을 타산한것이다.그것은 reactive "반응형""수동적"측면도 있지만 proactive "선취형""능동적"측면이 더 강하다. 국토방위만이라면 수동이다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과는 직접 결부가 안된다.국토방위는 물론이고 조국통일의 기본장애물인 미국의 군사간섭도 무력화할 수 있는 그러한 무력을 쌓아 올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핵무기인 것이다. 북조선은 핵탄두를 적재한 ICBM(대륙간탄도탄)를 가지고 있다.영국,불란스,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은 핵은 가지고 있어도 ICBM은 안가지고 있다
.북조선은 미국,러시아,중국과 더불어 핵과 ICBM를 다가지고 있는 세계4강 의 하나로 부상하였다. 김정일이 국민생활을 희생까지시키면서 이만치 강력한 핵억제력을 갖춘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는 세가지 있다.
첫째 미국의 핵위협에 대처.
북조선에 보복능력이 있으면 미국도 쉽싸리 공격 못한다.
CIA는 2003년2월12일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조선은 미합중국 전체를 사정거리내에 두는 1만5천km의 ICBM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였다.(AP통신 2003년2월12일)
이전 미국방차관보이며 현재 허버드대학 케네디행정대학원 학장인 조셉 나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부시정권이 북조선보다 이라크를 치게 된것은(조선반도에는)억제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그것은 북조선의 대미억제력이다>
(로산젤스타임스 2003년3월12일)
둘째 코스트 파퍼먼스.
인구,국토,경제력등에 비추어 볼때 북조선이 재래식군비로 미국과 대항하기는 너무나 부담이 크다.그러나 핵을 실은 장거리 미사일이면 뉴욕,도쿄를 쌉시에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
셋째 조국통일을 위한 크나큰 원동력.
김정일이 핵무장을 결심한 최대 이유는 여기에 있다.김정일정치의 최대목표는 조국과 민족을 다시 하나로 결합 시켜 자주성과 존엄을 되찾는데 있다.북조선의 핵무장은 조국통일 촉진을 위해 세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북조선의 과학기술력을 과시하며 특히는 선군정치의 타당성을 입증.
이것은 민족적자부심을 한없이 고무하여 용기와 신심을 준다.
2)한국국민에게 주는 이미지.
한국을 종속시키고 있는 미국과 정면으로 맞서 압도하고 있는 북조선의 모습은 한국국민들을 감동시키는 동시에 조국통일에 대한 신심을 준다.그와 더불어 통일의 장애물은 미국이라는것을 실물교육하게 된다.
<미국에 의한 새로운 전쟁으로부터 전체조선을 지키기 위해 북조선이 핵폭탄을 가진 핵보유국으로 되는>것을 보고 <민족적긍지감으로 하여 한국의 일부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감동으로 떨고 있다>(뉴욕타임스2002년12월 25일).
이 감동이 한국국민들 사이에 북조선과의 민족적일체감을 낳고 있다.
3)미국의 대조선간섭정책,조선적대시정책을 무력화.
북조선이 아무리 금성철벽의 요새를 쌓아올려도 미국은 무시할 수 있었다.조미간에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는 우리 민족의 분단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
.그러나 북조선이 핵으로 미본토를 공격할수 있게 되여 비로소 미국은 대화에 응해 나서게 되였다.역시<미친 개는 몽둥이로 잡아야 한다><독은 독으로 다스려야 하고 핵은 핵으로 다스려야 한다>라는 말이 옳았다.
김정일이 핵을 가지면 미국이 대화에 응하건 응하지 않건 북조선이 승리한다.대화로 적대시정책을 철회하면 김정일은 목적을 달성하고 그들이 끝내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미국의 핵우산은 째여지고 말것이다.
부시정권의 고관은<어느 경우에도 북조선이 승리자이다.우리가 교섭하여 그들에게 안전보장을 주면 그들이 승리자 이다.우리가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그들은 아마 금후 6-8주일내로 핵무기를 개발할것이다>라고 말하였다.(워싱 턴타임스2003년1월7일)
만일 북조선이 핵무장을 공식선포하면 일본,한국의 핵무장을 유발하며 중국,러시아도 그에 따라 핵을 증강할 것이다.미국의 핵우산은 무의미하게 되고 미국은 더이상 역할을 놀지 못해 초대국의 지위에서 내리게 된다.재한 미군은 존재이유를 상실하여 나갈 수 밖에 없다.
[3]미국의 멱살을 잡아라-극비 핵개발의 경위
북조선의 핵개발은 네가지 시기로 나눌 수 있다.(1)기초연구기=조선전쟁직후로부터 1965년까지 약10년. 기초연구,핵전문가양성시기 (2)극비 핵무기개발기=1966년부터 1984년까지 20년가까운 기간 (3)후림 핵계획기=1985년부터 2000년까지 15년남짓한 기간 (4)조미최종결전은 2001년 이후의 핵무기개발공개시기.
기초연구기=원자력연구소설립,핵전문가양성
이 시기는 김정일이 중학,고교,대학을 거쳐 중앙당에 들어 간 시기이다.김일성은 1952년에 전선에서 과학자 들을 후방으로 소환하여 과학원을 설립,그 산하에 원자력연구소를 두었다.
많은 과학자들을 해외유학시켰다.특히 1956년부터는 모스크바공업물리연구소,바우맨고등기술학원,모스크바에너지연구소,옵닌스크물리연구소,원자력공과대학 그리고 사회주의나라들의 공동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듭나원자력합동연구소등에 유학 보냈다.
20명이상이 박사칭호를 받았으며 적어도 450명이상의 핵전문가와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양성되었다(뉴스위크2003년10울27일).그들이 모체가 되어 북조선의 핵전문가들은 급속히 불어나 현재 그수는 수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1961년 북조선은 소련,중국과 각각 군사동맹을 맺었다.그러나 62년의 꾸바위기로 소련이 믿을 수 없는것을 알게 되였다.중국은 문화대혁명 전야였으며 조중국경정세가 뒤숭숭하기 시작하였다.중국은 1964년에 핵실험에 성공했으나 핵기술정보 제공을 거절하였다
.미국과 대결할 때 소련도 중국도 믿을 수 없다는것이 확실하게 되였다. 김정일은 당시 아직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이였지만 벌써 탁월한 정치,군사적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김일성은 김정일과 상담하여 1962년에 핵개발을 본격적으로 개시하기로 결심.그해12월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4기5차회의 에서 비밀결정을 채택하였다.
극비 핵무기개발기=김정일이 83년에 전군 작전지휘권을 장악한 이유
이 시기에 극비로 핵무기개발에 성공,북조선은 김정일의 진두지휘아래 수폭을 포함한 각종 핵무기와 장거리 운반수단을 갖추었다.북조선은 미,러,중의 다음 가는 세계4강의 숨은 성원국으로 되였다.
이 빛나는 업적으로 하여 백두산 기슭의 삼지연에서 열린 조선노동당,조선인민군 합동회의에서 김정일은 1983년6월13일 조선인민군을 포함한 북조선 전체군사력의 작전지휘권을 장악하엿다.1991년12월24일 조선 인민군최고사령관 취임발표는 대외적인 발표에 지나지 않다.
핵개발이 본격적으로 시동한것은 1974년2월13일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5기8차회의에서 김정일이 김일성의 유일 후계자로 추대된 때로부터이다.이 회의의 약3주일후 3월25일 최고인민회의는 미국의회에 대하여 처음으로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직접교섭을 제기하는 편지를 보냈다.
영변의 2메가W 연구로가 임계에 도달한것은 조국광복20주년이 되는 1965년8월15일이었다.다음 해 김정일은 핵을 개발하여 재한미군을 무력화함으로써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할데 대한 구상을 밝혔다.
5메가w 흑연감속노가 임계에 도달한것은 그로부터 20년후인 85년8월14일 조국광복 40주년기념일 바로 전날이었다. 조선반도 재통일을 시야에 넣은 대미전략의 일환으로 김정일은 국내에 풍부한 천연우란을 그대로 연료로 쓸 수 있는 원자로와 농축우란공장을 지하에 건설하였다
.우란형과 푸루토늄형 두종류의 핵 폭탄,핵탄두 제조에 성공하여 실전배치하였다.군사목적인 이상 극비로 해야 하며 더욱이 지상에 건설하면 미군의 공격목표로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모두 지하에 건설할 필요가 있었다.
1989년에는 미본토를 직격할 수 있는 다단식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노동신문 1998년9월8일.바로 1주일 쯤전에 있은 인공위성발사계획에 참가한 과학자,기술자들의 좌담회를 게재.그 기사속에서 밝혀진 사실).
후림 핵계획기=노리는 사냥감은 초대국 미국
말하자면 루어피싱(가짜먹이 낚시=강도낚시)로 초대국 미국을 낙는 계획이다.루어(가짜먹이,후림)는 먼저 지상에 건설하였다.인공위성으로 잘보이도록 요란한 핵시설을 만든것이었다.이것은 처음부터 공개용이었다.미국은 이 작전에 감쪽같이 속았다.
반세기가까이 상대를 무시하고 봉쇄 고사시키려던 미국이 북조선을 건들이기 시작 하였다.기회를 노리던 김정일은 미국의 멱살을 잡아 계획대로 대화에로 끌어들였다.
[4]역대 미행정부의 대응
후림 핵계획시기에 김정일이 대응한 미행정부는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정권(1981-88년)과 공화당조지 부시 정권(1989-92년),민주당 빌 클린턴정권(1993-2000년)이었다.후림 핵계획에 대한 세정권의 대응에는 흥미로운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어느 경우에도 김정일의 작전은 성공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왜 레이건정권이 북조선과의 대화를 했는가,왜 부시정권이 북조선의 요구를 받아 들여 한국에서 핵무기를 철수했는가,왜 "팀 스피릿"합동군사연습을 그만두었는가에 대하여 생각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다.
레이건정권=조용히 접촉을 하다
레이건정권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르고 엉터리 "스타 워즈"계획으로 소련을 협박하였다.또 아프간등의 반소 겔리라에 무기와 자금 원조를 대주어 소련군을 철퇴시키는데 큰 역할을 놀았다.
많은 사람들은 응당 북조선에 대해서도 강경책으로 나설것이라고 기대하였을것이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레이건정권은 북조선핵문제를 떠들지도 않았으며 강경책을 취하지도 않았다.
북조선은 1983년 봄 중국을 통하여 조미한3자회담을 제안했으며 이듬해 1월10일과 27일에도 미국정부,의회와 한국정부에 편지를 보내 3자회담을 다시 제기하였다.
그러나 레이건정권은 그것을 무시하였다.당시 국무차관보 폴 울포위츠(현재 국방부 부장관)의 강한 반대가 있엇기 때문이라고 한다.또 그당시 노태우정권도 반대하였다.
그러나 레이건정권은 북조선이 핵활동을 서둘러 확대하는 징후를 포착하자 무시정책을 그만두고 두가지 대응책을 취하였다.첫째 조치는 소련,중국,서구라파 나라들에 대하여 북조선에 핵관련자재를 공급하지 말도록 요청하는것 이었다.
둘째는 북조선과 외교채널을 여는것이었다.첫 외교대화는 레이건정권 2기째의 마지막 해인 1988년 10월31일에 행해졌다.장소는 베이징이었다.
부시(아버지)정권=핵무기철수,"팀 스피릿"중지
부시정권은 1991년만전쟁에서 하이텍무기를 총동원하여 이라크에 압승했다고 떠들었다.또한 소련의 붕괴를 바로 눈앞에서 보기도 하였다.많은 사람들은 이라크에 사용된 하이텍무기에 북조선이 공포애 떨고 있으리라고 제멋대로 생각했었다.그들은 크게 실망하였다.
부시정권은 전임자 레이건정권보다 더"회유적"으로 되었다. 부시정권은 북조선의 요구,즉 (1)"팀 스피릿"합동군사연습 중지(2)3자회담(3)한국에서 핵무기철수 4)재한미군 철수(5)핵부사용 약속 가운데서 우선 (1)과(3)을 수용했다.
그결과 1991년9월17일 남북조선은 유엔에 가입하였으며 남북대화가 진척되여 12월13일 "남북화해,불가침, 교류,협력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었다.
클린턴정권=처음에는 위협 공갈,나중에는 교섭으로
클린턴정권은 전임자들과는 달리 처음엔 난폭한 태도로 나섰다.특별사찰을 받아 들이지 않으면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한것이다.
그는 전임자들이 어째서 고립무원으로 된 북조선에 대하여 저렇게 융화정책을 쓰지않으면 안되였는지에 대해 더좀 신중히 생각하여야 했을텐데 그렇지 않았다.그 이유는 몇가지 생각할 수 있다.
(1)전임 공화당 정권들과의 차이를 보이고 싶었다. 더욱이 클린턴의 경우 군대복무경력이 없는것을 트집잡는 여론이 일부에 있었기에 자기를 "강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것이 아닌가.
(2)"핵구락부"멤버를 불쿠지 않는것이 미국의 기본정책.
(3)북조선은 꼭 알맞는 "샌드백".
소련은 붕괴하고 중국은 자본주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북조선은 고립무원이다.북조선을 붕괴시키면 외교적공로로 기록될것이다.
이와 같은 정세인식은 결코 나무랄 수 없었다.그당시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했던것이다.그러나 아쉽게도 그들은 다 배달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무식하였다.
(!)김정일이 수퍼김일성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대국을 조종하는데서는 김정일이 김일성을 넘어서고 있다.푸에블로호 나포사건,EC121정찰비행기 격추사건,포프라 나무사건에서 북조선이 미국을 엎어눌렀는데 주역은 실은 김정일이었다.
(2)북조선정권의 민족주의 정권으로서의 성격을 몰랐다.
북조선정권은 항일투사들이 세운 정권이며 오늘은 반미 조국통일투쟁을 하고있는 정권이다.민족해방이 이정권의 기본임무라는 뜻에서 북조선정권은 민족주의정권이다.따라서 이 정권의 합법성,정통성의 기반은 대국과의 대결에서 미족의 자주성을 지키는데 있다.
(
3)위기를 극복하는 배달민족의 강인성을 몰랐다.
배달민족은 먼 옛날부터 큰나라와의 싸움을 많이 겪어왔기 때문에 단련되고 경이적인 강인성을 지니고 있다 클린턴정권은 나중에 외교정책에서 이성과 냉정성을 되찾았다.
이 정권은 사태의 외교적타개에 나서고 성공하였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핵문제에 관한 조미기본합의가1994년에 이루어 졌으며 2000년에는 국교정상화를 전제로 하는 조미공성명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제네바 핵합의가 북조선측의 승리로 되는 이유
1994년10월21일에 맺어진 조미핵합의의 정식명칭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국과의 사이에 합의된 태두리>이며 <협정><의정서><조약>이라는 표현은 아무데도 씌여져 있지 않다.<태두리>라는 표현은 미국에 양보한 결과이다.
미국이 북조선보다 체면에 구애되는 모양이다.그러나 이 문서가 <협정>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핵합의가 김정일의 역사적승리로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초대국 미국을 상대로 "핵은 없다"는 주장으로 무혈승리.
누가 보더라도 기름도 먹을것도 없으며 물건도 돈도 없는 작은 나라 북조선이 초대국 미국과 정면으로 맞서 싸워 이길 수는 없을것이다.실제로 전쟁을 해서 비기기만 해도 대승리인데 전쟁을 하지 않고 입싸움만으로 이겼으니 대단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미국이 극도로 신경질이 되어 있는 북조선의 핵무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환상의 핵무기이다.미국의 마음속에 있는 핵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조선은 "핵무기"의 존재를 애매하게 함으로써 미국의 마음속에 있는 "핵무기"를 증폭,거대화시켰다. 설전,심리전,총소리 없는 전쟁에서 북조선은 미국을 압도하였다.
2)미국에 한을 품고 있는 7천만 배달민족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미국에 한을 품고 있는 것은 북조선국민뿐일가.결코 그렇지 않을것이다.한국도 경제적으로는 발전했는지 모르겠지만 의연히 미국의 "충견"신세에는 변함이 없다
.동계 올린픽에서 미국에게 금메달을 강탈 당했으며 두 여중생을 깔아죽인 미국병사는 수만,수십만의 촛불시위를 하여도 처벌할 수 없다.해외동포들도 미국놈을 미워하고 있다.조미핵대결에서 초대국과 당당히 맞서 싸우는 김정일의 모습은 바로 민족의 구세주 그 자체이다.
3)조선반도통일을 사정거리 안에 넣었다.
제네바 핵합의의 가장 큰 의의는 민족통일의 최대장애물인 미국의 간섭에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이 생겼다는데 있다.미국의 간섭을 안받침하는 물리적 힘은 재한미군이다.
여때까지 남북합의가 이루어 졌을 때마다 미국의 압력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미국의 질곡에서 혼자 힘으로 빠져 나가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에 실효있는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나라가 오직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김정일이 영도하는 북조선이다.한국국민의 반미자주화투쟁이 김정일북조선의 대미압력과 합쳐질 때 배달민족의 숙원은 비로소 이루어 질것이다.
김정일이 조선반도 재통일을 사정거리안에 넣었다고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근거1:제네바 핵합의 이행은 미국의 적대정책 종결을 가져 온다.
현재의 정전상태(전쟁 계속상태)는 사라지고 북조선은 테로국가 리스트에서 벗어나며 조미국교가 이루어 진다.
이렇게 되면 재한미군과 국가보안법의 존재이유가 없어 진다.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간섭은 무력화된다.
근거2:미국이 끝내 핵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북조선은 핵보유를 공식선포할것이며 미국의 핵우산은 째진다. 미국의 핵합의 불이행은 북조선의 핵활동을 더욱 정당화시켜 준다.
핵우산은 원래 재래식 무기에 의한 공격을 핵으로 반격하겠다는 억제력이다.상대방이 핵을 가지면 이 우산은 못쓰게 된다.핵보복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핵으로 반격 못하기 때문이다.
근거3:핵합의 이행을 태공하다가 재교섭을 하면 할수록 미국의 영향력은 저하된다.
태공하면 미국의 책임이 무거워지며 설득력은 떨어 진다.미국은 자력교섭이 아니라 물에 빠진자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주변나라들을 끌어 넣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꾸로 미국의 교섭력을 더욱 약화시킨다. 이러나 저러나 미국이 빠져 나갈 구멍은 없다.미국은 북조선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게 된다.
[5]무혈승리-김정일장군의 전략목표
<이번에는 어느 경우에도 북조선이 승자이다.부시정권이 북조선과의 교섭에 응하면 북조선에 안전을 보증하게 된다.부시정권이 북조선과의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북조선은 6-8개월로 핵보유국이 된다>
워싱턴타임스2003년1월7일
<부시정권의 안전보장담당 고관 수명이 말하는데 의하면 파월국무장관이 북조선에 대하여 군사적위협을 못하는것은 영변핵시설을 폭격할 경우 미국에는 북조선의 반격에서 일본,한국 두나라를 방위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2002년12월30일
<우리에게는 써먹을만한 카드가 거의 없다.우리는 군사적으로 브라프(위협)를 할 수 없다.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미국은 두가지 전면전쟁을 동시에 치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힘은 적어도 10년전에 없어 졌다>
찰스 클라우트 함머(컬럼니스트)
워싱턴포스트2003년1월3일
<어째서 김정일은 미국을 으를 수 있으며 마지막에는 미국이 양보하게 되는가.김정일은 도대체 어떤 카드를 숨겨 가지고 있는가> 아얀 란드연구소 조지 도슨
CNN뉴스 2003년10월3일
미국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김정일의 승리는 확정적이다.부시정권이 북조선과 교섭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 김정일의 최종전략목표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을 뚫고 조선반도내정간섭정책에 종지부를 찍는것이다.교섭으로 이 목표를 달성하는것은 드림 시나리오이다.
미국이 교섭에 응하지 않아도 북조선이 공인된 핵보유국으로 되여 목표를 달성하는것은 세컨드 베스트이다.김정일은 2001년 부시정권 출범때부터 2003년전후에 본격화될 조미최종핵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한 포석을 쳐 왔다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김정일은 무엇이 일어나도 승리하는 상황을 꾸며낼려 하고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워싱턴포스트2002년12월29일).
미정부내외의 관계자들은 결국 부시에게는 시간이 없고 북조선과 직접교섭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이전 국가안전보좌관 사뮤엘 버거와 이전 국무차관보 로버트 갈루치는<결국 미국측에는 교섭밖에 없다.---시간은 미국편이 아니다>라고 강조하였다(뉴스위크2003년5월12일).
대미승리의 세가지 필수조건
김정일은 미국과의 최종결전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이기는 무혈승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필수조건을 채우면 된다고 보고 있다.
첫째 핵억제력 강화.
핵미사일로 일본과 미본토를 인질삼아 사실상 미국의 핵타격력을 무력화한다.
둘째 미국 고립화.
러시아,중국과 정치군사적관계를 긴밀히 하는 한편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며 미국을 고립시킨다.
셋째 심리전에서 압도.
조선전쟁과 그후 몇차례의 군사적대결에서 한번도 이겨 본적이 없는 미국인의 공포심,열등감=트라우마를 최대한 이용한다.
이 세가지 조건을 채우는데서 기초가 되는것은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북조선국민들과 군대의 일심단결이며 군사 우선정책(선군정치)의 관철이다.
핵억제력 강화:두가지 악몽의 시나리오
미국의 선택지는 처음부터 제한돼 있다.(1)북조선에 대한 군사공격(2)북조선과의 교섭 거부(3)북조선과의 평화공존.이 세가지 중에서 처음 두가지는 악몽의 시나리오이다.
악몽의 시나리오1:북조선에 대한 군사공격.
한국과 일본의 수구세력의 일부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북조선에 대한 군사공격을 주장학고 있지만 그것은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잠꼬대에 지나지 않다. 부시정권의 고관이나 전문가들은 일치하게 미국에는 북조선을 군사적으로 배제하는 선택지가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
아슈턴 커터는 자기가 국방차관보였던 1993-94년 핵위기 당시를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당시 나는 자기 시간의 절반을 회피할 수 없을 듯 보이던 전쟁을 준비하는 계획에 소비하였다.나는 지금도 그때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부시정권에도 그때의 공포는 얼마없이 선명하게 될것이다>(보스턴글럽2001년3월15일).
아슈턴 커터의 상사였던 이전 국방장관 위리엄 페리는 1999년 클린턴정권에 대한 정책건의서,
소위<페리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조선반도에서의 새로운 전쟁은 미국에 있어서는 1950-53년에 있은 전쟁이래 경험한적이 없는 혹심한것으로 될것이다.수십만에 달하는 미국,한국,북조선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희생되며 수백만이나 되는 난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미군이 영변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을 개시한 순간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김정일은 미본토 대도시부에 대한 대량 핵보복명령을 내릴것이다.
뉴욕,워싱턴,시카고,로스엔젤스는 괴멸된다.도쿄,오사까 등 일본 대도시를 향해서는 중거리 핵미사일이 발사된다.전쟁은 한시간으로 끝난다.
2004년에 탄도탄요격미사일기지가 알래스카에 설치된다고 하는데 최신정보에 의하면 탄도탄요격미사일의 실험은 모두 실패라고 한다.
성공했다는것은 북조선의 탄도탄보다 길이는 3배,직경은 2배가까이 의도적으로 크게 만든것이고 발사시간,장소,속도도 다 사전에 알려 진 조건에서 진행된 "실험"이었다.
2003년1월2일부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탄도탄요격미사일기술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마사츄셋츠공과대학이 데이터를 조작하여 성공한것처럼 보이었다.
현실문제로 탄도탄요격미사일의 원리는 권총에서 발사되는 탄알(맛하2)을 다른 권총으로 발사한 총알로 맞추어 떨구는 것과 같다.
악몽의 시나리오2:북조선과의 교섭 거부
플라이셔 미 대통령보도관은 2003년4월29일 앞으로 조미교섭은<장기간에 걸친다는것을 대통령은 각오하고 있다>라고 하면서 핵개발포기에 대해<미국이 보상을 주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방금 군사력으로 이라크를 제압한 부시정권이다.
첫 잽으로서는 그쯤 말하는거야 당연하겠지.그러나 그 말은 본심이 아니라 체면 차리기에 불과하다.교섭거부는 부시정권에게 있어서 악몽의 시나리오로 된다.
부시정권으로서는 경제가 극도로 피쳬되고 식량부족에 고심하는 북조선의 김정일정권과의 교섭을 거부함으로써 내부붕괴에로 유도하고 싶겠지만 그 욕심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북조선과의 교섭을 끝내 거부하면 어떻게 되겠는가.미국의 국제안전보장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핵우산과 핵확산방지체제가 무너지고 핵도미노가 동아시아에서 일어나며 북조선의 핵무기가 해외에 수출되고 미국의 초대국 지위는 상실되고 만다.
첫째 북조선의 핵무기가 확실히 증대된다.
미국의 첩보기관,예컨대 CIA는 1950년대말 ,60년대,70년대,80년대,90년대,2000년대에 언제나 북조선이 1개 내지 2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하였다.몇십년이 지나도 핵무기 수는 불어나지 않는다.
그들이 1-2개라고 할때의 계산방법은 1945년당시 나가사끼형 원폭 1개를 제조하는데 필요했던 플루토늄 5-7키로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러나 탄도미사일 답재용 원폭이라면 1-2키로로 충분하다.북조선이 미본토 직격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을 포함한 수백대의 중장거리미사일을 배치하고 있는 이상 당연히 그에 알맞는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하였을 것으로 봐야 한다.
사실 미정부는 작년에 일본정부에 대하여 북조선이 핵탄두의 소형화에 성공했다고 통고하였다(일본경제신문 2003년6월20일).
많은 전문가들은 영변의 8천대의 사용후 핵연료봉을 재처리하면 5-6개의 원폭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전문가의 계산에 의하면 북조선은 5-6개가 아니라 적어도 20개의 원폭을 제조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2003년10월3일).
우와 같은 논의들은 어데까지나 공개돼 있는 원자력발전소들을 기초로 한것이다. 만일 북조선이 땅밑에서 비밀로 원자력발전소들을 가동중이라면 사태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지상의 전기가 꺼지더라도 평양의 지하철에는 정전이 없는것과 마찬가지로 북조선의 지하요새에는 정전이 없다.왜인가.
다시 말하면 조미교섭이 재개되지 않으면 북조선은 달마다 수개의 핵무기를 생산하게 된다.이제 와서는 때가 늦어 미국은 북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여 가고 있다.
둘째 북조선의 핵무기가 해외에 수출되는 위험성.
미국이 끝내 교섭을 거부하면 북조선은 핵보유를 공식선포할것이다.미국은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북조선의 핵보유를 실질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더라도 미국은 핵무기 또는 핵물질의 해외수출에는 필사적으로 반대해 나설것이다.그러나 그렇게 할 국제법적근거가 없다.미국이 여태까지 국책으로 삼아 왔던 핵확산방지체제는 소리내여 무너진다.
중동이나 캐립해 나라들이 극비밀리에 북조선으로부터 탄도미사일과 핵탄두를 셋으로 구입하면 이슬라엘은 물론 유럽전역,미합중국전역이 핵탄도미사일 사정거리안에 들어 가게 된다.세계의 군사발랜스는 극적으로 바뀌어진다.미국의 세계적지위는 크게 흔들린다.
미국은 북조선이 핵무기수출을 그만두는 대가로 많은 보상을 제공하는 흥정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핵무기로 무장한 북조선에 미국이 군사행동을 못한다는 사실은 미국으로부터 군사적위협을 받고 있는 반미 혹은 잠재적반미 국가들에 크나큰 고무를 줄 것이다.
셋째 한국과 일본에 대한 핵우산이 째여지고 재한미군,재일미군의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북조선이 핵보유국으로 되면 어떻게 될까.
뉴욕타임스는<그렇게 되면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맹국들은 미국의 안전보장이 자기나라 방위와 생존유지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수단이 되겠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품게 될것이다>라고 지적하였다(뉴욕타임스2003년1월1일).
미국의 핵우산은 무의미하게 될뿐아니라 북조선 핵앞 에서 재한미군은 위험천만한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이다.재한미군은 철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미국 고립화:철부지 부시의 일방주의
횡포하고 단순한 부시정권은 김정일에게 있어서 아주 다루기 쉬운 상대이다.부시처럼 한국민의 자존심을 손상시켜 남북연계강화를 촉진시켜 준 미대통령은 일찍이 없었다.김정일의 수법의 하나는 상대방이 실점하도록 모르는 사이에 이끌어 가는 것인데 부시는 기대이상의 자책점을 낳아 주었다.
*미군장갑차에 의한 한국여중생 깔아죽이기
*동계오린픽에서 미국선수가 한국선수의 금메달 횡취
*김대중대통령을 모욕한 한미수뇌자회담
*부시의 "악의 축"발언
*미국의 이라크침략
*한국에 대한 이라크파병요구
아마 김정일은 부시에게 감사하고 있을 것이다.부시정권이 생긴후 조미간에 긴장은 높아졌지만 한국내에서는 북조선에 대한 동정과 공감이 널리 퍼져 갔으며 남북간의 연계와 교류,단결이 전례없이 확대 심화되였다.
뿐만아니라 부시정권은 역대 미정권 가우데서 가장 국제적으로 고립된 정권이다.교도의정서 이탈문제,포괄적핵 실험금지조약 비준거부문제,국제형사재판소 설립반대,팔레스타인문제,이라크침략 등등으로 부시정권은 유럽동맹나라 들 기타 온 세계 나라들과 심각한 대립을 야기하였다.
특히 도이칠란트,프랑스,캐나다와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김정일의 전술의 하나는 적진영을 무너뜨리는 것인데 부시정권에 대해서는 그 수고를 덜 수 있었다.
뉴욕타임스조차 부시정권을 가리켜"핵을 쥔 깡패"라고 부르는 지경이다. 국제적주간잡지 타임 유럽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유럽에서는 83%사람들이 미국을 세계평화의 최대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타임 유럽판 2003년1월16일).
유럽연합(EU)유럽위원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EU시민의 78%는 <이라크전쟁은 정당화할 수 없다>라고 대답하였다(일본 요미우리신문2003년11월4일).
미국인의 공포심:<북조선군은 범,그에 비하면 일본군은 고양이>
미국 의회조사국의 조선문제전문가인 랄리 닉슈박사는 2003년11월4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부시 정권은 북조선과의 핵교섭에서 심리전이 취약해서 지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김정일은 미국인의 심층심리에 깊이 새겨진 토라우마,북조선에 대한 공포심과 열등감을 간파한 기초우에서 절묘한 심리전을 구사하고 있다. 제2차대전에서 도이칠란트와 일본을 물량으로 압도한 미국은"불패"의 신화에 도취하였다.
그 신화를 산산 쪼각으로 깨뜨려 미국인에게 공포심과 열등감을 심은 것은 김일성이었다
조선전쟁 때 전투와 외교교섭의 양면 에서 미국은 말할 수 없는 좌절감과 자신상실을 맛봤다.
공폭,함포사격,지상포격으로 북조선을 완전히 재터미로 만들어 나중에는 공폭의 대상이 없어졌다.일시적으로는 북조선을 점령하여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미국은 북조선을 끝내 굴복시킬 수 없었다.오히려 반격을 받아 패퇴에 패퇴를 거듭하였다.핵무기사용을 불사하겠다고 몇번이나 위협했지만 헛사였다.
휴전회담이 시작되었으나 회담은 북조선페이스로 진행되였다.교섭은 2개월정도로 끝나고 미군병사들은 자기집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는데 결국 2년 걸렸다.
전쟁터에서 이기지 못한 몫을 테이블 우에서 되찾을려는 수작이 통할 리 없었다. 태평양전쟁과 조선전쟁을 싸운 어느 미군장교는<북조선군은 젊은 범이었다.
그에 비하면 일본군은 고양이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고백하였다(뉴스위크1994년6월18일).
뉴욕타임스의 유명한 군사저널리스트였던 핸슨 볼드윈은 북조선군은<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 무자비하며 전투에서 우수하며 훈련된 야만인>이라고 평하였으며 그래도 모자라<확신범, 광신자>라고 덧붙였다(Bruce Cumings,North Korea Another Country[New York ;New Press,2003],p12).
미군에게 트라우마(정신적상처)를 새겨 넣은 좌절감을 더한 것은 미국의 연속 텔레비드라마<맛슈(Mobil Army Surgical Hospital 육군 외과 이동병원)이었다.
조선전쟁의 잔학성을 그린 이 CBS텔레비의 롱란프로그램은 시청율이 60%이상이나 올라갔다.또 미군은 병사교육용으로 북조선군의 잔학무도성을 되풀이 강조하였다.결국 북조선콤플렉스,열등감,질색의식은 조선전쟁에 참가한 미군장병뿐아니라 미군전체에 퍼졌다.
나치스 도이칠란트와 일본에 대해서는 무조건항복을 시켜 군사재판도 한 미군이 조선에서는 거저 정전협정을 맺었을뿐이었다. 미국은 북조선을"침략자"로 낙인찍는 안보이사회결의를 채택케 하여 유엔군을 결성하였다.
그런데 정전협정으로 끝맺은 것은 미국이 유엔안보이사회결의로 지닌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된다.미국의 트라우마는 조선전쟁 참패에서 비롯되였으며 그후 반세기를 넘는 조미대결에서 더 깊어 졌다.아래와 같은 실례들은 미군의 트라우마를 인식할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1)1968년 스파이선 프에블로호나포사건에서는 미군이 공모 3척과 수백대의 폭격기,전투기를 동원하였지만 아무 것도 못하고 물러섰다.끝끝내 미국은 정부 이름으로 정식사죄문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에블로호는 지금도 북조선측에 있다.
2)1969년 전자정찰기EC121격추사건 때 승무원 수십명이 죽었다.미국은 공모 4척과 수백대의 폭격기, 전투기를 동원하였으나 역시 아무것도 못하고 물러섰다.
3)1976년 군사분계선상의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서 일어난 포프라나무벌채사건(판문점 도끼사건)때는 미군장교 2명이 죽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미군은 구식 공모 미드웨이 1척만 동원하였다.게다가 보복작전이라면서 한것이 B52원호밑에 진행된 포프라나무 베어넘기기뿐이었다.그 작전의 코드네임은 어마어마하게도"그레이트 바니안 오페레이션"(거목작전)이었다.
4)1993-94년의 제1차 조미핵대결 때 클린턴정권은 조선반도에 공모전투그룹이나 전략폭격기 등을 동원하지 않았다. 클린턴정권은 김정일정권과 제네바핵합의를 체결하여 다시는 북조선을 핵으로 위협하지 않으며 사용도 안할데 대하여 문서로 약속하였다.
5)2001년에 취임한 부시정권은 북조선의 핵무기보유표명에 대해 이렇다 할 항의도 안하며 무력행사의 태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뿐만아니라 북조선과의 직접교섭이 겁나서 둘러리가 함께 참가하는 3자회담이나 6자회담에서 대화를 하려고 하고 있다.단독으로 교섭하면 북조선에게 주도권을 빼앗길가 봐 신경질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6]비참한 결론-부시가 행한 전쟁씨뮤레이션
부시정권은 2003년에 들어와서 이라크전쟁을 감행하는 한편 다음 과녁을 조선반도로 정하였다.이해에 두번에 걸쳐 전쟁씨뮤레이션이 진행되었다.첫번째는 5월30일 워싱턴에 있는 국제전략연구소에서 진행되었다.두번째는 7월중순에 펜타곤에서 진행되었다.
클린턴정권시기 1993년에 진행된 씨뮤레이션에서는 북조선에 대해 최신하이텍무기로 무장한 미군병력 60만 가까이를 동원하는 것으로 상정하였다.
결론은 미군이 승리하기는 하는데 아주 비참한 손해를 입을 것이라는 것이였다.조선인민군이 재래식 무기만으로 반격한다는 전제밑에 나온 결론이 그러하였다.
그렇다면 부시정권이 진행한 씨뮤레이션은 어떤 결론을 냈을가.대부분 사람들은 조선인민군이 미한연합군에 당하지 못해 항복하여 이라크와 같은 사태가 재현되리라는 생각이였을 것이다.그러나 유감하게도 그와 같은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결과가 나왔다.
국제전략연구소의 씨뮤레이션-선택지가 없다
이 연구소의 소재지는 워싱턴 중심부의 K스트리트라고만 밝혀져 있다.대처방법을 제재,협박,봉쇄에로 차차 조여 가서 군사행동을 취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씨뮤레이션참가자들은 아무런 효과적선택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씨뮤레이션에 입회한 내셔낼 파브릭 라디오 기자 톰 젠틀은<참가자들은 결국 중대한 결단을 내리기를 단념하고 말았다.그들은 아무런 유효한 군사적선택지가 없는데 대하여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라고 말하였다(BBC텔레비 2003년8월18일).
군사적선택지가 없는 이상 북조선과는 외교적해결책을 모색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부시정권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내렸다.
펜타곤이 진행한 씨뮤레이션-미국은 참패한다
국제전략연구소에서 진행된 씨뮤레이션으로 부시정권에는 군사적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명백히 되었지만 국방장관 렘스펠드-이 전쟁미치광이는 단념하기가 너무나 아쉬어서 기어이 자기자신의 손으로 다시 씨뮤레이션을 하였다.
이번에는 현역장성,고급장교들이 모여 7월중순의 어느 날 온종일 펜타곤에서 진행하였다.<씨뮤레이션이 끝났을 때 참가자의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요컨대 우리는 패한다">(뉴욕타임스2003년8월1일)
"우리는 패한다"는 영어표현은 We're doomed. 그런데 소식통에 의하면 그때 실제로 사용된 영어는 We're going to be fucked. 즉"우리는 참패한다"였다고 한다.
이 씨뮤레이션결과의 구체적내용은 아직 일체 바깥에 안나와 있다.1993-94년 시점에서의 씨뮤레이션 결과는 미군 약10만명 전사,한국시민 수백만명 사망,그러나 우선 미국이 이기기는 이기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아 We're going to be fucked."우리는 참패한다"라는 결론이다.
부시정권은 무엇이 두려워서 발표를 꺼리고 있는가.미군에게는 그들이 자랑하는 하이텍무기와 북조선의 지하요새들을 까부스기 위한 버커버스터가 있지 않는가.
도대체 북조선에 무슨 어마어마한 무기가 있길래 "참패"라는 결과를 펜타곤 콤퓨터가 튕겨내었는가.씨뮤레이션 결과는 아마 10중 8,9 북조선의 보복공격으로 재한,재일 미군기지가 괴멸하며 도쿄 등 일본의 대도시도 타버리고
뉴욕,시카고 등 미국대도시도 불바다가 되며 일본,미국 시민이 각각 수백만명씩 죽는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그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발표할래야 할 수 없지 않는가.
이와 비슷한 일이 지나간 핵대결 때에도 있었다.1993년5월에 시험발사한 북조선의 3단식미사일이 일본열토를 뛰어넘어 한발은 하와이 앞바다,또 한발은 괌도 앞바다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클린턴정권은 어쩐지 북조선의 노동미사일이 일본 노도반도 앞바다에 착수했다고 거짓 발표를 하였다.게다가 그 거짓 정보조차 일본정부에 제공된 것은 사건발생 5년후인 1998년 초여름이었다.
작년 펜타곤에서 실시된 씨뮤레이션은 미군의 선제공격에 대해 북조선이 핵으로 보복하는 것을 전제로 했을 것이다.그것을 넌지시 비춘 것이 2003년7월15일부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이전 국방장관 페리의 발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북조선에서 추진되고 있는 핵무기개발계획은 핵무기가 미국의 도시에서 폭발할 수 있는 절박한 위험성을 의미한다>.
미국이 북조선의 핵무기를 념두에 두고 있는 것을 암시하는 사례로서는 또한 최근에 거론되고 있는 재한미군 재배치문제가 있다.미국은 서울 북쪽에 설치되여 있는 군사기지를 서울 남쪽에 이동시켜 서서히 미군병력을 삭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조선전쟁이후 재한미군의 기본작전계획이었던 "작전계획5027"에 의하면 미군이 최전선에서 조선인민군을 맞받아 치기로 돼 있었다.
때문에 재한미군의 최정예전투부대는 서울 북쪽에 전개되여 있었다.다시 말하면 북조선의 핵보유는 미군의 작전계획마저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구소련과의 냉전시기에도 재한미군의 최전선배치에는 변화가 없었다.왜냐 하면 미군주둔의 대의명분이 서울방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조선의 1만3천문이상이라는 다연장로켓포와 장거리포의 유효사정거리안에 있었던 기지로부터 미군은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그런데 북조선의 핵무기보유가 확실히 밝혀지자 미군은 서울 천만시민을 방패삼아 그 뒤에 숨기로 하였다.
싸우지 못하는 상대"북조선을 매수하라"
펜타곤 씨뮤레아션 직후 보수계 일간지 시카고 트리뷴 논설위원 스팁 챕맨은 북조선의 협박에 굴복하여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썼다.
<협박에는 굴하지 않는 것이 건전한 원칙이다.그러나 그 누군가가 만일 당신 딸의 머리에 총을 대고 있다면 당신은 딸이 죽느니 차라리 몸값을 치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잃을 것이 너무 크면 협박에 굴하는 것이 가장 좋은 안전책일 수 있다.하여간 협박에 관해서는 북조선에 당하는 나라가 없다>(사카고 트리뷴2003년7월17일).
챕맨은 계속하여 북조선의 핵무기가 미국 도시부에서 폭발할 가능성에 대한 이전 국방장관 페리의 발언을 인용하면서<김정일은 시카고나 뉴욕에 대해 털끝만치의 애착심도 안가지고 있다>고 썼다.
이 말은 그들이 북조선의 핵미사일공격으로 미국 대도시가 불바다로 될 것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챕맨은 말을 이었다.
<한국이나 일본에 대해 사용될지도 모르는 핵무기에 대해 생각하면 군사적선택지는 극히 바람직스럽지 않다.선제폭격도 무의미하다.왜냐 하면 핵무기가 어데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전면공격 밖에 없는데 그것도 지금 미국이 안고 있는 군사적과제를 생각하면 더욱이 곤란하다.이라크침공으로 북조선이 협력적인 태도로 바뀌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역효과였던 모양이다>.
이 장문의 논설 표제는 <북조선을 매수하는 것이 부시의 최선책>.벌치모어 산은 이튿날 18일부에 챕맨의 이 논설을 전재하여<미국이 북조선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라는 표제를 달았다.
펜타곤 씨뮤레이션이 있은 뒤 7월21일 부시는 기자회견에서 여태껏 괜히 욕질만 해오던 김정일에 대해 처음으로<미스터 김정일>이라고 경칭을 붙여 불렀다.8월14일 부시는 미군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북조선에는 미사일도 핵탄두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7]평양에 대해 양보하기 시작한 부시정권
북조선과 미국 사이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미군이 초하이텍무기로 상대를 짓뭉캔 이라크전쟁의 결과를 보면서 북조선이 공포에 떨고 있으리라는 서방세계 관측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오히려 부시정권이 북조선에 대한 협박도 통하지 않으며 꾀로서도 져서 꼭뒤질려 대폭양보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몰려있다.
협박도 통하지 않으며 꾀로서도 못이겨
최근의 구체적실례를 몇가지 들어 보자.
1)조미회담의 전제조건-<선핵포기>를 포기.
2003년4월16일부 워싱턴포스트는<대폭양보한 것은 부시정권이다>라고 지적하였다.부시정권은 북조선이 먼저 핵개발계획과 미사일개발계획을 포기해야 회담에 응하겠다고 전제조건을 내세우고 있었는데 이 전제조건을 거두치워 베이징3자회담에 응해 나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시정권은 직접회담은 안하고 다자회담이라야 응하겠다고 해왔는데 베이징3자회담은 실질적으로는 조미직접회담이었다.
중국은 사회자역할에 지니지 않았다.3자회담형식을 취한 것은 미국의 체면을 건져 주면서 알맹이를 딸려는 북조선의 전술이었다.
이 회담휴식시간에 중국대표가 없는 자리에서 북조선대표 이근이 미국대표 켈리에게 "핵보유"를 이렀다.3자 회담이었다면 응당 미국대표는 중국대표의 동석을 요구하여 다시 그 발언을 정식으로 확인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대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중국측에 개별적으로 확인도 하지 않았다.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베이징 회담은 겁질은 3자회담,내실은 조미직접회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미국이 "레드라인"포기.
부시정권은 북조선이 사용후 핵연료봉 8천대의 재처리시작은 "레드라인"이므로 이 선을 넘어서면 "응징" 하겠다고 공갈해왔다.그런데 베이징회담에 앞서 북조선측이 2003년3월31일 뉴욕예비접촉에서 미국측에 재처리개시를 통고했다(로이터통신2003년4월26일)
.북조선은 4월18일 외무성성명으로 재처리개시를 공식발표하여 다시 미국을 때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응징은커녕 항의도 못하고 5일후에 열린 베이징회담에 아무말없이 참석하였다.
부시는 김정일정권이 연속 내찌르는 초강경조치에 못따라 가 우왕좌왕할뿐이다.어느 호와이트하우스 고관 은"레드라인"설정을 그만두기로 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태까지 15년간의 대북조선관계를 보니 북조선은 미국이 레드라인을 끄으면 이렇게 말한다."그 레드라인을 건너버리라,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기로 하자,미국이 우리의 조건으로 교섭에 응하겠는지 시험해보자"정말 우리는 레드라인을 끗기 싫소>(워싱턴타임스 2003년5월24일).
3)북조선의 "핵보유"통고에 항의도 못해.
미국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를 기본국책으로 삼고 있다.대량살상무기보유가 아니라 그 "의혹"만으로 이라크를 공격했는데 북조선이 스스로 핵보유를 통고했으니 미국이 취하여야 할 행동은 두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국은 군사공격은 고사하고 북조선대표에게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4)북조선 핵무기보유 용인,해외유출방지에로 방침전환.
미국은 북조선이 플루토늄이나 고농축우란을 제조하는 것을 그어떤 수단을 써더라도 막는 것을 정책으로 내걸어 왔다.그런데 2003년5월5일부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부시정권은
클린턴정권이래 10년동안 지켜온 그 방침을 크게 전환시켜 앞으로는 북조선의 무기급 핵물질의 수출저지를 안받침하는 체제를 추구해 갈 의향이라고 한다.
이것은 부시정권이 여태까지 북조선을 "악의 축"이요 "테로지원국가"요라는 딱지를 붙여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고 떠들던것과는 영 다르게 후퇴한것이다.
북조선이 세계에서 9번째(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인도, 파키스탄,이스라엘에 이어)보유국으로 되기를 용인하고 핵무장한 북조선과 공존하는데 사실상 동의한 것을 시사한다.이는 김정일의 전면승리를 뜻한다.
이 정책전환은 보도가 나오기 조금전에 있은 오스트레일리아수상 하워드와의 회담석상에서 피력된 갓이라 한다. 회담내용을 자세히 아는 소식통이 뉴욕타임스에 밝힌바에 의하면
<대통령은 북조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 가는가가 최대현안이라고 말하고 있다>.이것을 평화적으로 달성하려면 핵물질해외유출방지 문제를 가지고 북조선과의 협상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군사면에서 대결을 피하는 부시정권
2003년4월26일부 일본 교도통신에 의하면 럼스펠드국방장관은 북조선의 핵보유표명과 관련하여 무력행사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대통령은 외교적(해결)노선을 걷고 있으며 대통령과 파월 국무장관이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최종적으로 외교적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결국 부시정권이 북조선의 "대범한 포괄적해결책"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횡포무도한 부시정권이 북조선과의 군사적대결을 얼마나 두려워 하고 있는가 하는것은 2003년3월3일에 있은 RC135S코블라볼 전자정찰기요격사건을 예로 들어 검토하면 잘알 수 있다.
1)미군비행기 긴급발진하지 않음.
동해 앞바다 상공에서 북조선전투기 4대가 미국전자정찰기를 포착,요격하였다.요격은 20분간 계속됐다. 한국,일본에 전개하고 있는 미군비행기가 긴급발진하면 현장에 댈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명령이 떨어 지지 않았다.
미군당국의 설명에 의하면 대규모무력충돌을 피했다는 것이다. 북조선을 군사적으로 굴복시킬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열흘후에 미국은 정찰비행을 재개하였다.재개에 앞서 전투기로 호위하는 이야기도 나오기는 했지만 북조선을 자극할 수 있으니 그만두기로 했다고 한다. 미국은 북조선에 이 사건에 대한 항의를 하기는 했는데 그것은 뉴욕에 있는 유엔대표부를 통해 그것도 전화로 구두항의였다고 한다.주뼛주뼛한 모습이 떠오른다.
2)보복시위를 한다면서 머나먼데에 쓸데 없이 비행기 배치.
요격사건 발생 이틀 후 4일에 미국은 B1폭격기와 B25폭격기 합계24대을 배치했지만 그 장소가 어딘가 하면 조선반도에서 3천KM 떨어진 괌도였다.거기로부터 폭격임무로 조선반도까지 날아 갈려면 4시간 가까이 걸린다.
진짜로 북조선을 위협할 생각이면 오끼나와 혹은 한국기지에 배치하여야 할것이다. 그후 또 1주일이 지나서 11일에 겨우 한국기지에 스텔스F117폭격기 6대를 배치하였다.유고전쟁때 구식 지대공미사일로 격추당한 물건을,그것도 겨우 6대로 어디에 쓰먹겠다는 말인가.
지난 1968년 무장간첩선 프에블로호 나포사건때나 그 이듬해 EC121전자정찰기 격추사건때에는 미국이 수백대를 동원하였는데---.
3)이라크전쟁이 끝났는데 조선반도 주변에 병력집결이 없다.
이라크전쟁이 끝났으며 또 북조선이 핵보유를 표명한 이상 미국은 중동에 파견한 30만 병력과 4척의 항공모함을 조선해역에 그대로 돌려야 할것이다.그러나 그러한 움직임은 일체 없다.
[8]김정일-그는 어떤 사나이인가
북조선은 외화도 석유도 없고 식량도 모자라다.뉴욕타임스는 <아무것도 없는>북조선이 실험도 해본적이 없었을"환상의 핵"만으로 미국을 교섭 테이블에 끄집어내였으니 이것은 기적이라고 했다.유일초대국을 쥐락펴락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인물,김정일국방위원장이란 어떤 사나이인가.
살아있 는 김 일 성
김정일이 미국과의 핵대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은 그가 "살아 있는 김일성"이기 때문이다.부시정권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김정일이지만 동시에 그는 "수퍼 김일성"이기도 하다.
김정일은 환상의 핵무기-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공식보유선언은 아직 안하였으며 그 수량이나 성능도 외부에는 미지수인 핵-를 휘둘으면서 초대국 미국과 감연히 맞서 역사적승리자의 길을 걷고 있다.
조선반도가 미군의 한국 점령으로 말미암아 분단되여 약60년,김정일이 1966년에 극비핵개발명령을 내렸을 때부터 약40년,그의 숙원이었던 재한미군의 무력화는 눈앞에 다가왔다
.이미 남북화해,협력,연계는 궤도에 올랐으며 미국의 간섭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게 되였다.단군민족이 한결같이 바라마지 않는 통일의 그날은 이제 완전히 사정거리안에 들어 왔다.그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상황이다.
1994년 제네바에서 조미사이에 핵합의가 이루어 졌을 때 세상사람들은 북조선의 붕괴는 시간문제로 봤다. 1996년 100년래의 대홍수가 북조선에 들이닥쳐 심각한 식량난에 빠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2001년 부시정권이 등장하여 북조선과의 대화를 거부하며"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고 우겨댔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또다시 붕괴의 두문자가 떠올랐다.
2003년 부시정권이 이라크를 공격,점령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제는 북조선이 빠질 구멍이 없어 졌거나고 생각하였다.
북조선이 NPT(핵확산방지조약)에서 탈퇴하여 핵보유를 미국에 통고하며 핵실험도 불사하겠다고 했을 때 세상사람들은 부시정권을 거스리는 바보로 생각했다.
2003년세밑에 리비아의 카다피가 미영의 강압에 못이겨 핵개발을 포기하여 강제사찰을 수용했을 때 일본 매스콤은 또다시 다음은 북조선이다라고 떠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였다.미국의 고급신문 클리스챈 사이엔스 모니터는<미국을 포함한 유엔안보이사회 상임이사국 세나라가 아무것도 없을 작은 나라의 멋진 책략에 걸려 교섭 테아블에 끌려 갔다>라고 평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 교활한 외교술과 고난을 이겨내는 능력을 보고 김정일정권에 대해 그의 적수조차 찬사를 금지 못하고 있다>(클리스챈 사이엔스 모니터2003년8월26일).
김정일의 전략은 천재의 극치이다.아시아 타임스 평논원 퍼 김 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평양의 핵전략이 성공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북조선은 자기 모습이 부단히 미국의 정책레이더에 비치도록 함으로써 한국,중국,일본이 은혜를 느끼게끔 하고 있다.
이것은 천재적전략의 극치이다><미국의 팔을 비틀면서 일본과 한국에도 압력을 가하는 증폭효과가 생긴다.이 전략은 "1석3조"이다>(아시아타임스2003년1월8일).
미국 주간잡지 뉴요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외교관계로 김정일과 만난 사람들은 예외없이 이렇게 말한다. "딱 깨놓고 말할까요.잘들어시요.김정일은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합리적인 인물이며 상대로부터 노여움이나 적의를 앗아 버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한국사람들은 그가 매력적이며 빈틈없는 사람인 줄 알고 있다.한국사람들은 그에게 매혹돼 있다>(뉴요커2003년9월1일).
2000년10월 미국무장관 올브라이트를 따라 평양을 방문한 어느 여성기자는 2001년8월 워싱턴에서 열린 미시간대학 비즈네스스클이 주최한 회의에서 김정일에 대한 인상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올브라이트국무장관 일행과 함께 기다리던 방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들어왔을 때 그에게는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
(이 회의에는 도이칠란트외무성국장,워싱턴에 있는 국제전략연구소 부소장 위리엄 테일러,러시아외무성아시아국 부국장들과 함께 필자=김명철도 참가하였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조선반도 분단상태에 종지부를 찍을 힘은 없다.한국을 미국의 구속에서 해방시켜 7천만전체를 하나로 재결합하는 민족지도자는 김정일이다.김정일은 거저 북조선만의 지도자가 아니다.
항일의 전화속에서 태여나
민족수난기 국가지도자의 자격이란 무엇이겠는가.나라와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책임감,투지,뛰어난 재능,높은 덕망이겠다.
김정일은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서 항일의 빨찌산영웅을 부모로 하여 이 세상에 고고지 성을 올렸다.그의 천성적인 자질과 더불어 그의 출생환경과 성장과정은 그를 민족의 지도자로 형성시켰다.
첫째 출생지는 민족의 성산 백두산.
정치지도자가 어데서 태여나건 보통은 큰 문제가 아니다.문제는 본인의 정치적기량이다.그러나 국가최고 지도자라면 역시 출생지가 문제로 된다.
이민의 나라라는 미국에서조차 대통령후보는 나이가 35세이상인 미국태생의 미국시민으로서 14년이상 미국내에 거주한 사람이라야 한다.
한국,일본,미국 등의 어용학자들이 김정일이 러시아 시비리 태생이라고 주장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정치적목적이 있다.
1]민족지도자로서의 정통성과 카리스마성을 부정한다.
단군민족의 영웅으로서 민족의 성산에서 태여나는 것처럼 명예로운 일은 없다.특히 한국이 미국의 "충견" 이기 때문에 친미파들은 북조선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김정일의 출생지가 백두산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아무래도 참을 수 없다.한국의 친미파나 그들의 후견인인 미국에게 있어서 최대약점이 무엇인가 하면 한국에 "민족적정통성"이 결여돼 있다는 사실이다.
2]북조선지도자로서의 자격을 부정한다.
조선태생이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김정일이 북조선의 국가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넌지시 비춘다.
3]김정일과 북조선국민을 뗀다.
북조선의 최대의 무기는 김정일과 국민의 일사불란한 단결이다.이 단결에 쐐기를 박아 북조선을 내부로부터 허물어 뜨린다. 본래 같으면 이런 문제를 논할 가치도 없겠는데 이왕 문제가 나온김에 러시아 태생설이 엉터리라는 근거를 몇가지만 올리기로 하자.
1)러시아태생이라고 하면서 일치된 출생지가 없으며 이상한 정도로 여러가지 설이 흩어져 있다.그이 특정한 출생지는 5개소에 달한다(이찬행저<김정일>백산서당=서울p80-83).
어용학자들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러시아태생"뿐일 것이다.
2)러시아태생이라는 근거가 김정일의 어린시절 유명이"유라"로서 이것은 러시아어라는 것이다.러시아어로 "유라"는 여성 이름이며 남자에 이런 이름은 절대 붙이지 않는다.
김정일에게는"정일"외에 두가지 이름이 있다.하나는 유명"유라"이며 또 하나는 아호"광명"이다.조선에서는 흔히 어릴적에 이름을 부를 때 말끝에 "아""라"를 붙인다.
3)어용학자들은 어쩐지 당시 일본경찰의 자료에 대해서 일체 언급안하고 있다. 김정일이 태여난 빨찌산부대 귀틀집은 백두산 원시림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백두산의 기슭인 삼지연경찰서가 함경도경찰에 보낸 극비보고서 속에<백두산에서 항일겔리라 두목인 김일성의 아들이 태여났다는 소문이 주민들 가운데 퍼지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이 경찰보고서는 현재 삼지연혁명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둘째 양친이 항일빨찌산의 영웅.
부친 김일성은 희세의 영웅,항일구국의 영웅이다.모친 김정숙은 김일성과 더불어 항일무장투쟁을 한 여장군 이다.2대항일영웅,백두산영웅의 척남으로 태여난 것처럼 영예로운 일은 없으나 동시에 그에 따른 책임의 무게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중하다.
김정일은 또 하나의 김일성,"수퍼 김일성"으로 되여야 할 숙명을 지녔다.구국의 영웅이 두세대 계속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초대는 일제와 싸워 이긴 항일빨찌산의 지도자이자 미제와의 싸움을 승리에로 이끌은 조선전쟁의 지도자,이대는 세계최강의 미국을 상대로 하는 핵대결의 지도자이다.
현지지도 따라 산 군사,정치학 배워
김정일이 구국의 영웅으로 성장하게 된 환경에 대해 몇가지를 살펴 보기로 하자.
첫째 민족의 비극적수난을 체현.
태여난 장소는 라디오도 수도도 전화도 없으며 길조차 짐승길밖에 없는 엄한의 백두산 천고밀림 속의 귀틀집이었다.그후 어머님의 등에 업혀 시비리까지의 험난한 길을 가야 하였다.
어머님 김정숙은 항일무장투쟁의 고생 탓으로 해방후 김정일이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김정일의 친척들은 거의 일본제국주의와의 투쟁에서 전사,형사 혹은 투옥중의 고생이 빌미가 되여 사망하였다.
어머님은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님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 활동으로 집을 비웠다.어린 김정일은 여동생을 달래면서 집을 지켰다.
둘째 전화 속에서 태여나 전화 속에서 자랐다.
김정일은 항일무장투쟁의 전화 속에서 나서 자라 조선전쟁의 미군폭격밑에서 성장했다.항일빨찌산의 총소리와 더불어 태여나 그들의 함성을 자장가삼아 컸다.
배내의는 군복을 뜯어서 만들었다.그가 처음으로 손에 쥔 놀이감은 나무권총과 수자맞추기 나무쪼각이었다. 조선전쟁 때 폭탄을 퍼붓는 미군기를 보면서 언젠가 그놈들을 떨구고 말테다고 마음속에서 다짐하였다.
조선전쟁에서 그는 승리의 요인은 무기도 아니고 물량도 아니며 조국방위를 위하여 일떠선 국민들의 단결의 힘이라는 것을 명심하였다.
조선전쟁의 전화 속에서 그는 소학교고학년과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그는 골목대장이었다.전쟁놀이에서 그는 장군역할을 하였으며 "공"을 세운 동무에겐 종이로 만든 "훈장"을 수여하였다. 소년시절부터 김정일은 인정스러웠다.
숙제노트를 언제든지 동무들에게 보여 주었으며 동무들이 탐내면 자기가 갖고 있는 물건을 무엇이든지 주어 버렸다.그는 자기가 애용하던 스케이트구두까지 친구에게 주었다.
셋째 김일성장군의 현지지도에 동행,실지공부를 하였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현지지도에 동행하여 산 군사,정치를 배웠다.이는 어떤 하교보다,어떤 책보다 나은 배움터였다. 김일성,김정일의 관계는 거저 단순한 부자관계가 아니었다.
부자관계이면서 사제관계이며 민족해방투쟁의 전우관계이기도 하였다.김일성주석은<나를 천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천재라면 김정일은 만재>라고 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