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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대문명의 만남, 나라유적지
글/사진: 이종원
'나라 ' 우리 말 같아서 그저 친근하다. 나라라는 지명앞에 '우리'라는 말을 붙이고 싶을 정도다.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동대사. 세계에서 가장 큰 고건축물에 가장 큰 불상을 품고 있다. 일본이 작은 것을 좋아하고 생각이 작다는 편견을 단박에 깨뜨려 버린 유산이다. 그 이면에는 백제의 후손이 있었고 신르이 화엄정신이 저변에 깔려 있다.
은근히 곱씹어봐야 할 유저이 많으니 최소한 이틀은 머물면서 나라 구석구석을 둘러보면 좋겠다. 나라역. 아스카 문화를 꽃피운 곳 답게 역사 또한 고풍스럽게 만들여졌다
나라역 관광안내 센터에 가면 한글로 된 나라시 관광지도가 있다. 외국인을 대한 배려하는 일본인의 꼼꼼함에 감사할 따름이다. 한글 지도는 은근히 짜임새가 있다. 앞에는 나라시 전체 지도가 있어 만약 자전거를 빌린다면 지도가 유용할 것 같다. 뒷면은 워킹맵으로 긴테스전철역과 나라 전철역 인근 관광지를 담고 있어 하루 코스로 나라를 왔다면 도보 길 코스 잡기 아주 그만이다. 개관시간, 버스 노선도, 버스 승차장위치는 물론 화장실의 위치까지 자세히 나와 있다.
이틀 코스라면 1일 자유승차권을 구입하면 시내 버스로 나라 전지역을 둘러볼 수 있다. 1일 500엔
시게노이 우동전문점 새벽부터 오사카를 출발해 법륭사를 둘러보고 나라로 넘어왔더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가이드북을 들쳐보니 '시게노이'라는 40년 전통의 수타 우동 전문점이 나왔다. 뒷골목에 숨어 있어 지도를 의지한채 간신히 찾아냈다. 일본의 식당이 작은데다가 주택가에 숨어 있어 찾기 쉽지는 않다. 여행작가의 오랜 경륜이 일본에서도 통하나보다. 식당은 작고 고풍스러웠다.
다다미방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먹어야 제 맛이 나는데 아쉽게도 자리가 없어 일본인과 섞여 먹어야 했다. 뭘 시켜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주인장은 친절하게도 한글 메뉴판을 건낸다. 이 집에서 추천하는 가마아게 우동이다. 나머지야 한국에서도 먹어 봤으니 이 걸 선택. 먹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적혀있다. 이 작은 식당도 이리 친절한데 우리네 식당들은 이런 배려를 해야 하지 않을까
옆테이블을 힐끔 쳐다보니 후추 같은 것을 뿌려 먹는다. 초빕과 밥도 딸려 나온다. 면발을 짐어 소스에 살짝 찍어 입에 넣었다. 그 탱글탱글한 식감은 왜 이 집이 40년동안 인기를 끌었은지 알게 해준다. 소개한 대로 면발을 다 먹고 소스를 대접에 넣고 마지막 국물 한방울까지 다 먹었다. 뿌듯~ 아 배불러
다시 JR나라역으로 빠져나와 산조도리 길을 걷는다. 일본 특유의 작은 상점이 도로 위에 도열하고 있다. 중간쯤 안내센터가 있어 잠시 쉬었다 가도 된다. 이곳이 도읍이 들어섰을 때니까 8세기부터 조성된 거리로 보면 된다. . 일본 전통 과자를 파는 가게가 있으니 잠시 맛을 봐도 좋다.
사루사와 연못 원래 흥복사 오중탑이 수면에 비치는 모습은 나라 8경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물이 탁하고 물결이 일어 그 장면은 볼 수 없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천황의 총애를 그리워하는 우네메(궁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녀의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북쪽에 신사를 세웠다. 연못을 한 바퀴 돌아가면 바로 흥복사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흥복사 흥복사는 8세기부터 500년간 세력을 뻗친 후지와라 가문이 창간한 사찰로 한때는 무려 175개의 부속건물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후 화재와 폐철로 상당한 부분이 잘려 나갔다. 1870년 메이지유신이 들어서자 억불정책이 일어 수많은 고서적이 불쏘시개로 사용되었고 삼층탑은 30엔 , 5층탑이 250엔으로 팔려나갈 위기에 놓일 정도로 탄압을 받았다. 국보관에는 당시 화려했던 불상을 감상할 수 있다.
흥복사5층석탑은 유네스코 세게무화유산으로 화순 쌍봉사의 목탑을 닮았다. 키가 50.8m로 늘씬한 키가 자랑이다. 언덕에 있어 연못에서 보면 더 높아 보인다.
나라공원 나라공원은 드넓은 잔디가 펼쳐져 있고 그 안에 사슴을 뛰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 신사를 창건하고 신을 초대했는데 그 신이 흰 사슴을 타고 온 것을 보고 그때부터 사슴을 키웠다고 한다. 사슴은 주로 풀과 대나무 잎, 산초나무 순을 먹는데 개체가 늘어나 지금은 사람이 주는 센베로 살아간다. 그러나 사슴에 대한 위험 경고판이 있을 정도로 달려드니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호랑이처럼 마구 달려 든다.
나중에 도망갈 지경.
사슴이 앞발로 때리기도 한단다.
나라국립박물관 나라국립발물관 본관. 르네상스 양식으로 도쿄박물관, 교토박물관과 더불어 일본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힌다. 1895년에 개관했으니 100년이 훌쩍 넘는다. 본관에는 불상관이 전시되어 있는데 아스카시대 부터 가마쿠라 시대까지 일본을 대표하는 불상을 만날 수 있다. 봄가을에는 정창원 특별전시를 하니 불교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그때 맞춰서 가면 된다. 개관시간은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요금은 5백엔
불교관련 유적을 볼 수 있다.
동대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동대사. 즉 동쪽에 큰 절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라는 710년 헤이조궁(平城宮)이 조성되면서 도읍이 되었고 784년교토 나가오궁으로 천도할 때까지 일본의 도읍지였다. 되었다. 710년이면 신라 선덕 여왕 9년에 해당한다.
남대문과 중문 그리고 대불전 나머지 부속건물이 대불전을 감싸고 있다.
남대문 대화엄사란 현판을 가진 남대문. 8세기에는 중국, 일본, 신라 모두가 화엄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일본 화엄종찰 동대사가 건립되고 나서 신라의 화엄사찰인 불국사가 건립된 것은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남대문은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문으로 주눅이 들 정도로 규모가 크다. 대불전에 걸맞는 문이다. 높이면 25.4m, 21m에 달하는 기둥 18개로 이루어져있다. 창건 당시 만들었던 문은 태풍으로 무너졌고 이 문은 1119년 재건한 것이다.
5칸 중층 건물로 마지막 양쪽 칸은 목조금강역사상을 모시고 있다. 이곳 역시 주인은 사슴. 입구에는 사슴을 위한 센배를 판매한다. 건축, 불상, 서화 등 국보급 문화재가 부지기수 보유하고 있다.
천장이 없는 구조로 송나라 천축양식을 도입했다고 한다.
경내에서 바라본 남대문. 평야가 많은 나라에 걸맞게 키는 크지만 수평적인 느낌이 강하다.
800년 전에 만든 목조금강역사상. 8.4m 거인의 육중한 몸매도 놀랍지만 근육과 표정 등 사실적 표현과 역동성에 감탄이 절로 난다. 일본 역사교과서에도 등장할 정도로 명작이다. 흥복사와 동대사가 화재를 많이 겪어 금강역사상을 세워 화재를 막을 생각에 금강역사상을 세웠다고 한다. 이조각품은 2개의 나무를 붙여서 만들었다.
거울처럼 맑다고 해서 '경지'라는 이름이 불려졌다. 중문과 대불전의 반영을 볼 수 있는 경지는 아사달 아사녀의 무영탑 설화가 떠오른다. 사슴의 반영까지 볼 수 있다.
동대사 중문. 중문은 특이하게도 붉은 색 단청을 하고 있다. 긴 회랑이 권위를 높여준다. 중문에서 바라본 대불전은 그 위용이 놀랍다. 중문에는 청동 향로가 있다.
입장료는 800엔. 엄청 비싸다.
대불전 대불전. 지금도 엄청나게 큰 데 화재로 소실되어 원래 크기의 2/3로 축소되어 지어졌다고 하다.
팔각등롱.우리나라에는 석등이 있어야 할 자리에 청동등이 놓여 있다. 화강암은 섬세하게 조각하지 못하지만 청동이기에 세밀한 묘사가 가능한 것 같다.
하늘거리는 천의를 입고 있는 보살은 피리를 불고 있는데 그 표정이 진지하다. 마름모꼴의 창살도 정교하며 구름문양과 당초문양 등 천상을 표현하고 있다.
대불전은 일본 화엄종의 총본산으로 동대사, 서대사, 흥복사, 법륭사 등 일본 나라의 7대 사찰중 하나다. 이 거대한 공사는 기술과 노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중용한 역할을 한 사람은 백제인 행기와 양변이다. 왕인박사의 후손으로 알려진 행기스님은 살아있는 보살로 추앙받았는데 불사를 주도하다가 열반에 든다. 행기스님에 이어 양변은 동대사 건설을 마무리한다. 대불전 오른쪽 이월당 가는데 행기당과 개산당이 서 있는 것은 이들의 업적을 말해주기에 충분하다.
양변은 백제인의 후손으로 어렸을 때 솔개에 채여 행방불명되었는데 그후 나라에 버려져 솔개에 의해 키워졌고 덕망높은 스님에 발견되어 화엄학의 대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설화는 영암 구림리의 도선국사 설화와 흡사하다.
대불전을 건축할 때 총 책임자는 고구려 사람인 고려복신이며 청동대불을 주조한 사람은 백제 사람 국중마려다. 당시 일본인의 기술로는 대불을 주조하거나 대불전을 건축하기엔 기술적으로 무리였다. 외국의 선진 기술이 바로 세계적인 건축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높이 48m, 가로 57m , 세로 50m 동대사 대불전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로 오늘날 15층 건물을 뛰어 넘는다. 여러번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709년에 예전 크기의 2/3 규모로 다시 세워 졌으니 하늘을 보며 예전 대불전 크기를 가늠해 보는 것도 괜찮은 상상이다.
눈에 거슬리는 것이 투구모양의 당파풍이다. 단아한 건물에 입을 크게 벌리고 있어 본 건물과 조화롭지 못하다. 중국 송나라때 유행했던 양식으로 오늘날 일본 고건축에 정형화되어 있다. 직선의 분위기에 혼란을 주고 있다.
정면에서 바라본 대불전. 문이 얼마나 큰 지
건물을 높이 세우려고 공포도 여러개 달았다.
동대사 대불 불국사, 석굴암과 동시대에 대불이 세워졌다는 것은 문화적으로 풍성한 시기임을 말해주고 있다. 높이 16.29m, 얼굴 길이 4.8m, 손 길이가 36m, 무게만 452톤에 달한다. 이 엄청난 크기를 청동으로 제작했고 따로 붙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물이라니 불가사의 그 자체다. 해마다 8월 7일에 불상닦기 행사를 하는데 250명 스님들이 동원되는데 자일에 매달려 때를 씻어내는 장면은 장관이어서 사람들이 몰린다고 한다. 부처 세수시키는 날
일본 신도들의 간절한 기도
콧날이 오똑
대불 광배는 뒷쪽 기둥과 연결되어 있다. 구름문양과 연꽃을 그려 넣었다.
연꽃 주춧돌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바로 이 기둥이 48미터를 바치는 것이다.
주존불을 수호하는 다문천왕
불상 뒤 화불은 왠만한 법당의 불상 크기
이 손 바닥에 사람 16명이 앉을 수 있다고 한다.
굳게 담은 입술. 이 거대한 것을 주물로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손 바닥 마다까지 섬세하게
이 무거운 화불은 또 어떻게 붙였는지 궁금하다.
가로 30cm 세로 36cm 크기로 일설에 의하면 대불의 콧구멍 크기에 해당된다고 하니 대불의 크기를 간접적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이곳을 통과하면 머리가 좋아지거나 1년간 액땜이 된다는 말에 수많은 학생들이 줄을 서며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대불전을 나오면 16나한상의 한분인 빈두루존자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로 말하면 독성 또는 나반존자. 자신의 아픈 부위를 만지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 때문에 무릎 부분은 반들거린다.
이빨까지 드러내고 있고 붉은 천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특이한데 손 바닥까지 정교하게 새겼다.
한국신을 모신 가라쿠니 신사와 일본의 3대 명종 다시 경내를 벗어나 왼쪽으로 꺾어지면 2월당 가는 오솔길이 나온다. 이곳 辛國社 즉 '가라쿠니' 신사가 자리하고 있다. 신사 이름을 매울 辛을 쓴 것은 이례적인데 이는 韓과 辛의 발음이 '가라' 이기에 후대에 한반도의 의미를 없애기 위해 이름을 바꿔 버렸다. 이 한국신은 역병이 돌면 치유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지금만 주황색 도리만 있을 뿐 아무도 찾지 않는 신사가 되어 버렸다.
좀 더 언덕을 오르면 새가 훨훨 날 것 같은 종루가 나온다. 종각은 다른 곳과 달리 날렵한 처마가 특징인데 종소리가 날개를 달아 멀리 퍼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범종은 26.3톤으로 일본 3대 명종 중에 하나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2월당 다시 언덕을 따라 오르면 왼쪽에 2월당, 오른쪽은 3월당이 자리하고 있다. 3월당(법화당) 내부에는 나라시대를 대표할 불상이 모셔져 있다.
동대사는 대불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암자처럼 부속 사찰을 자식처럼 거느리고 있다. 일반 신도들은 이 많은 사찰중에서 어느 사찰을 가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작은 절집 이름을 이월당, 삼월당, 사월당등으로 지어 기도처를 정했다고 한다. 2월에는 2월당, 3월에는 삼월당을 가면 좋다.
2월당은 오른쪽으로 넓은 계단을 따라 동선이 이어지고 왼쪽 회랑을 따라 내려오게 했다.
계단은 폭이 넓은데 안쪽에 구름문양, 마름모 등 독특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시주자의 비석을 세워 놓았다.
박석길에 사슴이 지나가고 있다.
법당 앞에 서면 난간 뒤로 대불전과 나라 시내 일대가 시원스레 펼쳐 진다. 특히 해질 무렵이면 나라의 너른 땅은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게 된다.
난간에 기대 너른 땅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개산당, 행기당 등 대불을 주도했던 백제의 고승을 모신 건물들이 보인다.
주로 합격 기원이 많네. 우리네 입시 만큼이나 힘든가보다.
이월당 아래 참도가 형성되어 있는데 흙담벼락이 길게 이어진 명품길이다. 우리네 감성과 닮은 길
이월당에서 내려다 본 담벼락
나라의 명물. 크림빵
오사카로 돌아갈 때는 긴테쓰 나라역에서 전철을 탔다. 우리네 전철과 흡사한데 입구에 팔걸이 의자가 놓여 있는 이 특이하다. 노약자를 위한 자리인가?
다시 오사카로 돌아왔다.도톤보리는 여전히 불야성 이젠 마라톤 아저씨가 친근하게 보인다.
뒷골목 선술집에 가면 작은 술집이 즐비하다.
친절하게 한국인을 위해 한글메뉴가 있어 번호만 얘기하면 안주를 먹을 수 있다. 정종 한 잔에 꼬치를 먹었는데 역시 일본 안주는 감칠 맛이 난다.
2차로 간 곳은 오뎅집. 오뎅국물을 쥐오줌만큼 준다. 갑자기 오뎅 때문에 한국이 가고 싶다.
75세 아버지, 아들 따라 자유여행 왔지만 빡빡한 일정 때문에 무척이나 힘드셨을 것이다.
정종 한잔에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길~~ |
첫댓글 동대사에 복숭아아이스크림 맛나요.
목조상 전 찍고도 무서워서 다시 지웠는데.
대장은 올렸네요.. 멋지게 잘나왔네요..
다시 가고픈 오사카, 교토. 교베..
3개월 밖에 안된 그리운 곳!
다시 더듬어 보네요..
백제인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 동대사 언제고 한번 가보고 싶네요.
대장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