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옷깃을 여미게 하던 추위는 어디가고 비가 내리는 초겨울 오늘 봄처럼 잔잔하면서 나른한 날씨다 결혼식과 팔순잔치와 친구들 모임을 따라다니느라 잊었던 종자골로 달려가는 길은
멋진 드라이브길이다 흰 무리의 억새풀이 너울거리는 탄천을 지나고 높은 고속도로를 달려 고개를 넘고 들판을 지나 강을 건너고 그리고 산과 강을 끼고 유유히 돌고 도는 최적의 아름다운 드리이브 코스다
처음 그가 어렵사리 차를 구입했을 때 우리는 경남 고리원자력 주변에 살았다 '드라이브 시켜줄께' 그를 따라 나선 아이들과 나는 얼마나 흥분이 되고 신이났던가 그의 어깨는 자신감으로 얼마나 든든해보였던가 우리차를 타고 간다는 기쁨도 기쁨이지만 넘실대는 동해바다를 끼고 달려가는 그 길은 파라다이스로 통하는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짜장면 한 그릇으로 우리는 파라다이스의 완벽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드라이브' 라는 말은 꽤나 낭만적이다 여유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고 사랑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여자와 남자가 떠오른다 아름다운 드라이브 길을 지나면서 사랑속으로 깊숙이 빠져드는 영화속 주인공들은 남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만큼 드라이브라는 말은 우리의 정서를 간질이고 자극하는 속성이 있다 그 누가 감히 드라이브 가자 라는 말에 아니다 라는 부정언어를 사용할 것인가
오늘도 그가 그냥 종자골에 가자 라고 말했다면 나는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찌쁘드드한 날씨이니만큼 뜨끈한 이불속에서 뒹굴뒹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정 심심해지면 양재천을 한바퀴 돌아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는 '드라이브를 나가자'고 말했다 그 남자가 여자인 날 유혹한 것이다 잠자고 있던 내 감성을 일깨운것이다
양평으로 향하는 88지방도로는 어디에 내 놓아도 빠지지 않는 드라이브 코스 다 우리는 행운아인 셈이다 양평 종자골에 손바닥만한 텃밭이 있어 이 길을 일주일에 한번꼴로 다니니 말이다 너무 자주 다니다보니 근사한 주변 풍경에 대한 느낌이 많이 탈색되어버린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때그때의 아름다움을 전부 놓치는 것은 아니다
오늘만 해도 몇장의 낙엽만이 뒹구는 스산한 풍경이지만 그 풍경의 속살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숲에 가리워졌던 집이나 길을 발견하기도 하고 군인처럼 즐비하게 늘어서서 산을 내려오는 듯한 나무들의 행렬을 한눈에 보기도 한다 때로는 멋진 바위를 발견하기도 한다 잠시 비가 그을린 동안에 나타나는 능선과 능선 사이에 물안개는 또 어떠한가 잠깐이면 사라져버릴 한 폭의 동양화를 우리만 구경한 셈이다
돌아오는 길에 짜장면집에 들렀다 손짜장면집! 한쪽에서는 단단하게 생긴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긴 국수 다발 끝을 양손에 잡고 국수판에 국수를 치대고 있다 그래서일까 입안에 닿는 면발의 촉감이 더없이 쫄깃하면서 보드랍다 우리의 삶도 이처럼 적당히 씹는 즐거움을 거친 뒤 부담없이 삼켜지는 이 짜장국수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욕심을 내어보지만 그러나 지금 이 자체도 사실은 정말은 최고! 냠냠!! 맛있다 그치? 마주보고 실실거렸다
과거의 어느날처럼 오늘 '드라이브'가 그와 나를 파라다이스로 안내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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