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혹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우리 어머니도 선생님께 촌지를 주었을까? 나는 잘 모른다. 그런 이야기를 어머니가 한 적도 없고 물어본 적도 없다. 나의 아버지는 사립중고교 교장 선생님을 오랫동안 하셨고 나의 어머니는 그 학교의 이사장이셨다. 나는 그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내가 초등학교 때 학교에 자주 찾아오셨던 어머니의 모습은 기억이 난다.
촌지는, 우리 아이를 조금 더 특별하게 봐달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을 작은 성의의 표시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아이를 맡긴 부모의 입장에서는 선생님께 무엇인가 보답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농사 지은 쌀이나 곡식, 과일 등등으로 보답하기도 했지만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는 돈봉투로 통일된다. 그것은 경제적 능력에 의한 차별화의 시작이고 사회불평등의 또 다른 기원이다.
[선생 김봉두]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학교 촌지를 소재로 하고 있. 초등학교 시절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영화 속의 이야기 역시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풍경들이다. 내러티브 역시 상식적 전개를 일탈하거나 보편적 질서를 추월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너무 상투적이라는 것이다. 의표를 찌르는 전개나, 겉으로 드러난 외면적 현상 이면에 숨겨진 또다른 의미를 탐구하는 주제의식도 없다.
보편적 질서 안에서 상식적 수준으로 전개되는 일상적 내러티브는 [선생 김봉두]의 가장 큰 결점이다. 그런데도 결정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엇은 있다. 이것이 [선생 김봉두]의 장점이다. 그렇다면 그 무엇은 무엇인가?
사랑이다. 우리는 누구나 외롭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손길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가 내 삶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 김봉두]는 서울에서 촌지를 너무 밝히다가 강원도 영월 산내 분교로 좌천된다. 산 넘고 물 건너서 첩첩산중이다. 학생들은 모두 5명. 물론 선생님은 김봉두 한 사람뿐이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학교가 폐교되거나 아이들이 모두 전학을 가야 한다. 이제 김봉두 선생의 눈물겨운 서울 복귀작전이 펼쳐진다.
첫번째가 폐교 작전이다. 아이들의 숨겨진 특기를 발굴해서 그것을 살리기 위해서는 도시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한다고 가정방문해서 부모들을 설득한다. 그러나 아무리 교육열이 높아도 산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아이들이 집안을 책임지고 끌고가야 하는 소년소녀 가장들도 있다. 서생 김봉두는 난관에 부딪친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도시에서 보조금을 받고 이 학교로 전학오는 학생이 생겨난다. 오히려 학생수가 불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결말은 우리가 짐작하는대로다. 휴먼 드라마로 끝이 나지만, 그 과정에서 상투적 수순을 밟아가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 외로운 선생과 학생이 서로 교감하는 순간, 우리는 참지 못하고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린다. 조금 과장되지만 현실적 기반을 갖춘 코믹한 극적 전개로 웃음을 유발시키던 드라마는, 막바지에 이르러 눈물을 끌어내리는 전략을 쓰고 있다.
돋보이는 것은, 차승원의 연기다. 그로서는 처음 맡는 단독 주연이기 때문에 [선생 김봉두]가 차승원이라는 이름으로 관객동원을 입증할 수 있는 스타 파워의 리트머스 시험대인 셈인데, 이라크전으로 극장 관객이 감소될 것이기 때문에 예상보다 많은 관객이 들지는 않겠지만 잘생긴 모델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배우로서 우뚝 서는데 성공하고 있다.
정말 좋은 배우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리베라메]로서 배우의 싹을 조금 보여주더니 [라이터를 켜라][신라의 달밤][광복절 특사]를 거쳐 이제 정말 좋은 연기자로 성장했다. 김승우, 이성재, 설경구 등과 함께 버디무비로서 공동주연을 맡은 위의 작품들과는 달리 [선생 김봉두]는 그의 단독 주연이다.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 극중 배역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그를 보면, 지난 몇년동안 한국 영화는 또 한 사람의 좋은 배우를 만들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기는, 예고편이 훨씬 더 재미있지만 그래도 짜임새 있게 이야기를 풀어간 차분한 연출, 배역의 맛을 깊이 있게 느끼게 해준 연기가 좋다. 하지만 촌지 문제를 둘러싼 학교교육에 대한 비판의식은 애초에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성 코미디가 아니라 제2의 [집으로...]를 노리는 휴먼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선생 김봉두]에서의 김봉두 선생/분교 아이들의 대립은, [집으로...]에서 소년/할머니의 대립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도시/시골의 단순 이분법은 아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분교 아이들에게 감정이입이 되는게 아니라 선생 김봉두와 동일화된다. 우리는 그만큼 오염되지 않은 풍경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도시적 환경에서 묻어온 물신주의 숭배나, 문명의 찌꺼기가 세포 깊숙이 삼투되어 있다. 왜 분교 아이들이나 할머니는, 김봉두 선생이나 영악한 소년의 투정을 무한정 받아주기만 하는가. 그들은 현실 속의 인물이 아니라, 우리의 혼탁한 때를 씻겨줄 일종의 신화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선생 김봉두]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간 관객들이라면, 엔드 크래딧 올라갈 때 자리를 박차지 말고 마지막에 울려나오는 양희은의 노래까지 듣고 나갈 것을 권하고 싶다. 30년이 넘는 가수생활 에서 처음으로 영화음악을 맡은 양희은의 목소리는, 무공해 청정 해역에서 갓 길어올린 바다풀같다. 결국 그렇게 살자는 것이다. 현실은 혼탁하지만, 황사 먼지 뚫고 맑은 하늘 아래서 맑은 마음으로 살자는 것이다. 그 단순한 진리를 [선생 김봉두]는 보여준다. 그러나 혼탁한 질서를 꿰뚫는 통렬한 풍자의식이 약하기 때문에 여운은 길지 못하다. 그것이 [선생 김봉두]의 결정적 단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