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감독: Helvio Soto
주연: John Abbey, Bibi Andersson, Riccardo Cucciolla,
Andre Dussollier, Annie Giradot, Olivier Mathot
제작국가 : 프랑스/불가리아 / 110분 /1975
비디오 미출시
1.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역사적 배경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1973년 9월 11일 칠레에서 일어난 쿠데타 암호이다.칠레군부는 세계에서 최초로 평화적인 선거에 의해 사회주의 정권인 들어선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다. 3년전 칠레의 대통령이된 아옌데는 칠레의 광산과 국가기간 산업에 대한 국유화를 단행하고 대다수 민중들인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게 된다. 이러한 조치들은 기득권층과 미국기업들에 많은 손실을 주게 되면서 본격적인 아옌데 정부 전복 음모를 미국의 CIA를 중심으로 시작하게 된다. 한편으로 미국은 칠레에 대한 차관제공을 중단하고 경제적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 칠레의 기득권층(야당국회의원,기업가등 부르조아계급)에 대한 지원하고 노동자들 속에 CIA요원들을 침투시켜 불법파업과 시위를 하게된다. 선거에서 민중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기 했지만 의원수로는 다른 여당을 압도할수 없게된 아옌데 정부는 여당과의 타협과 함께 여당측 인사를 아옌데 정부가 하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참여하게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반정부 시위와 군부의 쿠데타설로 칠레는 혼란속에 집권3년째인 1973년 3월 국회의원선거를 하게된다. 선거에서 기득권층이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칠레인민들은 아옌데 정부를 지지했다. 하지만 여당의 의석수는 다른 야당에 비해 여전히 부족했다. 1973년 6월 칠레의 대통령궁인 모네다궁 근처에서 몇발의 총성과 함께 칠레군의 소규모 부대가 일으킨 쿠데타가 일어난다. 여기에 동참하는 군대가 없자 쿠데타는 수시간후 진압된다. 이날 쿠데타 진압군중에는 아우구스트 피노체트라는 육군 장성이 있다.
나중에 피노체트는 쿠데타군의 중심인물로 나오게 되지만 이날만은 칠레에 충성하는 군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아옌데 정부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곳곳에서 불법적인 시위와 파업이 계속된다. 당시 노동자들의 파업 특히 버스노조와 광산 노동자의 파업은 부르주아지(자본가계급)의 지원하에 전개됐다. 파업노동자들은 파업을 하는 동안 부르조아로부터 생계지원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자금중 대부분은 미국의 CIA의 공작금이었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대다수 칠레 인민들은 국가경제를 위해 출근시간에 트럭,자동차,버스등을 동원해서 직장으로 수송했다. 시민들 대부분은 직장에 가기위해 트럭에 매달려가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아옌데정부는 9월에 정부의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하기로 한다. 그리고 9월11일 아침 아옌데는 모네다 궁에서 쿠데타와 관련된 첫번째 보고를 받는다. 칠레군중 일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보고를 받지만 이 보고는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 쿠데타군은 발파라이소 항구를 통해 산티아고로 들어오고 있었다. 쿠데타군에는 육,해,공군 모두가 참여하고 있었고 경찰병력만이 참여하지 않았지만, 모네다궁을 완전히 포위하자 경찰병력도 쿠데타군에 합류하게 된다. 모네다궁에 남아있던 경호병력도 경찰의 쿠데타군 합류와 함께 모네다궁을 떠나게 된다. 이제 남은 사람은 아옌데 대통령과 비서진, 그리고 아옌데를 위해 남기를 원했던 사회주의 동지들이었다. 이들은 철모와 기관총(이총은 아옌데가 대통령이 된후 쿠바의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동지에게 선물한 총이라고함)을 들고 칠레인민에게 라디오 방송국과 연결된 전화로 마지막 연설을 하게된다. 그리고 쿠데타 군의 폭격으로 모네다궁은 반정도가 파괴된채 칠레의 민주주의의 종말을고한다. 아옌데 대통령은 쿠데타군의 총탄으로 사망하게 되고 거기에 끝까지 남았던 사람들도 대부분 잡히거나 살해된다. 세계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은 이렇게 끝이나고 피노체트에 의한 군사독재정권이 시작한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는 군사평의회를 조직하고 칠레를 통치하기 시작한다. 이때까지 피노체트는 쿠데타의 실세가 아니었다. 쿠데타 후에 피노체트는 칠레의 대통령이 되고 1989년까지 칠레를 철권통치를 하게된다. 이 기간동안 칠레에서는 반체제 인사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이 시작된다. 거의 10만여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조국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피노체트의 개발독재는 칠레의 경제를 살렸을지 몰라도 국제적으로 인권후진국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피노체트의 통치형태는 한국의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그대로 적용했다. 실제로 피노체트는 박정희가 죽은 다음날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칠레의 모든 관공서에 조기를 게양하라고 지시했다는 일화도 있다.
살바도르 아옌데와 체게바라의 공통점은 의사출신이면 중남미의 가난과 질병에 관심을 갖고서 사회주의 혁명을 하려고 했던 혁명가들입니다. 체게바라는 게릴라혁명을 통한 방식을 택했고 살바도르 아옌데는 정치적인 수단인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서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했습니다.
감상평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것이 고등학교때 인것 같다. 그때 광주청문회를 하고 있을때였다. TV에서 토요명화시간에 해줬는데 나는 중간부분부터 봤다. 이 영화가 기억에 남는 것은 후반부에 대통령이 기관총을 들고 쿠데타군에 맞서 싸우는 장면이었다. 물론 그당시에는 이 영화가 픽션으로 생각했지만 대학교를 다니고 칠레와 관련된 영화와 책을 읽고 나서 이 장면에 나오는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최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칠레와 한국의 비슷한점이 많은것 같다.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정권이나 모네다궁(대통령관저)에 폭격을 한후 아옌데 대통령과 수많은 칠레국민들을 죽이고 정권을 잡은 칠레군사평의회의 모습은 매우 똑같다. 아니 똑같을수 밖에 없다. 합법적인 정권이양이 아닌 정권에게는 반대파를 숙청하고 공포정치를 하는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군부쿠데타의 과정은 거의 대부분 똑같은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칠레라는 나라가 부러운 것은 우리에게는 아옌데와 같은 대통령(정치가)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어느나라의 대통령이 인민을 위해 죽을수 있으며, "아옌데, 인민이 당신을 지켜주리라" 이말은 칠레 인민들이 아옌데 정부를 지지하는 시위를할때 사용하는 구호였다. 인민들로 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대통령, 그리고 쿠데타군에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칠레 인민의 정신적 지주로 남기를 원했던 대통령, 칠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일것이다. 과연 한국에는 존경할만한 대통령, 아니 정치가 하다못해 기업가가 과연 얼마나될까.
아옌데는 모네다를 살아서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구세주나 순교자는 아니다.
나는 사회운동가로서 인민이 내게 맡긴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하지만 다수의 의사를 무시하고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자들에게 분명히 말해 두겠다. 나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 끝까지 임기를 채운후에 모네다를 떠난다. 인민의 강령을 실현하려는 내 의지를 꺽으려는 것이라면 나를 벌집으로 만들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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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옌데의 마지막 연설 >
역사의 전환점에서 나는 인민의 충성에 대해 내 생명을 바쳐 보답한다. 우리가 수많은 칠레 인민들의 가슴에 뿌린 씨앗은 반드시 싹을 피우게 될 것이다.
적의 힘은 강대하다. 적은 우리를 굴복시킬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진보는 범죄와 무력으로 결코 막을 수 없다. 역사는 우리들의 것이다. 역사는 민중이 창조하는 것이다.
곧 다시 역사의 큰 길이 열려 자유를 찾은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전진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p.s
오늘의 역사를 보니까 1973년 9월 11일 칠레 군사쿠데타에 대해서 나와 있길래 한번 적어봤습니다. 영화내용을 쓰려고 하니까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역사적 사실만 서술한것 같습니다.
참고로 위의 내용들은 디펜스코리아 전쟁영화게시판에 한번 올린것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