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여행-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 포트폴리오반 1기 졸업작품전
최근에 <사진과 철학>이란 책을 보고 있다. 스콧 윌든이 엮은 이 책은 사진과 관련된 열세편의 구성되어있는데 낱낱의 글이 정교하게 사진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어서 부쩍 흥미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책에는 숱하게 많은 철학자, 사상가, 사진이론가들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 중 가장 첫 번째로 나온 이는 롤랑 바르트다.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에 개설된 <포트폴리오 기초반>의 첫 학기가 마무리되었다. 모두 열 분의 수강생이 전시와 사진집 발간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기초반’이라는 이름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급반이라고 하거나 심화반이라고 하면 어렵다고 생각할까봐 기초라는 이름을 택했을 뿐이다. 한편으로 기초반이란 이름에 만족하지 못한 수강생도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내가 왜 기초란 말인가? 내가 초급자들과 함께 수업을 들어야한다는 말이지…….”
어느 쪽이든 내색하지 않았고 주 1회 수업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과녁을 향해 돌진했다. 누군가에겐 마하의 속도로 느껴졌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물을 마시기 싫은데 물가로 끌려가는 말처럼 생각했을 법도 하다.
사진엔 기초가 없고 고급도 없다. <사진과 철학>에 나오는 순서상 두 번째 글이 ‘사진과 이콘’이다. 아이콘이 아니라 이콘. 신시아 프릴랜드가 쓴 이 글에는 아케이로포이에틱(acheiropoetic) 이미지란 표현이 있다. 예술가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것, 하느님이 제공해준 것이란 뜻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이탈리아 ‘튜린의 수의’가 있다. 십자가에 못 박혔던 예수 그리스도를 무덤에 안장할 때 몸을 감쌌던 수의라는 것인데 천에 예수의 얼굴과 몸의 형체가 고스란히 새겨져있다고 알려졌다. 과학적이다 아니다의 논쟁이 있으나 어찌되었든 간에 튜린의 수의에 새겨진 예수의 이미지는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라는 점이 핵심이다. 아케이로포이에틱 이미지는 사람의 손이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신시아 프릴랜드는 사진과 이콘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있다.
회화와 달리 사진은 예술가의 손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라는 주장이다. 사진기로 찍었으니 그렇다는 이야기인데 이로써 세상에 존재하는 수백억장의 사진은 모두 예술이 아닌 그 무엇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사진에 손을 대는 순간, 그 사진가는 화가가 되어버리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
사진엔 기초가 없고 고급도 없다. 왜냐하면 사진기가 찍은 사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학기동안 합성하거나 변형하거나 덧칠하지 않은 조건으로 사진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우리의 사진예술이 단순한 현실의 카피나 모방이 아니라 재현이 되게 하려고 작가의 의도를 개입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다음으로 10명의 의도나 의도 개입방법이 서로 달라야했다. 박재남의 ‘세종로 555’는 2016년 5월 서울 세종로의 다큐멘터리를 거리사진의 정통적 방법으로 연결해냈다. 많이 걸어 다닐수록 더 깊은 곳이 보인다는 것이 거리사진의 숙명이다. 생각과 발이 찍어낸다는 것이 거리사진가의 자랑이다. 임대순의 ‘상상여행’은 전체 전시의 제목으로 올랐다. 마음의 행로를 따라 음미하듯 초현실 사진을 “찍어서” 생산했다. SF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림이 쫓아올 수 없는 사진의 힘이다. 한인석의 ‘15분의 1초’도 또 다른 방식으로 회화나 다른 드로잉이 넘볼 수 없는 사진의 특성을 살려냈다. 이로서 우리는 사진의 우월성을 다시 확인한다. 느린 셔터가 실체, 실재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건들면서 짙은 여운을 남긴다. 김기호의 ‘엉덩이에 뿔난다’는 어른들에게서 찾아낼 수 없는 아련한 어린이의 세계를 담았다. 하지만 어린이들도 마냥 즐거운 세상을 사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들도 어른처럼 피곤하고 또 고뇌한다. 그래도 애는 애다. 김경숙의 ‘또 다른 세상 엿보기’는 추상과 초현실을 왕복하면서 신비로운 차원으로 건너가는 사진을 찍었다. 오랫동안 꽃을 찍어왔던 김경숙은 이번 작품을 통해 “꽃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고 웅변하는 것 같다.
수십 년간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섭렵했던 송영관은 마침내 사람이 들어있으면서도 균형이 깨지지 않는 위대한 대자연을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풍경에 사람이 들어있으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 없이 초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연에 기대어’라는 제목으로 풍경 속에 사람의 존재를 넣으면서도 풍경에 폐를 끼치지 않는 이미지를 생산했다. 윤인진의 ‘밤이 되면 도시는 무대가 된다’는 사진으로 접근하는 사회학적 실험의 첫 산물이다. 그 어떤 논문이 이렇게 가독성이 높을 수 있을 것인가. 도시의 밤이란 공간에 대한 연구의 막을 열었으니 앞으로가 기대된다. 한정희는 ‘한강의 일요일’을 발표한다. 흔한 주제일수록 특색 있는 사진을 찍어내기가 더 힘들다. 요란하지도, 그리 화려하지도, 다른 사람에게 위화감을 주지도 않는 휴일이미지들이 날카롭게 다가섰다. 한 장 한 장의 깊이가 대단하다. 김진원의 ‘캠퍼스의 길’은 시선이 사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산 증거다. 대상에 대한 관점이 확실히 정해지고 나면 대상에 대한 재해석이 쑥쑥 나타난다. 소란스러운 축제의 현장이나 삼삼오오 캠퍼스를 거니는 학생이나 비둘기마저도 그의 차분한 시선 앞에서 각자 연기에 몰두하고 있다. 캠퍼스의 특색을 보여주기 위해 아름다운 겉모습만 모으는 것은 진부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오혜련의 ‘백일몽’은 열 명의 수강생 중에서 가장 화려한 작업이라 시사회장에서 모두들 숨을 죽였다. 현란한 빛과 그림자의 향연이 솜씨 있게 밤을 빛내고 있고 전시장을 빛내줄 것이다.
사진엔 기초가 없고 고급도 없다. 사진의 내용에 깊이가 있을 뿐이다. 그 깊이는 사진기를 잘 다룬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애정과 연구와 관찰에서 나온다. 그래서 밥을 먹으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독서를 하면서도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곽윤섭(지도교수)
오혜련/백일몽
오혜련/백일몽
윤인진/밤이 되면 도시는 무대가 된다.
윤인진/밤이 되면 도시는 무대가 된다.
김경숙/또 다른 세상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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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순/상상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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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한강의 일요일
한정희/한강의 일요일
박재남/세종로 555
박재남/세종로 555
김진원/캠퍼스의 길
김진원/캠퍼스의 길
김기호/엉덩이에 뿔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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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관/자연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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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석/15분의 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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