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메모리아>
1. 영화 <메모리아>는 소리와 기억에 관한 영화다. 시작부터 끝까지 압도하는 침묵 속에서 불현 듯 터져 나오는 도전적인 사운드는 그 자체로 우리의 감각을 긴장시킨다. 사운드는 단순히 감각을 자극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우리를 연결시키고 태곳적 기억을 담지하고 있는 근원적인 기억의 원천이다. 소리를 통해 밝혀지는 인간이 지닌 특별한 능력과 신비한 존재의 모습, 그러한 모습을 통해 영화는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특별한 관계의 모습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2. 남미를 여행하는 한 여성,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크고 강렬한 소리를 듣게 된다. 소리는 전혀 예상치 않은 장소에서 그녀에게 계속 들려온다. 이후 소리의 정체를 찾아 그녀는 사운드 편집자, 고고학자, 이비인후과 의사 등을 만나면서 소리의 원인과 정체를 찾아다닌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의 ‘소리 탐색’, 이것은 축복일까, 불행일까, 타인과 다른 특별한 능력 또는 고통을 지닌 사람의 의미는 무엇인가?
3.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이끌려 움직이던 그녀는 어느 날 숲속에서 한 사내를 만난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경험을 기억하고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경험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숲 속에서 아주 단조롭게 살아간다. 그와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는 소리의 정체를 파악한다. 그 소리는 남자의 기억 속 담겨있던 소리였다. 그의 말처럼 그는 저장장치였고 그녀는 안테나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 소리의 근원을 따라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다. 그는 그 소리가 자신이 경험했던 소리는 아니며 이 세상의 문명이 시작되기 오래 전 만들어진 소리라 말한다. 영화는 그 소리가 지구를 떠나며 냈던 UFO의 발진음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4. 영화의 내용을 도식적으로 정리한다면 한 여성이 소리를 들었고 소리를 찾다 한 남성을 만났으며, 그와의 만남을 통해 그 소리가 인류 태초의 소리였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소리의 이끔이 결국 인간의 가장 신비스럽고 근원적인 정체에 대한 확인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소리와 기억에 관한 특별한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영화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신비의 근원이 오래전 우리의 이성과 의식이 만들어지기 전에 형성된 인류의 기억 속에서 시작되었음을 말하고 싶은지 모른다. 그러한 신비한 영역의 탐색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영화 중간에 삽입된 유물을 탐색하는 고고학자의 모습처럼 영화는 인간 그 자체의 신비를 탐색하는 것이다.
5. 영화를 관람하는 일은 긴 교향곡을 감상하는 긴장감을 능가한다. 시작부터 소리가 소거되어 표현되는 상황은 불안과 공포를 자극시키고 그러한 침묵 속에서 갑작스럽게 터져버리는 소리의 폭발은 일순간 감각의 패닉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이러한 긴장과 급격한 전환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의 특별한 경험일 수도 있다. 그것은 사소한 소음으로 가득찬 일상의 세계와 전혀 다른 침묵의 배경 속에서 날카롭게 분출하는 특정한 소리의 재현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상상과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예술의 영역이다. 감독은 그러한 영화가 갖고 있는 특징을 성능 좋은 사운드 시스템을 활용하여 마음껏 표현하고자 한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으면 소유할 수 없고 만들 수도 없다고 했는데, 영화의 장면과 이야기 흐름에서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내가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영화가 보여주는 방식에 찬동하지 못해서일까? 영화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면서 울려 퍼지는 빗물 소리는 그나마 소리 자체의 편안함을 기억하게 해줄 뿐이다.
첫댓글 - 영화본지 꽤 오래되었는데.... 보고 싶다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