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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대분교 와 보리수 |
2001년 폐교이후 【산음숲자연학교】로 이름을 바꾼 모교 앞에서 |
SBS에서 금요일마다 ‘농비어천가’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었던 곳이다.
과연 산세가 수려하고 볕이 잘드는 아늑한 곳이었고, 20여가구가 엄마품같이 포근하게 다가왔다.
저녁 어스름이 내릴 무렵은 여름이라 7시가 넘어서였다.
직장동료이자 나와는 상관없는 중학동창인 이동봉이 도착했고, 양평으로 이사간 병금이가 속속 도착했다. 그리고 말많은 용렬이도....
메인셰프인 철주가
오는동안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경로당입구 우측에
숯불을 지폈다.
철주네서 빌려온 커다란
조리용 솥두껑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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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은 육질이 좋았고, 솥두껑은 화력조절이 뛰어났다. 그렇게 잘익은 고기와 이슬이가 오고가며 정겨운 대화는 이어졌다.
중간에 석창과 그 처가 잠깐 다녀갔고, 이동봉도 내일 출근이라 상경했다.
철주와 충현은 예상보다 훨씬 늦은 11시가 다되어 도착했고, 타고난 술꾼인 상화도 나타났다. 긴 대화를 즐기는 용렬과 병금을 남기고 술이약한 나와 일환, 인숙과 금란은 어느새 누가먼저랄것도 없이 잠들어 버렸다. 그들도 나중엔 잠들었는데, 1시간반 정도나 잠들었을까,
밖이 소란스럽더니 회관안도 소란스러워졌다. 후착대인 술꾼들이 잠들어버린 선착대를 사정없이 깨워대는 것이었다. 야간 물고기사냥 나가자고...
그때는 물고기고 뭐고 만사가 귀찮았다. 피곤하고 졸렵고 너무 늦은 시간 이었다.
끝까지 버틴 인숙과 일환이 마냥 부러웠고, 힘없는 나머지 일행은 투덜거리면서 우시장에 소끌려 가듯 철주가 기다리고 있는 산음2리 마을회관으로 갔다.
야간 고기잡이는 6시내고향 에서만 봤는데, 한번 해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만 했을뿐 똑같은 방법으로 고향에서 하게 될줄은 몰랐다. 재래식 횃불과 기름통, 족대, 손전등, 물고기통 그것이었다.
한사람이 횃불을 들고 주로 철주와 충현이 족대를 대거나 상류에서 족대로 물고기를 몰았다. 몰이꾼이라고 해야하나...
불과 10~20분인데 제법 통이 채워지고 있었다. 어느덧 재미있다는 생각이 점점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고 있었다.
철주, 충현은 작업에 몰입한 나머지 온몸을 던졌고, 취기가 올라온 용렬은 발을 헛디뎌 물속으로 온몸을 담그기도 했다. 중간중간 몰이를 할때 “이~히” 하는 괴성을 지르며 몰이꾼에 합류했다.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물고기를 몰고, 잡은 고기를 통에 넣는 사이에 새치가 희끗희끗한 중년들은 어느새 눈망울 초롱초롱한 3학년 1반 개구장이가 되어 있었다.
나의 유년시절 추억이 듬뿍 배어있던 거북바위와 형제바위에서의 1시간30분은 36년의 세월을 거꾸로 돌려놓았다. 새벽 두시가 넘어서 수렵도구들을 정리하고 경로당으로 돌아왔다.
물고기를 손질하고 자려고 했는데 막상 누우니 잠이 오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끈질긴 지구력을 자랑하는 상화는 “매운탕 조금 끓여서 쐬주한잔 더 하고 자야지!”라고 한다. 잡아온 어획물의 1/3만 끓였다. 주방장인 철주가 수제비도 만들어 넣었다.
그 맛은 표현할 수가 없다. 새벽4시에 잠들었다.
아침7시 상화가 먼저 올라갔고, 충현도 갔다. 아침에 정식으로 다시 끓인 ‘철주표 매운탕’은 정말 일품이었다.
또한, 옻닭을 삶고 남은 국물에 찹쌀을 넣어만든 옻죽또한 진국 이었다. |
1박2일의 짧고도 길었던 고향나들이는 도시에서는 느낄수 없는 이른바 힐링(Healing) 이었고, 마음의 안식처 였다. 단순히 요리솜씨가 좋았던 음식이라기 보다, 그 진한 국물은 고향과 오랜 벗의 우정이 우러난 구수한 향수였다.
첫댓글 충현이는 잘 있냐?
물론입니다. 안부전해드리겠습니다.
어느새 세월이 내려 앉아 희끗희끗한 중년의 아저씨들이 되어 버린 3학년 1반의 천렵이 이렇게 재미질 수가 없네 그려...?
철주 어머님의 약시는 현대 의학의 도움이겠지? 우리 어릴땐 서열 1,2위의 고가수의 지주...
인숙이 누굴까? 웬만하면 알 터인데...야심한 밤에 물고기잡이 너무 재미 있었을 듯...아!! 이런 여름이면 형제 바위의 깊은 물에서 개헤염으로 첨벙첨벙 하던 순간이 너무 그립다... 죠기 매운탕도 엄청 맛나겠지...?
이제사 글을 보게 되었네...오랜 우정이 버무려진 아주 달달하고 고소한 한편의 드라마 같으네...^^
산음인의 감성이 곁들여진 동생의 글 속엔 아직도 아련한 향수가 진하니 너무 좋아... 흠
불혹에 재현해본 고기잡이 였는데, 마치 내가 그시절 코흘리개가 된 기분이었어, 철주어머님 약시는 자식들이 간곡히 부탁했는데도 치료하지 않으셨대, 그냥 찡그리는 습관만 없어진거야. 개울의 물은 옛날의 1/3정도 밖에 되지않아 물부족국가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펜션 탓인듯...
6월말경 올린 글을 나 또한 이제야 보게 되네요.
이런 좋은 글이 뜬걸 알았다면 연일 불을 켜 놓았을 텐데요.
그 옛날 밤 물고기 뜨던 일을 그대로 재현 했군요.
이글 보고 나니 저도 밤 물고기 떠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요즘은 밝은 헤드라이트를 켜고 혼자도 밤 고기 뜰수 있다던데요.
끓여 놓은 매운탕이 먹음직스럽습니다.
옷닭 국물에 끓인 죽도 그렇구요.
17회에도 요리 대가가 있었군요.
시간이 아쉬웠군요.
시간만 있었다면 피로도 풀어 가면서 회포를 풀어 보는 건데요.
짧은 시간에 잠도 못 자고 피곤했겠어요.
그래도 17회 동창들이 오래간만에 모여 얼굴 보고 옛 추억을 되색여
보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어린시절에는 낮에만 잡았었는데 밤에 잡는 고기가 양도 많았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횃불이 아닌 헤드라이트로 잡는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날 취기가 올라온 상태여서 횃불든 친구(용렬,상화)가 비틀거리는 바람에 옆에 있던 친구 머리카락을 좀 태우기도 했거든요... 지금도 물고기 많다는것이 신기했고, 수량이 옛날보다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 안타까웠 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편집을 아주 잘 했습니다. 참으로 옛날입니다.+-...
추억을 되살릴수 있을만큼 그 옛날을 리얼하게 글과 사진으로 표현해 놓았네요.
아
저는 안골 맨 꼭떼기 집에 살았지만 고가수 형제 바위 냇가로
원정 목욕을 간적이 여러번 있습니다.
우리 안골, 산대 애들 목욕터는 황소보 였죠.
그곳에도 앉아서 또는 누워 쉴수 있는 커다란 넙적 바위가 있어요.
장마가 지만 물량이 많아 사람키로 한길이 넘도록 물이 깊었죠...-+
오랜만에 홍창후배님 덕분에 어릴적기억을 떠올렸네요.
간만에 미소짓고 갑니다.
13회 선배님들도 자주 모이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식당에서 모이는 것도 좋지만 1년에 한번정도 휴가철전이나 뒤에 고향에서 물고기잡이 하면 재미도 있고 엣추억도 새록새록 할 겁니다.
우리동문의 소식지 창간호가 나갔다고 합니다. 전아직 받지못했지만
아마 홍창후배가 편집에 가세하면 더욱
정겨운 소식지가 될것으로 생각 합니다.
연타로 시리즈가 탄생되었는데 다시금 기대해보겠어요.
옛날에 철렵 철렵했는데 천렵이군요. 재미난 추억을 또 맹그러 주셨네요
잘보구 갑니다.
반가운 소식이네요, 한번 받아볼수도 있겠죠. 요즘엔 격일제 근무라 모임에 참석은 할 수없지만 카페에 글이 자주 올라오질 않아 안타깝습니다. 소식지 궁금합니다.
읽어내려가면서 ~ 내가철렵하는기분으들었네요 홍창후배 멋져요 즐거운휴가였네요..잘보고갑니다..
맨위 사진 철주형이아니고 일환이형 얼굴 같은데.............. 제가 오래되서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