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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들 스크랩 태국-아유타야국 임진왜란 참전제의에 관한 내용
왕마귀 추천 0 조회 1,558 08.12.29 17:53 댓글 3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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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12.29 19:34

    첫댓글 곡사마;;

  • 08.12.30 12:44

    아 난또 곡길희 80마리쯤 보내서 원균의 수륙양공작전 실현될뻔한줄알았네

  • 08.12.30 21:15

    흐음...본문에 '중국에 사신이 오면 서열대로 배열한다'라는 문장과 '서양인 눈에는 조선과 중국은 동일한 나라로 보였다'라는 문장의 조합이 관심이 가는데, 이게 좋은 의미인가요? 나쁜 의미인가요? 갑자기 조선의 서열이 궁금해진다능...

  • 08.12.30 22:27

    "중국"은 '조공국'들은 '서열'에 따라 '배열'한 후에~ '의례'를 행했는데, 이를 테면~ '관료'들의 '품계'를 정하는 것과 비슷했죠^^; "조선"은 '조공국'들 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았습니다!!! 다음이 "안남(베트남)"이었죠^^;; "중국"의 '문헌'에 뻔질나게 '등장'하는 '문구'가~ "조선은 내복(內服)과 같다<중국과 조선은 거의 한나라>"였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 08.12.30 22:50

    하하..그렇군요. 이것을 위상이 높아서 좋다고 해야 하는지, 속국화가 심하다고 해야 할지... 뭐 지리적으로도 조선은 다른 조공국들과는 차원이 다른, 반드시 끌어안거나 없애야 할 나라이긴 하겠죠;;

  • 08.12.31 00:38

    저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당시는 "중국"이 엄연히 '국제질서'의 '중심'이었고, '중국화'가 '문명화'의 '척도'였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세계'가 '서구문명'을 '척도'로 삼고 있는 것처럼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중국"과의 '친밀도'는 대단한 '플러스 요인'으로 볼 수 있고,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고 '국체(國體)'를 '유지'하는데~ '필수 불가결'의 '요소'였다고 생각됩니다^^~ 또 "중국"과의 '조공무역'의 '이익'이나~ '선진문화 도입'에도 '유리'했구요^^~~

  • 08.12.31 00:37

    "조선은 내복"이라는 말은 "조선은 문화적으로 중국과 대등하다"는 말로도 볼 수 있고, "중국"과 '친근'한 "순이(順夷, 순한 오랑캐)", "소화(小華)"로써~ '정벌'과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중화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흔히 '속국'임을 '강조'하며 "조선"의 '외교정책'을 '폄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너무 '이상론'에 가까운 '입장'에서 본겁니다ㅡㅡ; "미국"의 '속국'처지인 우리 '후손'들이 너무 건방진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봅니다ㅡㅡ;;

  • 08.12.31 02:08

    전부터 궁금한게있는데 -_-; 해동천자님은 왜그렇게 명사에 ' ' <- 같은 따옴표를 많이쓰세요?;;

  • 08.12.31 06:22

    어찌보면 조선은 지금의 대한민국보다도 국제적 위상이 높은 국가군요. 음, 이런 말 함부로 하기가 힘들지만(조선빠, 사대주의자로 몰릴까봐) 해동천자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 08.12.31 11:51

    伊達政宗 //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그렇게 됩니다ㅜㅜ 이상하고 불편하신가요???^^;

  • 08.12.31 13:05

    단순비교는 쉽지않겠으나 지금으로 보자면 대략 미국과 영국의 관계쯤으로 보면 될려나...(이건 꼬붕짓이 더심한 케이스던가;;)하여간 뻔질나게 사절단 보내서 조공하고 하사품 수십트럭받아가고 황제생일에 조공, 황후생일에 조공, 태자태어나면 조공, 황족 죽으면 조공 신년되면 조공 뭐 하면 조공 올때마다 조공품의 수십배를 하사품으로 내리느라 명국조정에서도 조선의 조공횟수를 조절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분분할 만큼 조선은 명국의 맹방이었음이(뭐 이걸 갖고 화교놈이 세운 국가 후손들의 더러운 사대주의다 라고 떠드는 분들도 적지 않지만은)확실한거지요

  • 08.12.31 13:08

    조선이 명조내내 조공국중 최고서열을 유지했던거야 아는분은 다 아실거고...물론 왜국또한 명국 천자의 책봉을 받았던 적도 있긴 하지만 조선과는 다른케이스였으니(명조에서 왜국을 보는눈이 조선을 보는눈과 확연히 달랐던것도 있었고)...이렇게 비교하면 가장 쉽겠군요 명국천자는 아버지 조선국왕은 큰아들 안남국왕 둘째아들 그이하 서열대로...

  • 09.01.01 09:13

    그러니까 한번 고개숙이면서 금반지 한돈을 주지만, 돌아갈때는 다이아몬드 한트럭 얻어오는 건가요?

  • 08.12.30 22:43

    곡사마~~

  • 08.12.31 00:04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투가 더 재미있습니다. 특히 그동안 딱딱한 서술위주로 글을 쓰시던 왕마귀님이 이런 글을 쓰시니까 더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 작성자 08.12.31 14:43

    저는 글을 쓸때 개인적인 견해를 넣기보다는 "어떠한 역사적 사건 내지 사실이 있었다.'라는 점에 중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

  • 08.12.31 11:28

    동남아 군대 얘기 나올 때 투멘XX씨 떠오르는 사람은 저 하나 뿐인가요?

  • 08.12.31 11:56

  • 09.01.01 08:47

    1차대전때 까깝지도 않고 먼나라 독일에게 선전포고도 했는데

  • 09.01.01 15:00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는 단순한 정치적인 이유로 보면 됩니다. 그런식으로 하면 일본도 독일에 선전포고 했습니다. 그당시 시암은 영국과 프랑스에 둘러쌓인 상황인지라 영국과 프랑스의 편을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웃기게도 시암의 대-독일 감정은 대-영국, 프랑스 감정보다 훠어어얼신 더 좋았는데도 말입니다. 특히 프랑스는 자기네 영토를 철저하게 뜯은 원수에다가 나중에 2차대전에 '자의'로 싸울 정도로 이가 갈리던 상대인데도 말입니다.

  • 09.01.01 14:56

    한가지 태클입니다. 나레쑤언당시 아유타야의 화기화는 상상외로 높았습니다. 다들 간과하시는 것 중 하나가, 일본의 그 유명한 조총은 동남아시아를 거쳐서 온 것입니다. 버마의 뜨빈슈웨티-버인나웅, 아유타야의 나레쑤언대에 벌어진 시암-버마전쟁에서 머스킷은 매우 중요한 역활을 했습니다. 버마는 내부통일과 아유타야 공격, 그리고 나레쑤언의 반격으로 인한 짧은 분열기에 머스킷을 주무장으로 한 포르투갈 용병이 대활약을 했으며, 나레쑤언의 공격직후 버마의 분열때는 포르투갈 용병그룹이 한 지역을 차지하여 중요세력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한편 아유타야는 나레쑤언이 버마를 공격할때 나레쑤언이 '친히' 2.25미터의 머스킷을

  • 09.01.01 14:58

    사용하여 곡사마 위에서 적장을 죽였다는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 http://www.m-culture.go.th/en/index.php/articles/the-important-days-in-thailand/45-king-naresuan-the-great-day.html 동남아의 화기화는 보통분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의외로 높습니다.

  • 09.01.01 15:05

    그리고 두번째 태글. 나레쑤언 당시 아유타야의 군사력은 절정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유목민 적인 습관이야 13~14세기 이야기고 -ㅅ- 버마-아유타야 전쟁이 한창이었던데다가, 적인 버마는 그당시 전성기를 누리면서 포르투갈인들과 싸워 이기고, 또는 용병으로 고용하며 기술을 배우던 상대였습니다. 또한 종속지역인 말레이반도 또한 포르투갈 세력과의 오랜 전쟁을 했던 지역이니, 서구의 군사기술은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최전성기를 누리던 버마와 40년 이상 전쟁을 치루던 상태였습니다. 물론 버마에 종속을 당하지만 1592년 당시는 종속상태에서 벗어나고, 버마와 캄보디아의 협공을 모두 이겨내고

  • 09.01.01 15:07

    북쪽의 란나(치앙마이 지역)을 종속국으로 두고, 버마를 역공하기 시작해 버마의 수도인 버고와, 따웅우조의 발상지인 따웅우까지 역공을 할려던 시점이었습니다. 결국 이 공격으로 최전성기를 누리던 버마는 산산조각이 나서, 따웅우-삐-아라칸-포르투갈 용병으로 분리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 아유타야의 그당시 군사력은 아시아에서도 손꼽힐정도의 수준이라고 봐야 합니다. 물론 임진왜란에 참전하면 얼어서 다 죽었겠지만 말입니다. 당연히 중간 수송과정은 없다고 생각할 지라도(먼산)

  • 09.01.01 22:51

    얼어죽는다는 표현이 참 재미있군요 ㅋㅋ

  • 님이 본좌

  • 09.01.02 16:11

    초록마르스/ 대략 그렇게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마 금반지 한돈과 다이아한트럭까지야 되겠습니까마는 ㅋ;;명국 조정에서 황제한테 조선사신들한테 하사품 싸주는 돈이 만만찮다, 가만보니 얘들이 이거노리고 계속 조공하는거같으니까 조공횟수 줄여라고 압력넣어야합니다 했을정도니 만만찮은거겠죠? ㅋㅋ

  • 09.01.02 18:23

    저는 좀더 넓은 시각으로 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조공에 대한 회사의 이익만을 논하는 것은 좀 좁은 시각이 아닐까요???^^;; 당시의 조공은 중국과의 무역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은 조공하지 않는 나라와는 무역을 전면금지하여~ 외국에 경제적, 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방법으로~ 주변국들을 책봉체제에 편입시켜 나갔으며, 조공에 대한 회사나 사신에 대한 은상 이외에도~ 사신단을 따라나선 상인들에 의한 무역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런 상황의 부산물이 조선의 재벌이었던 역관들과~ 의주 만상의 임상옥과 같은 거상들이죠!!!^^~

  • 09.01.02 19:05

    조공 사절단에 끼이는 무역상들얘기를 제가 빼놨군요 당연히 아실걸로 알고 글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만은 ^^;;

  • 09.01.02 22:25

    그렇습니까???^^; 사신단을 따라간 상인들의 거래 이외에도~ 모든 중국과의 무역, 상거래는 조공이 필수조건이었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왜구의 횡횡과 영파왜구사건 이후로~ 명나라가 폐관절공의 조치를 취하자~ 변칙적인 무역형태로 밀무역과 왜구가 성행했었고, 훗날 척계광 등의 노력으로 왜구짓도 여의치 않아져서 많은 불만이 누적되는데~ 이것이 임진왜란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었죠^^;;; 포르투갈의 경우도~ 조공을 가장하여 중국과의 무역을 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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