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국기사단의 몰락과 비슷한 시점에 몰락한 이들이 있었다. 바로 동맹 고관들, 동맹 초기에 동맹의 고관들은 능력에서는 모르나 성실함에서는 그들과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간신히 다시 지펴낸 민주공화주의의 불꽃을 키우고자 피땀을 흘리며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 불과 백여년만에 동맹의 강역이 이제르론 회랑에 이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리고 제국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다곤 성역 회전을 앞두고 아직까지 제국에 대한 기억이 200년 정도 전에 머물러있던 동맹 고관들은 세대가 바뀌어도 모두 바짝 긴장하고 있었고 지면 문자 그대로 끝장이라는 태도로 임하여 동맹군은 단 한번도 대규모 함대전을 해본적이 없었음에도 링 파오, 유수프 토패롤 두 명장과 후방의 정치인들 덕에 대승하였다.
그러고 약 30년의 평화가 찾아왔다. 동맹은 다곤 성역 회전의 대승으로 멸망을 막고 이후 제국이 막장에 빠지는 것을 보며 제국은 더이상 200년 전의 제국이 아님을 깨달았다. 200년 사이 제국은 외부로는 강해졌지만 내부로는 약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것을 깨달은 동맹은 그간의 긴장의 반동이라도 되는듯 늘어지기 시작했고 때문에 코르넬리우스 1세의 친정 때 멸망할 뻔 했다.
이 때까지는 아직 동맹은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자체 개혁을 통하여 다시금 동맹의 명줄을 늘리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동맹 또한 병들기 시작했다. 다곤 성역 회전 후 제국에서 막대한 이민자가 발생했고 동맹은 이들을 흡수하여 이들이 보유한 지식, 기술, 인력, 사상 등에 힘입어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이들중에는 자유라는 명목하여 망명해온 권력자들이 많았고 이들은 당장에는 동맹에서 자리를 잡기 힘들어 해악이 크지 않았지만 이들의 2세, 3세로 가면서 동맹에서 자리잡았고 제국에서도 돈 많던 이들은 동맹에서도 재력을 유지하며 동맹의 정계와 재계로 진출하면서 해악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민주공화주의에 대한 열의보다는 권력의 획득에 대한 열의가 더 컸고 이들은 그 수단으로서 제국과의 전쟁만한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이를 미끼삼아 동맹 시민들을 현혹하였다. 마침 제국에서도 동맹에 대한 공세를 더 키워나갔으므로 이들의 말빨은 먹혀서 선거가 치뤄질수록 이런 자들과 그들에 동조하는 자들, 그러니까 '주전파'의 목소리가 커졌고 주전파가 득세하면서 동맹은 국가 전방위적으로 경고음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정권과 권력만 유지된다면 만사 오케이였기에 경고음을 무시했고 그 결과는 동맹의 멸망이었다. 그 후 이들은 어떻게 되었는고 하니 먼저 정치인들은 권력에 따라 움직이는 그들의 생리상 일부를 제외하고는 제국이 대세임을 알고 제국에 줄을 댔다. 이미 동맹이 멸망하기 전인 레벨로 시절부터 어떻게든 제국에 잘 보이려 했던 그들은 동맹이 멸망하자 더욱 적극적으로 제국에 잘 보이려 했다. 제국은 이들을 곱게 보지는 않았지만 고관 출신이라는 점과 어쨌든 저항하는 것보다는 덜 귀찮으니 이들의 아부를 방치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역시 믿을 자들은 아니었다. 물론 제국도 애초에 이들을 믿지 않아 요직에 배치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들 중에는 로이엔탈이 반란을 일으키자 한심한 판단력으로 로이엔탈에게 붙었다가 망신당하기도 하고 그 외에 지구교, 트뤼니히트, 랑, 루빈스키 등 제국의 적들과 몰래 커넥션을 만드는 자도 나오는 등 왜 믿지 말아야 하는지 저절로 입증하게 해주는 자들도 많이 나왔다.
물론 대다수의 경우 적어도 제국이 그런 자들에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배신하지 않았지만 그들과 비슷한 부류에 속하는 이상 제국은 그들에게 출세를 보장해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그들이 옛날에는 한 국가의 고관이었다는 점에서 국가가 멸망한 것에는 역시 그들의 잘못된 통치가 한몫 했으니 그들 중에서도 능력이나 인망이 있는 몇 정도를 제외하면 써줄 가치가 거의 없는 인물들이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그래도 제국 직접 통치기에는 제국도 되도록이면 동맹 출신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동맹 고위층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안심시키며 동맹 시민들의 망국의 분노를 자신들의 옛 정치인들에게도 돌릴 생각이었기에 제국은 이들을 못마땅해 함에도 요직을 제외하면 그런대로 앉혀주는 편이었으나 바라트 성계 자치령을 포함한 각지가 간접 통치로 바뀌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간접 통치가 되자 동맹 시민들은 자신의 지도자를 어느정도 자신의 손으로 뽑을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았다. 그게 단지 자신의 지역 정치인을 선출할 수 있다 정도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었다. 그리고 이 정치인들의 불행이라면 동맹 시민들은 역사속에서나 배웠던 투표로 인해 나라가 망한 은하연방의 사례를 자신들도 겪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는 것이었다.
동맹 정치인들은 적어도 겉으론 동맹 시민들에게 자신들을 찍으라고 협박하지 않았다. 반대파 정치인을 상대로 뒤로 정치테러를 일삼았을지언정 적어도 국민들에게는 신사적인 척 하여 민주공화주의의 모양새는 유지하며 적어도 자신들을 투철한 공화주의자로 포장하였다.
거기다가 동맹 시민들은 학교에서 루돌프의 등극과정에 대해서 배우므로 따라서 투표를 잘해야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단지 그 때에는 주전파를 찍어야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을 뿐... 한편으로 그렇기에 반대로 작금에 이르자 동맹 시민들은 주전파를 찍은 것은 완전히 망하는 패였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에게 표를 주지 않겠다고 암묵적인 결의를 다진 것이었다.
물론 주전파 출신들도 이를 알고 황급히 다시 동맹 시민들에 대한 러브콜을 던졌으나 이들은 제국의 직접 통치기 시절에 제국의 환심을 잡겠다고 온갖 추태를 다 부렸고 동맹 시민들은 그것을 똑똑히 목격했기에 이제 와 러브콜을 던져봤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심지어 동맹 시기에는 국가 전방위적으로 뻗어 있던 그들의 각계각층에 커넥션 또한 소멸하였고 때문에 할줄 아는건 권력다툼과 선동 뿐이던 선거에서 옛 주전파 정치인들은 대부분 패배했고 그나마 능력이나 지역구에서 인망이 있던 이들 정도가 겨우 당선되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낙선되었다.
주전파 출신을 대신하여 옛 동맹의 정치판을 주도한 것은 동맹의 멸망 전부터 꾸준히 동맹의 위기를 경고해온 여러 재야의 상식인들과 몇없는 양식있는 정치인들 뿐으로 주전파 정치인들이 정치를 주도하는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들은 결국 그나마 존재하는 제국의 직할령으로 옮겨가 거기서 중견 자리 정도를 차지하거나 아얘 제국 본토로 건너가 거기서 한자리를 구해보거나 하는 등의 길을 택해야 했고 그래도 한때 고위정치인이었던 만큼 아주 능력이 없는건 아니라서 입에 풀칠하고는 살 수 있었지만 이들 대부분은 잘해도 중견관료에서 끝났고 그것은 한때 한 국가를 호령하던 정치인 치고는 비루한 최후였다.
정치인들이 이랬으니 군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계 뿐 아니라 군부 또한 썩어있기는 마찬가지라서 도슨 등 무능한 군인들이 넘쳐나는게 말기의 동맹군이었고 그나마 뷰코크, 양 웬리 등 능력있는 이들이 캐리하는 형국이었는데 그마저도 동맹의 멸망이 가까워질수록 날아가는게 현실이었다. 군 출신들은 그래도 동맹의 정치 하에서 동맹군은 그저 정치인이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었기에 그렇게 큰 책임을 진 것은 아니었으나 반대로 정치와는 달리 군에는 동맹의 민심을 다소 덜 고려해도 되는 한편 능력은 더 중요했던 관계로 동맹군 고관들은 제국 체제 하에서 출세할 길이 막히다시피 했다.
라인하르트 사후에도 이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는데 동맹의 각 자치령들은 굳이 강한 군사력을 갖춰야 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기에 각지의 경비함대는 많아봐야 1천척 남짓의 경비함대 수준이었고 이 때문에 인력이 모자라지 않아 굳이 무능한 장교들을 재기용해야 할 이유가 없던 것이었다. 오히려 잘쳐봐야 경비함대 수준이다 보니 소장급 이상은 기용 자체를 할 수 없는 구조이기도 했고.
물론 동맹군도 모두가 같은 취급을 받은건 아니었다. 정치인들 중에서도 양식있는 이들이 각 자치령에서 자리를 차지했듯 동맹군에서도 양식있고 능력있는 자들은 비록 자리는 차지하지 못할지언정 각지에서 명망을 얻었다. 동맹 시민들은 암묵적으로 그들을 전쟁영웅으로 취급했고 제국도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동맹 시민들의 반제국 감정을 모르지 않았으며 적이지만 멍청한 정치인과 무능한 아군을 두고도 분투했던 그들에 대한 존경심이 내심 있었기에 그들의 행위를 어느정도까지는 눈감아주었다.
이 때문에 라인하르트 사후 이제르론 공화정부측 주요인사들은 편안한 여생을 보냈다. 대부분 실권이 있는 자리를 차지하지 않거나(사실은 못한거지만) 명예직을 전전하였지만 사회적으론 큰 존경을 받으며 살았고 넉넉한 연금으로 부족함 없이 살았으며 단지 다음 세대에 자신들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을 살다 죽었으며 죽은 뒤에는 장례는 국장으로 치뤄지며 시신은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들 중 간혹 자신들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기거나 혹은 특이한 재능을 가져 후세에 작품을 남기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전자는 대부분 명목상 그 사상이 불온하여 제국은 이를 꺼려하였지만 그래도 몇몇 과격한 구절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선에서 출판을 허가해주었고 후자는 그것들을 남긴 사람의 이름값이 붙어 후세에 거래되었다.
첫댓글 시대의 패배자들 파트 끝(엄청 길고 긴 작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