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4.10 04:45
시내버스 기사가 의문의 교통사고를 내고 숨졌다. 버스전용차로를 벗어나 택시와 승용차들을 연쇄 추돌하고 뺑소니치듯 질주해 다른 버스를 들이받고 겨우 멈춰 섰다고 한다. 운전기사는 평소 건강했지만 열여섯 시간의 연속 근무에 시달렸다는 기사가 떴다. 잠깐의 졸음운전이라고 추측하기에는 질주한 거리가 상당하다. 차체 결함이나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대중교통 운전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더불어 우리 일상도 얼마나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가. 나도 아주 황당한 경우를 목격한 기억이 있다.
어느 화창한 일요일, 우리 가족은 노모를 모시고 외식을 즐기려는 참이었다. 아내는 특별히 창가의 좋은 자리를 예약했다. 주문한 음식이 들어오고 막 식사를 시작하려는 찰라, 갑자기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에 우리는 혼비백산하였다. 창밖 지척지간에 택시 한 대가 보도 불록 쪽으로 돌진하면서 길옆에 세워둔 승용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아니, 박살을 내버렸다. 구겨진 승용차는 관성에 밀려 나란히 주차해 둔 봉고차의 뒷부분까지 함몰 시켰다.
연쇄충돌 사고다. 택시는 보도블록에 반쯤 걸친 채 스멀스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조수석에 탔던 남자 승객이 택시 차문을 발로 차고 기를 쓰며 나오려는 모습이 보였다. 행인들이 택시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직업의식이 발동하여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객이 주위의 도움으로 겨우 차 밖으로 탈출하고 있었다. 찢어진 왼쪽 눈 주위에 선혈이 낭자하다. 멀리서 사이렌소리가 사고 현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신분을 밝히고 다친 승객을 보도블록 가장자리에 앉혔다. 지혈부터 시켜야겠다. 식당에서 깨끗한 티슈를 얻어와 눈 주위를 닦아내고 상처를 눌러 주었다.
“음주운전인가요.” 승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직 대답할 기력조차 없어 보인다. 상처를 직접 누르게 하고 운전석 쪽으로 가 보았다.
어느 화창한 일요일, 우리 가족은 노모를 모시고 외식을 즐기려는 참이었다. 아내는 특별히 창가의 좋은 자리를 예약했다. 주문한 음식이 들어오고 막 식사를 시작하려는 찰라, 갑자기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에 우리는 혼비백산하였다. 창밖 지척지간에 택시 한 대가 보도 불록 쪽으로 돌진하면서 길옆에 세워둔 승용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아니, 박살을 내버렸다. 구겨진 승용차는 관성에 밀려 나란히 주차해 둔 봉고차의 뒷부분까지 함몰 시켰다.
연쇄충돌 사고다. 택시는 보도블록에 반쯤 걸친 채 스멀스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조수석에 탔던 남자 승객이 택시 차문을 발로 차고 기를 쓰며 나오려는 모습이 보였다. 행인들이 택시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직업의식이 발동하여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객이 주위의 도움으로 겨우 차 밖으로 탈출하고 있었다. 찢어진 왼쪽 눈 주위에 선혈이 낭자하다. 멀리서 사이렌소리가 사고 현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신분을 밝히고 다친 승객을 보도블록 가장자리에 앉혔다. 지혈부터 시켜야겠다. 식당에서 깨끗한 티슈를 얻어와 눈 주위를 닦아내고 상처를 눌러 주었다.
“음주운전인가요.” 승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직 대답할 기력조차 없어 보인다. 상처를 직접 누르게 하고 운전석 쪽으로 가 보았다.
다친 승객에게 돌아왔다. 감겨져 있는 왼쪽 눈 주위의 출혈이 어느 정도 멈춘 듯하다. 그런데 상처를 살피려다 오른쪽 눈과 딱 마주쳐버렸다. 아, 공포와 엽기에 가득 찬 눈동자. 방금 지옥을 보고 온 사람의 눈빛이 이럴까. 그의 입에서 신음 같은 중얼거림이 터져 나왔다.
“저 택시 기사 간질 환자요, 좀 전까지 경련 발작을 했다니까.”
그제야 기억 저편이 어슴푸레 열리며 학창시절 정신과 교수님께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간질 환자 중에 직업 운전자들이 간혹 있다는 이야기, 제도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솎아낼 방법이 없으니 우리는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초에서 수 분간의 경련 발작과 떨림, 그리고 이어지는 깊은 수면의 상태. 아까 외상이 없던 기사의 상태가 설명되었다. 경련을 일으킨 후 정신을 잃으면 오히려 충돌에 의한 외상 가능성은 덜하다. 공포를 느끼지 못해 근육과 관절들이 방어 본능적인 경직성이 없기 때문이다. 전문의들은 이런 환자들이 운전이나 혼자 수영하는 것, 혹은 높은 곳에서 작업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택시 핸들을 내가 잡고 한참을 달렸어요.” 다친 승객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교통경찰과 행인 몇 사람이 우리 주위에 몰렸다. 간간이 몸을 떨면서 더듬거리는 그의 이야기는 악몽이다.
왕복 사차선 도로 위, 차량들의 흐름 속에 택시 한 대가 방향감각을 잃어버린다. 갑자기 택시 운전자가 온몸을 경련하였기 때문이다. 조수석에 탄 남자 승객은 본능적으로 핸들을 잡아챘다. 엉거주춤 한손으로 방향을 조정하지만 언제 마주 오는 차들과 정면충돌 할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운전자의 경련이 심해지고 액셀러레이터를 누르는 발에 힘이 들어가면서 택시는 총알의 속도를 탄 흉기가 되어 버렸다. 승객은 몇 십초의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자리 잡고 있던 식당을 한참 앞두고 기사는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렸단다. 그러자 다리에 힘도 빠지면서 다행히 차 속도는 줄기 시작했고. 승객은 와중에도 차를 멈출 온갖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고 했다. 저만치 보도블록 근처에 차량 몇 대가 줄지어 주차해져 있는 것을 보면서 그쪽으로 택시를 몰아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행인들을 피하면서 마주 오는 차들과 정면충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잘못되면 자기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하고 오금이 저렸다고 했다. 그 때 우리 가족은 달래 왔던 식욕을 막 풀어놓으려던 참이었다. 쾅!
다른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 승객의 용기와 순발력 덕분이다. 만에 하나 택시가 식당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면 얼마나 더 큰 인명 피해가 났을까, 어쩌면 창가에 자리했던 우리 가족도 다쳤을지 모른다.
식당으로 돌아오면서 얼마 전 뇌종양으로 방사선 치료를 해주었던 환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개인택시 업을 하던 50대 중반의 남자 환자. 치료를 받는 기간만이라도 일을 쉬도록 권유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으로 운전 중에 정신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를 수차례 해 주었지만 하루라도 운전대를 놓으면 가족들의 생계는 물론 본인의 치료비마저도 마련할 수 없다고 하였다. 아마도 오늘 정신을 잃었던 택시 운전자도 하루벌이를 위해 화창한 일요일, 위험천만의 몸으로 운전대를 잡았을 것이다.
가족들은 사고에도 아랑곳없이 식사에 열중이다. 창밖으로 견인차에 끌려가는 흉물로 변한 택시를 보면서 나는 식욕이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