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통 / 이재봉
문서를 작성하다가 파일을 날려 보냈다
파일을 복원하려고 휴지통을 열자
수백 개의 폴더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하나하나 폴더를 검색하다 너무 엄청나서
그만 찾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내 머릿속도 컴퓨터의 휴지통을 닮았다
추억에 갇혀 버리지 못한 기억의 파편들이
밤만 되면 나타나 잠을 못 이루게 한다
파란 대문으로 여자 아이가 걸어 나오고
꽃이 가득한 치마를 입고 어머니가 걸어 나오고
꼿꼿한 할아버지가 장대를 들고 걸어 나온다
기억 위에 기억을 쌓다보면
어느새 생각은 뒤죽박죽 헝클어져 있다
기억을 비우지 못한 내 마음은
항상 복잡하고 산란하다
기억을 흘려보내야 또 다른 기억이 쌓이듯
휴지통은 비어있어야 휴지통이다
첫댓글 기억은 뇌의 이곳저곳에 파편처럼 박혀 있다가 뇌가 수면 등을 통해 쉬고 있을 때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는 기억도 있다. 무의식의 세계에 저장된 기억이다. 내 머릿속도 컴퓨터의 휴지통을 닮았다. 삭제하지 못한 기억들이 무의식의 저편을 맴돌며 정서적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 마음이 복잡하고 산란하다면 심리적 용량이 한계를 초과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때가 비워야 할 시점이다. 다행스럽게도 인간에게는 망각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꼭 필요한 기억은 보존하고 필요 없는 기억은 지워버린다. 기억을 흘려보내야 또 다른 기억이 쌓이듯 휴지통은 비어있어야 휴지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