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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인간은 어디든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고 무슨 일이든 시도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자연이 정해 놓은 길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괴테).
+ 빠다킹 신부
여분의 기름통
여름방학 세달 동안 한국에 들어가 휴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워낙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했기 때문에 매일 규칙적으로 하던 기도시간도 채우지 못 할 때가 많았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기도를 많이 하지 못했는데도 기도 열심히 하며 살 때와 커다란 차이를 느끼지 못하며 살았던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것을 말했더니, 한 수녀님께서, “그건 평소에 많은 기도를 해 놓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거예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맞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 잘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밤새 기도하시기도 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기도할 시간이 부족한데도 큰 어려움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면 그건 내 마음 안에 있는 여분의 기름통에 채워져 있는 기름이 있었기에 그것이 소비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현명한 처녀들과 미련한 처녀들이 등장합니다. 현명한 처녀들은 신랑을 기다리기 위해 등잔을 준비하고 기름도 예비로 따로 준비해 둡니다. 기다림에 지쳐 졸다가 신랑이 온다는 말에 깨어났을 때 열 처녀의 등잔은 모두 기름이 없어 꺼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름을 준비해두었던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것으로 보충하여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나머지 다섯 처녀는 결국 허둥대다가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신랑이신 당신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항상 깨어있으라고 당부하십니다. 항상 깨어있으라는 의미는 매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죽음을 준비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한 시간 뒤에 죽는다고 했을 때 서두르지 않고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항상 깨어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살다보면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죽음이 목전에 와 있는 줄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기름만 미리 예비로 준비해 두었다면 하늘나라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기름은 누구에게 빌릴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기름은 등불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 기름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기름은 기도로 채워지고 살아가면서 저절로 줄어듭니다. 성령님이 줄어들면 그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등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미워지고, 용서가 안 되고, 우울해지고, 걱정이 많아지며 절제가 되지 않게 됩니다.
만약 이렇게 성령님이 다 빠져나갔을 때가 나의 마지막 때가 된다면 되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항상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이 충만한 상태에서 또 기름을 채워봐야 특별한 마음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될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기름이 더 많이 보충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현명한 처녀들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알아야합니다.
첫 째는 내 안에 예비 기름통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아무리 많이 해도 항상 부족한 것입니다. 많이 하면 할수록 남는 에너지는 예비 기름통에 채워져 유사시에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살아가다보면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없게 될 때가 반드시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겸손입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태어나 군대 가기 전까지 살던 집은 평택군의 한 시골이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수원으로 다녔는데 자전거를 타고 송탄시까지 나와서 봉고차를 타고 수원으로 통학하였습니다.
토요일 오후는 봉고차가 우리를 태우러 오지 않기 때문에 그 때는 수원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내려와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다 그렇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버스를 타면 곯아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한 번은 눈을 떠보니 버스가 송탄을 지나고 평택시를 막 떠나는 중이었습니다. 더 큰 일은 돌아올 차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염치불구하고 옆에 앉은 학생에게 사정이야기를 하고 올라올 차비를 빌려줄 수 없느냐고 사정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은 돈을 주면서 갚을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 날은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다음번에는 절대 버스에서 자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고 내려오는 눈꺼풀을 손으로 밀어 올리며 참고 있었습니다. 오산을 지나서 다음 정거장이 송탄이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사이에 잠에 떨어져 이번에는 마지막 종착지인 천안 버스 정류장에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날도 올라올 차비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내릴 때라 누구에게 사정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한 골목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한 학생이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학생을 불러 세우고 또 사정 이야기를 한 다음에 돈을 좀 꾸어달라고 했습니다. 그 학생은 겁을 집어먹었는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주었고, 갚을 테니 주소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저를 뒤로하고 괜찮다고 하며 빠른 걸음으로 가버렸습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올라오면서 깨달은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제가 사람도 안 다니는 골목길에서 그 학생의 돈을 빼앗은 것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 학생은 저를 불량학생으로 알고 돈을 털어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번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다음번에는 예비로 올라올 차비를 지니고 탔어야 했는데 그런 실수는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생의 돈을 빼앗는 일까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인생은 내 예상대로만 되어가지는 않습니다. 내 예상에서 벗어나더라도 당황하지 않도록 예비를 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기도는 아무리 하더라도 충분하지 않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기도할 수 없을 상황이 올 때를 대비해서 시간이 나는 대로 성령님을 더 충만하게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여분의 기롬통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 요셉 신부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일상에 대한 진지한 접근>
언젠가 인천교구 김병상 신부님께서 "기쁨과 사목"이란 소식지에 기고하셨던 글을 읽고 크게 뉘우친 적이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사제로 서품되신 직후 한 원로 신부님을 찾아가셨답니다. 인사를 올린 후 "새 사제로서 어떻게 살면 좋겠습니까?"하고 조언을 부탁드렸습니다.
한참 묵묵히 생각이 잠겨 계시던 신부님은 이런 조언을 해주셨답니다. "자네가 가장 가까이 접하게 될 사람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도록 노력하게나. 언제나 자네 주변에서 가장 수고가 많은 식복사 자매님, 수녀님, 사무실 직원, 사목위원들을 먼저 챙기고 그들에게 정직한 모습, 성실한 사제의 삶을 보이도록 노력하게."
평범하고 소박한 한 마디 말씀이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인생의 진리가 담겨있는 소중한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가끔씩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 일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또한 먼발치에서 바라다보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란 쉬운 일입니다. 또 그들에게 "사랑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는 너무도 간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가장 가까이 살아가는 사람들, 배우자, 부모, 자녀, 직장동료, 친구, 이웃들을 지속적으로 사랑하고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실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고 하시며 마지막 날을 잘 준비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어떤 모습의 삶이 <마지막 날>을 가장 잘 준비하는 삶이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도 단순하고 소박한 삶, 늘 정리된 삶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우리가 지니고 있던 소유지향적인 삶, "이것만은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식의 고착된 삶의 양식으로부터 이탈된 삶, 그런 삶이 준비된 삶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삶 역시 극도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었습니다. 매일 다가오는 수많은 문제들과 한계들을 매일 아버지께 맡기고 밤이면 모든 걱정 툭툭 털어 버리고 기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던 삶이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당신에게 다가오는 그 누구도 물리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선사하셨습니다. 특히 가장 가까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돈보스코 성인의 영성 그 핵심에 "일상의 영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상의 영성은 평신도들의 영성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지요.
일상의 영성은 다름 아닌 매일의 삶에 충실하려는 영성입니다. 무엇보다도 일상의 영성은 매일 만나는 이웃들, 가장 가까이 몸 붙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충실하려는 영성입니다. 또한 매일 주어지는 작기에 하찮아 보이는 일상의 업무들에 충실한 영성입니다. 아울러 매일 와 닿는 예기치 않았던 고통스런 상황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영성입니다.
회개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일상 안에서 우선 작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을 개선시켜나가는 노력입니다. 이런 일상에 대한 진지함이나 충실함이야말로 주님의 날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노력일 것입니다.
누군가의 고백처럼 "일상에 대한 진지한 접근, 인생의 진리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The pray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