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 최민식 주연의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봤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영화에 출연한 것은 <쉬리> 이후 20년만이라 모두 기대가 컸던 영화입니다. 나는 <쉬리>보다는 <넘버3>에서 두 사람의 연기가 훨씬 좋았습니다. 나는 <쉬리>보다 <넘버3>가 더 훌륭한 영화이고 90년대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독이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에서 잔잔하면서도 서정성 가득한 영화를 만든 허진호 감독이어서 기대가 컸습니다.
영화를 보는 이유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재미는 코미디 영화를 볼 때만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웃음, 유머 와 TV에서는 즐길 수 없는 압도적인 영상등 오락성이 재미를 줍니다.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 가슴을 치는 감동을 주면 재미를 느낍니다. 슬픈 영화나 새드엔딩일 때도 당연히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의 스토리에 개연성이 있고 잘 짜여져 있다면 감동과 재미는 더 커질 것입니다. 거기에다 어떤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인류 보편적인 가치와 진보적인 가치까지 담았다면 훌륭한 영화라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마블 영화가 흥행하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 영화들에 무슨 작품성이 있어 감동을 받겠습니까? 그러나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일부 예술 영화는 작품성은 있는지 모르지만 재미가 없습니다. 영화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없으니 흥행이 되지 않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천만 관객을 모으는 큰 흥행을 했습니다. 내가 <엑시트>를 보니 <어벤저스 엔드게임>보다 더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엑시트>도 천만 관객이 들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번 <백두산>을 관람해보니 <겨울왕국2>보다 더 재미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겨울왕국2>가 천만이 넘는 흥행을 했으니 <백두산>도 천만을 넘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백두산>의 결말이 뻔하다고 하는데 뻔한 결말로 말하면 <겨울왕국2>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본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약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줄거리가 말이 안되는 내용이 많아서 영화의 설정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해도 잘 안되네요. 장영실(최민식분)과 세종대왕(한석규분)의 브로맨스를 묘사했다고 하는데 납득이 안됩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거의 동성애 수준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별을 보면서 "저별은 내별, 바로 옆에 붙은 별은 네별"이라는 대화를 나누고, 창호지를 먹으로 칠한 다음 구멍을 뚫어 별을 나타내면서 또 별타령을 하는데 유치해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최민식이 한동안 한직으로 보내졌는데 최민식의 반응이 "어떻게 나를 잊을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아련한 그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이영애에게 한 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와 똑같았습니다. 관람평 중에 "한석규와 최민식이 키스할까봐 식은 땀이 났다"가 있었습니다.
조선에서 천문관측 기구를 만든다고 중국 명나라에서 질책하는 사신이 온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장영실을 중국으로 압송해 간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데, 장영실이 중국사신 앞에서 자기 바지를 내려 오줌을 갈긴다는 설정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이해가 안됩니다. 세종대왕이 장영실을 구하기 위해서 그런 것인지 죽이려고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장영실이 만든 바퀴달린 가마(안여)의 바퀴 축을 미리 잘라서 사고가 나게하는 자해공갈 사건을 일으킵니다. 그러고는 사사건건 자신과 부딪치는 대사헌을 안여의 축을 자른 역모로 몰아 죽일듯이 하더니, 영의정이 새로운 글자(훈민정음)는 안된다고 하면서 새문자를 포기하면 장영실을 구원하겠다는 말에 장영실을 구하기 위해 훈민정음 반포를 포기하려고 합니다. 역모는 어디로 간 것입니까? 장영실과의 우정을 위해 훈민정음을 포기하려고 했다고요? 정말 황당한 일입니다. 장영실과 훈민정음을 연결시키는 것은 말이 안되지만 장영실은 도망갈 수도 있었는데 자신을 희생해서 훈민정음을 살려내면서 영화가 끝납니다. 그리고 안여를 같이 만든 장영실의 동료들을(아무 죄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세종대왕이 직접 문초하면서 고문하는 것도 언짢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고문당한 후에 감옥에서 웃음을 주는 행동과 발언을 하지만, 나는 너무 뜬금없어서 하나도 웃기지 않았습니다.
세종이 역모라면서 길길이 날뛸 때의 발언 중에 자신을 가르키는 단어로 과인이 아니라 짐을 쓰고 있는데 조선의 국왕 중에 고종과 순종을 빼고 그렇게 말한 왕은 없었을 것입니다. 황제의 자칭은 '짐'이고 왕의 자칭은 '과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