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안에서 생긴 일 — 작은 자리 하나가 남긴 따뜻한 흔적
오늘 나는 나주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사관학교 시절 교관님과의 테니스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머리를 다쳐 몸은 아직 무거웠지만, 사람과의 약속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길을 나섰다.
기차를 타기 전, 나는 시골 육촌 동생과 함께 영산강변을 걸었다.
며칠 전 끝난 영산포 홍어축제의 흔적이 아직 강가에 남아 있었고, 강변에는 양귀비를 닮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구름은 잔뜩 끼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했지만, 꽃들은 오히려 그런 하늘 아래에서 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그 자리, 뒷산 가야산을 배경으로 피어 있는 꽃들은 마치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나를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영산강은 잔잔했다.
파도도 없고 흐름도 거의 없는 물 위로 꽃 그림자만 조용히 흔들렸다.
나는 문득 강물이 꽃들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너희를 오래 품어 키웠으니 이제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거라.”
나는 물속 잉어를 찾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지만 끝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수줍음이 많은지, 아니면 내가 한국 국적이 아닌 것을 눈치챘는지, 물속 어디선가 잉어들끼리 가족회의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그 회의 결과를 기다릴 수 없었다.
기차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꽃들을 뒤로한 채 KTX에 올랐다.
몸을 좌석에 기대자 일정한 기차의 리듬이 다친 머리를 천천히 잠재웠다.
한참 졸다가 문득 눈을 떴다.
나는 출입문 근처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모습을 자연스레 바라보게 되었다.
그때였다.
한 노인이 술 냄새를 약간 풍기며 승무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마 다른 사람 자리인 줄 모르고 앉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자리 좀 만들어 줘야 할 거 아니오!”
승무원은 난처한 얼굴로 연신 사과를 했지만, 이미 열차는 만석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오래전 기억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젊은 시절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영산포까지 열두 시간이 넘도록 서서 오가던 시절이었다.
사람 냄새와 석탄 냄새와 삶의 피곤함이 뒤섞이던 그 오래된 열차 안의 풍경.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분께 자리를 권했다.
승무원은 놀란 얼굴로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밖에 나오니 오히려 더 좋습니다. 경치도 더 잘 보이고 다리도 펼 수 있으니까요.”
그분은 올해 아흔이라고 했다.
정읍에서 문중 일을 보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했다.
나는 출입문 옆 작은 접이식 의자에 앉아 밀린 메시지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분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혹시라도 중심을 잃고 넘어질까 걱정되어 나는 다시 그분께 내 자리로 가시라고 권했다.
그분은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다 갑자기 내 전화번호를 물었고, 본인 전화번호를 먼저 불러 주었다.
나는 전화를 걸어 드리며 웃었다.
“미국 번호니까 받지 마십시오.”
그분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아니, 뉴욕 사는 사람이 이렇게 자리를 양보한다고요?
요즘 한국 사람들도 잘 안 그러는데…”
그 말에 나는 잠시 웃음이 났다.
사실 나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나이 드신 분이 편히 가시도록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 당연함이 깊은 감동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용산역에 도착한 뒤에도 그분은 계속 내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 하셨다.
나는 여러 번 사양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단순한 감사 이상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결국 우리는 동대문 먹자골목으로 갔다.
굴 음식은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니, 돼지불고기에 소주 한 잔을 주문했다.
낯선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서로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그분은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하며 가끔 눈을 감았다.
삶의 무게가 긴 숨결 사이로 천천히 흘러나왔다.
그리고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오늘 당신이 밖에서 작은 의자에 앉아 가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윗사람 편히 가시라고 양보한 것인데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러자 그분은 고개를 저었다.
“요즘 세상에 자기 돈 주고 산 자리를 그렇게 내주는 사람, 정말 처음 봤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편리해졌지만, 사람들은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일에는 점점 서툴러지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작은 친절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에는 큰 파문처럼 번지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자리 하나를 양보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행동은 낯선 사람 사이에 따뜻한 대화를 만들었고,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게 했으며, 결국 두 사람의 하루를 오래 기억될 인연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살아가며 거창한 선행만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어쩌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아주 작은 배려인지도 모른다.
버스 안에서의 자리 하나.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 주는 손길 하나.
넘어질까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 기다림 하나.
그 작은 행동들이 모여 사람에게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는 희망을 남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도덕적 고양감(Moral Elevation)’이라 부른다고 한다.
누군가의 선행을 볼 때 사람의 마음도 함께 따뜻해지며, 또 다른 선행을 하고 싶어지는 현상이다.
결국 친절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결처럼 번져 간다.
오늘 내가 양보한 작은 자리 하나도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배려로 이어질지 모른다.
나는 오늘 KTX 안에서 그것을 배웠다.
사람은 돈이나 성공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잠시 편히 앉게 해 준 따뜻한 마음으로도 오래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