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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세상을 껴안다☆]의 앞표지(우)와 뒤표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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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껴안다]
나태주 시집 / 지혜사랑시인선 078 / 도서출판지혜(2013.04.01)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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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껴안다
나태주
생각하면 너무 크다
생각하면 너무 작다
너무 멀고도 아득하다
그래도 나는 세상을
껴안을 수밖에는 없다
사랑하기만 한다면 세상과 내가
둘이 아님을 아는 까닭으로
세상아, 안녕!
아침에 일어나 세상과 인사하고
세상아, 안녕히!!
저녁에 세상과 작별을 나눈다
날마다 세상 앞에서
나는 아이이고
내 앞에서 세상도
새롭게 아기다.
오랜 사랑
나태주
바위는 부서져 모래가 되는데
사람의 마음은 부서져 무엇이 되나?
밤새워 우는 새
아침 이슬
기와집 처마 끝에 걸린 초승달
더러는 풍경소리
바다는 변하여 물이 되는데
우리의 사랑은 변하여 무엇이 되나?
좋은 날
나태주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좋고
하고 싶지 않는 일을 하지 않으니
더욱 좋다.
지구와 더불어
나태주
누군가 한 사람을 사랑하여 밤을 새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밤에 지구는 바알간 등불을 켜고 있었다
지구의 가슴이 더욱 전다워진 것이다
누군가 한 사람을 사랑하여 한낮에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 낮에 지구는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구의 마음이 더욱 싱싱해진 것이다
누군가 마음이 변해버린 애인을 생각하며 흐느껴 울고 있었다
그 날에 지구도 따라서 훌쩍이고 있었다
지구도 그 사람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버림받은 사람도 이런 때는 지구와 더불어
마음이 따뜻해서 좋았다.
당신 안의 그 여자
나태주
사람 바빠 죽겠는데
열심히 집안일 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전화를 거시는 당신
지금 창밖에는 눈이 날리고 있다고
꽃이 피어났다고
더러는 달이 떴다고
전화로 불러내시면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요?
지금 설거지하고 있는 중인데
김치를 썰고 있는 중인데
마음이 울적하다고
보고 싶다고 자꾸만 보채시면
날더러 어쩌라는 건가요?
부디 당신 안의 그 여자와
사이좋게 잘 지내기 바래요
자주 우울하고 자주 쓸쓸하고
자주 울먹거리는 변덕쟁이 그 여자
새파란 입술을 가진 그 여자와
봄이 와도 울지 말고 쓸쓸해하지 말고
부디 잘 살기 바래요.
집
나태주
아침이 되면 사내들은 서둘러 밥을 먹고 신을 신고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다. 오랜 세월 어길 수 없는 전통이었으며 의식이었다. 애당초 그들은 여행자였고 사냥꾼이었고 떠돌이였기 때문이다. 아침만 되면 또 사내들은 바람이 나곤 했다. 바람이 되어 세상을 넘나들었다. 스스로 종마라 생각하고 우쭐댔으며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착각으로 늘 으스대곤 했다. 약간의 겸양과 수줍음까지도 그것은 바람기와 우쭐댐의 변종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떠나온 집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녁시간이 되면 떠나온 집으로 정확하게 돌아갈 줄 알았다. 그들 마음속에 집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풀이 죽어 아침이 되어도 신을 신고 떠날 곳이 없는 사내들, 바람이 날 수도 없고 바람이 될 수도 없는 사내들은 종일 방안에 갇혀 유리창 밖만 을 응시한다. 언제쯤 다시 떠날 수 있을까? 언제쯤 다시 바람이 되는 걸까? 그들의 집은 이제 젊어서 떠돌던 머나먼 곳, 적어도 산 너머 그 어디인가에 있다. 여전히 마음속에 숨어 있다. 그러나 그 집이 이미 이 세상이 아닌 곳에 있다는 걸 그들은 미처 짐작하지 못한다.
이 봄날에
나태주
봄날에, 이 봄날에
살아만 있다면
다시 한 번 실연을 당하고
밤을 새워
머리를 벽에 쥐어박으며
운다 해도 나쁘지 않겠다.
저녁의 사람
나태주
인간은 날마다 저녁 무렵
한번쯤은 진실해지고 솔직해진다
힘들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훠이, 돌아보는 스스로의 기인 그림자
지친 어깨에 후둘거리는 두 다리
다만 빈손에 들려 있는 무거운 가방 하나
어디로 가나?
누구를 만나야 하나?
막연한 두려움과 외로움
한사코 앞을 막아서는 오로지 안타까움
인간은 일생에 나이 들어
한번쯤은 선량해지고 겸허해지기 마련이다
나 지금가지 무엇 하러 살았던가?
평화
나태주
새 둥우리에
아기 새 두 마리
빠꼼히 눈을 뜨고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무슨 일이 있나?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흐르고
방울꽃이 폈다
오늘도 세상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단다
방울꽃이 말을 할 때
엄마 새가 먹이를
물고 돌아왔다.
별밤에
나태주
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공부 잘하고 심부름도 잘 할게요
동생들이란 싸우지도 않고 잘 놀게요
언제까지나 나는 어머니의 아들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
저기 저 하늘에 커다란 별은
어머니 별이구요
그 옆에 조그맣게 반짝이는 별은
나의 별이에요
어머니, 찡그린 얼굴을 하지 마세요
얼굴을 찡그리면
고운 얼굴에 주름이 져요.
미완의 이별 - 엘에이를 떠나며
나태주
새로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을 두고 가다니
아깝다
점점 좋아지기 시작하는
사란들 두고 떠나다니
안타깝다
사람의 일이란 언제나 부질없고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끝 날은 오게 마련
는 녹은 물을 먹고 피어나는
천사의 꽃들이여
하늘이여 하늘 닿는 나무들이여
새로운 만남을 위해
이별을 짓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여행은 마감되어야 한다
안녕 안녕 떠나면서
손 흔들어 인사를 한다
부디 잘들 있거라.
막동리에 돌아와
나태주
고향의 뒷동산에 올라가
젊은 날 바라본 것은
희망보다는 절망
줄에 묶인 자의 슬픔
오늘도 흰 구름은 높이 뜨고
바람은 멀리 가는구나!
그 시절엔 절망도
길이 될 수 있었다.
인생
나태주
아이들이 쌓아놓은 모래성
지루하고도 따분한 날들이
참 빨리도 간다.
사라짐을 위하여
나태주
날마다 울면서 기도한다
아침 해와 저녁 해는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그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새롭게 태어나고 새롭게 죽는가!
아침 해는 저녁 어둠과별들을 사라지게 하고
저녁 해는 한낮의 모든 것들을 데려간다
무엇보다도 너와 내가
다시 한 번 어렵게 만나도ㅓ
어렵게 헤어진다
잘 가 울지 말고 잘 살아
너무 힘들어하지 마
날마다 마음 조아려 기도한다.
사랑이 올 때
나태주
가까이 있을 때보다
멀리 있을 때
자주 그의 눈빛을 느끼고
아주 멀리 헤어져 있을 때
그의 숨소리까지 듣게 된다면
분명히 당신은 그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의심하지 말아라
부끄러워 숨기지 말아라
사랑은 바로 그렇게 오는 것이다
고개 돌리고
눈을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으로
나태주
그 사람 하나가
세상의 전부일 때 있었습니다
그 사람 하나로 세상이 가득하고
세상이 따뜻하고
그 사람 하나로
세상이 빛나던 때 있었습니다
그 사람 하나로 비바람 거센 날도
겁나지 않던 때 있었습니다
나도 때로 그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오밤 중
나태주
공연한 일을 했나 보다
문자메시지 보내 놓고
자꾸만 핸드폰으로 가는 눈길
고요한 밤 시간을 그만
망쳐놓고 말았다
며칠
나태주
눈이 짓무른다는 말이
맞다
눈에 밟힌다는 말이
맞다
너 못 보고 지내는
녀칠
귀에 쟁쟁쟁 울린다는 말이 또다시
맞다
소낙비 와 씻긴 돌각담
아래
채송화 봉숭화 함께 나도
울보다.
개밥
나태주
올해 내 나이 68세
아내는 64세
나는 아내가
밥을 줄 때만 좋아하고
아내는 내가 용돈을
줄 때만 좋아한다
그런 우리는 서로
개밥 준다고 말을 한다.
장국밥
나태주
장마당 한 가운데 커다란 솥이 하나 걸려 끓고 있었다
솥에서는 구수한 고기국물 냄새가 번졌다
아침밥을 거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기로 모여 꼬깃꼬깃한 종이돈을 건네고
국밥 한 그릇씩을 시켜서 먹곤 했다
모시 팔러 일찍 장에 나온 아버지도 모시 판 돈으로 국밥 한 그릇을 시켰다
주인에게 진 그릇 하나를 달라고 헤서 아버지는 국과 밥알을 조금 건져 나에게도 건져 주었다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얘야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아버지를 따라 돌아오는 시장 어귀에 가마니를 깔고 난전을 펼친 책들이 보였다
‘새벗’이란 이름의 책도 있었다
그 책 한 권을 사 주십사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배가 고팠다.
새로 봄
나태주
겨울을 이겨야 봄이지요
여전히 살아 있는 목숨이어야 봄이지요
그러니 봄이 기적이 아닌가요
새로 꽃이 피어야 봄이지요
새로 잎이 나고 새가 울어야 봄이지요
그러니 봄이 더욱 기적이 아닌가요.
캘린더
나태주
시간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데
사람만 날마다 부질없이 낡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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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마지막 보루
자다 깨어나 생각해본다. 나에게 시마저 없었다면 나의 인생은 얼마나 쓸쓸하고 적막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을까?
시시때때로 시를 주시는 신에게 감사하고 시를 쓱 도와주는 주변의 인물들이나 사물들에게 감사한다. 더불어 고달픈 인생에게도 고맙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미안한 건 종이들이고 나아가 나무들한테다. 세상에 나와 내가 가장 많이 잘못한 일 가운데 하나는 책을 많이 낸 일이고 그만 종이를 많이 소비해버린 일이다.
종이한테 미안하다. 나무들한테 죄를 많이 졌다. 그러므로 될 수록 아름다운 시로 보답해야겠다.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시에 매달리면서 울적해하고 섭섭해할까? 그런 마음이 이어질 것인가?
이러한 마음은 매우 성가신 마음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축복이기도 하다. 남들이 그렇게 말해준다. 이렇게 나를 지켜보아주는 분들에게도 고맙다. 마지막 보루다. 그렇다. 시가 나의 마지막 보루다.
201년 새봄을 발돋움하며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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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詩集 [※세상을 껴안다※]
[ 딸의 편지 ] -
참 소중한 아버지께
나민애
언젠가 울고 있던 제게, 아버지는 말씀하셨죠.
비는 언젠가는 그친다고.
어떤 일이든 경디면 지나간다고.
그 말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감사하는 요즘입니다.
아버지야말로 그 많은 것들을 견디고 살아오셨잖아요.
그래서 제게는 견디라는 말에 대한 믿음이 더 커졌는지도 모릅니다,.
세상 모든 아저버지가 그렇듯, 아버지는 오욕의 세월을 건너 식솔을 책임지는 가장의 고통을 짊어지고 있었고 진정한 모든 시인이 그렇듯, 창작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병행하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에는 죽음을 넘나드는 그 지난한 시간을 견뎌야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온몸은 파랑과 회색이어서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서울에 와서 재수술한 다음에도 피가 멈추지 않아 복수와 핏물로 배는 터질 듯 부풀었습니다.
그 때 피 주머니를 차고 우두커니 않아있던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그 창백한 낯빛은 너무나 처연해서 아버지는 부스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 아버지는 죽는구나, 절망하다가 하루에도 몇 번, 아버지는 살 수 있다, 희망하다가 끝내는 엎드려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당시에 할 수 있는 일은 우는 것과 기도하는 것 두 가지 외에는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닦고 손발을 주무르며 이 일이 마지막이 될까봐 늘 두려웠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오래, 그리고 많이 사랑한 사람.
모든 세상이 들 돌려도 내 곁에 남아줄 마지막 사람.
저는 아버지가 돈도 밥도 나오지 않는 문학에서 고통과 행복을 자처하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고 싶어서 역시 돈도 밥도 되지 못할 문학을 선택했습니다.
시를 공부하고 평하는 것이 제 직업입니다.
아버지의 작품은 객관적으로 다룰 자신이 없어 늘 함구합니다만,
제가 평생 문학 공부를 업으로 삼겠다고 한 이 결정 자체가 평생(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나 언젠가 제 곁을 떠나신 후에도) 아버지의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계시지요.
내게 있어 평생의 시 공부는 평생의 아버지 공부입니다.
이것은 남들은 몰라도 좋을,
아버지와 나만의 비밀입니다.
아버지, 오래 사세요.
사랑을 담아
2012.10.11
딸 민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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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 [풀꽃 3] 전문
백합꽃 향기 너무 진하여 저녁때
대문이 절로 열렸네.
- [산책] 전문
좋았다 다 좋았다
나만 혼자 불량품
세상한테 많은 빚
지고 간다.
- [회고] 전문
생각하면 너무 크다/생각하면 너무 작다/너무 멀고도 아득하다//그래도 나는 세상을/껴안을 수밖에는 없다/사랑하기만 한다면 세상과 내가/둘이 아님을 아는 까닭으로//세상아, 안녕!/아침에 일어나 세상과 인사하고/세상아, 안녕히!/저녁에 세상과 작별을 나눈다//날마다 세상 앞에서/나는 아이이고/내 앞에서 세상도/새롭게 아기다.
- [세상을 껴안다] 전문
제가 평생 문학 공부를 업으로 삼겠다고 한 이 결정 자체가 평생 아버지의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계시지요. 내게 있어 평생의 시 공부는 평생의 아버지 공부입니다. 이것은 남들은 몰라도 좋을, 아버지와 나만의 비밀입니다.
아버지, 오래 사세요.
-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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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
∙ 나태주 시인은 1945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하였고, 1963년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했으며, 1964년부터 교직에 종사하기 시작하여 2007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고, 시집으로는『대숲 아래서』『막동리 소묘』『황홀극치』등 여러 권을 출간했고, 산문집으로는『풀꽃과 놀다』『시를 찾아 떠나다』등 여러 권을 출간했고 시화집으로는『너도 그렇다』『너를 보았다』와 동화집 『외톨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나태주 시인은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했고, 충남문인협회 회장, 충남시인협회 회장,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공주문화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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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세상을 껴안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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