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드민턴의 역사 [동영상 및 자료]
구기(球技)의 하나이며, 셔틀콕이 마루에 떨어지기 전에 쳐 넘겨야 하는 것이 배드민턴의 특징이다.
경기규칙은 1939년에 국제배드민턴연맹(International Badminton Federation:IBF)이 제정한 후
개정되어 22개조로 되어 있으며, 세계 각국이 이 규칙에 따르고 있다.
배드민턴의 발상(發祥) 및 발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2세기경 영국 왕실의 기록에 배드민턴과
비슷한 놀이를 행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것을 보더라도 고대에도 배드민턴과 비슷한 게임이 행하여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경기의 원형(原型)은 인도 봄베이의 근교인 푸나 지방에 옛날부터
있던 놀이이다. 처음에는 양가죽으로 만든 공을 손바닥으로 쳐 보내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코르크에
새의 깃털을 꽂아서 라켓으로 쳐서 보내는 놀이로 변하였다.
1873년 당시 인도에 주둔한 영국군 장교가 귀국 후 영국 그로스터셔에 거주하는 T.D.보퍼트의 영지인
배드민턴 마을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푸나 게임을 소개하였다. 그리하여 이 경기는 마을의 이름을 따서
배드민턴이라 하게 되었다. 그후 1890년에 이르러 일정한 코트와 네트의 높이에 의한 배드민턴 게임이
활발해지자, 1893년 9월 최초로 영국 배드민턴 협회가 창립되었고, 1899년에는 제1회 전 영국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었다. 이후 유럽 각국은 물론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던 동남아시아 국가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영국 배드민턴 협회의 창립에 이어 캐나다(1921)·뉴질랜드(1927)·덴마크(1930)·네덜란드(1931)·프랑스
(1934)·미국(1937)·일본(1946) 등에서도 협회가 창설되었다. 1934년 런던에서 9개국 대표가 모여 국제
배드민턴연맹을 결성하였고, 1939년에는 경기규칙을 제정하였다. 그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침체되었다가
1945년 전쟁이 끝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1949년 국제 배드민턴 연맹의 초대 회장직을 맡은 G.A.토머스경이
기증한 높이 70cm의 순은제(純銀製) 컵을 쟁탈하는 남자 국제선수권대회가 3년마다 열리며, 여자경기로는
1956년부터 영국 선수권자인 H.S.유버부인이 기증한 높이 약 50cm의 순은제 컵을 쟁탈하는 국제대회가
토머스컵 대회와 마찬가지로 3년마다 1번씩 열리고 있다. 또 1952년에 시작된 덴마크 오픈 배드민턴 대회와
1955년부터 스웨덴 오픈 배드민턴 선수권대회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아시아 경기대회에서는 1958년의 제3회 도쿄[東京]대회 때 오픈 종목으로 열린 후, 1962년 제4회
자카르타대회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 실시되었다. 한편, 1978년 2월 25일 홍콩에서 세계
배드민턴연맹(WBF)이 창설되었는데, 여기에 연맹한 국가는 한국·중국·북한을 비롯하여 27개국에 이른다.
또 아시아 국제 배드민턴 대회로서 1980년부터 타이완 오픈 배드민턴 선수권대회와 1980년부터
제1회 일본 오픈배드민턴 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다. 그후 IBF와 WBF간의 논쟁을 일원화하기 위한
노력 끝에 1981년 IBF로 통합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로써 연맹에 가입한 나라는 70여 개국에 이른다.
*현재는 --> 국제배드민턴연맹 (IBF) http://www.internationalbadminton.org
1. 한국 배드민턴의 역사
1945년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기독교청년회)를 통해서 한국에 들어왔으며,
초창기에는 비닐로 만든 셔틀콕을 사용하는 등 레크리에이션 성격의 운동으로 인식되어 활발히
전개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6·25전쟁 후 깃털로 된 셔틀콕이 나왔으며, 동양인에게 적합한 운동이라는
평가를 받아 점차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1957년 11월 15일 이종구 등 34명의 창립 발기인이 모여 협회의 정간과 경기규정을 제정하면서
KBA(Korea Badminton Association:대한배드민턴협회)가 정식으로 창립되면서 널리 보급되어,
그해 12월 5일 숙명여자고등학교 체육관에서 강습회를 겸한 창립기념 남녀배드민턴대회를 가졌다.
1959년에는 ABF(Asia Badminton Federation:아시아배드민턴연맹)에 가입하였고, 1961년 10월
15일 제42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시범경기를 가졌고, 이듬해 1월 25일 대한체육회의 정식 산하단체로
승인되었으며, 7월에는 IBF(International Badminton Federation:국제배드민턴연맹)에 정식으로
가입하였다. 1963년 10월 대구에서 열린 제43회 전국체육대회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62년 11월 제5회 아시아경기대회에 남녀 선수 각각 2명이 참가하여 여자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70년 12월 제6회 방콕(Bankok) 아시아경기대회에 여자선수 4명이 참가하여 3위에
입상하였고, 이듬해 8월에는 자카르타(Jakarta)에서 열린 제3회 ABC 선수권대회에서 여자단식
준우승과 복식 3위를 기록하였다.
한국의 배드민턴은 1970년대까지 국제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나타내지는 못했으나,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세계무대에서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1981년 1∼3월 사이에 타이완(홍콩)을
시작으로 일본·스웨덴·영국에서 열린 오픈 배드민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황선애가 4관왕을 차지한 것을
비롯하여, 남자부 복식경기에서도 1982년 3월 덴마크 오픈 배드민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은구·박주봉
조가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뒤 아시아경기대회·세계선수권대회·덴마크오픈선수권대회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특히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경기대회 때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어 황혜영이 여자단식에서 우승하였으며,
여자복식·혼합복식에서 우승, 남자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1989년 5월 제6회 세계개인선수권대회에서는
혼합복식에서 박주봉·정명희 조가 1위를 하고, 여자복식에서도 정명희·황혜영 조가 2위를 획득하였다.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Barcelona)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남자복식의
박주봉·김문수 조와 여자복식 황혜영·정소영 조가 금메달을, 여자단식의 방수현이 은메달을 따냈다. 1996년
제26회 애틀랜타(Atlanta) 올림픽경기대회에서 방수현이 여자단식에서 금메달, 여자복식에서 은메달,
혼합복식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제27회 시드니(Sydney)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남자복식에서 이동수·유용원 조와 남자단식에서 김인섭이
은메달을 거두었고, 남자복식 김동문·하태권 조가 동메달을 따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