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역사·전통 전수해야 ‘감동’
프로그램 제작 인력 양성 전무
정보부재로 브랜드↑기회 날려
지난 7월 17일부터 24일까지 해남 미황사(주지 금강)에서는 ‘외국인을 위한 참선 집중수행’이 열렸다. 행사에 참가한 10여 명의 외국인들은 부산 안국선원장 수불스님, 서울 상도선원장 미산스님, 미국 햄프셔대 비교종교학과 교수 혜민스님의 지도와 통역을 통해 한국불교의 정수인 간화선에 도전했다. 이들은 식사시간과 매일 아침 수불스님에게 전날 공부한 것을 점검 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생활했다. 미황사 홈페이지를 보고 발품을 판 이들은 몇 십 년 넘게 절집을 들락거린 불자들도 만나기 힘든 스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지난해 템플스테이 지정 사찰 중 참가자 순위 5위(4,892명 참가)를 기록하는 등 템플스테이 사찰로 자리매김한 해남 미황사. 이 곳의 성공요인을 묻는 기자의 물음에 주지 금강스님은 의외의 해답을 제시했다.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남들이 좋다고 무조건 따라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죠. 스님과 사찰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미황사에서는 △단순 관광객 △템플스테이 참가자 △집중 선수행 참가자 등 3단계로 사찰 방문자를 분류한다. 관광객들은 ‘사찰 역사 및 불교예절’ 등 가장 기본적인 안내를 받는다. 템플스테이도 사중 일상을 접목했다. 새벽 4시 새벽예불을 시작으로 △울력 △걷기 명상 △자유 수행(참선·다도·산행·독서) △다담(스님과의 대화) 등이 이뤄진다. 이번 외국인 집중수행처럼 전문화된 수행을 필요로 하는 대중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별도로 마련한다. 한마디로 ‘차별 및 선택’을 통한 대중 관리를 하는 것이다.
“다른 사찰에 비해 템플 참가자들을 방임(?)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금강스님은 “ 일상에 찌든 현대인들이 왜 절을 찾겠는가? 잠시라도 삶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템플스테이는 절 홍보 프로그램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2004년 템플스테이 지정 후 ‘사찰음식 체험’을 통해 템플스테이를 전개하고 있는 평택 수도사는 이른 바 ‘특화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례다.
한국전통사찰음식연구소 소장인 주지 적문스님과 함께 대중들은 매주 일요일 일상에서 맛 볼 수 없었던 사찰음식을 만들어 점심공양을 한다. 수도사에서는 매 계절별로 주제를 달리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사찰에서 장작을 패 땔감을 마련해 가마솥에 밥을 짓는 상상만 해도 배가 부르다. 수도사에서는 지난 6월 16일부터 17일까지 ‘일본 NHK 요리사와 함께하는 템플스테이’를 전개해 큰 호응을 얻었다.
비록 사찰 고유 특성을 살려 성공적인 템플스테이 사업을 전개하는 사찰들이 증가추세에 있지만 사업 전개 8년차를 맞은 템플스테이가 내실을 기하기 위해서는 각 사찰이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템플스테이를 주관하고 있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 따르면 현재 전국 109개 템플스테이 지정사찰들은 △휴식형 △불교문화체험형 △생태체험형 △전통문화 체험 △수행형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올 여름 휴가철을 맞아 전국 43개 사찰에서 진행되는 ‘하계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들도 위에서 언급한 프로그램들과 함께 ‘가족·건강·문화·아동’ 등 다양한 내용의 템플스테이가 펼쳐진다.
외형적으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여겨지지만 현장 온도는 사뭇 달랐다. 프로그램 전개와 관련 고운사의 한 관계자는 “자연과 사찰을 경험하고자 하는 대중들에게 프로그램을 강요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기본적인 불교적 체험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마곡사 관계자도 “도시에서 대규모 공연에 익숙해져 있는 대중들에게 사찰에서 대단한 것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참선, 예불, 다도 등 평소 사중에서 행해지는 일상 속에서 불교문화를 체험하며 마음의 평온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 템플스테이 사찰로 지정된 금강정사 관계자는 “처음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면서 욕심을 냈지만 행사가 끝나고 사찰을 떠나는 대중들을 보면서 ‘하나라도 비우고 가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도 좋지만 템플스테이의 취지에 맞도록 대중들을 안내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장에서는 프로그램 활성화를 위해 스님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했다. 동화사 관계자는 “비록 템플스테이를 담당하는 스님이 있지만 해가 지날수록 참가자들의 지적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며 “법랍 높은 큰 스님과의 만남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대중들의 기대심리도 채워줄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인력부족 등으로 인한 현실적 문제로 프로그램 개발 및 사업 추진에 애를 먹고 있는 각 사찰 관계자들을 위한 연수교육 강화도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사업단에서는 매년 상·하반기로 나눠 운영사찰 스님 및 실무자 교육을 전개하고 있다. 연수교육에서는 △문화사업단 사업 추진 현황 △관련 전문가 초청 강연 등을 통한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연수 교육 내용 중에는 각 사찰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과 관련한 내용은 진행되고 있지 않다.
사업단 관계자는 “연수교육 중 프로그램과 관련한 내용은 진행되고 있지 않다”며 “사업단에 컨설팅 팀이 구축됐기 때문에 프로그램과 관련한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문화사업단이 단순히 정부지원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인가?”라며 각 사찰과 연계한 특화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사찰 관계자는 “솔직히 템플 전문 인력 중에 발우공양 등 불교 기본지식이 모자라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문화사업단이 체계화된 연수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1년에 외국인이 10명도 오지 않는 사찰에 외국인 안내 팜플렛을 몇 백 권 씩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외국인 참여 데이터가 분명히 있을텐데 답답하다. 효율적인 예산관리가 절실하다”고 촉구했다.
템플스테이 경쟁력 강화도 ‘발등의 불’이다. 올 초 봉은사에서는 11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 기간 중 봉은사에서 ‘영부인 만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국회의원까지 가세, 준비위원회 홍보기획단 프리젠테이션(PT)일정까지 잡혔지만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 문제로 인해 프로젝트는 무산됐다.
봉은사의 한 관계자는 “이 프로젝트가 성사됐으면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을 텐데 아쉽다”며 “정치적 문제를 떠나 종단과 문화사업단이 템플스테이 경쟁력 제고를 위한 행보를 해야 한다. 대형 국제행사와 관련한 정보 취득 및 사업 추진 능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김영국 前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 정부가 新국가발전 패러다임으로 추진하고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 사업에 가장 적합한 사업이 템플스테이라고 판단, 사찰 주위에 ‘에코 빌리지’(Echo Villige) 조성을 추진하려 했다”며 “청와대까지 보고가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지만 기독교 반발로 사업추진이 어렵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수도권 대형사찰 등에서 템플스테이 관련 프로그램 개발을 관장했던 한 스님은 “종단이나 사찰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인력이 부실한 것이 문제”라며 “사찰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프로그램화 될 수 있는데 이를 간과하고 밖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스님은 “프로그램 개발이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제작방법만 알면 참 쉬운 일”이라며 “스님 및 관련 인력의 이동이 잦은 현실을 고려해 문화사업단에서 ‘프로그램 제작론’ 교육 등을 개설해 인력 이동과 관계없이 템플스테이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템플스테이 관계자는 “사찰 소임을 마친 후 템플스테이와 관련된 프로그램과 인력을 빼가는 일부 스님들도 문제”라며 “이대로 가다간 몇 몇 스님들과 사찰들에 의존하는 템플스테이가 될 수 있다. 스님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정보교류를 해야 한다. 문화사업단에서 개별사찰들의 정보를 교류할 수 있도록 관련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치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