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농구화
정 의 윤
명을 다한 앵두꽃이 비탈진 골목을 꽃길로 만들었다. ‘이제 오는구나. 배고프제? 어서 들어오너라. 밥 먹자’라며, 왁자지껄했을 마당이 텅 비어 적막하다. 집 모퉁이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릴 듯한데도 고요만 깊어진다. 집배원이 돌멩이로 눌러놓은 전기요금 고지서가 꽃가루를 노랗게 뒤집어쓴 채 빈집임을 확인해 준다. 꽃향기는 그윽한데 마음은 황량하다.
하릴없이 집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경운기 바퀴가 부산하게 굴러다니던 마당에는 시멘트 틈새로 시퍼런 쑥들이 들어 앉았다. 마구간 앞 처마 밑에는 지겟다리 사이로 씀바귀가 비집고 나와 노란 꽃을 피웠다. 지게의 자리를 빼앗을 기세다. 부엌 뒤 장독대에도 하얀 개망초가 간장독과 키를 재고 있다.
뒤꼍을 둘러보고 헛간도 살펴본다. 눈길 닿는 곳마다 아버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새벽마다 지고 다니던 똥장군도 예전의 자리에 그대로 있다. 괜스레 한 번 흔들어 보다가 뚜껑에 고인 빗물 세례만 받았다. 무연히 떠돌던 눈길이 서까래 아래에서 멈추었다. 무언가 신문지에 싸여 새끼줄에 묶인 채 시렁 사이에 끼어 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신문지가 바래 글씨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무엇일까? 궁금증이 일자 도둑질을 하는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렸다. 조심스레 끌어내려 새끼줄을 풀자 낡은 신문지는 이내 바스러졌다. 혹여 바람이라도 들세라 꽁꽁 싸여 있던 그것은 오래된, 아주 오래된 아버지의 낡은 농구화였다. 국방색이었던 신발의 색깔은 회색으로 변했고 헝겊은 손끝만 닿아도 재가 되어 삭아 내릴 듯했다. 기운 데를 다시 천으로 덧대어 기운 신은 성한 곳은 한 군데도 보이지 않은 누더기였다.
아버지는 나무를 하러 가거나, 쟁기질할 때는 꼭 농구화를 신었다. 엄마는 그 신발이 아버지가 군에서 제대할 때 가져 왔다고 했다. 겨울에는 화력 좋은 소나무나 참나무로 장작을 마련해 읍내에 내다 팔았다. 읍내 사람들은 아버지를 ‘나무장사’라 불렀다. 마당에는 늘 아버지의 키보다 높게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장작더미가 쌓여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산림감시원의 눈을 피해 가면서 하루에 두 번씩 벌목한 통나무를 지게 가득 지고 왔다. 오전에 나무 한 짐을 내려놓고, 점심 후 잠시 쉬는 시간이면 양지바른 툇마루에 앉아 농구화를 손질했다. 자투리 가죽이나 두꺼운 헝겊을 오려 덧대고, 홈이 파인 우산 살을 갈아 만든 송곳으로 신발에 구멍을 뚫었다. 조심스레 바늘에 실을 꿰어 의식을 치르듯 한 땀 한 땀 꿰매는 일에 몰두했다.
그 진지한 작업의 구경꾼은 늘 나였다. 생고구마 하나를 깎아 들고 아버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오른손으로만 바늘을 잡는 엄마와는 달리 양손으로, 그것도 송곳 사이로 바늘을 관통시키는 기술은 신기했다. 아버지는 호기심 어린 내 눈빛과 마주치면 설명 대신에 빙그레 웃어주었다. 꽃무늬가 고운 나의 코고무신과 누덕누덕 기워지는 아버지의 농구화를 번갈아 내려다보며 아작아작 고구마를 갉아먹었다.
신발을 다 꿰매고 나면 앞뒤로 꼼꼼히 살펴본 후 아버지는 흡족한 미소로 심부름을 시켰다. “담배통 가져오너라”. 안방 윗목에는 작은 나무상자로 만든 담배통이 있다. 두 칸으로 나누어진 상자 한쪽에는 신문지를 차곡차곡 네모나게 접어서 잘라 놓고, 다른 한쪽에는 깡통에 풍년초를 담아 놓았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께 담배통을 갖다 드렸다.
아버지는 신문지에 풍년초를 싸서 둥근 뿔 모양으로 말아, 침을 묻혀 붙이고 라이터를 켰다. 여유 있는 모습으로 삐딱하게 모자를 눌러 쓰고, 방금 꿰맨 농구화의 끈을 조였다. 지게 멜빵을 한쪽 어깨에만 걸치고, 휘파람 소리와 함께 길게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며 사립문을 나섰다. 배웅을 마친 나는 쪼르르 안방으로 들어가 아랫목 이불 속에 손을 묻었다.
봄, 가을이 여러 번 바뀌었다. 큰언니가 대구에 있는 방직공장에 취직 했다. 첫 월급을 탔다며 소포 꾸러미가 배달되었다. 그 보따리 속에 자주색 안전화도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상기된 표정으로 그것을 댓돌 위에 올려놓고 보고 또 보고 쓰다듬었다. 그즈음부터 아버지의 신발 꿰매는 작업도 멈춘듯했다.
아버지는 왜 누더기가 된 농구화를 버리지 못하고 시렁 위에 보관했을까? 당신의 고단한 삶을 떠받쳐 주었을 그 신발이, 비록 형편은 어려웠어도 마음은 행복했던 젊은 시절을 간직하고 싶었던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랜 세월 뒤에 누군가 낡은 신발을 발견하고 아버지를 추억해 주기를 바랐을까?
가만히 눈을 감으니 어제인 듯 그 시절이 그려졌다. 울컥, 목젖이 아려오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당신의 농구화를 정성스레 다시 포장했다. 턱밑에 앉아 지켜보았던, 신발을 꿰맬 때 진지하던 아버지의 모습과 침을 발라 말아 피우던 풍년초의 기억도 같이 담아 시렁 위에 얹었다. 붙들어 매어 놓고 싶은 아스라한 세월과 영원히 잊히지 않을 사랑과 그리움도 함께 넣었다.
아버지의 입김이었을까? 골목 어귀에서 흩날리던 앵두 꽃잎 한 장이 실바람을 타고 시렁 위로 올라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