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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7:13-20)
전체적 설명
♠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비유하셨는데 좁은 문 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경쟁이 치열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설교 프리노트
13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 좁은 문에 대해서 먼저 설명하시지 않고 넓은 문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넓은 문은 ‘멸 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 하셨다. 그렇다면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되는 것이다.
♠ 예수를 믿는 것은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것을 다 가진 채로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맨 손으로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 예수님은 이 세상 자체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즉 예수님의 제자들 이 세상의 모든 성공과 특권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를 믿어도 된다고 가르친다 면 그들은 사람들을 넓은 문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다.
14절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인데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과는 반대로 협소할 뿐 아니라 찾는 이도 적다고 하셨다.
15절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 ‘거짓 선지자’는 신약 시대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종들을 말한다.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이 ‘양의 옷을 입은 이리’라고 말씀하신다.
♠ 거짓 선지자들은 훌륭한 하나님의 종인 것 같은 외모를 하고 있지만 중심에는 탐욕이 나 야망이 죽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종들이다. 이들은 결국 양들을 희생시켜서 자기 욕망이나 야망을 채우려고 할 것이다.
16절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 말로는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돈이나 요구하고 음탕한 짓을 한다면 그는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 것이다.
17절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나무 자체가 변하고 있다. 즉 우리는 겉 으로 보기에는 가시나무나 엉겅퀴같이 보일지 몰라도 속에는 좋은 나무의 진액이 흐르 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왜 구원의 문은 넓은 문이 아니고 좁은 문이며, 왜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누리는 특권이나 기득권을 버려야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거듭날 수가 있다. 결국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 것은 여전히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2. 거짓 선지자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왜 위험한가?
겉은 양의 모습이지만 속에는 여전히 탐욕적인 이리의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양들을 이 용하고 잡아먹고 노략질하기 때문이다.
3.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겉모습으로는 알 수 없고 그 나무에 맺히는 열매로 판단할 수 있다.
성경 강해
♠ 사람들은 누구든지 좀 더 편하고 더 인정받는 생활을 원하기 때문에 결국 좋은 보수에 좋은 자리는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구원받는 것을 ‘좁은 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천국 가는 것이 경쟁이 치열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 우리에게는 예수 믿는 것이 매우 쉬워 보이는데 왜 예수님은 구원받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고 말씀하실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야 바른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많은 사람은 좁은 문과 넓은 문이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 두 문은 사람의 두 가지 삶의 방식을 말 한다. 그러나 오지 좁은 문만이, 즉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에 의한 구원이라는 엄밀하게 정의된 문만 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길이다. 넓은 문은 한 가지 길이 아니라 행위와 자기 의를 내세우는 모든 종교가 여기에 포함된다(참고, 행 4:12). 그러나 그것은 하늘이 아니라 지옥으로 인도 한다. 참 신앙에는 세상에서의 영육간의 고난이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① 하나님 은 세상을 선하게 만드셨으나 인간이 타락하여 온 우주가 죄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며 ② 새 하늘과 새 땅을 도래시키실 때까지 하나님은 잠시 사탄과 성도들 간의 싸움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눅 22:53, 롬 8:18-25). 따라서 성도들의 참 휴식은 오로지 천국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을 살면서 마음의 눈을 아래가 아니라 위로, 위가 아니라 앞으로 두고서 점진적 삶을 살아가야 한다(히 11:14). 우리들에게 있어서 안일한 타협이나 임기 웅변식의 처세술은 결국 우리를 넓은 문 뒤에 있는 멸망으로 인도하고 말 것이다. 신앙에 있어서는 차지도 덥지도 않은 중간 상태가 없듯이 멸망도 축복도 아닌 중간 상태는 없다. 행 4: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 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눅 22:53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 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롬 8:18-25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 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 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 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 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히 11:14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 ‘좁고 길이 협착하여’ 그리스도는 자신을 따르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하셨다(마 10:38, 16:24-25; 요 15:18-19, 16:1-3. 참고, 행 14:22). 구원은 오직 은혜에 따른 것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구원은 진리에 대한 지식, 회개,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순종과 기꺼이 그분의 뜻과 말씀 을 따르는 태도를 요구한다. 마 10:38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리라 마 16:24-25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 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요 15:18-19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 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 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 16:1-3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 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행 14:22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
13-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 은 모두 행복을 위한 좁은 문입니다.
♠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은 좀 더 인정받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것이지만 재난이 터지고 화재가 났을 때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건지기 위한 좁은 문인 것입니다.
♠ 사람들이 하나님을 차는 것은 자기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연약하고 부족하며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습니다.
♠ 구원이 좁은 문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하나의 좁은 문 으로 통과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 모든 인간을 오직 하나의 문으로만 통과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 에서 어떤 형편과 차지에 있든 나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요,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사람들이 기독교를 미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무지막지한 독선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 다.
♠ 누구든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자신을 피상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고 자기 안에 있는 끔직한 죄를 보아야 합니다.
♠ 누구든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성령의 자기 안에 있는 죄덩어리를 보고 하나님의 수 술대에서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 인생의 문제는 내 힘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믿 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나 자신이 죽는 것입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 ‘오호라’ 내부의 극렬한 갈등을 절규하듯 토해낸 말로서 이사야가 자신의 죄를 깨달았을 때 발한 탄식을 상기시킨다(사 6:5). 우리는 여기서 24절과 같은 고뇌를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간주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 같다. 먼저 구원받지 못한 상태라고 말하는 까닭은 ① 초대교회의 희랍 교부들 사이의 일반적인 견해이고 ② ‘죄 아래 팔렸도다’, ‘육신에 속하여’와 같 은 표현들은 성도에 대한 묘사라기보다는 구원받지 못한 자에 대한 묘사로 더 적절하며 ③ 만약 롬 8:1에 나오는 ‘이제’라는 말이 통상적인 뜻을 의미한다면 바울은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대 한 고찰로부터 구원받은 상태에 대한 고찰로 옮겨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④ 바울이 구원받은 경 험을 회고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토론 과정에서 성령과 심지어 그리스도마저 빠져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 후자의 해석에 의하면 구원받은 성도가 성화되어 가는 도 중 곤고한 상태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① 이것은 어거스틴을 비롯한 개 혁 교회 해석자들의 결론이다. ② 혹자는 롬 7:7-13절에서 과거 시상이 사용되고, 14-25절에서 는 현재 시상이 사용된다는 시제의 변화에서 논리의 근거를 구한다. 즉 7-13절이 바울이 회심하 기 이전의 상태이고, 14-25절은 회심 이후의 체험과 관련된다는 말이다. ③ 본서 문맥의 진행 과 정을 세밀히 고찰해 볼 때 바울은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대한 묘사를 이미 넘어서서 성화와 그 과정의 문제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④ 또한 성화란 결코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이 아니라 완성을 끊임없이 이루어 가는 과정이므로, 이 과정에서 자신의 성화 문제로 이런 내적 고뇌에 싸 이는 것은 그리스도인 모두의 경험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14-25절은 죄에 지고 말았다는 절망적 결과가 아니라 실로 죽음에까지 처하는 극한적 투쟁의 고뇌를 보여주는 것으로 결국 이런 고뇌의 목적은 성화를 위한 것이므로 후자의 견해가 결과론적으로 볼 때 타당하다 하겠다. 사 6:5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 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롬 8: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7:7-13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 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 니 계명에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 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는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게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전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롬 7:14-25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 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ㅇ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 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벙ㅂ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 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 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 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곤고한 사람’ 좌절과 비탄 속에서 바울은 자신의 죄에 대해 통곡한다(참고, 시 38:14, 130:1-5). 신자가 자신의 죄성을 깨닫는 정도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 법의 완전함을 분명하게 깨닫는 정도에 정비례한다. 시 38:14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시 130:1-5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 ‘사망의 몸’ 신자의 구속받지 못한 인간성으로, 죽음이 몸에서 활동하는 기지가 된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다소 근처에 살았던 한 부족은 피살자의 시체를 살인자와 함께 묶어 시체의 부패가 서서히 살인자를 감염시키게 하는 방법으로 살인자를 처형했다고 한다(어쩌면 이것은 지금 바울이 마음속에 그리는 이미지일 수도 있음). ◈ ‘건져 내랴’ 이 단어는 ‘위험에서 구해내다’는 의미를 가지며, 부상당한 전우를 전쟁터에서 이 끌어내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악한 육신으로부터 건져지기를 갈망한다(참고, 롬 8:23). 롬 8:23그뿐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
♠ 사도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하나님의 원수요, 죄인의 괴수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죄의 종이었기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 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라고 로마서 7장 24절에서 고백했습니다.
♠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느 정도 가고 난 후에는 안심도 해도 되는 여유 있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를 죽이는 부인의 길을 가야 합니다.
♠ 우리가 신앙의 길을 제대로 걸어가려면 학벌이나 직장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오직 말씀 과 기도로 응답받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 많은 사람들이 찾는 넓은 문은 누구든지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
♠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넓은 길을 달린 사람은 바로 좁은 길로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거짓된 목자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 ‘거짓 선지자들’ 이들은 자신을 양처럼 가장하여 속이는 것이 아니라 참 선지자 행세를 하면서 속인다. 그들은 넓은 문과 넓은 길을 추천한다. 이들의 두 가지 속성은 ① 위장이다 – 진리와 정의 는 그 자체가 공명정대한 것이므로 숨길 필요가 없으나 거짓 선지자는 자신이 비진리이므로 항상 위장하고 나온다. 성도들은 이를 판단할 능력이 필요하다(요일 4:1-3). ② 탐욕이다 – 참 선지자는 이타적인 동기에서 자기를 죽이고 진리를 전하나 거짓 선지자는 이기적 동기에서 저 한 몸을 살리 기 위해 남을 죽인다. 따라서 진리를 전한다 해도 이기적 목적으로 하면 거짓 선지자요, 순수한 동 기에서 전한다 해도 비진리를 선포하면 그 또한 거짓 선지자다. 2,000년 기독사는 이런 거짓 선지 자가 수없이 명말하였음을 보여 준다. 요일 4:1-3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 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 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 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 써 세상에 있느니라 ◈ ‘양의 옷’ 목자의 특징적인 겉옷인 양털로 만든 의복을 가리킬 수도 있다. |
15절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 양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이리입니다. 양들은 이리를 보면 본능적으로 도망을 치게 되어 있습 니다.
♠ 이리가 양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더 위험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양을 전부 잡아먹으 려는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자입니다. 왜냐하면 교인들은 모두 양 떼와 같아서 목자 한 사 람에 의해서 생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충성되고 신실해서 예수님처럼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이고 교회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면 교인들은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 습니다.
♠ 교회가 조금씩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무도 느끼지 못합니다. 즉 배를 묶어 놓았던 줄을 천천히 풀리면서 목표를 향해 떠내려가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 위험을 전 혀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 지금 우리나라의 교회는 전체적으로 성공주의의 늪에 서서히 빠져 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 것이 부흥이고 축복이고 성공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복음을 사람들이 듣기 좋게 바꾸어서 전하는 사람입니다. 분명히 주님을 말하고 십자가를 말 하는데 그 안에 죄에 대한 말씀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사랑이시지요, 그러나 그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지 죄를 계속 지으리고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은 아닙니다.
♠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교회에 옵니까? 그것은 죄를 치료받기 위해서입니다.
3. 바른 열매를 맺는 방법
마 7:16-18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거짓된 교리는 육체를 통제하지 못하므로 거짓 선지자들은 결국 악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참고, 베드로후서 2:12-22. 벧후 2:12-22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제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 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로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 을 저지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 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그들에게 자유를 준 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 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 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리라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
16-18절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 나무는 처음에 씨를 보면 잘 모르지만 나중에 자라서 나무가 되면 분명히 차이가 나고, 그 열 매를 보면 분명하게 구별이 됩니다.
♠ 참으로 혼돈스러운 것이 신앙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의 겉모습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열매부터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무를 먼저 말씀하십ㅂ니 다. 열매가 그 사람의 행위라면 나무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합니다.
♠ 예수님이 오신 것은 사람 그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가시나무를 포도나무로 바꾸고 엉겅퀴를 무화과나무로 바꾸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유교적 가르침과 미신적인 가르침을 받아온 떫은맛을 내는 열매를 맺는 돌감람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조상의 줄기에서 끊어져서 이스라엘의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졌습니다.
♠ 우리는 백 퍼센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우리 안에 성령의 진액이 들어옵니다.
♠ 확실히 이 세상에서는 중심이 변하는 것보다 겉모습이 바뀌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 학교 교육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의 인간성입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의 인간성 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 성령의 의지가 서서히 죄의 세력을 굴복시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눈이 무서 워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정말 죄가 싫어서 죄를 멀리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열매입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진액을 받을 때 어느 순간 현실적으로도 하나님의 복이 나타납니다.
♠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정말 변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생기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마시면서 듣습니다.
♠ 이 척박한 세상에서 성공한 것이 진짜 성공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게 하고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진짜 성공하는 것입니다.
♠ 사람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성공해도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정신병이나 다른 재앙으로 모 든 복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면 온 세상 이 아름답게 변하는데 이것이 진짜 성공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