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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J. 바르비에의 <앙드레 세니에> 및
폴 디모프의 <앙드레 세니에의 생애와 작품>
대본 루이지 일리카
초연 1896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배경 프랑스 혁명 시절 파리(2, 3, 4막)와 그 근교(1막)
<2006년 1월 볼로냐 시립극장 / 123분 / 한글자막>
볼로냐 시립극장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카를로 리치 지휘 / 잔카를로 델 모나코 연출
안드레아 세니에.....시인.........................................................호세 쿠라(테너)
마달레나 쿠와니.....쿠와니 백작의 딸........................................마리아 굴레기나(소프라노)
카를로 제라르........쿠와니 가의 하인. 뒤에 혁명정부 간부가 됨.....카를로 구엘피(바리톤)
쿠와니 백작부인.....마달레나의 어머니......................................신치아 데 몰라(메조소프라노)
베르시..................마달레나의 흑인 하녀..................................지아신타 니코트라(메조소프라노)
밀정.....................제라르의 부하............................................피에르 레페부레(테너)
루시에..................셰니에의 친구............................................카를로 시그니(베이스)
슈미트..................생 라자르 감옥의 간수.................................아트페 지얀(베이스)
마델롱..................눈 먼 노파.................................................안니에 바우릴레(메조소프라노)
마티유..................제라르의 부하............................................마리오 벨라노바(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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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내지 해설 / 박종호>
사랑의 끝이 아닌 승리를 표현한 잔카를로 델 모나코
<안드레아 세니에>의 구성은 치밀하고 전개는 급박하다. 전 4막이 불과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끝난다는 것은 대단히 기민한 진행이다. 그런 만큼 연출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안드레아 세니에> 공연들은 새로운 것은 많지 않았으며, 원작과 음악에 중점을 둔 공연이 대부분이었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안나 토모와 신토우의 코벤트 가든 공연 실황이나 호세 카레라스와 에바 마르톤의 라 스칼라 극장 실황 같은 것들은 일류 가수들의 명연임에도 불구하고, 세련된 오페라 감상자들의 눈을 만족시켜 줄 수는 없었다.
이에 지금까지 영상물들의 결점을 보완하려는 듯이 등장한 것이 볼로냐 극장 실황이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만족시키는 수작이다. 볼로냐 시립 오페라 극장은 최근 놀라운 신장세로서 기존 이탈리아의 유명 극장들, 즉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 피렌체의 시립 극장 등의 아성을 다 물리친 이탈리아의 정상급 극장이다. 이 극장의 연주력에 견줄만한 곳은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정도다. 볼로냐 극장을 오늘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데에는 오랫동안 이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있었던 두 사람의 공헌이 있었으니, 바로 리카르도 샤이와 다니엘레 가티다. 둘은 오페라 뿐만 아니라 독일 낭만 교향곡에 있어서도 세계 정상이니, 그들의 실력이 볼로냐 극장의 탄탄한 수준을 만든 것이다.
매년 벌어지는 볼로냐 극장의 일본 공연에서도 가장 인기 높았던 것이 <안드레아 세니에>로서 명 연출가 잔카를로 델 모나코의 작품이다. 그의 무대는 사실적이고 고전적으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단순한 액자식 무대를 벗어나서 자신만의 서사적인 스토리를 넣는 것이 특징이다. <안드레아 세니에>에서도 델 모나코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디자인 속에서도 자신만의 스토리를 보여준다. 즉 제1막의 희화화된 주변 인물들의 분장이나 제4막의 감옥의 거대한 창살 같은 것들이다. 피날레에 두 주인공 남녀가 단두대로 향햐는 것이 아니라, 창살을 들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죽음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가사를 시각화한 감동적인 장면이다.
이 공연에는 21세기 오페라 계를 대변할 최고 성악가들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 역할에서 현역 최고의 기량을 가진 자들이니, 마달레나 역에 소프라노 마리아 굴레기나, 세니에 역에 테너 호세 쿠라, 그리고 카를로 역에 바리톤 카를로 구엘피 등이 그들이다. 지휘 역시 이탈리아 오페라의 극적인 해석에 재능을 보이는 카를로 리치가 맡았다.
=== 작품 해설 === <내지 해설 / 박종호>
움베르토 조르다노(1867~1948) <안드레아 세니에>
연인과 함께 단두대로 향하는 영원을 향한 사랑
19세기 후반의 많은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들이 푸치니의 그늘을 벗어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푸치니의 매력과 베르디의 전통 그리고 당시에 이태리를 풍미하던 베리스모의 정신을 모두 한 작품에 집약하여, 실로 단 시간에 관객들을 흥분과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게 하는 명작이 있다.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뻬어난 오페라 <안드레아 세니에>는 19세기 후반 이태리 오페라들 가운데 가장 뜨거운 열풍을 가진 명작이다. 이 오페라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혁명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그때에 고뇌하는 다양한 지식인들의 심리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인데, 단 100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시간에 전 4막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를 정도로 드라마가 극적이고 긴박하며 또한 음악은 실로 아름답다.
당시는 베리스모 오페라가 온 이탈리아 반도를 휩쓸고 있을 때였는데, <안드레아 세니에>는 베리스모의 작풍을 유지하면서도 전통적인 이탈리아 오페라의 극적인 아리아의 전통을 이을 만한 뛰어난 아리아들도 많이 들어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남자 주인공의 오페라이다. 타이틀 롤인 안드레아 세니에는 지극히 매력적인 남자로서, 외교관이자 시인이었으며 32세의 꽃다운 나이에 프랑스 대혁명의 와중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실존인물이다.
이 오페라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가 세니에의 짧은 인생과 그의 두 편의 시(詩)가 이 드라마 안에 모두 들어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실제로 쿠와니 가문과 교류를 하고 있었는데, 그가 그 저택에서 <즉흥시(卽興詩)>를 읊는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시 역시 그가 실제 생 라자르 감옥에서 콩코드 광장의 단두대로 호송되기 몇 시간 전에 썼던 것으로 애를 끓는 비탄을 그렸다고 해서 흔히 <단장시(斷腸詩)>로 번역되는데, 이 오페라에서 극적인 멜로디로 불려진다. 이 두 가지 시가 가장 중요한 아리아들이다.
하지만 그외에도 그가 부르는 짧은 아리아 <나는 군인이었소>에서는 자신이 사관학교 출신의 무관(武官)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으며, 아리오소 <아직 사랑이라고 할 순 없지만>에서는 당시의 공포정치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던 젊은 시인의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쿠와니 가의 등장, 카페 오토와 생 라자르 감옥 등 당시의 실제 배경이 된 장소들이 나오며, 그리고 로베스피에르 등 당시 실제로 세니에와 관계가 있던 인물들이 등장하여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오페라의 리얼리티를 살려주고 있다.
또한 이 오페라에서 세니에 다음으로 중요한 두 인물 역시 이 명작의 매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그들은 마달레나 쿠와니(소프라노)와 카를로 제라르(바리톤)이다. 두 사람은 세니에와는 달리 모두 작가가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들이지만, 참으로 매력적이며 또한 인간적인 공감을 일으키는 캐릭터들이다.
이 두 사람 역시 아주 인기가 좋은 명 아리아들을 하나씩 부르게 된다. 마달레나가 부르는 소프라노 아리아 <돌아가신 어머니>는 어머니를 잃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한 젊은 여인이 부르는 슬픈 노래이다. 1993년 미국의 배우 톰 행크스가 에이즈로 죽어가는 변호사를 연기한 영화 <필라델피아>에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이 아리아를 삽입하여 싱글 앨범이 오페라 아리아로서는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녀가 부르는 이 곡은 정말로 가슴을 찌르는데, 실제 칼라스는 1955년 라 스칼라 극장에서만 단 한 시즌 이 역을 불렀을 뿐이다. 또 하나의 명곡인 제라르의 <조국의 적>은 여자를 가지고 싶은 자신의 욕정 때문에 연적을 기소하는 국민적 영웅의 내면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잘 표현해낸 명 바리톤 아리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오페라 최고의 백미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그와 함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슬프고도 용감한 두 연인이 거의 20여분에 걸쳐서 마지막 목숨을 다하여 부르는 피날레의 2중창일 것이다. 이렇게 세 사람의 주역에 훌륭한 가수들만 만날 수 있다면, <안드레아 세니에>만큼 단 시간에 손에는 땀을 가슴에는 고동을 울리게 하는 오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이 오페라는 많은 점에서 4년 후에 나오는 푸치니의 <토스카>와 비견된다. 사랑하는 두 젊은 남녀 그리고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한 사람의 권력자의 구도이다.
젊은 남자인 테너(그들은 하나는 시인 또 하나는 화가로서 둘 다 예술가들이다)는 권력자인 남성 저음 가수에 의해 구금되고, 그는 소프라노에게 몸을 요구한다. 즉 <안드레아 세니에>의 3막과 4막은 각각 <토스카>의 2막과 3막을 연상케 한다. 심지어 제라르의 위협에 마달레나가 체념을 하고 부르는 아리아 <돌아가신 어머니>가 불리어지는 대목도 <토스카>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와 같고, 오페라 중 소프라노에게 가장 중요한 곡이라는 점도 동일하다. 마지막 장면이 감옥인 점도 같은데, 사형을 앞둔 테너가 세상과의 이별을 노래하는 <5월의 아름다운 어느 날처럼>은 당연히 <토스카>의 <별은 빛나건만>을 연상시킨다.
다만 두 오페라의 마무리는 아주 다르다. <토스카>에서 소프라노가 악역을 죽이지만 테너를 살리는 데는 실패하고 말아 자살하는데 반해서, 바리톤을 감복시켜서 테너를 구하려고 노력하는 <안드레아 세니에>의 장면은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가? 마달레나는 토스카처럼 얼떨결에 몸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사랑을 찬미하면서 사랑의 영원함을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다. 푸치니의 <토스카>가 훨씬 잔인하고 사실적이라면 <안드레아 세니에>는 감성적이고 아름답다. 그래서 같은 베리스모 작곡가라 하여도 호사가(好事家)들은 푸치니를 격정파(激情派), 조르다노를 성정파(性情派)라고 불렀다. 마치 카바라도시의 그림과 세니에의 시(詩)와의 차이처럼...
<안드레아 세니에>는 앞서 말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테너의 오페라'이다. 소프라노와 바리톤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오직 테너가 완성된 이후의 이야기일 뿐이다. 역대로 이 오페라는 위대한 테너들이 가장 공들여 불렀던 몇 개의 오페라에 속하는 작품이다.
초연 당시의 테너 주세페 보르가티가 안드레아 세니에 역을 모범적으로 해석한 이래 과거의 명인들은 엔리코 카루소나 베니아미노 질리 등이 그를 이었다. 그후 역대 이태리의 명 테너들은 대부분 명 세니에였다. 특히 마리오 델 모나코와 프랑코 코렐리는 열정적이고 스타일 넘치는 세니에로 이 역의 정형을 만들었다. 그후 쓰리 테너로 불리는 3인 즉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그리고 호세 카레라스가 모두 이 역에 깊은 애착을 보여 모두들 명연과 명반을 남겼다.
=== 역사적 배경 === <내지 해설 / 박종호>
안드레아 세니에(1762~1794)는 지금의 이스탄불인 터키의 콘스탄티노플에서 프랑스 외교관을 아버지로 하여 태어났다. 3살 때에 부모를 따라 파리로 돌아왔지만, 점차 그리스 고전문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나중에 스스로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다시 찾았다. 그러니 그가 시인이 된 것과 그의 출생지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성인이 되자 사관학교에 입학하였고 졸업후 외교관 활동을 하였다. 프랑스 혁명 때에는 그는 런던 주재 프랑스 대사관에 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혁명의 와중이던 1791년에 귀국하였다.
파리에 온 그는 오페라 안에서처럼 혁명 정신을 외쳐서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깨우쳤고, 신문에 많은 칼럼을 게재하여 프랑스 혁명의 정신과 방향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혁명이 성공한 이후에 그는 공화제를 반대하고 입헌군주제를 옹호하며 로베스피에르 등을 공격하여, 집권세력과는 정치적 신념이 갈라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자코뱅 당에 의해 체포되어 생 라자르 감옥에 투옥되었으며,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 45시간 후에 로베스피에르 역시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문학에서 세니에는 아주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는 생전에 한 권의 시집(詩集)도 내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은 시인으로 기록된다. 즉 그는 당시 산문만이 난무하던 프랑스 문단에 시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였으며, 스스로 '얌브(imabes)'라고 하는 풍자시(諷刺詩)의 형태를 개척하였다.
그는 생전에 단 두 편의 시만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미발표 시들은 그가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거의 30여년이 흘러서 유가족들에 의해서 시집으로 출판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감성보다는 이성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런 시점에 홀로이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자시를 써서 유일하게 프랑스 운문의 명맥을 유지한 세니에의 업적은 지금도 당시 프랑스 문학을 이야기하는 데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이진경 글>
안드레아 셰니에
움베르토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는 베리스모 작풍을 유지하면서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의 전통을 잇고 있어 작품 곳곳에서 아름답고 뛰어난 아리아를 접할 수 있는 오페라이다. 프랑스 혁명에 연루된 앙드레 셰니에에 대한 이야기로 전체적으로 극적이고 긴박한 분위기가 마지막까지 이어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매력 있는 작품이다.
리얼리티를 위한 시인의 시 2편
〈안드레아 셰니에〉는 프랑스의 혁명가이자 시인 앙드레 셰니에(André Chénier)의 짧은 생애를 담아내고 있다. 앙드레 셰니에는 외교관이자 시인으로 프랑스 대혁명 중에 단두대로 32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실존 인물인 셰니에는 혁명가로서 유명하지만, 프랑스 문학에서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인으로 기억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생애에는 단 2편의 시만이 출판되었지만, 그는 프랑스 문학계에서 운문을 끝까지 이어나간 시인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오페라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셰니에의 시 2편을 직접적으로 오페라에 썼다. 이 시는 모두 유명한 아리아로 알려졌는데, 하나는 ‘즉흥시’로 알려진 〈어느 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Un di all'azzurro spazio)와 다른 하나는 〈단장시〉(斷腸詩)이다. 즉흥시는 셰니에가 실제로 교류가 있었던 코와니 가문의 저택에서 시를 읊는 장면에서 사용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얼리티를 살리는 것은 〈단장시〉이다. 실제로 셰니에가 생 라자르 감옥에서 콩코드 광장의 단두대로 호송되기 몇 시간 전에 썼던 것이다. 오페라에서도 주인공 안드레아 세니에가(테너) 생 라자르 감옥에서 〈단장시〉를 노래한다. 이렇게 실제 셰니에의 시를 오페라의 대본에 녹여 이야기의 리얼리티를 살렸을 뿐만 아니라, 코와니가, 카페 오토와 생 라자르 감옥 등의 실제 배경과 장소들, 로베스피에르 등의 실존 인물을 등장시키며 역사성을 뒷받침하면서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살리고 있다.
한 혁명가의 불멸의 사랑
코와니 백작의 성은 파티 준비로 한창이다. 하인 카를로 제라르는 준비를 하지 않고 귀족들의 파티에 대해 비판한다. 코와니의 딸 마달레나가 들어오자, 그녀를 흠모해온 제라르가 감탄한다. 손님들이 도착하고, 이들 중 파리에서 온 수도승이 왕궁의 소식을 전한다. 두려운 가운데 사람들은 전원극을 감상한다. 전원극이 끝나자 백작부인이 셰니에에게 시를 요청하지만 그는 사양한다. 마달레나는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셰니에에게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올거라고 내기를 한다. 마달레나 셰니에에게 시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에 셰니에가 시는 사랑과 비슷한 것이라고 답하자 마달레나와 그녀의 친구들은 웃는다. 자신이 놀림감이 된 것에 화가 난 셰니에는 즉석에서 〈즉흥시〉를 노래한다. 셰니에의 시에 제라르가 감동을 받는다. 셰니에의 시에 분위기가 굳어지자 백작부인은 춤을 권한다. 이때 농민들이 살롱에 쳐들어온다. 제라르가 귀족들 앞에서 더 이상 귀족들의 밑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하며 나간다.
혁명이 성공한 후, 카페 오토의 테라스에 셰니에가 앉아 있다. 셰니에는 위험인물로 수배중이다. 그의 친구 루시에가 통행증을 가명으로 만들어 셰니에에게 건네지만, 그는 ‘희망’이라는 여성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제라르는 밀정에게 자신이 잊지 못하는 여성 마달레나의 인상착의를 알려준다. 마달레나의 하녀 베르시가 셰니에에게 오늘 저녁 ‘희망’이라는 여성이 찾아올 것이라고 알려주는데, 그것을 밀정이 듣는다. 거리가 어두워지고 셰니에에게 마달레나가 나타난다. 셰니에는 과거 즉흥시를 불러주었던 마달레나는 알아본다. 마달레나는 셰니에에게 보호를 청하고 셰니에는 이를 받아들인다. 이때 마달레나가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은 제라르가 나타나 그녀를 데려가려고 한다. 두 사람은 결투를 벌이지만, 상대가 셰니에임을 알게 된 제라르가 통행증을 주면서 마달레나를 부탁한다.
혁명재판소의 재판장에서 제라르는 정열을 다해 웅변하며 사람들을 호소한다. 제라르의 호소에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놓는다. 혁명 행렬이 지나가자 사람들을 이를 구경한다. 제라르는 셰니에를 체포한다면 마달레나를 유인할 수 있다는 계략을 밀정에게 전한다. 이때 신문팔이 소년이 셰니에의 체포를 알린다. 마달레나를 이 기회에 차지하라는 밀정의 부추김에도 제라르는 주저한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셰니에의 기소장을 쓰면서 제라르는 주저하며 양심의 갈등에 빠진다. 셰니에를 구하러 온 마달레나에게 제라르가 자신을 기억하느냐가 묻는다. 제라르는 마달레나를 너무 원해서 그랬다면 자신의 감정을 호소한다. 마달레나는 셰니에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을 가지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폭도들에 의해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와 혁명 이후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제라르는 그녀의 진심에 감동을 받지만 셰니에를 구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사람들 앞에서 셰니에는 당당하게 자신을 변호한다. 그러나 사형이 선고되었다.
감옥 안에서 셰니에는 자신을 찾아온 루시에에게 자신이 쓴 시를 들려준다. 실제 셰니에가 죽기 전에 쓴 〈단장시〉이다. 제라르가 마달레나와 함께 면회를 명령한다. 마달레나는 아이가 달린 어머니 대신 자신이 사형당하겠다고 요청한다. 감옥에서 만난 마달레나와 셰니에는 사랑이 그들이 외치는 마지막 단어가 될 것임을 말한다. 이어 그들은 단두대로 향하는 마차에 오른다.
주요 음악
1막 셰니에의 아리아 ‘어느 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Un dì all'azzuro spazio)
〈즉흥시〉로 유명한 셰니에의 아리아이다. 마달레나와 그녀의 친구들의 내기에 화를 내며 부르는 아리아로 사랑의 정의를 즉흥적으로 표현한 명시다. 실제 셰니에의 시를 사용한 것으로 세상과 백성에게 관심 없이 향락만 일삼는 귀족들을 비난하는 장엄한 아리아이다. 셰니에의 이 시는 제라르에게 큰 감동을 주면서 제라르가 혁명에 참가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시이기도 하다.
3막 제라르의 아리아 ‘조국의 적’(Nemico della patrai)
셰니에의 기소장을 쓰던 제라르는 주저하며 ‘조국의 적’을 되뇌면서 부르는 아리아이다. 베르디 이후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바리톤 아리아 중 명곡으로 꼽히는 노래이다. 대의를 위해 일하던 제라르가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 막달레나에 대한 사랑에 흔들리는 자신의 소인배적인 감정에 자책하는 대목이다. 결국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랑을 선택한 제라르는 셰니에의 기소장을 서기에 넘긴다.
3막 마달레나의 아리아 ‘돌아가신 어머니’(La mamma morta)
혁명으로 어머니를 잃고 고생을 한 여인의 슬픔이 절절히 드러나는 아리아이다. 제라르가 셰니에의 목숨을 담보로 그녀를 대가로 요구하자, 여기에 대한 응답으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아리아는 우울하고 슬픈 시작으로 그녀의 불행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과 사랑이라는 유일한 희망을 노래하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마달레나의 호소력에 감동 받은 제라르는 셰니에를 구하겠다고 결심한다. 1993년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배우 톰 행크스가 연기한 변호사가 죽어가는 장면에서 이 아리아가 삽입되어서 대인기를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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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1년 10월 26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클래식 명곡 명연주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
1789년 7월 14일, 시민군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은 역사상 ‘인류의 삶을 가장 크게 바꿔놓은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신분제도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와 평등사회를 실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지요. 수많은 연극과 오페라가 이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태어났습니다. 귀족계급에 저항하는 평민의 활력과 대혁명의 기운은 이미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1786)에서도 감지할 수 있으며,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 베토벤의 [피델리오]를 비롯해 이 시대와 연관된 걸작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무대작품들을 감동의 크기 순으로 배열한다면 맨 앞에 나설 작품은 단연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가 될 것입니다.
프랑스 대혁명기에 실존했던 프랑스 시인이자 외교관 앙드레 셰니에(1762-1794. 오페라에서는 이탈리아어로 이름을 표기해 ‘안드레아’가 되었습니다)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 작품은 어떤 다른 오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참신하고 획기적인 오페라입니다. 베르디나 푸치니의 여러 오페라들은 역사상의 전쟁이나 정치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주인공들의 러브스토리를 전면에 내세워 해당 역사의 밀도를 희석했지만, [안드레아 셰니에]만은 프랑스 대혁명기의 정치사회적 사건들이 직접적으로 주인공들의 성장과 변화를 이끌어내기 때문이죠. 이 오페라의 1막과 2막 사이에는 5년의 세월이 놓여있습니다. 1막은 대혁명 직전의 봄이지만, 2막은 ‘혁명은 자기가 낳은 자식들을 잡아먹고 있다’라는 말이 유행했던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대(1794년, 파리). 가난과 억압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을 해방시키려는 이상으로 출발한 혁명이 ‘혁명정부와 견해가 다른’ 모든 사람을 단두대로 보내는 시민독재로 변모했던 시기입니다.
혁명과 사랑, 그리고 성장
1막은 1789년 봄, 쿠아니 백작부인의 성에서 시작됩니다. 파티 준비로 다들 분주한 가운데 바리톤 주인공인 하인 제라르는 귀족들의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비난조로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60세 노인인 아버지가 무거운 의자를 나르는 것을 보고 분노한 제라르는 ‘종살이 60년입니다, 아버지 Son sessant'anni, o vecchio’라는 아리아를 부르며 귀족들을 향한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이 파티에서 백작부인의 딸 마달레나에게 조롱당했다고 느낀 셰니에는 사랑을 유희로 아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어느 날 푸른 하늘을 보며 Un di all'azzuro spazio’라는 아리아로 가난한 이들이 소외당하고 죽어가는 사회현실을 강렬하게 비판합니다.
파티 손님들이 다 함께 가보트를 출 때 제라르가 이끄는 가난한 평민들이 들어오고, 화를 내는 백작부인 앞에 하인 제복을 벗어 던진 제라르는 아버지를 모시고 이 집을 떠납니다.
2막은 1794년 6월 파리의 카페 주변 광장. 열정적으로 혁명에 가담했지만 공포정치에 회의를 느끼게 된 셰니에는 마라를 암살한 왕당파 소녀를 옹호하는 시를 썼다가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처형당할 위험이 있으니 빨리 파리를 떠나라고 재촉하는 친구에게 셰니에는 자신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편지를 보내는 여인을 만나고 가겠다고 합니다. 그 여인은 바로 마달레나였습니다.
5년 전 파티에서 셰니에를 만난 뒤 시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머니와 집과 모든 것을 잃고거리를 헤매게 된 마달레나는 더 이상 철없는 처녀가 아니었죠. 삶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끔찍한 고통과 병고 속에서 정신적 성장을 경험한 마달레나는 셰니에의 노선을 지지하고 그를 격려하는 편지를 익명으로 보내왔던 것입니다.
어둠이 내리자 드디어 마달레나가 셰니에 앞에 나타나 정체를 밝히고, 두 사람은 오래 마음속에 간직해온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합니다. 그때 밀정의 보고를 받은 제라르가 마달레나를 만나려고 달려왔다가 셰니에와 결투를 벌이고, 셰니에의 칼에 찔려 부상을 입게 됩니다.
3막은 혁명재판소의 풍경. 그 사이 혁명의 주역으로 성장한 제라르가 나타나, 왕정을 수호하려는 유럽 열강을 상대로 싸우는 조국 프랑스에 힘을 실어달라고 감동적인 웅변으로 민중을 설득하고, 아들과 손자를 전투에서 잃은 눈먼 노파 마들롱은 아직 10대인 막내 손자를 데리고 나와 소년병으로 나라에 바치겠다고 합니다.
제라르는 체포된 셰니에를 기소하는 기소장을 쓰다가 심적 갈등과 가책에 시달립니다. 마달레나를 차지하려는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과거에 존경했던 셰니에를 제거하려 하는 자신의 비열한 태도가 스스로를 괴롭히죠(아리아 ‘조국의 적? Nemico della patria?’). 그때 제라르 앞에 마달레나가 나타나 셰니에의 구명을 호소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La mamma morta’라는 아리아로 혁명 후의 삶을 들려주는 마달레나의 결연한 태도에 감동을 받아, 제라르는 셰니에의 구명을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혁명재판소는 셰니에의 자기변론(아리아 ‘그렇습니다. 나는 한때 군인이었습니다 Si, fui soldato’)과 제라르의 격정적인 변호에도 불구하고 셰니에에게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4막은 생 라자르 감옥. 친구 루셰가 셰니에를 면회하러 오자 셰니에는 자신이 방금 쓴 시를 들려줍니다(아리아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처럼Come un bel di maggio’). 제라르가 마달레나를 데려와 셰니에를 만나게 해주는데, 마달레나는 간수에게 “내일 아침 처형당할 여성 중 아이 어머니가 있느냐”고 묻고는 그녀 대신 자신이 처형당하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제라르가 로베스피에르에게 셰니에의 사면을 청하러 달려간 뒤, 마달레나는 함께 처형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셰니에에게 알립니다. 두 사람이 ‘우리의 죽음은 사랑의 승리La nostra morte’라는 이중창을 벅차게 노래하며 사형장으로 가는 호송마차에 함께 오를 때 막이 내립니다.
구체제와 대혁명의 절묘한 음악적 교차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1867-1948)는 약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부모의 소망을 거스르고 나폴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했습니다. 신인 오페라 작곡공모에 지원했다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작곡한 마스카니에게 밀려났지만,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아 오페라 의뢰를 받게 되죠. 대표작 [안드레아 셰니에](1896), [페도라](1898) 등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20세기에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제멋대로 부인] 등을 발표해 인기를 끌었습니다. [안드레아 셰니에]의 음악은 앙시엥 레짐(Ancien régime. 프랑스의 봉건주의적 구체제)과 대혁명의 음악적 교차를 절묘하게 보여줍니다.
1막 귀족들의 파티 장면에는 전원극 음악과 가보트 등 구체제의 음악이 등장하지만, 귀족들이 춤추는 가보트의 음악은 곧 파티 분위기를 위협하는 평민들의 행진곡과 뒤섞여 불협화음을 만들어내죠. 그밖에도 프랑스 혁명가요 선율을 인용하거나 베리스모적인 외침과 절규를 음악으로 옮겨놓은 부분 등이 유려하고 풍요로운 선율과 대조를 이루는 다채로운 걸작입니다.
푸치니의 [라 보엠]이 초연된 해인 1896년에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안드레아 셰니에]는 선율과 화성 면에서는 [라 보엠]과, 또 내용과 구성 면에서는 4년 뒤 발표되는 푸치니의 [토스카]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입니다. 그러나 감동 면에서는 [토스카]를 능가하는 걸작입니다.
오스트리아 보덴 호숫가의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브레겐츠 페스티벌 2011년 새 프로덕션은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였습니다. 프랑스 혁명기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 속의 마라(당통, 로베스피에르와 더불어 프랑스 대혁명의 3대 주역의 한 사람. 목욕 중에 욕조에서 왕당파의 소녀 샤를로트 코르데에게 암살당했다) 흉상을 거대하게 제작해 호수 위에 세우고, 마라의 목과 어깨 주변에 계단들을 설치해 출연자들이 오르내리게 만들었죠. 특히 3막 혁명재판소 장면에서 60톤이나 되는 마라의 목이 뒤로 꺾이면서 목 속에 설치한 붉은 조명의 무대가 드러나는 부분은 엄청난 스펙터클이었습니다.
추천 음반 및 DVD
셰니에-마달레나-제라르 순
[음반] 플라시도 도밍고/레나타 스코토/셰릴 밀른즈 등/내셔널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존 올디스 합창단/제임스 레바인 지휘, 1978년 녹음
DVD] 엑토르 산도발/노르마 판티니/스코트 헨드릭스 등/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브레겐츠 페스티벌 합창단/울프 쉬르머 지휘, 키스 워너 연출, 2011(한글자막)
[DVD] 호세 쿠라/마리아 굴레기나/카를로 구엘피 등/볼로냐 시립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카를로 리치 지휘, 잔 카를로 델 모나코 연출, 2006년(한글자막)
[DVD] 플라시도 도밍고/안나 토모와-신토우/조르조 잔카나로 등/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줄리어스 루델 지휘, 미하엘 함페 연출, 1985년
[네이버 지식백과]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 [Giordano, Andrea Chénier] (클래식 명곡 명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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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5월 26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조국의 적!?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
[안드레에 쉐니에(Andrea chénier, 안드레아 셰니에)]는 이탈리아 작곡가 죠르다노(조르다노, Umberto Giordano, 1867-1948)의 오페라이다. 주인공인 안드레아 쉐니에는 불란서(프랑스) 혁명 시대의 실제로 살았던 인물인데, 어지럽게 바뀌는 드라마의 전개에는 창작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그 허구(虛構)를 통해 계급투쟁, 정치적 음모, 부정부패, 비극적인 죽음 등이 뒤섞인 이 시대의 참모습이 떠오른다. 죠르다노는 섬세한 묘사나 표현은 그리 능숙하지 않으나 격동하는 드라마를 음악으로 옮겨 듣는 이를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하는 재주는 같은 시대의 어느 오페라 작곡가도 따를 수 없었다. 원작은 스토리코(Ambiente Storico)의 희곡(4막)을 일리카(Luigi Illica)가 대본으로 만들었다.
계급 투쟁, 정치적 음모, 부정부패, 비극적 죽음이 뒤섞인 혁명 시대를 그린 오페라
불란서 혁명시대(1789년과 1794년)의 빠리(파리)이다. 코아니 백작 댁에서 무도회가 열리고 있다. 이 집에서 오랜 세월 하인으로 일하고 있는 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유사상을 가진 아들 카를로 제라르는 귀족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고 있다. 연회 중에 백작의 딸인 마딸레나가 ‘사랑의 시’를 지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시인 안드레아 쉐니에는 민중에 대한 동정을 호소하는 즉흥시를 읊는다. 그러나 그 시는 거기 모인 귀빈들의 반감을 산다. 마딸레나는 뉘우치고 곁에서 들은 제라르는 감격한다. 그 후 제라르의 안내로 가난한 농민의 무리가 나타나자 진노(震怒)한 백작부인 앞에 제라르는 하인의 제복을 벗어 내동댕이치고 늙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저택을 나간다.
시간이 흘러 현명 하의 빠리는 공포정치로 바뀐다. 몰락한 마딸레나는 하녀 페르시의 집에 숨어 살고 제라르는 혁명정부의 요인이 되어 그리워하던 그녀의 거처를 찾고 있다. 감시의 눈을 피해 마딸레나는 쉐니에를 다시 만났으나 그물을 치고 있던 제라르가 등장하자 쉐니에는 제라르를 찔러 그녀를 도망치게 한다. 혁명 재판소 법정에 쉐니에가 끌려 나온다. 마딸레나는 그를 살리기 위해 제라르를 찾아 간다. 그녀는 제라르의 사랑의 고백에 놀라지만 어머니가 죽은 후 쉐니에에 대한 변함 없는 사랑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쉐니에에 대한 고소장을 적성한 제라르였으나 마딸레나를 향한 짝사랑을 부끄러워하며 태도를 바꾸어 쉐니에 변호에 나선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쉐니에는 ‘명예로운 죽음’을 원한다. 감옥에 수감된 쉐니에는 이 세상을 떠나는 시를 적어 친구 루시에에게 건넨다. 이때 여자 죄수로 변장한 마딸레나가 나타난다. 둘은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고 죽음의 호송차에 오른다. 그들을 살리려고 애썼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제라르는 두 사람을 실은 마차가 단두대를 향해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조국의 적'
조국의 적!?
너무 써 먹은 조작된 말이지만
역시 인민이 믿기 쉬운 수작이다.
콘스타티노플 태생?
외국인이다!
생-시르 사관학교 출신?
군인이다!
매국노다!
뒤무리에와 공범이다!
시인?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고 풍속을 문란케 하는 자다!
증오와 복수를 거듭하는 동안에 나의
순수하고 티 없으며 강한 의지를 관철했던
즐거운 나날은 지나갔다.
스스로를 거인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줄곧 하인 그대로인 채,
주인을 바꾸었을 뿐인,
폭력적인 정열에 휘둘리는 종이다.
아, 그 보다도 더 나쁘다. 학살하고 두려움에 떤다.
죽이면서 눈물을 흘린다.
혁명의 아들인 나는 무엇보다 먼저
세계를 위해 외치는 고함소리를 듣고
내 마음 속의 외침을 거기에 결부시켰다.
꿈꾸는 미래에 대한 믿음을
지금은 잃어버렸는가?
얼마나 영광으로 빛났던가
내 행동은!
사람들의 마음에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악한 자, 괴로워하는 자들의 눈물을 모아,
세계를 신전(神殿)으로 삼고,
인민을 신처럼 받들어,
하나의 입맞춤과 포옹 속에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
지금 나는 이 신성한 소망을 부인하고 있다.
내 마음은 증오에 흠뻑 빠져 있지만,
나를 이렇듯 굴복시킨 것은 공교롭게도,
사랑이다!
혁명가가 귀족의 딸을 사랑하여 연적인 시인을 반혁명분자로 모는 아리아
백작 가의 하인이었던 제라르는 불란서 혁명의 이념에 공감하여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쟈코방(자코뱅) 당원으로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그러나 남몰래 은근히 사랑하는 백작의 딸 마딸레나가 시인 안드레아 쉐니에를 사모하며 자기의 압력에 굽히지 않는 그녀에 대한 시기심(猜忌心)으로 시인을 반혁명 죄로 고발한다. 가사는 그러한 사태와 제라르의 심정을 소상히 이야기하고 있다. 바리톤의 역량을 시험하는 유명 아리아이다.
추천할 만한 CD와 DVD
[CD] 지아난드레아 가바쩨니 지휘,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관현악단/합창단(1957) 바스티아니니(Bs) DECCA
이 오페라를 녹음할 무렵은 델 모나코와 테발디는 물론 제라르를 노래하는 바스티아니니의 가장 충실한 시기였던 만큼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목소리의 향연을 벌인다. 특히 바스티아니니가 잘못된 사랑에 괴로워하는 영혼을 노래하여 가슴을 저미는 장면은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작곡가로서도 일류의 역량을 지녔던 가바쩨니(Gianandrea Gavazzeni, 가바체니)가 지휘를 맡은 것이 이 음반을 성공시킨 큰 원인이 된다. 많은 성악곡, 특히 훌륭한 합창곡을 많이 작곡한 그 답게 절묘한 성부(聲部)처리 솜씨를 보여준다. 제1막의 전원곡에서 부르는 목동의 합창 부분은 전곡 중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장면이며 우아하기 그지없다. 작품의 몇 가지 결점을 어느새 다 잊어버리고 음색의 풍부함과 가수들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취해버리고 만다.
[CD] 레바인 지휘, 런던 내셔널 휠하모니 관현악단/죤 올디스 합창단(1976) 밀른즈(Br) RCA
델 모나코와 코렐리가 1950년대와 60년대를 대표하는 쉐니에였다면 도밍고는 70년대의 적격자라고 할 수 있다. 빛나는 아름다운 목소리, 힘찬 극적 표현력, 거침없이 뿜어내는 열정과 고뇌의 표현 등 어느 모로 보나 최고의 노래를 쏟아낸다. 델 모나코는 너무 강직하고 코렐리는 지나치게 자의적(恣意的)이라는 평을 보면 쉐니에의 이상적인 모습을 도밍고의 표현에서 찾게 된다. 그리고 레바인도 그가 지휘한 오페라 중에서는 가장 성공한 녹음에 속한다. 일사불란하게 잘 다듬어 놓은 오케스트라가 혼신을 다한 그의 지휘봉 아래 찬란한 관현악의 향연으로 도밍고의 명창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스코또의 마딸레나가 부르는 정교한 노래에 제라르 역의 밀른즈가 쏟아 놓는 질투와 가책의 소용돌이, 그리고 탁월한 녹음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최고의 앙상블을 빚어낸다. 최근 소니 오페라 하우스 시리즈로 재발매 되었다.
[DVD] 넬로 산티 지휘, 빈 국립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발레단(1981) 카뿌찔리(Br) 쉔크 연출 DG
도밍고의 아름다운 칸타빌레(cantabile=노래하듯이), 스칼라 극장에서의 유명한 노래에 못지 않은 팽팽한 목소리의 카뿌찔리(피에로 카푸칠리, Piero Cappuccilli), 가식이 없는 쉔크의 연출이 돋보인다. 극장 지휘자로서 안정감 있는 산티의 지휘 등 나무랄 데가 없다.
[DVD] 샤이 지휘, 미라노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85) 카뿌찔리(Br) 푸쩰리 연출
샤이(Riccardo Chailly)는 정확하고 억제된 지휘로 탄탄한 드라마를 구축하고 혁명적인 장면에서의 극성과 사랑의 장면의 서정을 무리 없이 이끌어 내고 있다. 가수진도 그러한 지휘에 호응하여 각기 충분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특히 카레라스(José Carreras)의 쉐니에는 혁명의 회오리바람 속에 사랑과 신념을 지켜 나가는 시인을 격조 높게 표현하고 그 단정한 모습 또한 일품이다. 또 백작 가의 하인이며 혁명에 동참하는 제라르 역의 카뿌찔리도 그 딸에 대한 짝사랑과 혁명 사이에 흔들리는 심리와 좌절하는 정열을 뛰어난 노래와 연기로 구현하여 설득력이 있고 백작의 딸 마딸레나 역의 마르톤(Eva Marton)의 당당한 노래가 호소력 있다. 그리고 푸쩰리(푸첼리, Lamberto Puggelli)의 연출이 백작의 성(城)에서 혁명하의 빠리, 또 혁명 재판과 감옥 등 무대를 교묘하게 바꾸어 꾸미고 있다. 제1막의 무도회 장면은 호화롭고 아름답다. 혁명 하 빠리의 시간과 장소를 바꾸어 비극이 진행되는 제2막 이후도 거대한 장치를 차례로 움직여 장면을 전환하는 등 인상 깊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국의 적!? - 조르다, [안드레아 셰니에]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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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6년 1월 6일 네이버캐스트 / 조선일보 기자 김성현 글>
문학과 클래식
시인 앙드레 셰니에와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오페라로 환생한 프랑스 혁명의 시인
“밀러, 기도해본 적 있어?”
“물론 매일 기도하지.”
“기도 제목은?”
“글쎄, 아기의 건강과 아내의 순산, 필리스(필라델피아의 프로야구팀)의 승리지.”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와 영화 <필라델피아>가 동행한 한 장면
에이즈로 투병 중인 변호사인 앤드루 버킷(톰 행크스, Tom Hanks, 1956~)은 동성애에 대한 편견 때문에 부당 해고됐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법정 증언을 하루 앞두고 자신의 소송을 맡아준 흑인 변호사 조 밀러(덴젤 워싱턴, Denzel Washington, 1954~)와 질문 내용을 검토하던 중에 이런 대화를 나눈다. 밀러는 증언 내용으로 화제를 돌리려고 하지만, 정작 버킷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영화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한 장면이다.
이 때 둘의 귓가에 나지막한 첼로 소리가 들려온다. 오디오를 통해 흐르는 음악은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Andrea Chénier)]의 아리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La mamma morta)]다. 전설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977)의 목소리다. 영화의 카메라는 아리아의 노랫말을 설명하는 버킷에게 바짝 다가가 부감(俯瞰)으로 잡는다.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오페라에서 백작의 딸 마달레나의 집은 폭도에 의해 불탔다. 딸을 살리려던 어머니도 목숨을 잃고 만다. “목소리에 담긴 고통이 들려?” 마달레나의 아리아를 설명하는 버킷의 모습을 카메라는 좀처럼 끊지 않고 따라간다. 하지만 현악이 장조(長調)로 방향을 트는 순간, 아리아도 절망에서 환희로 표정이 바뀐다.
“계속 살 것이니, 나는 삶이요. 천국이 내 안에 있다. 너는 혼자가 아니며 내가 네 눈물을 모으리라. 너와 함께 걸으며 너를 도우리라. 웃고 희망을 가져라. 내가 사랑이니. 피와 진흙에 둘러싸여 있느냐? 나는 신성하다. 나는 망각이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내려온 신이로다.”
- 아리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앙드레 셰니에, 현대의 호머를 꿈꾸던 시인
마달레나의 귓가에 들려온 신의 음성은 영화에서 버킷이 간절히 듣고자 하는 응답이기도 하다. 아리아를 듣던 버킷의 눈가도 촉촉이 젖어온다. 노래는 끝났지만 밀러는 변론 준비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어색하게 자리를 뜬다. 하지만 백인과 흑인,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라는 차이를 딛고, 둘 사이에는 교감이 흐른다.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인상적인 이 장면에서 흘렀던 음악이 이탈리아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Umberto Giordano, 1867~1948)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32세의 나이에 단두대의 이슬이 됐던 시인 앙드레 셰니에(Andrea Chénier, 1762~1794)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셰니에가 발표한 시는 단 두 편이 전부였다. 생전에 셰니에는 무명(無名) 시인이었지만, 사후에는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예술가로 재평가 받았다.
셰니에는 터키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현 이스탄불)에서 프랑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스 출신인 어머니의 살롱은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Lavoisier, 1743~1794)와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 같은 학자와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다. 14세 연상의 다비드는 셰니에에게 예술과 그림에 대해 많은 걸 일러준 스승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셰니에도 일찍부터 다비드의 화실에 드나들었다. 다비드가 대표작인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그릴 때는 셰니에가 조언을 건넸다는 일화도 있다. 당초 다비드는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손에 들고서 발언하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지만, 셰니에가 여기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안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말을 끝마치고 나서야 잔을 붙잡았을 거예요.”
셰니에는 어머니의 언어인 그리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16세 무렵에는 고대 그리스의 여성 시인 사포(Sappho, B.C. 612?~?)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옮겨서 번역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그의 문학적 관심도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에 있었다. 그에게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 B.C.86~B.C.42)는 가장 위대한 로마인이요, 카토(Marcus Porcius Cato, B.C.234~B.C.149)는 위대한 장군이자 웅변가이며 철학과 문학에서 당대 최고였으며, 포키온은 도덕과 덕의 규범에서 흔들림이 없으며 행동과 우정에서 흠 잡을 곳이 없는 진실된 인간”이었던 것이다. 셰니에는 1784년 로마와 나폴리, 폼페이 등 이탈리아를 여행한 뒤 ‘현대의 호머’를 꿈꾸며 신고전주의 양식의 전원시와 비가를 써나갔다. “새로운 생각으로 예스런 시를 써나간다”라는 시구(詩句)가 보여주듯, 당시 그의 문학관은 무척 고전적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혁명의 격랑 속으로
하지만 1789년 프랑스 혁명은 그가 과거의 문학 양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혁명 발발 2년 전, 가족의 지인이 영국 대사로 임명되자 그는 대사의 비서 자격으로 런던으로 따라 나섰다. 하지만 셰니에는 “비열한 즐거움과 역겨운 허영심이 가득하다”라며 런던 생활에 넌더리를 냈고 결국 혁명 이듬해인 1790년 파리로 되돌아왔다. 혁명의 격랑에 스스로 뛰어든 셈이었다.
셰니에는 전원시 대신에 풍자시를 쓰기 시작했고, 「파리 저널」에도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했다. 정치적으로 그는 입헌군주제를 옹호하는 온건파에 가까웠다. 시인이자 극작가인 동생 마리 조제프(1764~1811)가 루이 16세의 사형을 옹호하는 급진 공화파에 속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1792년에는 이들 형제 사이에 격렬한 지상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해 2월 셰니에가 먼저 「파리 저널」을 통해 급진 공화파인 자코뱅(Jacobins)이 프랑스를 뒤흔드는 혼란의 원인이며 ‘국가 안의 국가’를 세우려는 이들을 해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마리 조제프는 자코뱅이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에 입각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양편의 지지자들이 뛰어들면서 이 논쟁은 반 년 가까이 지속됐다. 두 살 연상의 셰니에는 “존경하는 사람들과도 당파를 만들지 않았다”라고 고백했을 만큼 철저하게 무당파를 지향했다. 반면 동생 마리 조제프는 혁명 당시 입법 기관이었던 국민 공회(Convention Nationale)의 의원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달랐다.
어쨌든 혁명의 열기가 정점으로 치닫는 가운데 구체제의 상징이었던 국왕을 공개적으로 편드는 건 적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의 처형 소식에 낙담한 셰니에는 베르사유로 내려가 은거했지만, 수 개월 뒤에 반혁명 혐의로 공안위원회 요원들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반동에서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셰니에가 체포된 이후 동생 마리 조제프는 형의 구명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카인을 죽인 아벨’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셰니에가 체포되기 이전에 파리를 떠나라고 권유하고 베르사유에 안전 가옥을 물색해준 건 다름 아니라 마리 조제프였다. 로베스 피에르(Maximilien de Robe pierre, 1754~1794)의 반대파로 분류됐던 동생은 현실적으로 힘을 쓰기 힘든 처지였다. 이 때문에 마리 조제프는 서툴게 개입하면 오히려 형의 사형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마리 조제프는 시간이 흐르면 형의 사건도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혁명의 광기는 그런 희망마저 앗아갔다.
셰니에는 옥중에서도 틈틈이 「젊은 여죄수(La Jeune Captive)」 같은 시를 썼지만, 1794년 7월 25일 결국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시인의 최후는 낭만적으로 윤색되어 있다. 그는 단두대로 올라갈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소포클레스(Sophocles, B.C.496~B.C.406)의 비극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혹자는 동료 사형수들과 장 라신의 비극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고도 했다. 셰니에의 처형을 지시했던 로베스 피에르도 불과 이틀 뒤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체포됐고, 다음 날인 28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무척이나 얄궂은 악연이었다.
셰니에는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샤토브리앙(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 1768~1848)이 1802년 『기독교의 정수』에 셰니에의 시를 인용하면서 그의 문학적 명성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819년에는 셰니에의 미발표 원고를 묶은 시집이 처음으로 간행됐고,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 같은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조르다노의 손에 태어난 핏빛 치정극
시인을 향한 경배의 대열에 동참했던 이탈리아의 작곡가가 움베르토 조르다노였다. 이탈리아 남부 포자에서 약사의 아들로 태어난 조르다노는 부친의 기대를 저버리고 나폴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음악원 재학 시절인 1888년 악보 출판사가 주최하는 단막 오페라 공모전에 첫 오페라를 출품했지만 참가작 73편 가운데 6위에 머물고 말았다.
당시 우승작은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3~1945)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였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출판사는 후속작을 위촉했고, 이를 계기로 조르다노는 꾸준히 오페라를 발표했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오페라는 작곡가 마스카니와 레온카발로(Ruggero Leoncavallo, 1857~1919)를 필두로 하는 ‘베리스모(verismoㆍ사실주의)’의 시대였다. 낭만적 연애담이나 영웅담에 작별을 고하고 서민의 남루한 일상에서 착안한 핏빛 치정극이 오페라의 세계로 속속 편입됐다. 조르다노가 [안드레아 셰니에]를 통해 프랑스 혁명의 시인 셰니에의 삶을 극화(劇化)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진행 과정은 그대로 오페라의 기본 얼개가 됐다. 마지막 4막의 무대는 실제 시인이 투옥됐던 생라자르 감옥이며, 셰니에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장본인인 로베스 피에르도 2막에서 잠시 단역으로 모습을 내비친다.
푸치니와 호흡을 맞춰 [마농 레스코(Manon Lescaut)]와 [라 보엠(La Boheme)] 등을 히트시킨 작가 루이지 일리카의 대본을 바탕으로 한 [안드레아 셰니에]는 1896년 3월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그 해 11월 뉴욕과 이듬해 3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곧바로 공연될 정도로 작품의 명성은 빠르게 퍼졌다. 함부르크 공연 당시 지휘봉을 잡았던 음악가는 작곡가이자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였다.
고결한 남성 주인공, 셰니에의 탄생
4막 형식의 이 오페라는 당시 베리스모 스타일을 반영하듯 혁명의 긴박함과 열기를 충실히 담아냈다. 음악적으로 그보다 중요한 건 낭만적이면서도 고결한 남성 주인공 셰니에의 탄생이었다. 혁명의 대의에 충실하면서도 따스한 인간애를 보여주는 셰니에 역을 위해 작곡가는 3곡의 아리아를 썼다. 이 가운데 두 곡은 셰니에가 생전에 썼던 시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셰니에가 처형되기 직전에 부르는 아리아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처럼(Come un bel di di maggio)]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처럼, 산들바람이 입을 맞추고 햇살이 감싸 안는 가운데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네. 나 역시 운율의 입맞춤과 시의 보살핌으로 내 삶의 정상에 올라가네. 각자의 운명에 따라 난 이미 죽음의 시간에 이르렀네. 내 시의 마지막 연이 끝나기 전에, 사형 집행인이 내게 삶의 종말을 고하겠지. 그러려무나. 시여, 절대적 여신이여! 당신은 시인에게 빛나는 영감과 불길을 주었으니, 내 마음에서 당신이 쏟아지는 동안에 나는 당신께 내 삶의 마지막 차가운 숨결을 드리리다.”
- 아리아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처형대에 올랐던 셰니에의 마지막 시는 오페라 4막에서 티끌 한 점 없이 청명하게 빛나는 아리아로 되살아났다. [안드레아 셰니에]의 아리아는 시인 자신의 ‘백조의 노래’이기도 했던 것이다. 윤동주나 이육사와 마찬가지로, 셰니에 역시 사후에 신화가 된 경우에 속했다. 더불어 오페라는 젊은 시인의 초상을 온전하게 간직한 ‘음악의 사진첩’이자 ‘기억의 보관소’가 됐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인 앙드레 셰니에와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 오페라로 환생한 프랑스 혁명의 시인 (문학과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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