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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호 至氣今至願爲大降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포덕 153년 11월 19일(월요일) | |
시일소식 |
포덕 153년 |
11월 넷째주 월요시일 | |
발행처:천도교 동천교구 발행인:김학봉 편집인:김대석 주소:부산시 남구 대연5동 1564번지 전 화:(051) 628~1302~6 Fax:624-0519 카 페:http://cafe.daum.net/dongcheon21 |
집례 : 중암 김대석 교무부장
- 청 수 봉 전
- 개 식 심 고
- 주 문 삼 회 병 송
- 경 전 봉 독 ---- 의암성사법설 [후경(後經)(1)](경전 488~492쪽) ---- 김재한 학생동덕(2)
- 천 덕 송 합 창 -------------------------------- 제2장 교훈가(2)(천덕송 8쪽, 1~2절)
- 설 교 --------------- 대신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 덕암 성강현 종학실장
- 천 덕 송 합 창 ---------------------------------- 송가, 기도가(천덕송 92쪽, 1~2절)
- 폐 식 심 고
* 음악준비 : 박경민학생동덕(2)
[봉준이 온다 - 전봉준 평전](이광재 작, 모시는사람들, 2012)
■ 책소개 골목대장 ‘씨화로’에서 ‘녹두장군’으로 교수대에 오르기까지 조선말의 최대 풍운아였던 전봉준의 일대기를 다룬 문학적 평전. 딱딱한 문헌 수집과 연대기 나열에서 벗어나 전봉준을 둘러싼 내밀한 사적 정황에서부터 동학농민혁명의 실제 전개 상황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풍성하게 재현해 냈다. 꼼꼼한 문헌조사와 현장답사, 역사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수려한 문체로 전봉준을 이 시대, 이 자리에 불러냈다. ■ 목 차 서 장 시대를 산 사람, 시대가 된 사람 |
대신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덕암 성강현 종학실장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11월도 하순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겨울로 들어서는 것 같습니다. 다들 건강에 유의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있었던 제2차 교구장 유적지 순례에 참석해서 느낀 소감으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금요일이던 11월 16일부터 이틀간 총부에서 주관하는 제2차 교구장 유적지 순례의 안내자로 참석했습니다. 지역의 교화책임자인 교구장이 사적지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충분히 갖고 교구 자체 성지순례를 활성화해서 교인들의 신앙심을 고취하고자 이 행사의 기획했습니다. 지난해 해월신사 유적지를 답사에 이어 올해는 대신사의 피체로의 찾는 순례를 기획했습니다.
11월 15일 오후에 서울로 올라가서 하룻밤을 보내고 16일 아침 8시에 총부로 갔습니다. 총부에 도착하니 이미 전국 각지에서 올라 온 33명의 교구장과 임원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8시30분쯤 순례단은 심고를 하고 총부를 출발하였습니다. 처음으로 간 사적지는 양재역이었습니다. 양재역은 지금은 서울에 속하지만 대신사 당시에는 경기도 과천현에 속했습니다. 당시 과천현은 지금의 서울 양재, 노량진, 경기도의 군포, 안양, 과천을 포괄하는 한강 이남의 현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중요한 역도(驛道)가 3개가 있었는데 과천역참은 그 가운데 좌도충청도를 관할했습니다. 당시 과천역참은 12개의 속역을 관할했습니다. 그 역참이 있던 자리가 현재의 양재역입니다. 말죽거리라는 지명은 과천역참이 있던 양재역의 말에게 죽을 먹이던 거리에서 유래했습니다. 과천역참이 있었던 양재역은 12개의 속역을 관할하는 중요역으로 종6품 찰방이 관할했습니다.
대신사께서는 포덕 4년(1863)년 12월 10일 새벽에 선전관 정운구에게 붙잡힙니다. 이때 제자들이 대산사께 도피할 것을 권했지만 대신사께서는 “이 도가 나로부터 나왔는데 나는 피하진 않겠다”고 하시면서 용담에서 체포됩니다. 그리고 경주관아로 압송되어 하루를 보내고 12월 11일 영천으로 떠납니다. 이후 대구(12.12) – 선산 상림(12.13) - 상주 낙동(12.14) - 청산(12.15) - 보은(12.16) - 청안(12.17) - 직산(12.18) - 오산(12.19)을 거쳐 12월 20일 과천에 도착합니다. 당시 날짜가 음력이니까 가장 추운 한겨울에 영어의 몸으로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과천에서 며칠을 쉬는 동안 서울에서는 철종의 승하로 국상 준비에 분주하였습니다. 조정에서는 대신사를 대구로 압송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당시 대신사께서 올라온 과천역이 지금의 양재역에 해당합니다. 자료에 양재역 7번 출구 부근에 양재역 안내 표지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지만 찾지 못하고 4번 출구의 말죽거리 표지석 앞에서 심고를 드리고 길을 나섰스빈다. 다음으로 간 곳은 과천현 자리입니다. 대신사께서 양재까지 왔으면 거쳤을 곳이 과천현 자리이기에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과천현 자리는 없어지고 그때 객사였던 온온사(穩穩舍)가 지금 중앙동자치센터에 있었는데 1986년 중앙동자치센터 뒤편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건물로 가장 잘 남아있는 인근의 과천향교를 찾았습니다. 19세기 지도를 보면 과천현 관아와 향교가 가까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정취가 남아 있는 향교에서 심고와 주문3회 병송을 하면서 스승님의 기운을 느끼고자 했습니다.
대신사께서는 철종의 붕어(崩御)로 오던 길을 되돌려 대구로 내려오게 되는데 이때는 영남대로를 경유합니다. 올라갈 때 동학교도들이 문경새재에 모여 있다는 정보를 들은 정운구는 문경새재를 넘지 않았는데 내려올 때는 문경새재를 택합니다. 대신사께서는 과천을 12월 26일 아침에 출발해 용인 양지(12.26) - 충주 달천(12.27) - 문경 요성(12.28) – 문경 유곡(12.29) - 상주 낙동(1.4) - 선상 상림(1.5) - 대구감영(1.6)에 도착합니다. 대신사께서 문경새재에 당도하자 도인 수백 명이 대신사를 탈취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대신사께서는 “나의 육신을 살리려하지 말고 성령을 수련하라”고 하면서 제자들을 물리칩니다. 이 마지막 설교를 들은 수많은 제자들이 횃불을 밝히고 눈물을 흘리며 대신사의 뒤를 따릅니다.
원래 답사는 대신사의 걸음을 따라 새재 제3관문에서 제1관문까지 걸어서 오려는 기획을 했는데 시간에 쫓겨 제1관문으로 내려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녁의 느낌나누기에서도 도보순례를 하지 못한 것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문경새재를 둘러보고 다음으로 찾은 곳은 요성역 자리입니다. 대신사께서 하룻밤 머문 요성역은 유곡역의 속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당시 속역에는 특별한 건물이 없었다고 합니다. 대신사께서 어떻게 이곳에서 기거하셨는지 궁금했습니다. 당시 요성역은 현재 문경시 요성리의 성황당 자리라고 합니다. 요성리로 들어와 성황당은 찾지 못하고 마을을 당나무에서 심고와 주문3회병송을 하며 대신사의 기운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길을 나서 유곡역이 있었던 유곡동으로 갔습니다. 유곡동은 다섯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골은 관아가 있었던 골이라는 뜻으로 이곳이 유곡역의 자리라고 합니다. 유곡역은 영남대로의 중추로 관할하고 있는 역이 18~20개 정도였습니다. 양재역과 마찬가지로 이곳을 총괄하는 관리는 찰방(察訪)으로 종6품의 문관이었습니다. 유곡은 영남의 인후(咽喉)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역입니다.
대신사께서는 12월 28일 요성역에서 머물고 섣달 그믐인 12월 29일 유곡역에 도착해 새해를 맞습니다. 유곡역은 대신사께서 생전에 마지막을 설을 맞이한 곳입니다. 정운구는 1월 4일 아침에 유곡을 출발합니다. 유곡동 관아자리는 현재 유곡동침례교회가 크게 들어서 있습니다. 침례교회 옆의 마을 정자에서 심고와 주문3회병송으로 송구한 마음을 대신했습니다. 유곡역을 출발해 다음으로 찾은 곳은 대구감영입니다. 대구감영공원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렸습니다. 대신사께서 포덕5(1864)년 1월 6일부터 순도하신 3월 10일까지 영어의 몸으로 이곳에 계셨습니다. 대신사께서 이 대구감영의 선화당에서 경상감사 서헌순으로부터 4차에 걸친 심문을 받습니다. 마지막 심문에서는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혹독한 심문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대신사께서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창도한 동학 천도를 지키십니다. 이어서 답사단은 당시 감옥이 있던 종로초등학교로 갔습니다. 교문에 들어서 운동장 왼쪽 관사가 있는 자리가 감옥자리라고 합니다. 종로초등학교에는 최제우나무가 있습니다. 수령 400년의 회화나무 한그루를 대구시가 지정해 보호수로 관리하며 명칭을 최제우나무로 정했습니다. 당시 대신사의 감옥생활을 지켜봤을 것이라고 해서 대구시에서 보호수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단에서는 대신사께서 영어생활을 하셨고 순도하신 대구에 아무것도 기념이 될만한 것은 세우지 못했습니다. 이어서 갔던 대신사 순도지인 관덕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아백화점 뒤 2층 연립주택이 있는 자리가 중죄인을 참형하던 자리입니다. 관덕정을 보고 경주로 가서 저녁을 먹고 느낌나누기를 마치니 밤 11시가 넘었습니다.
11월 17일 토요일 4시 30분에 기상하여 5시 기도식과 수련을 하고 6시 30분에 이른 아침을 먹고 용담정 참례, 유허비, 태묘를 돌아보았습니다. 대신사 생가는 발굴을 진행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내년에 세워질 대신사 생가 복원을 위한 사전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태묘에 가서는 박씨사모님, 세청, 세정의 묘와 대신사 모친인 한씨사모님의 묘를 모두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대신사 가족이 아닌데 같이 묻혀있는 해월신사 따님인 최윤의 묘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경주시내로 가서 경주관아가 있었던 경주문화원으로 갔습니다. 문화원의 해설사가 고려, 조선시대의 경주읍성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고 그당시 감옥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마 그 감옥에 박씨 사모님과 아들, 접주와 교인 20여명이 한 달 가까이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경주읍성의 형방에 대신사께서 하루 영어의 몸으로 계셨는데 그 위치를 물으니 해설사도 자신도 거기까지는 공부하지 못했다고 찾아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경주문화원을 나와 일행은 경주교구로 향했습니다. 지금의 경주교구 건물 뒤의 텃밭에서 해월신사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 사적지 가운데에서 거의 유일하게 잘 보존된 곳입니다. 그러나 교구 입구에 팻말을 만들면 지나가는 경주시민들도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방법을 찾아보자고 교화관장과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경주교구를 답사하고 나니 시간이 12시를 넘겨 먼저 출발할 분이 계서 같이 점심을 먹고 마지막 답사지인 여시바위골로 갔습니다. 여시바위골은 현재 주변으로 4차선도로가 난다고 해서 유적지보존회와 울산교구를 중심으로 전국의 교인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울산시에 도로개축을 건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간다는 사실을 알고 박충구 울산교구장과 이규정 전 국회의원이 참가하여 현 상황을 듣고 스승님의 사적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르는 마음을 모아 심고를 올렸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저를 비롯해 부산으로 오는 일행은 울산에서 내려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내려오면서 짧은 시간에 많은 사적지를 보여주려고 욕심을 많이 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스승님의 사적지를 돌아보면서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데에서 이번 답사의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우리 교구는 잘 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스승님의 사적지를 찾아 스승님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설교에 가름합니다. 감사합니다.
☞ <하동 고성산 제118주년 동학혁명군 위령식> 참석(11/11) : 고성산 동학혁명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하동군이 후원한 제118주년 동학혁명군 위령식이 지난 11월 11일(일) 오전 11시 경남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고성산 위령탑 앞에서 200여명의 교인과 유족 및 관계 기관 단체장, 지역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천도교 부산연합합창단이 추모공연을 선 보였다. 우리교구에서는 신성당 구옥주, 은심당 류미경 내수도가 합창단원으로 참여했다.
☞ 본교 종학실장 제2차 교구장 유적지 순례에 안내자(11/16~17)로 참여 : 11월 16일부터 17일까지 이틀간 총부에서 주관하는 제2차 교구장 유적지 순례가 실시되었다. 33명의 교구장과 임원이 서울 양재역을 출발하여 문경(문경새재 및 요성역, 유곡역자리), 대구(대구감영자리)-경주 용담정과 태묘-경주교구(해월신사 탄생지)-울산 여시바윗골(대신사의 을묘천서 체험지)의 긴 역정을 순례하는 1박 2일간의 유적지 순례는 본교 성강현 종학실장이 안내자로 수고하였습니다.
☞ <부산종교인평화예술제> 안내(11/21) : 부산종교인평화회의에서 주관하는 <부산종교인평화예술제>가 오는 11월 21일(수) 저녁 6시 부산시민회관 소강당에서 개최된다. 천도교에서는 부산연합 합창단이 참여하고, 우리교구에서는 신성당 구옥주, 은심당 류미경 내수도가 합창단원으로 참여한다. 뜻깊은 예술제가 될 수 있도록 당일 동덕님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기다립니다.
☞ 다음주 월요시일식은 기말고사 준비로 인하여 순연 : 다음주(11/26)와 그다음주(12/3) 월요시일식은 2학기 기말고사(12/6~12/10) 준비 관계로 연차적으로 순연합니다.
* 집례 : 노암 강병로 교화부장
* 경전봉독 : 김두엽 학생동덕(1)(의암성사법설 '후경(2)', 경전 493~501쪽)
* 천덕송 합창
(1) 제3장 안심가(천덕송 10쪽, 1~2절)
(2) 송가, 고치강의 노래(천덕송 93쪽, 1~2절)
* 설교 : 학암 김학봉 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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