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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편
사도와 다른 지도자들에게 나타나다
191:0.1 (2037.1) 부활이 있었던 일요일은 사도들의 생애에서 끔찍한 날이었고, 열 사람은 문에 빗장을 지르고 그 위층 방에서 그날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달아날 수도 있었지만, 바깥에 나다니는 것이 발견되면 산헤드린 관리에게 체포되는 것이 두려웠다. 토마스는 벳바게에서 혼자서 그의 곤경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었다. 동료 사도들과 함께 남아 있었더라면 그는 더 잘 버티었을 터이고, 더 유익한 길을 따라서 그들의 토론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191:0.2 (2037.2) 하루 종일 요한은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생각을 지지하였다. 그는 예수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주가 확언한 것을 적어도 다섯 번, 사흘째를 언급한 것을 적어도 세 번 열거했다. 요한의 태도는 그들에게, 특히 형 야고보, 그리고 나다니엘에게 어지간히 영향을 주었다. 요한이 그 집단에서 가장 나이 어린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들에게 더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91:0.3 (2037.3) 고립된 처지는 그들이 고생하는 큰 원인이었다. 요한 마가는 그들이 성전 근처에서 되어 가는 일과 연락을 유지하게 해주었고, 도시에서 생기는 여러 소문에 관하여 그들에게 정보를 주었지만, 예수가 이미 나타난 것을 본 다른 무리의 신자들로부터 소식을 모을 생각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은 다윗의 사자들이 이제까지 베풀었던 종류의 봉사였지만, 이 사자들은 모두,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신자 무리에게 부활을 알리는 사자로서 마지막 임무를 띠고 자리를 비웠다. 이 여러 해 동안 처음으로 사도들은 하늘나라 일에 관하여 나날의 정보를 얻는 데 그들이 얼마나 다윗의 사자들에게 의존했는가 깨달았다.
191:0.4 (2037.4) 이날 하루 종일, 베드로는 그답게, 주가 부활한 것을 믿기도 하고 의심도 하면서 감정이 오락가락하였다. 베드로는 마치 예수의 몸이 안에서 그저 증발한 것처럼, 무덤에서 시체를 쌌던 천이 거기에 놓인 광경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베드로는 궁리하였다. “그러나 그가 살아서 자신을 여인들에게 보일 수 있다면, 어째서 자신을 우리에게, 사도들에게 보이지 않는가?” 그가 그날 밤 안나스의 안마당에서 예수를 부인했기 때문에, 아마도 자기가 사도들 가운데 있기 때문에, 예수가 그들에게 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베드로는 슬퍼지곤 했다. 그리고 나서 “내 사도들에게―그리고 베드로에게―가서 이르라” 하는 여인들이 가져온 말씀에 기운을 얻곤 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듣고 격려를 받는다는 것은 여인들이 살아나신 주를 정말로 보고 주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을 믿어야 함을 의미했다. 이처럼 베드로는 하루 종일, 믿었다가 의심하며 갈팡질팡했고, 8시가 조금 지나서 안마당으로 나갔다. 그가 주를 부인(否認)한 것 때문에 예수가 그들에게 오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베드로는 사도들 사이에서 자리를 비우려고 생각했다.
191:0.5 (2037.5) 처음에 야고보 세베대는 그들에게 모두 무덤으로 가자고 주장했다. 그는 신비의 진상을 알아보려고 무언가 하는 데 크게 찬성했다. 야고보의 재촉에 반응해서 그들이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막은 사람은 나다니엘이었는데, 그는 이때 목숨을 부당하게 위태롭게 하지 말라는 예수의 경고를 그들에게 상기시킴으로 이렇게 했다. 한낮이 되자 야고보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분해져서 경계하며 기다렸다. 그는 말이 없었다. 예수가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아서 엄청나게 실망했고, 다른 무리와 개인들에게 주가 여러 번 나타난 것을 몰랐다.
191:0.6 (2038.1) 안드레는 이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많이 기울였다. 그 상황에 몹시 어리둥절하였고, 보통 이상으로 의심이 들었지만, 적어도 동료 사도들을 지도하는 책임에서 벗어난 어떤 홀가분한 느낌을 맛보았다. 그들이 정신 헛갈리는 이때가 닥치기 전에 주가 지도하는 짐을 내려준 것을 그는 정말로 고맙게 여겼다.
191:0.7 (2038.2) 이 비극의 날, 길고 피곤한 몇 시간 동안, 한 번이 넘게, 그 무리에서 유일하게 지탱하는 영향을 미친 것은, 나다니엘이 그답게 자주 기여한 철학적 조언이었다. 그는 하루 종일, 열 명 사이에서 정말로 고삐를 쥐는 세력이었다. 한 번도 그는 주가 부활하신 것을 믿거나 불신한다고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이 지남에 따라서, 그는 점점 더 예수가 다시 살아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고 믿고 싶어졌다.
191:0.8 (2038.3) 열심당원 시몬은 너무나 움츠러들어서 그 토론에 끼지 못했다. 시간의 대부분을 그는 방 한 구석에서 벽을 바라보며 소파에 기대고 있었고, 하루 종일 여섯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하늘나라 개념은 무너졌고, 주의 부활이 그 상황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의 실망은 무척 개인적이었고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부활과 같은 엄청난 사실이 닥쳐도 갑자기 통지받은 순간에 회복하지 못했다.
191:0.9 (2038.4) 기록하기 이상하지만, 여느 때 말이 없던 빌립은 이날 오후 내내, 말을 많이 했다. 아침 나절에는 할 말이 거의 없었지만, 오후 내내 다른 사도들에 관하여 물었다. 베드로는 빌립의 질문에 자주 귀찮아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의 물음을 마음씨 좋게 받아들였다. 빌립은 예수가 정말로 무덤에서 살아났다면, 그의 몸이 십자가에 못박힌 자국이 눈에 보이게 있을 것인가 특별히 알고 싶어했다.
191:0.10 (2038.5) 마태는 상당히 정신이 헛갈렸고, 동료들의 토론에 귀를 기울였지만, 머리 속에서 앞으로 그들의 재정 문제를 곰곰이 살피면서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예수가 부활했다고 생각된 것과 상관 없이 유다는 사라졌고, 다윗은 격식 차리지 않고 자금을 마태에게 넘겼으며, 그들에게 권위 있는 지도자가 없었다. 부활에 관한 그들의 논쟁을 마태가 깊이 고려하는 데 생각이 미치기 전에, 그는 이미 주와 얼굴을 마주하고 보게 되었다.
191:0.11 (2038.6) 알패오 쌍둥이는 이 심각한 토론에 거의 끼어들지 않았고, 늘 하던 시중을 드느라고 꽤 바빴다. 빌립의 질문에 대답하여 그들 가운데 하나가 한 말은 그들의 태도를 표현했다: “우리는 부활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주와 함께 이야기했다고 말씀하시고, 우리는 어머니를 믿노라.”
191:0.12 (2038.7) 토마스는 그가 흔히 겪는, 절망적으로 우울한 시기에 한창 빠져 있었다. 그날 얼마 동안 잠잤고, 나머지 시간에는 산에서 걸어다녔다. 그는 동료 사도들과 다시 함께 있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혼자서 있고 싶은 바람이 더 강했다.
191:0.13 (2038.8) 주는 여러 가지 이유로, 사도들에게 처음으로 상물질(上物質)로 나타나는 것을 미루었다. 첫째로, 그들이 그가 부활했다는 말을 들은 뒤에, 육체를 입고 아직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그의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그들에게 일러준 것을 잘 생각해 볼 겨를을 가지기를 바랐다. 주는 그들 모두에게 모습을 나타내기 전에, 베드로가 그의 특이한 어떤 문제와 씨름하기를 바랐다. 둘째로, 그가 처음으로 나타날 때 토마스가 그들과 함께 있기를 바랐다. 요한 마가는 이 일요일 아침 일찍, 벳바게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토마스를 찾아냈고, 그렇다는 말을 사도들에게 11시쯤에 전해 왔다. 나다니엘이나 어떤 다른 두 사도가 그를 찾아갔다면, 이날 어느 때라도 토마스는 사도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는 정말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전날 밤에 사실 그대로 떠났기 때문에, 너무 마음이 거만해서 그렇게 빨리 제 발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튿날이 되자 그는 너무나 우울해졌고, 그래서 그가 돌아갈 마음을 먹기까지 거의 한 주가 걸렸다. 사도들은 그를 기다렸고, 그는 형제들이 그를 찾고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요청하기를 기다렸다. 토마스는 이처럼 다음 토요일 저녁까지 동료들과 떨어져 있었고, 그때 어둠이 찾아온 뒤에, 베드로와 요한은 벳바게로 가서 그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예수가 처음으로 그들에게 나타난 뒤에, 그들이 대번에 갈릴리로 가지 않았는가 하는 까닭이다. 그들은 토마스 없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1. 베드로에게 나타나다
191:1.1 (2039.1) 예수가 마가의 집 뜰에서 시몬 베드로에게 나타난 것은 이 일요일 저녁에, 8시 반이 가까운 때였다. 이것은 여덟 번째로 상물질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주를 부인한 이후로, 베드로는 의심과 죄책감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다. 토요일 내내, 또 이 일요일에, 그는 아마도 이제 더 사도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싸웠다. 그는 유다의 운명에 소스라치게 놀랐고, 자기도 주를 배반했다고까지 생각했다. 물론 주가 죽은 자 가운데서 정말로 살아났다면, 그가 사도들과 함께 있는 것이 예수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못하게 방해할지 모른다고, 이날 오후 내내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의 틀 속에서, 그러한 혼의 상태에서, 풀 죽은 사도가 꽃과 풀숲 사이로 거니는 동안에 예수는 베드로에게 나타났다.
191:1.2 (2039.2) 안나스의 집 현관에서 주가 지나가면서 보낸 인자한 눈길을 베드로가 생각했을 때, 그리고 빈 무덤에서 돌아온 여인들이 그날 아침 일찍 그에게 가져온 소식, “내 사도들에게―그리고 베드로에게―가서 이르라”하는 그 놀라운 소식을 머리 속에서 살펴보는 동안, 이 자비(慈悲)의 표시를 생각하는 동안, 믿음은 비로소 의심을 이겼고, 그는 가만히 서서 주먹을 불끈 쥐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음을 믿노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이르리라.” 그리고 이렇게 말하자, 그 앞에서 한 사람의 모습이 갑자기 나타나서, 귀에 익은 목소리로 베드로에게 말을 걸었다: “베드로야, 적은 너를 가지고 싶어했어도 나는 너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고, 네가 나를 부인한 것은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 아님을 알았노라. 그런즉 네가 미처 부탁하기도 전에 너를 용서하였노라. 그러나 너는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자에게 좋은 복음(福音) 소식을 전하려고 준비하면서, 이제 너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당면한 골칫거리를 그만 생각해야 하느니라. 이제 더 하늘나라로부터 네가 무엇을 얻을까 아랑곳하지 말고, 오히려 비참한 영적 가난 속에 사는 자에게 네가 무엇을 줄 수 있는가 걱정해야 하느니라. 시몬아, 새 날의 전투를 위하여, 사람의 자연 지성에 생기는 영적 어둠과 악한 의심과 투쟁하기 위하여, 자세를 갖추어라.”
191:1.3 (2039.3) 베드로와 상물질 예수는 뜰을 통해서 걸었고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일에 대하여 거의 5분 동안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서 그가 물끄러미 보는 가운데 주는 사라지며 말했다: “내가 너희 형제들과 함께 너를 볼 때까지, 베드로야 잘 있거라.”
191:1.4 (2039.4) 한 순간, 베드로는 그가 살아나신 주와 함께 이야기했고, 아직도 하늘나라의 대사(大使)인 것을 확신할 수 있다는 깨달음에 휩싸였다. 그는 영화롭게 된 주가 복음을 계속 전파하라고 그에게 타이르심을 막 들었다. 그리고 가슴 속에서 이 모든 것이 넘쳐흐르자, 위층 방으로, 동료 사도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숨이 차게 흥분하여 외쳤다: “나는 주를 보았노라. 그가 뜰에 계셨느니라. 그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그는 나를 용서하셨더라.”
191:1.5 (2040.1) 베드로가 뜰에서 예수를 보았다는 선언은 동료 사도들에게 깊이 감명을 주었고 그들은 의심을 거의 버릴 준비가 되었는데, 그때 안드레가 일어나서 동생의 보고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지 말라고 경고했다. 베드로가 전에 헛것을 본 적이 있다고 안드레는 넌지시 비추었다. 환상 속에서 주가 물 위로 그들에게 걸어오는 것을 베드로가 보았다고 주장한 것, 갈릴리 바다에서 밤에 본 그 환상을 안드레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어도, 그는 이 사건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내비치기에 넉넉히 이야기했다. 형이 빗대어 한 말에 시몬 베드로는 무척 마음이 상했고, 즉시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쌍둥이는 베드로를 무척 딱하게 여겼으며, 두 사람이 그에게 건너가서 동정심을 보이고 그들이 그를 믿는다고 말하며, 그들의 어머니도 또한 주를 보았다고 다시 주장했다.
2. 사도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나다
191:2.1 (2040.2) 그날 저녁 9시가 조금 지난 뒤에, 그리고 클레오파스와 야곱이 떠난 뒤에, 알패오 쌍둥이는 베드로를 위로했고 한편 나다니엘은 안드레를 꾸짖었다. 열 사도가 붙잡힐까 두려워서 문을 다 빗장으로 잠그고서 위층 방에서 모여 있는 동안, 상물질 모습으로 주가 그들 한가운데 갑자기 나타나서 말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내가 나타날 때 어찌하여 너희는 마치 유령을 본 듯 그리 놀라느냐? 육체를 입고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내가 이 일에 관하여 이르지 아니하더냐? 주사제와 권력자들이 내가 죽음을 당하도록 넘겨주리라, 너희 무리 가운데 하나가 나를 저버릴 것이라, 사흘째에 내가 살아나리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더냐? 여인들, 클레오파스와 야곱, 하다 못해 베드로의 보고에 대하여 너희가 온갖 의심을 하고 이 모든 토론을 하다니 무엇 때문이냐? 얼마나 오랫동안 너희가 내 말을 의심하고 내 약속을 믿지 않겠느냐? 그리고 실제로 나를 보았으매 너희가 믿겠느냐? 이제도 너희 가운데 하나가 자리에 없느니라. 너희가 다시 한 번 모였을 때, 그리고 사람의 아들이 무덤에서 살아난 것을 너희 모두가 확실히 안 뒤에, 여기서 갈릴리로 떠나라. 하나님을 믿고, 서로를 믿으라. 그렇게 너희는 하늘나라의 새 수고를 시작할지니라. 너희가 갈릴리로 갈 준비가 되기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예루살렘에 머물리라. 나의 평화를 너희에게 두고 떠나노라.”
191:2.2 (2040.3) 그들에게 말을 마치고 나서, 상물질 예수는 눈앞에서 한 순간에 사라졌다. 모두 엎어져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라진 주를 경배했다. 이것은 주가 아홉 번째로 상물질로 나타난 것이다.
3. 상물질 인간들과 함께
191:3.1 (2040.4) 이튿날 월요일은 전부, 그때 유란시아에 있던 상물질 인간들과 함께 있는 데 쓰였다. 주의 상물질 과도기 체험에 참여하는 자로서, 사타니아의 일곱 저택 세계로부터 다양한 계급의 과도기 필사자들과 더불어, 1백만이 넘는 상물질 지도자와 동료들이 유란시아로 왔다. 상물질 모습의 예수는 이 눈부신 지성 존재들과 함께 40일 동안 머물렀다. 그는 그들을 가르쳤고, 그 지도자들로부터, 사타니아의 사람 사는 여러 세계에서 온 필사자들이 체계의 상물질 구체들을 통과하면서 거치는 상물질 과도기의 생명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았다.
191:3.2 (2041.1) 이 월요일 자정 무렵에 주의 상물질 모습은 상물질 진보의 둘째 단계로 넘어가기 위하여 조절되었다. 다음에 지상의 필사 아이들에게 나타났을 때, 그는 둘째 단계의 상물질 존재였다. 상물질 생애에서 주가 나아가는 동안, 상물질 지성 존재와 변화시키는 그 동료들이, 주를 필사자의 물질 눈에 보이게 만들기가 기술적으로 점점 더 어려워졌다.
191:3.3 (2041.2) 예수는 4월 14일, 금요일에, 상물질의 셋째 단계로, 17일 월요일에 넷째 단계로, 22일 토요일에 다섯째 단계로, 27일 목요일에 여섯째 단계로, 5월 2일 화요일에 일곱째 단계로, 7일 일요일에 예루셈 시민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14일 일요일에 에덴시아의 최고자들의 품에 들어갔다.
191:3.4 (2041.3) 이전의 여러 자신 수여(授與)와 연관하여, 그가 별자리 본부에서 거주한 것으로부터, 아니 계속 초우주 본부 봉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를 거쳐서, 시공에서 올라가는 필사자의 생애를 이미 충만히 체험했기 때문에, 이 방법으로 네바돈의 미가엘은 우주에서 체험하는 봉사를 마쳤다. 바로 이 상물질 체험으로 네바돈의 창조 아들은 일곱째이자 마지막 우주 수여를 정말로 마치고 만족스럽게 끝맺었다.
4. 열 번째 나타나다 (필라델피아에서)
191:4.1 (2041.4) 필사자가 알아보도록 예수가 상물질 모습으로 열 번째 나타난 것은 필라델피아에서 4월 11일, 화요일, 8시가 조금 지난 뒤였고, 거기서 아브너와 나사로, 그리고 그 동료 150명쯤에게 나타났는데, 이들은 70인 전도단 가운데 50명이 넘는 사람들을 포함한다. 이렇게 나타난 것은 회당(會堂)에서 특별 회의가 열린 바로 뒤였는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 그리고 다윗의 사자가 가져왔던, 부활에 관한 최근의 보고를 논의하려고 아브너가 이 회의를 소집하였다. 부활한 나사로가 이제 이 신자 집단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보고를 그들이 믿기는 어렵지 않았다.
191:4.2 (2041.5) 회당에서 아브너와 나사로가 그 모임을 막 시작하였고, 이들이 강단에서 함께 서 있었는데, 그때 주의 모습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신자인 청중 전부가 보았다. 그는 아브너와 나사로 사이에 나타났던 곳에서 앞으로 걸어 나왔고, 둘 중에 아무도 그를 지켜보지 못했는데, 예수는 무리에게 인사하면서 말했다:
191:4.3 (2041.6)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우리가 하늘에 아버지 한 분이 계시고, 오직 하나의 하늘나라 복음이―사람이 믿음으로 영생(永生)의 선물을 받는다는 좋은 소식이―있음을 너희가 다 아느니라. 너희가 복음에 충성하기를 기뻐하는 것 같이, 너희 가슴 속에서 형제를 위하는 새롭고 더 큰 사랑을 바깥에 퍼뜨리기를 진리의 아버지께 기도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내가 너희에게 봉사한 것 같이 너희는 모든 사람에게 봉사해야 하느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동정심과 형제의 애정으로, 저희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로마인이든, 페르시아인이든 에티오피아인이든, 좋은 소식의 선포에 헌신하는 너희의 모든 형제와 사귀라. 요한은 하늘나라를 미리 선포하였고, 너희는 권능으로 복음을 전도했으며, 그리스인들은 이미 좋은 소식을 가르치느니라. 그리고 나는 곧 진리의 영을 이 내 형제들 모두의 혼 속으로 보낼 것이요, 저희는 영적 어두움 속에 앉아 있는 동료들을 깨우치려고 일생을 아주 사심 없이 바쳤느니라. 너희는 모두 빛의 자녀이라, 그런즉 사람의 의심과 인간의 불관용을 보여 오해에 빠지지 말라. 너희가 믿음의 은혜로 불신자(不信者)를 사랑하도록 고상하게 되면, 널리 확대되는 믿는 가정에서 동료 신자를 너희가 또한 똑같이 사랑해야 하지 않느냐? 기억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대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191:4.4 (2042.1) “그러면 온 세상으로 가서, 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들이 형제라는 이 복음을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선포하라, 그리고 인류의 다른 종족과 부족들에게 좋은 소식을 제시하는 방법을 늘 지혜롭게 선택하라. 너희는 이 하늘나라 복음을 거저 받았고, 좋은 소식을 모든 나라에 거저 주리라. 악의 저항을 두려워 말지니, 내가 언제나, 아니 시대의 끝날까지도 너희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그리고 내 평화를 너희에게 두고 떠나노라.”
191:4.5 (2042.2) “내 평화를 너희에게 두고 떠나노라” 말했을 때, 그는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갈릴리에서 나타났을 때 한 번, 5백 명쯤의 신자들이 한 때 그를 보았는데, 이것을 제외하면, 필라델피아에서 이 무리는 한 번에 그를 본 무리들 중에서 가장 컸다.
191:4.6 (2042.3) 이튿날 아침 일찍, 토마스의 기분이 풀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머무르는 동안에도, 필라델피아에 있는 이 신자들은 나사렛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선포하며 다녔다.
191:4.7 (2042.4) 다음날 수요일에 예수는 상물질 동료 사회에서 간섭받지 않고 지냈으며, 오후 중간에 놀라시아덱 별자리 전역에 걸쳐, 사람 사는 구체들에 있는 모든 지역 체계의 저택(邸宅) 세계로부터 방문하는 상물질 대표단들을 영접했다. 그리고 그들은 창조자가 우주 지성 존재에서 자기 계급 중의 하나임을 알고 모두 기뻐했다.
5. 사도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다
191:5.1 (2042.5) 토마스는 올리브산 근처, 언덕 둘레에서 혼자서 외로이 한 주를 보냈다. 그동안에 그는 오직 시몬의 집에 있던 사람들과 요한 마가를 보았다. 두 사도가 그를 찾아내고, 마가의 집에 있는 회합 장소로 그를 데리고 돌아간 것은 4월 15일, 토요일 9시쯤이었다. 이튿날 토마스는 주가 여러 번 나타났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만, 완강하게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이 주를 보았다고 생각하도록 베드로가 그들에게 열심을 불어넣었다고 주장했다. 나다니엘은 그와 이치를 따졌지만 아무 쓸모가 없었다. 버릇인 의심증과 관련하여 그의 감정은 고집스러웠고, 이 정신 상태는 그들을 피하여 달아났다는 창피스러운 느낌과 함께, 토마스 자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고립된 상황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그는 동료들로부터 물러나서 제 길을 갔는데, 지금 이들 사이에 돌아왔을 때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찬성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는 편이었다. 그는 항복하는 데 더디었고, 지기를 싫어했다. 뜻하지 않게, 그에게 집중된 눈길을 정말로 즐거워했다. 동료들 모두가 그의 태도를 바꾸고 확신을 주려고 기울인 노력으로부터 의식하지 못하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그는 꼬박 한 주 동안 그들을 만나지 못해 서운했는데, 그들이 끈질기게 주의를 기울인 것이 어지간히 즐거웠다.
191:5.2 (2042.6) 6시가 조금 지난 뒤에 그들은 저녁을 먹고 있었고, 베드로는 토마스의 한쪽에 앉고 나다니엘은 다른 쪽에 앉아 있었는데, 그때 의심하는 사도가 말했다: “내 눈으로 주를 보고,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기까지 나는 믿지 않겠노라.” 그들이 이렇게 저녁을 먹고 있는데, 또 문이 단단히 닫히고 잠겨 있는 동안에, 상물질 모습의 주가 갑자기 식탁의 둥근 곳 안에 나타났고, 토마스 바로 앞에 서서 말했다:
191:5.3 (2043.1)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온 세상으로 가서 이 하늘나라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다시 한 번 듣도록 너희가 모두 자리에 있을 때 다시 나타날까 하여, 내가 꼬박 한 주를 머물렀노라.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버지가 나를 세상으로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그렇게 보내노라. 내가 아버지를 드러낸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나날의 생활 속에서, 신의 사랑을 드러낼지니라. 사람의 혼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사랑하라고 너희를 보내노라. 너희는 다만 하늘의 기쁨만 선포할 뿐 아니라, 또한 나날의 체험 속에서 신다운 인생의 이 영적 현실을 보여야 하나니, 너희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물로서 이미 영생을 가졌음이라. 믿음을 가졌을 때, 하늘에서 권능이, 진리의 영이, 너희에게 다가왔을 때 너희는 문을 닫고 여기서 너희 빛을 감추지 아니하겠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온 인류에게 알리리라. 두려워서, 너희는 불쾌한 체험을 겪는 사실로부터 지금 달아나지만, 진리의 영으로 세례를 받고 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얻는다는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새 체험을 얻으려고 너희는 용감히, 기쁘게 떠나가리라. 전통을 부르짖는 권한이 주는 헛된 안정감으로부터, 생생하게 체험하는 최상의 실체의 사실과 진실, 그리고 이를 믿음에 근거한 새 체제의 권한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충격에서 회복하는 동안, 너희는 여기서, 그리고 갈릴리에서 잠시 머물러도 좋으니라. 세상에 대한 너희의 사명은 내가 너희 사이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생을 살았다는 사실에, 너희와 모든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실에, 기초를 두느니라. 그리고 그 사명은 너희가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그 인생으로―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너희에게 봉사한 것 같이, 사람을 사랑하고 저희에게 봉사하는 실제의 산 체험으로―이루어질지니라. 믿음으로 세상에게 너희의 빛을 드러내라. 진리를 드러내어 전통에 멀어버린 눈을 뜨게 하라. 너희가 사랑으로 봉사를 베풀어서, 무지로 인한 편견(偏見)을 효과적으로 없애라. 사람을 이해하는 동정심과 사심 없는 헌신으로 그렇게 동료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감으로, 너희는 아버지 사랑을 유익하게 깨닫도록 저희를 이끌리라. 유대인은 선을 찬미하고 그리스인은 아름다움을 높였으며, 힌두인은 헌신을 설교하였고, 먼 나라의 금욕주의자는 존경을 가르치고 로마인은 충성을 요구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제자들에게 일생을, 아니 육체를 입은 형제에게 사랑으로 봉사하는 일생을 요구하노라.”
191:5.4 (2043.2) 이렇게 말씀하고 나서, 주는 고개를 숙여 토마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너 토마스야, 나를 보고 내 손의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을 수 없다면 믿지 않겠다고 하였거늘, 너는 이제 나를 보았고 내 말을 귀로 들었느니라. 비록 네가 내 손에서 아무 못 자국을 구경하지 못해도, 네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또한 입을 모습을 입고 내가 살아났으니, 네가 형제들에게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너는 진실을 인정하리니, 믿지 않는다고 아주 굳세게 주장할 때에도, 이미 마음 속에서 네가 믿기 시작했음이라. 토마스야, 막 무너지려 할 바로 그때, 네 의심은 언제나 아주 굳세게 주장하느니라. 토마스야, 너에게 명하노니, 의심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라―그리고 네가 마음을 다해서도 믿을 줄을 내가 아노라.”
191:5.5 (2043.3) 이 말씀을 듣자, 토마스는 상물질 모습의 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외쳤다: “내가 믿나이다! 내 주여, 선생이여!” 그리고 나서 주는 토마스에게 말했다: “토마스야, 정말로 나를 보고 내 말을 들었은즉 네가 믿었느니라. 다가올 시대에 육체의 눈으로 보지 않고 사람의 귀로 듣지 않았어도 믿을 자는 복되도다.”
191:5.6 (2043.4) 그리고 나서, 주의 모습이 식탁의 상석 가까이로 움직이면서, 그는 모두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제 너희는 모두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내가 얼마 안 있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이 말씀을 하신 뒤에,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191:5.7 (2044.1)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열한 사도는 이제 넉넉히 확신했고, 이튿날 아침 아주 일찍, 동이 트기 전에, 갈릴리로 떠났다.
6. 알렉산드리아에서 나타나다
191:6.1 (2044.2) 열한 사도가 갈릴리로 가는 길에, 4월 18일, 화요일 저녁, 8시 반쯤에 여행 목적지에 가까이 가는 동안에, 예수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단과 약 80명의 다른 신자들에게 나타났다. 이것은 주가 상물질 모습으로 열두 번째로 나타난 것이다. 다윗의 사자가 십자가 처형에 관하여 보고를 끝냈을 때, 예수는 이 그리스인과 유대인들 앞에 나타났다. 예루살렘과 알렉산드리아 사이를 교대해서 달리는 사람들 중에서 다섯째인 이 사자(使者)는 그날 오후 늦게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는데, 그가 소식을 로단에게 전하고 나서, 사자로부터 직접 이 비극의 말을 듣기 위하여 신자들을 불러 모으기로 결정이 내렸다. 8시쯤에, 그 사자, 부시리스의 나단은 이 무리 앞에 와서, 앞의 주자(走者)가 이른 모든 것을 낱낱이 그들에게 일러주었다. 나단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이 말로 끝맺었다: “그러나 이 말을 우리에게 보내는 다윗은, 주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언하면서, 다시 살아나리라 선언했다고 전하나이다.” 마침 나단이 말하는 동안에, 상물질 예수가 거기에 모두가 환히 보도록 나타났다. 나단이 앉자, 예수는 말했다:
191:6.2 (2044.3)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내 아버지가 세상으로 나를 보내며 세우라고 한 것은 한 종족이나 한 나라, 어느 특별 집단의 선생이나 설교자에게 속하지 않느니라. 이 하늘나라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 부자와 가난한 자, 자유로운 자와 매인 자, 남자와 여자, 아니 어린아이에게도 속하느니라. 그리고 육체를 입고 사는 인생으로 너희는 다 이 사랑과 진리의 복음을 선포해야 하느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는 새롭고 놀라운 애정으로 서로 사랑할지니라. 내가 너희에게 봉사한 것 같이, 너희는 새롭고 놀랍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인류에게 봉사하리라. 사람들이 너희가 저희를 그렇게 사랑함을 볼 때,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저희에게 봉사하는가 볼 때, 너희가 하늘나라의 신앙 동료가 되었음을 깨달을 것이요, 너희의 인생에서 보는 진리의 영을 따라 영원한 구원을 찾으리라.
191:6.3 (2044.4) “아버지가 나를 이 세상으로 보내신 것 같이, 바로 그대로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노라.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라고 너희 모두가 부름받았도다. 이 하늘나라 복음은 이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속하느니라. 그 복음을 겨우 사제(司祭)인 자들에게 보관하라고 맡기지 말라. 곧 진리의 영이 너희에게 다가오겠고,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이끌리라. 그러므로 이 복음을 전하면서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라. 그리고 보라, 나는 언제나, 아니 시대의 끝까지도, 너희와 함께 있노라.”
191:6.4 (2044.5) 이렇게 말씀하고 나서, 주는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밤새 이 신자들은 거기에 함께 남아서, 하늘나라를 믿는 자로서 그들의 체험을 되새기고, 로단과 그 동료들이 한 여러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다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음을 믿었다. 이 뒤 둘째 날에 부활을 알리는 다윗의 사자가 도착했는데, 그의 발표에 답하여, “옳도다, 우리가 아노니, 우리가 그를 보았음이라. 그는 그저께 우리에게 나타나셨느니라”하고 그들이 말했을 때, 그 사자가 놀란 것을 상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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