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남색보자기> / 함영연 를 읽고
이 작품에서 가장 놀라운 부문은 보자기도 주인공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접한 의인화동화는 살아있는 동물이나 식물을 의인화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내가 의자를 소재로 의인화동화를 쓴 적이 있는데 의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소중애 선생님의 <짜장면>에서는 중국집 벽에 걸린 두루마리휴지걸이를 의인화해서 쓴 놀라운 작품이다. 그런데 그 작품에서 휴지걸이는 중국집에 오는 손님들을 관찰하며 이야기를 끌어나가지 휴지걸이의 심리나 생각의 변화를 통한 성장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에 반해 함영연 선생님의 <꿈꾸는 남색보자기>는 생선가게 주인아주머니의 도시락을 싸던 보자기에서 딸이 정신병원에 있는 할머니의 보자기가 되면서 겪는 과정에서 심리나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고 보자기가 새로운 꿈을 꾸게 되는 감동적인 결말을 이끌어낸다.
남색 보자기는 세상에 나오던 날, 공장 벽에 걸려 있는 ‘귀하게 쓰이게 하소서!’란 글귀를 보았습니다. 보자기가 꿈을 가지게 된 이유를 설득력있게 만든 장치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아 꼭꼭 새겨 두었습니다.
“귀하게 쓰이는 게 뭔데?”
세월이 흐른 태가 보이는 낡은 의자가 말했습니다.
“흔한 일 말고 소중한 일을 하는 게 아닐까? 특별하게 쓰이는 것 말야.”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특히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사고라 이 문장도 좋았다.
“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정성껏 하는 게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해. 넌 물건을 싸고, 난 사람들이 편히 앉게 하고, 지나보니 그래.”주제의식을 앞부문에 대화로 자연스럽게 들어내고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질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꿈꾸는 남색보자기>의 주제는 낡은 의자의 대화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찌보면 너무나 많이 다뤄진 진부한 주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자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할머니의 울적하고 슬픈, 다소 무거운 사연을 자연스럽게 녹이면서 무게감 있게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내가 이 작품을 쓴다면 보자기가 어떻게 할머니와 교감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다. 이 작품에서는 보자기가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보는 것도 있지만 할머니의 혼잣말을 통해서 보자기는 할머니의 사연을 알게 되고 점점 더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엄마, 엄마 보자기다! 맛있는 거 싸다 주던 엄마 보자기!”
할머니 딸이 남색 보자기를 들더니 가슴에 꼬옥 품었습니다.
“엄마, 엄마아!”
마치 하늘나라로 간 할머니라도 되는 듯 남색 보자기를 안고는 애절하게 불렀습니다. 남색 보자기는 어쩔 줄 몰라 쩔쩔맸습니다. 다만 자신이 할머니 딸에게 의미가 담긴 소중한 보자기라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순간 맡겨진 일을 정성껏 하는 게 귀하게 쓰이는 거라던 생선가게 의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맞아요, 제가 그 보자기예요. 그러니 얼른 정신 차리세요. 그래서 할머니 산소 갈 때 맛있는 거 싸서 같이 가요. 네?’ 이 장면에서 나는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 울먹였다. 어쩜 이리도 따스하게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을까.
남색 보자기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생선가게의자의 말이 주제가 되는 것을 앞부문에서 눈치챌 수 있지만 남색보자기와 할머니의 사연을 이어 이야기를 끌어나간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놀라운 전개였다.
항상 주제나 소재를 고민하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연결이 힘들었다. 이토록 사물에 대한 따스한 관찰이 있어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읽은 책
1. 고양이를 기르는 생쥐 / 이가을
2. 사임씨와 덕봉이 / 김리리
3. 책 읽는 유령 크니기 / 벤야민 좀머힐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