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편
주의 성산에 거할 자
요절: 1절
내용 관찰
15편은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1) 하고 하나님께 질문함으로 시작합니다. 장막은 성막을 가리키고 성산은 성막이 안치된 시온 산을 말함이니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 앞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라고 묻습니다. 이는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구속의 역사란 다름 아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인 것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 21:3에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하고 이 질문에 대한 성취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에서 성막을 허락하신 후에 레위기를 주셨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위기는 출애굽기에서 주어진 성막을 어떻게 시중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리고 레위기의 두 큰 주제는 ⓵제물과 ②거룩입니다.
14편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7)하고 구원에 필요한 대속 제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면, 15편은 하나님과 교제를 지속해 나갈 수 있는 ‘거룩'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5)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하는 주제는 신약적으로 말하면 주의 재림하시는 날 주님을 맞이 할 수 있는 자가 누구오며 주와 함께 거할 수 있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하는 문제입니다. 신약 성경은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 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고 말씀합니다.
15편에서 열거하고 있는 덕목들은 14편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소행과는 반대되는 거룩한 행실들이지 그것이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되어 있지 아니함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14편은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1)하는 마음의 뿌리에서 필연적으로 맺어진 악한 열매들이고, 15편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4)의 마음의 뿌리에서 필연적으로 맺어지는 선한 열매들임을 명심하십시오. 신약적으로 말한다면 성도들이 이루어야 할 성화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는 사람(2)이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기자는 구체적으로 마음에 진실을 말하고 혀로 남을 비방하지 아니함,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고 이웃을 헐뜯지 아니함, 눈은 하나님 울 멸시하는 자를 멸시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존대하며, 약속한 것은 손해가 되어도 지키며, 돈을 빌려주고도 이자를 받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열거합니다.
특히 4절에서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했는데, 망령된 자란 14편에서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들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한 말씀 속에서 하나님 경외하는 신앙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라고 그의 구원이 안전할 것과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23:6)될 것을 말씀합니다.
묵상해 봅시다.
다윗의 질문이 무엇입니까?
그에 대한 답변이 무엇입니까?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적용: 형제는 열거된 덕목 중 어느 것에 걸림이 되지는 않습니까?
암송: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5).
제 16 편
주의 거룩한 자
요절: 10절
내용 관찰
16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한 메시야의 예언시로 유명합니다(행2:25-28). 16편의 내용이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1)하고 1차적으로는 다윗이 당면하였던 어떤 경험임에 틀림없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사용하셔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케 하셨습니다.
16편의 핵심은 10절입니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대적자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다 해도 결코 버림받지 않고 부활할 것을 믿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키 위하여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님이 강림하셔서 베드로를 통하여 행한 첫 번 설교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여 증거하시기를 하나님이 다윗을 선지자로 사용하셔서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보는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스올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행2:30-31)고 예언케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은 행13장에서도 바울에 의해서도 인용되고 있는데 "다윗은 죽어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이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35-37)하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죽어 썩음을 당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로 보건대 다윗은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의 인물에 불과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나 바울이 원래부터 이 시편을 그리스도의 예언 시로 알고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하기는커녕 그들은 의심하고 부인하고 대적하던 자들입니다. 이는 순전히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나아가 베드로도 바울도 자신들이 죽임을 당한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담대히 순교할 수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살전4:16)될 때에 다윗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다윗뿐만 아니라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3)한 존귀한 모든 성도와 함께 "영원한 즐거움"(11)에 다같이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이요,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다윗에게 보여주신 "생명의 길"( 11)이었던 것입니다.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2상)하고 아룁니다. 이 단순한 신앙고백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주가 나의 주시라면 나는 주의 종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2하)라고 말씀합니다.
16편에서 말씀하고 있는 다윗의 소유를 보면 여호와는 "나의 주", “나의 복'’(2), “나의 산업”, “나의 잔의 소득", “나의 분깃”(5), “나의 기업”(6)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수종드는 레위 지파에게 다른 분깃은 주심이 없이 "나는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민18:20)고 여호와 자신을 주심과 같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썩어져 없어질 세상 분깃보다는 하나님 자신을 나의 기업, 나의 분깃으로 삼아 만족함이 필요합니다.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6).
묵상해 봅시다.
다윗의 신앙고백이 무엇입니까?(2)
l0절은 1차적으로 다윗의 어떤 고백입니까?
그 말씀이 메시야에 대한 어떤 예언이 되었습니까?
적용: 형제의 산업과 형제의 분깃은 무엇입니까?
암송: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