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반테 5733 세상 떠나던 날 2014년10월25일 새벽 핸드폰 저음으로 울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제 방에서 자고 있을 딸 지원이가"엄마 나 사고 났어 "핸드폰 에서 들려온다. 지원이가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 운전 면허증을 땄다. 곧 이어 "아반테" 를 만나 지원이는 몇 년을 사랑하며 동서남북 어디든 쉴 사이 없이 즐겁고 기쁘게 달리고 달렸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10월25일 새벽 미아 사거리에서 아반테 와 택시가 쾅 부딪쳐 사고가 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하였다. 지원 이는 연극 학부 라 수시로 소품 준비 때는 아반테 덕을 많이 봤다. 연극교육학부 대학원 다닐 때도 친구들 교수님 소품들도 아반테가 달렸다.그날도 새벽 미아리 사는 동생 노랑이가 소품을 갖고 있어 데리러 가야한다고 나더러 새벽에 깨워 달랬다.그런데 어느새 나가 미아리에서 사고를 냈단 말인가? 나는 대부분 지원이가 기척만 있어도 일어나는데 그 날은 무슨 일로 그랬는지 지원이가 나가는 것을 모른 채 깊이 잠들었었다. 지원이가 서너 살 유치원 때부터 집을 나설 때는 "주님 오늘도 저의 딸 지원 이와 무사하고 행복한 동행을 하여 주소서" 라고 기도와 뽀뽀를 하고 보냈다. 지원이가 늦는다고 방방 뛸 때도 나는 기어이 붙잡고 기도 후 보냈었다. 그날 새벽에도 아직 제 방에 자는 줄 알았는데 이 새벽 벌써 미아리라니 지원이 말이 엄마가 곤히 잠 들어 깨우지 않고싶어 가만히 나갔단다.지원이 목소리는 의외로 침착했다."엄마 나 사고 났어 여기 미아사거리에서 택시와 부딪쳤어"그 말 을 듣는 순간 나는 갑자기 강한 파도에 부딛쳐 모래가 눈과 입과 귀로 가득 들어가 곤두박질 쳤던 아주 오래전 강릉 바다의 파도에부딪쳤던 생각이났다. 그때 정신을 잃었을 때처럼그랬다. 지원 이는 이어서 "엄마 나는 다친데 없목이 약간 목이 뻐근할뿐 동생노랑이는 이마를 약간 다쳐 병원에 입원 했어, 지금 미아리 경찰서 에서 조사받고 나왔어 벌금이 나올 거래 "아반테는 폐차 시켜야한데"지원 이는 숨도 쉬지 않고 내게 말했다. 그 속내 는 빠르게 결과를 알려주어야 엄마가 안심하겠지 하는 지원이 의 마음을 헤아리며 나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다행이구 나 그제야 멎었던 숨이 돌아오는 듯 했다. 아 !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하고서는 그럼 택시 아저씨는괜찮아? 다행이도 택시 기사님도 본래 미아리 사거리 신호가 복잡하여 초행인 경우 사고가 잦다면서 좋은 쪽으로 합의가 되었다고 한다.보험회사 직원이 곁에 있다기에 바꿔 달라 해서 통화했다.어차피 아반테를 인천으로 견인해 와야 한대서, 나는 그분에게 우리 딸 지원이가 마음 편히 잠시 눈 좀 붙이게 해 주시고 견인해 와 달라했다. 거리가 멀어, 요금이 꽤 된다고 했다. 난 괜찮다하고 거듭 부탁했다. 그리고 지원 이에게는 아무생각 말고 보험사 차타고 눈 붙이고 한숨자면 집에 도착해 있을 거라고 했다. 사실은 지원이가 얼마나 놀라고 두려웠을까 나는 그저 지원이가 무사해서 감사하다는 생각뿐 다른생각은 하지못했다 가까이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나는 더욱 가슴이 저려왔다.지원이가 새벽에 나가려고 밤을 꼬박 새운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지원아 너 다친데 없다하니 얼마나 다행이냐"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느님이 도우셨으니 감사해야지 마음 차분히 다스리고 집에 도착하면그때 와서 엄마랑 집 가까운 병원 같이 가자" "아저씨께 말씀 잘 드렸으니 옆 좌석에서 눈 꼭 감고 한숨자면 집에 도착 할거야" 말 하고서 다시 그 분께도 잘 좀 데려와 달라고 다시 한 번 공손히 부탁드렸다. 친절 하게도 그분은 미아리 에서 인천 까지 지원 이를 잘 보호하며 무릎 담요도 덮어주고 집 앞 주차장 까지 도착하였다. 오는 동안 내게는 천년 같은 시간이 흐르고 지윈 이는 무사히 왔다. 일단 지원 이를 꼭 안아주며 몇 번이고 지원아 괜찮아? 괜찮아? 이만하길 다행이야 하고 등을 쓸어주고 또 쓸어주며 마음을 가라앉게 해서 집으로 들어와 누워 쉬게 한 후 주차장을 다시 나와 보니 아반테는 형체를 알아볼 수없이 다 찌그러지고 번호판도 달랑달랑 하였다.그런데도 우리 지원 이는 아무데도 다친 곳이 없었다. 필경 하느님께서 도와 주신 것이야 성모님께서 도와주신 것이야 나는 차에 항상 묵주를 걸어 두었었다. 나는 늘 지원아 운전 시작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하느님 지원 이와 동행 하여 주소서 그렇게 기도하며 오고가야 한다." 라고 누차 말했었다 그러니 하느님의 보살핌 아니고서는 차가 이렇게 부서 졌는데 노랑이도 지원이도 아무렇지 않다니 앞 유리창 도 금이 커다란 불꽃처럼 퍼졌는데 동생 이마도 약간 부었을 뿐 괜찮다고 입원도 안하려는걸 강제로 시키고 왔다고 했다. 나도 지원 이를 데리고 집 앞 현대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동안 연극준비 한다고 동분서주 밤샘하며 고생 많았었다. 다 잊고 푹 좀 쉬게 해주고 싶었다. 아반테는 나의 미련 때문에 4~5일 가량 집 앞 마을 주차장서 비참한 모습으로 머물렀었다. 나는 오며가며 아반테의 고통스러운 모양을 가슴 아파 더는 볼 수 없었다. 모두들 도저히 치료받아 재생할 길이 없다고 했다. 결국 아반테를 폐차장으로 보내기로 했다. 5733 아반테는 제 몸을 다 망가뜨리면서 주인인 지원 이를 보호 했으리라 는 생각이 들자 아반테를 부둥켜안고 울고 싶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엄마와 단둘이 여행한다고 부산 해운대로 경주로 영덕으로 그리고 깊은 밤 달빛 속에서 산청군의 벽화를 황홀하게 감상했던 일도 생각난다. 또 지난여름 우리 가족여행 계획 세워 포항 어느 바닷가 펜션에서 머물다. 폭풍이 몰려온다며 아파트의 유리창을 신문지로 붙여야 한다고 해서 겨우 하룻밤자고 새벽에 전국일주를 하다말고 부랴부랴 인천 청라 집으로 올때 에도 아반테는 많이 수고했다. 지난3월에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도 아반테가 모시고 다니며 담양 노천 온천도 모셔가고, 담양 떡갈비 집과 대통나무 밥집도 가고 청옥동 장식이네 청동오리집 으로 해서 어머니 친정인 고서 해평리 그리고 담양 창평 어머니의 시댁 나의고향 유천리를 한 바퀴 여행 했었다.우리와 함께 그 많은 추억들을 뒤로하고 아반테는 미아리 사거리 신호위반 으로 한생을 마쳤다.사고를 겪고 나서 우리는 매일 아침기도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느꼈다. 우리 모두는 그날그날 하루하루가 늘 마지막날 이라는것을 항상 기억하고 최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날마다 지상의 재해는 여기저기서 펑펑 터져도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하며 감사하며 항상 기쁘게 살기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주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날새벽 지원이가 미아리에서 교통사고 있었을 때 주님께서 보살펴 주셨음을 저는 압니다.깊이깊이 감사드립니다. 택시 기사님도 지원이도 동생노랑이도 모두 무사히 지켜주시고 지원이 사고 건을 맡아주신 미아리 어느 경찰관님 그리고 (악사)보험사직원 그리고 견인 하신 분 아반테 폐차 결정 후 우리가족들과 함께 깊이 생각하고 의논하고 마음아파 하시며 최종으로 폐차를 결정하고 아반테를 가져가신 분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분들 모두 에게 주님의 축복을 내려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