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발양,
소아 선생의 오두막,
휘정, 향산, 원천 형님을 비롯하여
소아 선생의
붓질 문하생 스무남은 명이 모였다.
잠깐이라도 얼굴 내민 사람까지 치면
쉰 명은 되었음직하다.
준비한 음식은
방앗간에서 쪄 온 흰 쌀밥에
냉이와 배추잎 넣고 끓인 된장국.
뜨끈한 두부에 동치미 국물,
막걸리 안주에 홍어 무침까지.
"냉이 캐다 얼어죽을 일 있간디.
시장에서 사두 먹을 만허지?"
직접 캔 냉이로
국을 끓이지 못한 게
무슨 미안할 일이라고
원천 형님, 괜히 손을 비빈다.
-먹을 만하다마다요.
날씨가 추워진 게
천만다행입니다요.
마당에 피운 모닥불가에,
외양간에 들인 붓질방에,
부엌 아궁이 앞에,
쪽마루 아래 뜨락 난로가에
삼삼오오 둘러서서
밥술을 뜨고 국을 후루룩 들이켜고
권커니 자커니
술잔을 드는 풍경이
오랜만에 시골 잔칫집에라도 온 듯하다.
천안 문하생,
휘정 형님,
소아 선생,
돌아가며 자작시와
애송시를 낭송하더니
느닷없이
마이크 앞으로 불러 세운다.
그까이꺼,
오늘은 좋은 날,
기꺼이 주최 측의 농간에 놀아나기로 한다.
죽이 되는지 밥이 되는지
몇 마디 하고 돌아서니
이어 소리꾼
이걸님의 무대.
민초들의 질퍽한 소리를
북장단에 맞추어 듣는다.
"십오야 밝은 보름달은 하늘에서 놀고요
"우리네 큰애기는 내 품 안에서 노오네"
진도 아리랑 가락에 입힌
장난스런 노랫말에
좌중은 클클대고......
"무대가 마약보버덤 독햐.
한번 스기 시작허믄 끊지를 못햐."
고수 하나 대동하여
여기저기 크고작은 무대에 서는 이걸님.
처음 만난 십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변함없는 '촌놈' 모습이다.
요즈음은 피아노계 기인과
잘 놀고 있다고 슬쩍 흘린다.
내년 1월이면
놀며 쉬며 채록한 속담 사전도 나온다는데
재주 많고 끈질긴 이걸님이 만든
또 하나의 매듭이다.
"여긴 워떠키 오셨슈?"
"오늘 놀아본다구
소리나 헌 자락 혀보라뎌."
소아 선생의 붓질 흔적이 사방에 깔린
오두막을 둘러보고서는 하는 말.
"즌시휘 띠 만나 빕구서는
아, 참 간이 맞는 분이구나 혔쥬."
간이 맞다니, ㅎㅎㅎ
"그럴 때 개갈 나는 분이더라구 허문 말이 되남유?"
불쑥 이렇게 묻고 만다.
"에, 또, 거시기.......
충청도 말이 그런 기 있슈.
개갈 안 난다 허먼 좋잖다, 시원찮다 그 말인디
개갈 난다 허먼 그 반대니끼
좋다, 시원허다 그래얄 꺼 아뉴.
근디 그기 글치가 않응개비.
비아냥대는 뜻이 됭게."
개갈 안 나는 질문에
똑 소리 나는 대답이 돌아온다.
소리 무대가 정리된 후
드디어 빰빰빠빰빠아바아~
반년간 갈고 닦은
향산, 휘정 부부의 색소폰 무대.
향산 선생은 눈에 뵈는 게 없도록
선글라스 눈에 끼고
휘정 형님은 무대용 모자까지 썼다.
앞축 납작한 밀정 모자도
무대에서 쓰면 무대용이다.
낙엽 지던 그 숲속에 파란 바닷가에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당신은 모르실거야 얼마나 사랑했는지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 가는 날에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 준다면
목이 메어 불러보는 이 마음을 아시나요~~~
힘도 좋으시지,
쉬지도 않고 메들리로 불어 젖힌다.
지난가을 영평사 무대에 섰을 때보다
한결 실력이 향상되셨다.
이러다 '마약보다 독하다'는
무대 중독에 빠지지 않으시려나
걱정될 정도.
잠시 휴식 시간.
깨떡 콩떡 꿀떡 바람떡......
요런조런 떡과
귤, 감, 사과.....
이런저런 과일에
난로 위에 팔팔 끓는 쌍화차 한 잔씩.
(이 못 말리는 음식 밝힘증)
이제 본격적으로 노래 타임.
샌님처럼 앉아만 있던 화정 부군이
맨 먼저 마이크를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화정을 향하여
사랑했어요~ 열창하고
마이크를 건네받은 법화,
한 술 더 떠
사랑밖엔 난 몰라~ 절규하고
뒤이어
여러 가수 밥줄 위협했을
가수 안 된 카수들이
노사연의 뺨을 치고
설운도의 등을 민다.
아침에 배달되었다는 노래방 기계에
번호를 누르고
이 노래 저 노래 돌아가며 부르고
덩실덩실 어깨춤에
실룩샐룩 엉덩춤
똑딱똑딱 손가락춤까지
한 바탕 두 바탕 춤판이 이어지고
마음은 유년이고
몸은 청춘인 중년이
노년처럼 슬슬 힘이 달릴 즈음
느지막이 등장한 원천 형님 둘째 아들,
쌈빡한 젊은 피로
좌중을 사로잡아
꺼져가던 무대에 다시 불을 지핀다.
홍합 국물로 대미를 장식하고
"잘 놀었슈."
"또 놀어유."
참말 빈말
주고받으며
바깥에 나오니
코끝으로 바싹 달려드는 촌동네,
겨울 밤 저무는 냄새.
동네 개는 속도 없이 또 짖어대고
낮에 나온 눈썹달은 하마 자러 갔고
함박눈 못 된 싸락눈 개갈 안 나게 날리더라.
2009. 홍차 |
첫댓글 ㅎㅎ오타 발견. 설훈도> 설운도 ^^* // 홍차님의 한 해는 아름답게 저뭅니다^^*
오,예~(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 들여다보면 주책입니다.) 즉시 교정 돌입~~~
단어실력도 대단하십니다,,,좋은 시간이 되셨나요
예.~ 감사합니다.
글도 차암 잘 쓰셔라 어쩜 이렇게 재미나게 술술 나오는지 ....초록은 동색이라고 멋장이님들이 다 모인 송년회네요
울친구들은 나 닮아 노래방 갈줄도 모르고 모두 음치만 모여 재미 없어라 입니다
감곡 소현님, 눈동자 반짝 빛내며 말씀 시작하시면 진짜 재밌을 것 같은 예감~~~
홍차님 오랫만에 감칠맛나는 송년기 보네요^^
잘 봤시유^^
역시 잘 쓰셔유..최고구 먼유^^
에겅, 지 조아서 쓰다가 마는 거쥬 머~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느꾸지한 충청도 사투리를 소리내어 보는 날 발견합니다 ㅎㅎㅎ 쑥스럽구먼유~~~ ㅎ
개갈 안 나는 거 읽니라 고생했슈.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