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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카페 길 위의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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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도보후기와 사진 스크랩 한바탕 크게 울어볼만한 땅이여, 장성-광주-나주 백리길
당선생 추천 0 조회 242 13.09.02 15:21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건륭제 칠순잔치 축하사절단의 수행원으로 북경을 가는 도중에 1200리나 아득히 펼쳐지는 요동벌판을 바라보면서 같은 수행원인 정진사에게 건네는 말이다.

 

"멋진 울음터로구나. 크게 한 번 울어볼 만하도다." 

옆에 있던 정진사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하늘과 땅 사이의 큰 안계(眼界)를 만나서  별안간 통곡을 생각하시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그렇지, 그렇고 말고, 아니지, 아니고 말고, 천고의 영웅은 잘 울었고, 미인은 눈물이 많았다네.

그러나 그들은 몇 줄기 소리없는 눈물을 옷깃에 떨굴 정도로만 흘렸기에, 소리가 천지에 가득차서 쇠나 돌에서 나오는 듯한 울음은 울어본 적이 없단 말이야. 사람들은 다만 희로애락애오욕 칠정(七情) 가운데서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 뿐, 칠정 모두가 울 수 있다는 건 모르지.

 

기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슬픔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사랑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미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야.

 

왠 줄 아는가?

근심으로 답답한 걸 풀어버리는 데에는 소리보다 더 효과가 빠른 게 없거든.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일세.

지극한 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절로 이치에 딱 맞는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에 다르겠는가?

 

호곡장好哭場, 연암이 남긴 열하일기 중에서도 천하의 명문이라고 이름높은 문장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상화 선생의 시로 노래를 지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그 노래가 고팠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개벽>(1926) -

 9월의 첫째날 빛고을 광주의 오래된 유원지 송산유원지의 냇물을 건너 고갯마루로 올라가는 길에 가사가 다 생각나지 않는 노래를 자꾸만 불러보았다. 어제 큰 비가 내렸다는 남도의 땅에 한 여름의 뭉게구름과 가을하늘의 막음이 눈이 시릴 정도로 대조되었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희고 대지의 녹색식물은 그 푸르름의 극에 달했으며, 붉은 황토는 푸름과 흼, 녹색에 비추어져 더욱 붉었다. 18세기 말, 압록강을 건너 요동의 땅을 밟아보고나서 마땅히 울음을 터트릴만한 땅이로다라고 노래한 연암선생의 감탄과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시인 상화가 노래한 가르마 같은 논길로 이어진 길을 걸으며 자꾸만 고장난 녹음기처럼 노래가 되풀이 흥얼거리고팠다.  

 

 삼남길이라 이름 붙여진 길, 12번째 구간 장성역에서 광주 광산구 송산유원지까지 22km, 영산강의 제 1지류 黃龍江을 따라 걸어 호남의 제일도시 광주 송정역 근처에서 묵었고, 그 다음날 다시 송산유원지에서 나주 정렬사 입구에서 시작하는 삼남길 11구간을 종점으로 하는 21km를 걸었다. 유순하게 구릉으로 이어지는 길은 전라북도에서 남도로 넘어오던 때 장성에서 만난 갈재와 장성재와는 달리 흥타령의 후렴처럼 낮고 길게 이어진다. 錦城이라 불리웠던 나주는 예나, 지금이나 비단 금과 비단천을 뜻하는 羅자가 들어가는 도시이니 한반도의 먹을거리를 길러주는 기름진 땅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이틀 동안 100리 길 넘는 43km를 걸어 나주에 도착했다. 이번에 함께 한 길벗 道伴들은 해원님, 보다나은님, 인생은 즐거워님, 겡끼유끼님, 잉크님, 불계님, 버디송님, 너럭바위님, sultan님, smilelee님, 당선생이었다. 

 

 

 하루 전에 많은 양의 비가 내려 호흡하기에 공기는 싱그러웠고, 눈이 닿는 곳,시계視界는 거침없이 넓었다. 내장산과 백암산에 근원을 두고 있는 황룡강은 장성역에서 아래로 조금 내려가니 만날 수 있었고, 그 강이 호남평야 젖줄 영산강을 만나는 첫번째 지류라 한다. 이삭이 패어 누렇게 물들어 가는 벼도 보이는 들판이 길과 늘 함께 했다. 그동안 걸어내려오던 길과는 달리 숨이 목까지 차오르는 오르막과 내리막은 황룡강을 만나서는 훨씬 순해져 있었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나의 노동이 붉은 황토흙에 섞이길 잠시동안 바랄 정도로 성품이 부드러운 땅들은 결실을 내놓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보니 어느덧 광주에 접어들었고, 그 첫들머리에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선생의 월봉서원을 들리게 되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고봉 기대승의 8년 간에 걸친 사단칠정논쟁은 조선 성리학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이론논쟁으로 이름 높다. 생전에 이미 경지에 올라 뭇 사림으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던 26년 연배가 높은 대학자 퇴계 선생에게 찾아가 후일 주기론이라 불린 입장에서 퇴계선생이 집대성한 주리론을 비판한 백면서생 고봉 기대승에게 답하여 퇴계선생이 먼저 서찰을 보내와 8년간 편지로 이어지는 두 학자의 논쟁은 시작되었다. 그들의 논쟁을 모은 책을 최고의 학문서라 탐독했던 조선의 철인哲人군주 정조는 후에 고봉선생을 모신 월봉서원에 빙월당氷月堂이라는 택호를 내려주기까지 한다.

 

 

 

 

 3시 쯤 되어서야 광주시 광산구 임곡마을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메뉴는 육개장과 내장탕, 주린 배를 채우고, 쉬다 4시가 되어 출발한 길, 머지 않아 종착지인 송산유원지에 도착했다. 낚시도 할 수 있고, 가족들과 고기도 구워먹을 수 있어 사랑받는 공간이었다. 19번 버스를 타고, 광주송정역 근처에 내려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떡갈비 골목이니 뭘 먹겠는가? 빛고을 광주 북서쪽 변두리에서 휴식의 밤을 보냈다.

 

 

 새벽 6시 20분에 아침 식사를 부탁해 놓은 smilelee님의 노력으로 속풀이할 수 있는 콩나물국을 내놓은 맛깔진 아침식사를 하고, 7시 30분에 송산유원지에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광주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16km 이상 걸어서 나주경계에 들어서서야 동네 구멍가게를 만나게 되었다. 옛이름 錦城, 비단 같은 고을은 처음 만난 나주의 구멍가게에 들어서서 그곳 사람들의 마음이 비단결이란 걸 알게 되었다. 도회에 살면서 문밖에 나가면 가게를 들러 뭘 살 수 있는 줄 알다가 16km를 걷고 나서야 비로소 만난 가게, 아이스크림과 주당들이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며 갈증을 달랬다. 1,200원을 받는 과자 하나를 집어들고 할머니에게 잔돈이 없으니 200원을 깎자고 얘기했다가 1,000원에 떼와서 200원 남는데 그건 안된다며 완강히 거절하는 할머니는 가게 냉장고에서 배랑, 김치, 고추절임, 밥은 솥째로 내어 주셨다. 가게에서 맥주 한잔하시던 배밭을 하시던 나 사장님은 배를 박스채로 일행들에게 내 주셨다. 걸어서 서울에서 나주까지 내려온 신기한 사람들에게 나주 사람들이 인심을 쓰는 방식이 그러했다.

 

 

 

 처음 걸었으나 정겨운 동네 뒷산으로 올라가니 나주 동신대학 정문이 보인다. '저곳이 정렬사 바로 옆인데......'하고 옛기억을 떠올리다 삼남길 리본이 달린대로 발길을 옮겼다. 이리저리 길이 생긴대로 걷다가 정렬사입구에 도착했다. 정렬사旌烈祠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이름을 드높였던 김천일 장군을 모신 사당, 이곳이 삼남길 11코스가 마치는 곳이고, 걸어서 서울에서 제주까지 도보여행단이 두 달간 걸은 12번째 길의 종착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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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9.02 15:55

    첫댓글 다 갔다 왔어요~저두~ㅎㅎ
    이렇게 당선생 글을 읽어 내려오며, 그 곳에 분명 같이 했음을~^(^
    아무나 지니지 못할 시간을 지닌 길위의 도반님들께 박수를~~~

  • 작성자 13.09.03 08:06

    같이 하셨다니저도 기쁩니다.~

  • 13.09.02 18:51

    길위의 역사학 카페지기답게 역사에 조회가 깊어서 대원 모두 배울점이 많아요!! 글솜씨도 훌륭하고요!!
    그러데 송산 유원지에 낚시금지라 써있는데요!!

  • 작성자 13.09.03 08:07

    관의 허락을 무시한 새벽 강태공에 낚였군요. 앞장 서는 버디송님의 뒷모습이 자랑스런 길이었습니다.~

  • 13.09.02 19:31

    200원에 빵 터졌습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
    전혀 계산적이지 않는...
    나주배 맛을 못봐 아쉽네요.
    분명 인심만큼 달달했겠지요?

  • 작성자 13.09.03 08:08

    껍질이 얇은 그런 풋내가 섞인 배맛이었습니다. ^^*

  • 13.09.03 01:21

    더도 덜도 아닌 그대로의 여정...
    거기에 있어 그대로 그려지는 ...

    이제사 알게되었네요..
    왜 그리 음도 박자도, 게다가 가사는
    전혀 아닌 노래를 흥얼 중얼 거리셨는지...

  • 작성자 13.09.03 08:09

    음치의 흥얼거림이 귀에 거슬렸을텐데........ㅜ.ㅜ;;;

  • 13.09.03 07:53

    토요일 개인적인 일이 있어 부득이 참가를 못했는데 후기를 보니 약도 오르고 부럽기도 하네요ㅠㅠ 마음 달래려 일요일 빼먹은 오산~평택구간을 나홀로 땜빵도보 했습니다요~~

  • 작성자 13.09.03 08:10

    와우 대단한 투혼입니다. 9월의 마지막 주 누릿재를 넘어 월남사 탑을 보면 마음이 풀리실겁니다.~~

  • 13.09.04 10:52

    자~알 하셨습니다~~~ 짝! 짝! 짝!! ㅎ

  • 13.09.03 08:41

    "길위의 역사학" 작명이 탁월함을 당선생의 후기를 통해 다시한번 실감합니다. 남도의 걸음이 또 기다려 집니다.ㅎㅎ

  • 13.09.03 20:29

    넷! 그러하옵니다...
    깃발님의 멋진 후기가
    그대로 돋보이는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제사 제대로 마음으로 읽혀지네요...

    내 언젠가 연암님의 발자취를 따라 호곡장 터 요동땅을 밟아보리!


  • 13.09.04 13:21

    당 선생님! 그 소리도 그날의 꼭 있어야할 한 풍경이었답니다...&♬♬♬♬

  • 13.09.04 18:21

    해오름터님!
    오산 ㅡ 평택구간의 푸른하늘, 너른 평택평야, 느긋한 오산천 강물,모두 남도와 다르지 않은듯..
    길고 무더운 여름을 보낸 초가을
    결실의 정취가 사진 한장에 고스란히...

    에공! 답글 달기를 잘 못 해서리 ...

  • 13.09.05 09:48

    해원님의 넉넉한 마음에 늘 감사^^ 장성~나주길을 어떻게 땜빵할까 궁리중입니다요~

  • 13.09.07 08:15

    아이구 이건 왜 이렇거 작게 뜨지?
    나중에 봐야겠구만.
    긴머리남자들 머리 좀 감읍시다.
    만원전철안 허리까지 오는 머리칼 풍성한 사내놈.
    머리 안감아서 내가 죽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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