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와 체게바라의 사진들을 펼쳐보이면서 과거 쿠바위기를 이야기하는 중년의 남자.
카메라 주위로 몰려드는 쿠바의 어린아이들, 이제는 잊혀져서 흔적조차 희미한 클럽을
찾으러 가는 콤빠야 세군도. 교차적으로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멤버들이 암스테르담
Le carre홀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을 비춰준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된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곧 영화는 음악을 타고 흐르고, 음악은 영화와 하나가 되어간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란 원래는 쿠바음악의 전성기로 불리는 1930~1940년대
쿠바의 수도 하바나 동부에 있던 고급 사교클럽을 지칭하는 말이다.
당시 하바나에는 카바레·클럽 같은 사교장이 번성하였는데, 쿠바음악의 황금기를 일군
대표적인 음악가들이 모두 이 클럽에서 음악을 연주하였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은 '환영받는 사교클럽'을 뜻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1930-40년대 하바나의 고급 사교클럽의 고객들 중
상당수가 당시 미군 장교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중의 한 명이었을지도 모르는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냉전시대 쿠바위기 당시 군부를 이끌고 케네디에게 쿠바란 섬을
선빵으로 날려보내자고 바람을 넣었고, 후에 전역한 뒤 부통령 출마에서 베트남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베트콩에 폭격을 가해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란 발언을 한 똘추였다.)
그러나 쿠바혁명으로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회주의 이념을 담은
포크송이 주류를 이룸에 따라 쿠바의 전통음악은 뒤로 밀려났다.
이로 인해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비롯해 번성하던 하바나도 쇠퇴하고,
이곳에서 연주하던 음악가들도 뿔뿔이 흩어졌고, 각자 눈앞에 닥친 생계를 걱정하는 사이
그들은 서서히 잊혀져 갔고 이후 30여 년 간 쿠바 음악은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
모름지기 예술이란 그 시대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그 시대에 가장 쉽게 휘둘릴 수 있는
무엇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시대를 뛰어넘어 재평가를 받기도 하는 것이고..
감독 빔벤더스와 제3세계 음악가 라이쿠더는 이미 파리텍사스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들을 다시 찾기 위해서 빔벤더스 감독과 라이쿠더가 쿠바를 찾았고,
마치 숨겨진 보물찾기를 하듯이 하나 둘 세월속에 잊혀졌던 이들과 조우한다.
그리고 그 만남의 결과 이 영화가 만들어졌고,
아름다운 쿠바의 음악들이 비로소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국내에는 Veinte anos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CF에 삽입되어 인기를 끌었지만,
이브라힘과 오마라가 마주보면서 부르는 silencio야말로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음악들 중에서도
단연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두 남녀의 노랫소리에는 여전히
삶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이 느껴진다.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공연에서 노래가 끝난 뒤 서로
등을 토닥거려주면서 이브라힘이 오마라의 눈물을 닦아 주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
*아쉽게도 이 곡은 그렇게 많이 팔렸다는 OST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영화가 끝을 향해서 갈 수록 이유없는(혹은 이유모를) 눈물이 나는 것은 왜일까.
이 영화는 기승전결이라든지, 감정의 기폭제가 될 만한 구도나 장치는 없다.
화면을 잡아나가는 시선은 따뜻하긴 하되 어디까지나 관조적이고, 자극적이지 않다.
그다지 가슴 찡한 장면도 없었을 뿐더러 뭔가 강한 임팩트도 없었다.
(아니면 그 잔잔한 감동을 글로써 옮길만한 재주가 모자란 듯 싶다)
점점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매체들의 홍수속에 냉소적이고, 삐딱하게 변해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미 인생의 끝에 다다른 멤버들의 얼굴에 깊게 새겨져있는
주름살에서 느껴지는 순탄치만은 않았을 듯 한 인생사,
그리고 그것마저 초월해버린 듯 한 여유와 변하지 않은 열정과 순수함,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잃지 않는 유머는적지않은 감동이었다라고 믿고싶다.
영화의 관점이 클럽의 멤버들의 삶을 관조하면서 던지는 잔잔한 애정에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실재 삶은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문명 사회의 기준에서 볼 때
후진국이라 분류받은 쿠바에서 그 국민들의 실재 삶은 힘겹지는 않을까.
포스팅을 하기 위해서 자료를 좀 찾던 중 미국애들 블로그에서 비교적 최근에 쿠바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글들을 볼 수 있었다.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에 나올법 한 하바나의
클럽들에는 현지 사람들이 거의 없고, 환상에 젖어 홀려온 듯한 미국과 유럽관광객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호텔로 돌아갈려고 밖에 나왔더니, 10대 초중반의 어린소녀들이 달러를
외치며 매춘호객행위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여유롭게 그들의 음악cd를 사서 듣고,이국적인 사진 몇 장에 막연한 환상을 품을 법한
사람들 뒤의 실재 쿠바의 모습은 저 미국애가 말한데로가 아닐까 한다.
언젠가 TV에서 쿠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하바나 해변을 담은 화면은 요란한 배경음악으로 시시한 뮤직비디오를 연상케했고
길거리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을 앵글에 담아내면서 과도한 화면효과를 사용했었다.
현지 사람들과의 짤막한 인터뷰들은 어떻게 편집을 했는지 인생에 대해서 달관한 기인처럼 묘사되었다
근래들어 쿠바는 CF촬영 장소로 많은 각광을 받기도 했었다. 모댄싱그룹 출신의 강씨와
몇몇 인기연예인들이 그곳에서 광고촬영을 했었다. 뽀샤시한 화면속에 매력적인 남녀들이
한 껏 분위기를 잡고 있으면, 그 뒤의 낡고 허름한, 지어진지 족히 한 세기는 되보이는
건물들마저 이국적인 아우라를 뽐내는 듯 했다.
반세기를 넘게 지속되 온 정치적 불안함은 쿠바의 발전에 분명 장애물이었다.
냉전체제의 찌꺼기와 미국과의 갈등은 50년 넘게 이 작은 섬나라의 숨통을 조이고있다.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 안 듣는 지도자 덕택에 국민들은 많은 고통을 감수했었다.
팍스아메리카나의 개념원리는 사상을 그다지 따지지않는다. 공산이든 독재든 왕정이든,
그 국가지도자와 정치판이 미국을 신봉하면 그걸로 만사OK니까..
또한 오랜 기간의 미국의 금수조치로 국가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90년대 초반 구소련의
붕괴로 원조를 받지 못하게 되자 쿠바는 미국의 달러화 유통을 허용했지만, 최근에 미국에서
쿠바로 입금되는 달러화에 대한 제재를 가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 달러화 유통을 금지시켰다.
(쿠바에 대한 금수해제를 요구하는 유엔의 결의안이 통과된 것만 13번째다.
하지만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그동안 미국은 쿠바정부가 기본적인 인권도
부정하고 있다며 금수해제를 요구하는 유엔 결의안을 여전히 무시하고 있다.
즉 쿠바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그만큼 했으면 충분하다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조성된지 오래지만,
미국의 슈퍼파워는 그 정도는 가볍게 쌩할 수 있을만큼 대단한 것이었나보다..)
작년 초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그래미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오려던
쿠바 음악가 5명의 비자발급이 거부되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 중에는 영화에 출연했던 이브라힘 페레도 있었다) 이에 대한 미국측 답변이 기가찬다.
쿠바 음악가들은 쿠바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카스트로 체제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으로 볼 수 있어 입국이 거부될 수 있다고 말했단다..
97년 미국에 방문한 클럽의 멤버들, 생전 처음 보는 뉴욕의 광경에 들뜬 모습들
그렇다면 몇 년전 카네기홀에서의 공연은 어떻게 허락했을까.
눈에 가시같은 카스트로의 국민들이 어떻게 감히 자국의 유명뮤지션들도
평생 한 번 서보는게 꿈이라는 뉴욕 한 복판의 카네기홀에 서게 허락했을까..
당시 한창 뜨고있었으니 그걸로 한 몫 챙겨볼려고 했던것일까..
스스로를 가장 이성적이라 생각하는 쌀국의 잣대는 결국 늘었다 줄었다하는 고무줄잣대였냐..
멀리서 보이는 알프스의 설경은 아름답지만, 가까이 가서 봤을 때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눈보라 때문에 그 아름다움은 느껴지지 않을지 모른다.
이미지로서의 하바나와 실재의 하바나는 분명 그런 괴리가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부에나비스타 소설클럽은
멀리서 알프스를 아름답게만 그린것도 아니고, 너무 가깝게 들어가
알프스의 험난함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적당한 거리에서 보여줄 뿐이다.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역시 쿠바와 관련된 무거운 주제는 아닐것이다.
그리고 어설프게 그런 요소들을 영화속에 짚어넣었더라면 지금의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은 어떤 모습으로 남겨져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이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꼼바야세군도의 장례식. 재작년에 돌아가셨다. 클럽멤버들과 함께 2001년에 이미
한국을 다녀가셨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난 2001년이 다 지나가던 때 비로소 그들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고, 이제 그들이 한국에 다시 오기를 바란다는 건 아무래도 소원해 보인다.
뭐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빔벤더스와 라이쿠더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찾아내 그들만 즐기고 말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아마도 구석진 골목 안쪽에 깊숙이 숨어있는 기막힌 맛집을,
사람들이 거의 찾지않는 그런 맛집을 아무도 모르게 자기들끼리만
몰래 찾아가는 그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한가지 아쉬운 사실은 그 맛집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서 어느덧 프렌차이즈점이
되어버린 듯 하다. 그리고 짝퉁 맛집들이 원조흉내를 내면서 제 3세계 음악의 진수를
느껴보라고 손짓을한다.온갖 미사여구와 알듯모를듯 야릇한 카피들과 함께..)
3세계 음악(이것도 다분히 기득권이 만들어 낸 모호한 구분법)이 가진 순수성과
아름다움 마저 상업성 속에 물들어 가는 것을 보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아쉽다.
물론 그렇게라도 그들의 음악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지만 말이다..)
(+)그 동안 이 영화에 대해서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중에 수정을 통해서 좀 더 가다듬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