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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第二饒益行
(1) 攝律儀戒
智地甚深難可入이어늘 能以妙慧善安住하야
其心究竟不動搖하니 彼堅固行行斯道로다
지혜의 깊은 곳에 들기 어려워
묘한 지혜로서야 잘 머무나니
그 마음 필경까지 동요치 않아
수행 견고한 이가 이 길 행하네
*
제이요익행(第二饒益行): 제 2 요익행을 말하다
*
제이요익행을 십바라밀에 배대하면 지계바라밀이 된다.
그래서 여기는 섭율의계 섭선법계 섭중생계라고 하는 계율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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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율의계(攝律儀戒): 율의(律儀)를 섭(攝)하는 계
*
섭율의라고 하는 것은 오계, 십계, 이백오십계, 삼백사십팔계 등등 조목조목으로 나뉘어져 있는 율과 의를 제정한 것을 뜻한다.
*
지지심심난가입(智地甚深難可入)이어늘 : 지혜의 경지가 깊고 깊어서 가히 들어가기 어렵거늘
능이묘혜선안주(能以妙慧善安住)하야: 능히 미묘한 지혜로써 지혜의 경지에 잘 안주해서
기심구경부동요(其心究竟不動搖)하니 : 그 마음이 철저히 구경까지 동요하지 아니하니
피견고행행사도(彼堅固行行斯道)로다 : 견고한 행을 하는 이가 이 도를 행하도다.
(2) 攝善法戒
法界所有悉能入호대 隨所入處咸究竟하야
神通自在靡不該하니 彼法光明行此道로다
諸無等等大牟尼가 勤修三昧無二相하야
心常在定樂寂靜하니 彼普見者行斯道로다
법계에 간 데마다 다 들어가며
들어가는 곳에는 끝까지 가서
신통이 자재하여 다 포함하니
법의 광명 가진 이가 이 길 행하네
같을 이 없이 같은 대모니(大牟尼)께서
부지런히 삼매 닦아 두 모양 없고
마음은 정(定)에 들어 적정 즐기니
두루 다 보는 이가 이 길 행하네
*
섭선법계(攝善法戒): 착한 법을 섭하는 계
*
제악막작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하라, 여러 가지 선을 받들어 행하라고 하였다. 선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고정되게 이야기 하면 틀려버리니까 막연하지만 선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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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소유실능입(法界所有悉能入)호대 : 법계의 모든 존재에 다 능히 들어가되
수소입처함구경(隨所入處咸究竟)하야: 따라서 들어가는 바의 곳에 다 철저히 한다. 구경은 완성한다는 뜻이다.
신통자재미불해(神通自在靡不該)하니 : 신통이 자재해서 다 갖추었으니
피법광명행차도(彼法光明行此道)로다: 저 법광명이 이 도를 행했더라.
선법이기 때문에 부처님을 법광명, 법의 광명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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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무등등대모니(諸無等等大牟尼)가 : 같을 이 없는, 등등함이 없는 대모니가
근수삼매무이상(勤修三昧無二相)하야: 부지런히 삼매를 닦아서 두 가지 모양이 없으니
심상재정락적정(心常在定樂寂靜)하니 : 마음은 항상 선정에 있어서 적정을 즐기니
피보견자행사도(彼普見者行斯道)로다 : 저 보견자, 널리 보는 사람이 이 도를 행했더라.
(3) 攝衆生戒
微細廣大諸國土가 更相涉入各差別이어늘
如其境界悉了知하니 彼智山王行此道로다
미세하고 광대한 여러 국토가
서로서로 들어가도 제각기 차별한
그러한 경계들도 모두 아나니
저 지혜의 산왕(山王)이 이 길 행하네
*
섭중생계(攝衆生戒):중생을 이익케 하는 계
*
중생을 섭하는 계, 중생의 일이라면 모두다 포섭하고 거두어 들이는 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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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광대제국토(微細廣大諸國土)가: 미세하고 광대한 모든 국토가
갱상섭입각차별(更相涉入各差別)이어늘: 각각 섭입하고, 섭입하는 것이 각각 차별하거늘
여기경계실요지(如其境界悉了知)하니 : 그 경계와 같이 다 깨달아 아니
피지산왕행차도(彼智山王行此道)로다: 피지산왕이 이 도를 행했더라. 그 이름도 좋다.
지혜의 산, 지혜의 산 중에서도 가장 큰 산이라고 해서 산왕이라고 표현했다. 지산왕이 이 도를 행했더라.
(4) 結
意常明潔離諸垢하야 於三界中無所着하고
護持衆戒到彼岸하나니 此淨心者行斯道로다
뜻은 항상 깨끗하여 때를 여의고
삼계에서 조금도 집착이 없어
모든 계율 지니고 저 언덕 가니
마음 깨끗한 이가 이 길 행하네
*
결(結): 세 가지의 계를 맺다
*
의상명결이제구(意常明潔離諸垢)하야: 뜻이 항상 명결해서 모든 때를 다 떠나서
어삼계중무소착(於三界中無所着)하고: 삼계 가운데 집착하는 바가 없고
호지중계도피안(護持衆戒到彼岸)하나니 : 온갖 계를 다 보호해 가져서 저 언덕에 이르나니
차정심자행사도(此淨心者行斯道)로다: 청정한 마음의 소유자가 이 도를 행했더라,
정심자 지산왕 보견자 법광명 견고행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그 덕을 표현 하고 있다.
7, 第三無違逆行
智慧無邊不可說이라 普遍法界虛空界어늘
善能修學住其中하니 彼金剛慧行斯道로다
三世一切佛境界에 智慧善入悉周遍호대
未嘗暫起疲厭心하니 彼最勝者行斯道로다
善能分別十力法하고 了知一切至處道하야
身業無碍得自在하니 彼功德身行此道로다
十方無量無邊界에 所有一切諸衆生을
我皆救護而不捨하니 彼無畏者行斯道로다
지혜가 끝이 없고 말할 수 없어
법계와 허공계에 가득하거늘
잘 닦아 배우고서 거기 있나니
금강지혜 있는 이가 이 길 행하네
삼세 일체 부처님 깊은 경계에
지혜로 잘 들어가 두루 하고서
잠깐도 피곤한 맘 내지 않나니
가장 수승한 이가 이 길 행하네
열 가지 지혜의 힘 잘 분별하고
온갖 곳에 이를 길 분명히 알며
몸으로 하는 일이 자재하나니
공덕몸 이룬 이가 이 길 행하네
시방에 한량없고 끝없는 세계
거기 있는 수없이 많은 중생들
내가 다 구호하여 버리지 않나니
두려움 없는 이가 이 길 행하네
*
제삼무위역행(第三無違逆行): 제 3 무위역행을 말하다
어기거나 거스림이 없는 행이다.
*
지혜무변불가설(智慧無邊不可說)이라 : 지혜가 가히 없으니 설명할 길이 없이
보변법계허공계(普遍法界虛空界)어늘 : 법계 허공계에 두루두루 하거늘
선능수학주기중(善能修學住其中)하니 : 잘 능히 수학해서 그 가운데 머무나니
피금강혜행사도(彼金剛慧行斯道)로다: 다이아몬드와 같은 굳고 빛나는 지혜를 가진 이가 이 도를 행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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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일체불경계(三世一切佛境界)에 : 삼세일체 모든 부처님 경계에
지혜선입실주변(智慧善入悉周遍)호대: 지혜가 잘 들어가서 어떤 부처님, 깨달은 이, 또 성인의 가르침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지혜로써 잘 통달해서 다 두루두루 하되
미상잠기피염심(未嘗暫起疲厭心)하니 : 일찍이 잠깐도 피곤해 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니
피최승자행사도(彼最勝者行斯道)로다: 저 가장 수승한 사람이 이 도를 행했더라. 최승자 참 좋은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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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능분별십력법(善能分別十力法)하고: 저 십력의 법을 잘 능히 분별하고. 십력이 두고두고 또 나온다. 열 가지 힘 가운데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이 있었다. 앉을 곳과 설 곳 옳은 일과 그른 일을 그것을 잘 분별을 하는 힘이다.
우리는 스님이니까 스님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잘 분별하는 지혜의 힘이 십력 가운데서 첫째 힘이다.
승려로서 자기 분야도 아니고, 자기의 분도 아니고 능력도 아닌 곳에 기웃기웃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봐야 결국 그 분야에서 꼴찌 밖에 안되는데도 미련을 못버려서 기웃거린다.
뭐니뭐니 해도 중은 중의 본분에 충실하는 것이 제일 장기다.
제대로 못배웠다 하더라도 스님은 스님의 할 일이 장기이므로 그것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 된다. 나는 참 하고잽이고 알고잽이라서 내가 그동안 알고 있는 것은 제쳐놓고 내가 현재 모르는 것, 부족한 것, 보완해야 할 것에만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웃거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래봐야 꼴찌밖에 안되는 것이다. 나중에사 그것을 깨닫고 강한 것을 더 강하게 하자고 해서, 지금 제대로 가르치지는 못하지만,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화엄경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박수) 이게 무슨 박수인지 알 수가 없네.
하하 스승의 날 오월달이라고 박수치는 거야?
내가 이것이 부족한데 좀 메꿔야 된다 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결국 성공을 제대로 못하게 되고, 그것이 강점이 아니게 된다.
스님들은 스님의 강점을 더 강하게 하면 빛을 본다.
한 예로써 목탁을 잘 치면 더욱 목탁을 열심히 치는 것이다.
또 금강경을 잘 한다면 금강경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참선을 잘한다 하면 참선을 더 열심히 해서 선에 대한 모든 이론을 다 장착하는 것이다.
화엄경을 공부한다 하면 그동안 여러 해 공부했으니까 화엄경에 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가지고 있어서 ‘화엄경에 대한 자료하면 나한테 다 있다’ 읽지는 못해도 어디에 무슨 내용이 있다고 하는 것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어떤 분야, 자기가 그동안 이만큼이라도 갖춘 능력, 그 분야에 집중적으로 힘을 쓰는 것이 훨씬 소득이 크고 나중에 빛을 빨리 보게 된다.
처비처지력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게 부연설명 할 수가 있다. 십력법 가운데 첫째다.
요지일체지처도(了知一切至處道)하야: 일체 지처 일체 이르는 곳의 길을 요지한다. 이것도 중생이 죽어서 업으로 어디에 가서 태어나는가 하는 이야기다.
일체지처도 역시 부처님의 십력 가운데 하나다
신업무애득자재(身業無碍得自在)하니: 신업이 무애하야 자재함을 얻으니
피공덕신행차도(彼功德身行此道)로다 : 공덕신이 차도를 행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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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무량무변계(十方無量無邊界)에 : 시방무량무변계에
소유일체제중생(所有一切諸衆生)을 : 있는 바 모든 중생들을
아개구호이불사(我皆救護而不捨)하니 : 내가 다 그들을 구제하고 보호해서 버리지 아니하니 시방무량 무변계, 시방에 있는 한량없고 가없는 세계의 일체 모든 중생을 내가 다 구호해서 버리지 아니하니
피무외자행사도(彼無畏者行斯道)로다: 저 두려움 없는 자가 이 도를 행했더라.
우리는 일체 중생이나 구류중생을 분별하지 않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사람 분별도 참 잘한다.
사람 분별하고, 차별하고 ‘니 종교 내 종교’를 차별한다.
대승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상대가 그렇게 했다고 해서 그것을 핑계대고 똑같이 열을 낼 것도 아니고 시비할 것도 아니다. 그 사람들이 ‘땅밟기를 하자, 무슨 절을 어떻게 한다’고 할 때, 우리도 아직 중생티를 못벗었으니까 그런 말에 발끈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대승법을 공부한 사람은 그래서는 안된다.
일체중생, 난생 태생 습생 화생 이런 것들을 공히 다 사랑으로 거둬들여야 한다. 하물며 사람으로서 다른 종교를 믿고 다른 사상을 가졌고 다른 나라에 살고 인종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한다고 하면 대승불교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이치를 환히 아시는 분은 스님으로서 교회를 지어주고, 기독교 믿는 사람의 집을 지어주는 것이다. 그 자비의 눈에는 불쌍한 중생만 보이지 차별심이 없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도 언젠가 그런 차별을 떠난 큰 자비를 실천할 수 있어야 된다.
그 스님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마음에 쳐진 경계선이 어느날 탁 무너져 버리니까 그렇게 태평양 바다처럼 넓은 마음이 된 것이다. 사실은 본래 있지도 않은 경계이지만, 있는 줄로만 알았던 경계가 무너져, 네 종교 내 종교 차별하는 경계가 무너져버리면 전부가 하나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 불이법(不二法)이다. 둘이 아닌 도리는 경전에만 있는 말만의 법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한 것이다.
또 그것을 실증해서 보여주는 분들이 있다.
8, 第四無屈撓行
於諸佛法勤修習하고 心常精進不懈倦하야
淨治一切諸世間하니 彼大龍王行此道로다
了知衆生根不同과 欲解無量各差別하며
種種諸界皆明達하니 此普入者行斯道로다
十方世界無量刹에 悉往受生無有數호대
未曾一念生疲厭하니 彼歡喜者行斯道로다
普放無量光明網하야 照耀一切諸世間호대
其光所照入法性하니 此善慧者行斯道로다
震動十方諸國土를 無量億數那由他호대
不令衆生有驚怖하니 此利世者所行道로다
부처님 모든 법을 닦아 익히되
언제나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고
모든 세간 깨끗이 다스리나니
크나큰 저 용왕이 이 길 행하네
중생들의 근성이 같지도 않고
욕망과 이해들도 제각기 차별하니
가지가지 세계를 밝게 아나니
널리 들어간 이가 이 길 행하네
시방에 한량없는 모든 세계에
태어나는 수효가 그지없건만
한생각도 피로한 마음 없나니
즐거워하는 이가 이 길 행하네
한량없는 광명그물 두루 놓아서
일체의 세계들을 환히 비추고
비치는 광명 따라 법성(法性)에 드니
선한 지혜 얻은 이가 이 길 행하네
시방에 한량없는 억 나유타의
국토들도 낱낱이 진동하여도
중생들은 놀라지 않게 하나니
세상에 이익 준 이가 행하는 길이네
*
제사무굴요행(第四無屈撓行): 제 4 무굴요행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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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을 굴(屈)자, 굽을 요(撓)자다. 굴요함이 없는 행이라.
*
어제불법근수습(於諸佛法勤修習)하고 : 모든 불법에 다 부지런히 수습하고
심상정진불해권(心常精進不懈倦)하야: 마음이 항상 정진해서 게으르지 않는다. 이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24시간 게으르지 않기가 어렵고 설사 24시간 하루쯤은 용맹정진을 했다 하더라도 이틀하기가 어렵고 삼일 하기는 또 어렵고 한달하기가 또 어렵다.
신심이 한 번 났다가 사그라들고 또 났다가 사그라들지만 그런 삶을 꾸준히 쉬지 않고 반복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일체제세간(淨治一切諸世間)하니 : 일체 모든 세간들을 청정하게 잘 다스리니. 마음이 열심히 수습하고 그러니까 굴요함이 없는 행이다. 항상 정진해서 게으르지 않고 일체 세간을 청정하게 다스리니
피대용왕행차도(彼大龍王行此道)로다: 저 큰 용왕이 이 도를 행했더라. 부처님을 혹은 용왕이라고도 표현한다.
*
요지중생근부동(了知衆生根不同)과 : 중생들의 근기가 같지 아니하고 각각 다른 것
욕해무량각차별(欲解無量各差別)하며: 욕망과 이해가 한량없이 각각 차별한 것을 요지해 잘 알며
종종제계개명달(種種諸界皆明達)하니 : 가지가지 경계를 다 밝게 통달했으니
차보입자행사도(此普入者行斯道)로다: 이것은 보입자 널리 들어가는 사람, 가지가지 경계에도 다 꿰뚫어서 들어가는 이가 이 도를 행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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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세계무량찰(十方世界無量刹)에 : 시방세계 한량없는 세계에
실왕수생무유수(悉往受生無有數)호대 : 다 거기에 가서 태어나 생을 받는다. 시방 세계 어디든지 어떤 중생의 류에도 다 가서 태어나서 무수한 생을 다 받으면서도
미증일념생피염(未曾一念生疲厭)하니 : 한순간도 피곤해 하거나 싫증을 낸 적이 일찍이 한 번도 없으니
피환희자행사도(彼歡喜者行斯道)로다: 저것은 환희자, 중생을 위한 마음에 중생을 보기만 해도 기뻐하는 환희자가 이 도를 행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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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방무량광명망(普放無量光明網)하야 : 한량없는 광명 그물을 널리 놓아서
조요일체제세간(照耀一切諸世間)호대 : 일체 모든 세간들을 환하게 비추되
무량광명망이라고 했다. 어떤 광명을 가지고 일체 세간에 비춰야 되겠는가. 법, 진리의 가르침으로써 비추는 것이다. 진리는 아주 바른 이치다. 참되고 바른 이치로써 일체 세간을 환히 비추되
기광소조입법성(其光所照入法性)하니 : 이 광명이 비추는 바가 법의 성품에 들어간다.
‘법성’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 여러 이론이 있다. 그냥 ‘법의 성품’ 이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고, ‘법과 성품’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법성게의 첫구절이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인데 이때의 법성을 어떤 선지식은 법과 성품이라고 해석했다. 그것이 제대로 해석한 것 같다. 법성이 나올 때마다 곳곳에 다 법과 성품이라고 해석해야할 것은 아니지만 이 기회에 한 번 거론을 해본다면 법은 현상이라고 하는 차별법이고, 성품은 통일된 하나의 자성이다. 그래서 법의 성품 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엄격하게 보면 법과 성품으로 나뉘어진다. 차별법이나 공통된 평등법이나 다 들어가서
차선혜자행사도(此善慧者行斯道)로다 : 선혜자는 좋은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이 좋은 지혜를 가진 사람이 도를 행했더라. 선혜자가 아니면 어렵다.
지혜의 빛으로써 법성을 다 비춰서 들어가는 것은 지혜있는 사람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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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시방제국토(震動十方諸國土)를 : 시방의 제국토를 진동해서
무량억수나유타(無量億數那由他)호대: 시방제국토 무량억수 나유타를 진동하되
불령중생유경포(不令衆生有驚怖)하니: 그런데 중생들로 하여금 결코 놀라게 하지 않는다. 지진이 나듯이 진동을 해서 중생들을 놀라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고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
십행법을 설하고 나서 6종 18상으로 진동했다고 하는 것도 서두에서 보았는데 이것은 우리들 마음의 감동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 실제로 땅이 그렇게 흔들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여기도 마찬가지다.
시방제국토 무량억수나유타를 진동했지만 중생들은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땅이 실제로 흔들린 것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옆에 사람이 감동하고 기뻐하면 덩달아서 감동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차이세자소행도(此利世者所行道)로다: 이것은 세상을 이롭게 한 사람이 행한 바 도로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이, 이세자 표현이 좋다.
선혜자도 좋고 이세자도 좋다.
9, 第五離痴亂行
善解一切語言法하야 問難酬對悉究竟하며
聰哲辯慧靡不知하니 此無畏者所行道로다
善解覆仰諸國土하야 分別思惟得究竟하고
悉使住於無盡地하니 此勝慧者所行道로다
일체의 말하는 법 잘 체득하여
문난과 대답함을 모두 이루고
총명, 현철(賢哲), 변재(辯才), 지혜 모두 아나니
두려움 없는 이가 행하는 길이네
엎고 젖힌 모든 세계 잘 이해하여
분별하고 생각하여 끝까지 얻고
다함이 없는 땅에 머물게 하니
좋은 지혜 있는 이가 행하는 길이네
제오이치란행(第五離痴亂行): 제 5 이치란행을 말하다
*
무치란이라고도 하고 이치란이라고도 한다.
어리석어서 어지러움을 떠난 행이다. 어리석으면 어지럽게 되어 있다.
또 어지러운 것은 어리석어서 그런 것이다.
*
선해일체어언법(善解一切語言法)하야: 일체 언어법을 잘 알아서
문란수대실구경(問難酬對悉究竟)하며: 묻는데 대답하는 것을 다 꿰뚫어 안다. 실구경이라고 하는 말은 끝까지 다 한다는 뜻이다.
이런 말이 나오면 나는 꼭 ‘야코’가 죽는다. 일본에서 누가 내 강의를 들었는가 엊그저께 ‘서툰 일본말좀 쓰지 말라’고 넉장인가 장문의 편지가 일본에서 왔다.
요즘은 이렇게 말해도 이 자리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를 타고 방송 타고 등등 해서 온 세계에 다 알려진다.
현전대중앞에서만 말하고 끝나면 무슨 소리를 다해도 우리끼리는 통하니까 괜찮은데 그렇지 않으니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은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소리는 안했으면서도, 사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나한테 편지를 보낼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스님들이 방송에서 되도 않는 일본말을 그렇게 함부로 쓰는 것을 도저히 못보겠다’ 하면서 조목조목 이유를 들고, 당신이 일본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그 고충을 편지로 이야기 했다.
이 방송도 그 분이 듣는다면, 내가 답은 안하지만, ‘아이고 스님이 편지를 읽긴 읽었구나. 뭔가 느낌이 있긴 있었구나.’ 하고 생각은 할 것이다.
일체 말들을 다 안다. 일체 말은 고사하고 영어 일어 중국어. 이 정도만 꿰뚫고 있어도 써먹을만 하다. 요새는 하도 외국과 교류가 빈번하다. 개인적으로 여행도 가고 그쪽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최소한 그 세 나라 말만 좀 능통하게 할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늘 한다. 그것이 약점이어서 또 그것을 보충하려고 하다보면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
그동안 보충하려고 얼마나 아둥바둥 애썼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간단히 될 문제가 아니다.
여기는 일체 모든 언어법을 잘 이해해서 문란하고 수대하는데 다 완성한다. 구경이라고 하는 것은 완성한다는 뜻이다. 다 완성해서
총철변혜미부지(聰哲辯慧靡不知)하니: 총명하고 밝은 변론과 지혜가 알지 아니함이 없으니
차무외자소행도(此無畏者所行道)로다: 이것은 두려움 없는 사람이 행한다.
사실 외국관광객이 가까이 와서 외국어로 무엇을 물으면 괜히 두려움부터 생긴다. 외국어를 잘 아는 사람을 불러도 되는데 괜히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다. 무의식중에 아상이 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지 아상이 없으면 두려워할 게 없다.
여기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행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잘 알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
선해복앙제국토(善解覆仰諸國土)하야 :엎어지고 우러러 있는 모든 현상의 국토들을 잘 알아서
분별사유득구경(分別思惟得究竟)하고: 분별하고 사유해서 구경을 얻는다. 철저히 꿰뚫어 아는 것 그것이 구경이다. 구경을 얻고
실사주어무진지(悉使住於無盡地)하니 : 다 하여금 무진지에 다함이 없는 경지에 머물게 하니
차승혜자소행도(此勝慧者所行道)로다 : 차는 수승한 지혜의 사람이 행하는 바 도다.
10, 第六善現行
功德無量那由他를 爲求佛道皆修習하야
於其一切到彼岸하니 此無盡行所行道로다
超出世間大論師가 辯才第一師子吼로
普使群生到彼岸하나니 此淨心者所行道로다
공덕이 한량없는 나유타인데
불도(佛道) 구하려고 모두 닦았고
무엇에나 저 언덕에 이르렀으니
다함없는 행 닦은 이가 행하는 길이네
세상에 뛰어난 큰 논사(論師)며
제일가는 변재로 사자후(獅子吼)하여
많은 중생 저 언덕에 이르게 하니
마음 깨끗한 이가 행하는 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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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육선현행(第六善現行): 제 6 선현행을 말하다
*
공덕무량나유타(功德無量那由他)를 : 공덕이 한량없는 나유타를
위구불도개수습(爲求佛道皆修習)하야: 불도를 구하기 위해서 다 수습한다. 그 많고 많은 공덕을 좋은 일이라면 다 닦는 것이다.
불교는 공덕 닦는 일 뿐이다.
내가 언제 말씀드렸지만 신라 때 양지스님이 장육사 불사를 하면서 기와 나르고 흙나르고 돌나르고 나무나르고 재목나르며 노동하는 불자들에게 노래를 지어주었다.
그것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아홉개 향가 중에 아주 유명한 향가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더라
서럽더라 우리네여
공덕 닦으러 오다
우리 인생은 지난 생애에도 왔고 금생에도 왔고 다음 생에에도 또 온다.
그것이 ‘오다 오다 오다’ 라는 구절이다. 와보니 고해요 화택이라. ‘오다 서럽더라’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더란 말이다. 와보니까 서럽더라.
나만 혼자 팔자를 잘못 타고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인생이다.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벼슬 높은 사람 다 오십보 백보로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벼슬 높고 머리 내놓고 사는 사람이 더 고통이 많고 나쁜 짓도 많이 한다.
그래서 ‘서럽더라 우리네여’ 라고 하였다. 우리 모두가 다 같이 고해 중생이므로 서럽더라 우리네여,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공덕닦으러 오다’ 공덕 닦고 살자는 것이 인생의 나아갈 길이다.
낱말 다섯 개를 가지고 향가 네 줄을 엮었는데, 거기에 인생의 현실이 다 표현되어 있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인생의 진로가 다 표현되어 있다.
나무를 나르고 돌을 나르고 흙을 나르면서 그 향가를 부르는 신라 때의 그 불사하는 모습을 한 번 그려보면 근사하다. 공덕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공덕무량나유타를 불도를 구하기 위해서 낱낱이 다 수습한다.
어기일체도피안(於其一切到彼岸)하니 : 그 일체에서 피안에 이르니
차무진행소행도(此無盡行所行道)로다: 이것은 무진행. 다함이 없는 행을 하는 이가 행하는 바 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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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출세간대논사(超出世間大論師)가 : 세간에서 아주 뛰어난 대논사, 대논사는 깨달아서 이론에 밝은 이다. 그냥 입에 바른 말만 잘한다고 이론에 밝은 것이 아니다.
세간에서 뛰어난 대논사가
변재제일사자후(辯才第一師子吼)로: 변재가 제일인 사자후로써
보사군생도피안(普使群生到彼岸)하나니 : 널리 군생으로 하여금 피안에 이르게 하나니. 부처님의 가르침, 진리의 가르침을 꿰뚫어서 그 진리의 가르침으로써 중생들에게 낱낱이 그 이치를 설해주니 그 온갖 중생들이 그 법을 듣고 피안에 이른다.
그것이 사자후고 변재고 대논사다. 번드르하기만 하고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말은 결코 잘하는 말이 아니다. 보사군생도피안하야
차정심자소행도(此淨心者所行道)로다: 이것은 청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행한 바 도로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박수소리)
하강례
그 마음, 잘 보라고 다는 거지
법공양실에서 나오신 큰스님과 함께 계단을 오르려는데 만발다 보살님이 하얀 물수건으로 난간을 닦으며 내려오셨다.
“송화가루가 날려서요.”
꽃가루 때문에 큰스님이 알레르기 비염으로 고생하시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언제오실지 몰라 세 번이나 닦으셨다고 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선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을 따라서 수줍은 듯 등도 달렸는데 큰스님께서
“이렇게 하면 더 잘 보이지. 더 잘 보이게, 잘 보이라고 다는 거지”
하면서 등을 달 위치를 바꿔주셨다.
보살님이 “아,” 하고, 곧바로 등을 떼어서 새 자리에 거셨다.
*
용학스님 약찬게 강의 녹취를 잘하고 있느냐고 큰스님께서 물으셨다.
지난 달 말 염화실지가 나오고 나서, 용학스님의 강의녹취가 실리지 않은 걸 아시고, 큰스님께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셨었다.
‘용학스님 약찬게 강의도 잘 정리해서 다음호에라도 염화실지에 올리도록 합시다. 참고가 많이 되는 귀한 강의라서요. 부탁해요.’
*
법공양실을 나오실때는 <약찬게 요해> 사진을 찍으라고 하시면서
“뜻이 있는 사람은 저렇게 발심을 한다니까.”
“후계자를 용학스님이 맡아서 하면 잘하겠지. 지금 신심내서 하는 사람이라야 잘하지.”
하셨다. 법공양 운동을 말씀하시는 거였다.
*
서울에서 큰스님을 뵈러 염화실의 보살님이 내려오셨다. 인사만 드리고 다른 방으로 가려는 보살님을 큰스님이 말리셨다. 가까이서 얼굴이라도 오래 보자고 하셨다.
“어서 오십시오. 좋은 계절입니다. 한 번만 해요.”
하고 스님들의 절을 받으시면서, 보살님과 중간중간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셨다.
목에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은 요즘 어떠시냐고 보살님이 여쭙자,
“여전해요. 활동하면은 잊어버리고 책상에 앉으면 그때 마음이 조용해지니까 고게 싹 느껴지지.”
하셨다.
“오늘 화엄경 강설 14권 점안식 같이 합시다. 한 권 받아서 같이 읽어요.”
하고 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
해마다 종이연꽃을 만들어 가져오시는 스님께서 올해도 색색의 예쁜 연꽃을 가져오셔서 모두 마음에 드는 연꽃을 골랐다. 주위에서 하도 고르라고 하자 큰스님은 “백련이 좋지.” 하시면서 흰색 연꽃을 고르셨다. ‘아, 법화경’ 하고 미소가 지어졌다.
*
초반 법회가 끝나고 스님들이 모두 일어나서 큰스님께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드리고 꽃을 올렸다. 한 말씀을 청하신 스님들에게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이 나에게 고마운 존재입니다. 내게 고맙다느니 은혜니 노래했지만, 여러분들 덕택에 화엄경 강설책도 나왔고, 여러분 덕택에 내가 두 번 세 번 화엄경을 공부합니다. 여러분들이 공부하러 안오면요 저도 공부 안합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내가 좀 고맙게 그 은혜를 갚아야 되는 상황이라고 저는 늘 평소에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대중스님들이 큰 박수로 환호하셨다.
등불을 든 사람들
모두 함께 부르는 이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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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이 너무 아름다워요 올림픽 공원 장미정원을 보면서 장미가 저렇게 아름다웠구나 새 감탄했네요^^_()()()_
_()()()_ 스승님이 계셔서 감사하고... 만약 염화실이 없었다면 난 지금쯤 어디서 공부를 하고 있을까...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순간~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고맙습니다_()()()_
혜명화님 고맙습니다_()__()_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
염화실 강의 덕분에 공부합니다
혜명화님 녹취록 덕분에 공부합니다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