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하나님의 임재체험(9) - 하나님의 음성듣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Logos)를 성령의 감동으로 받아들일 때 이 하나님의 말씀이 레마(Rhema)가 되어 우리의 심령 안에서 역사하게 된다고 기술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로고스와 레마에 관하여 좀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성경(개역개정판) 신약에서 "말씀"으로 번역된 헬라 원어 로고스(Logos)는 331회, 레마(Rhema)는 67회 사용되었습니다. 이 두 단어를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두고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한 편에서는 성경에서 이 두 단어가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으므로 둘을 따로 구분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로고스는 기록된 객관적인 말씀이고, 레마는 기록된 말씀을 바탕으로 성령이 성도의 마음에 개별적으로 특별히 감동을 주어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라고 정의(定義)합니다. 이 글은 후자의 입장에서 쓰겠습니다.
로고스에서 레마로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 전2:13) 위 성구에서 바울이 들려준 하나님의 말씀은 로고스 입니다만, 이 때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이를 레마로 받아들였습니다.
로고스를 레마로 받아드리는 요건 :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 즉 바울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을 전할지라도 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아니하고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면 이 말씀은 그냥 로고스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로고스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으니 이 기록된 말씀이 레마로 믿는 자 가운데서 살아 역사하게 된 것입니다.
레마로 받아드린 결과 :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이 전한 로고스를 레마로 받아들인 결과 이 말씀이 데살로니가 성도들 가운데서 살아 역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 이 말씀이 바로 로고스가 레마로 활동하게 된 히브리서 기자의 증언입니다.
구약 시대 :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언(로고스)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예언의 말씀을 사람(선지자)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레마로 역사되었습니다.
실례(實例)로서 다윗왕은 간음죄("간음하지 말라"-제7계명)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말씀을 로고스로 알고 있었을 때는 이 말씀이 다윗에게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으나 나단 선지자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 말씀이 곧 레마로 역사하여 회개의 영이 일깨워졌기 때문입니다.
신약 시대 : 신약 시대에는 교역자가 설교를 통하여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을 증거 할 때 이를 성도들이 사람의 말로 들으면 그냥 로고스로 기억되어 고작 성경 지식만 더해질 뿐이지만, 그러나 이 증거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레마가 되어 성도들의 심령 속에서 살아 역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로고스는 한낱 성경 지식으로 남게 되면 자칫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바리세인이 될 뿐이나 로고스가 레마로 내 심령 속에서 살아 역사하게 되면 이 레마의 말씀이 예리한 말씀의 검이 되어 뼛속까지 숨어 있는 죄를 들추어 하나님의 눈앞에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로고스와 레마 상황을 좀 더 쉽게 주일성수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가령 성도가 주일 성수의 설교를 듣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레마의 말씀이 심령 속에 살아 역사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성도가 주일 성수를 잘 하고 있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정확히 말하면 대체로 마음이 평안하고 은혜 생활을 함) 그러나 이 성도가 주일날 교회에 가지 않고 급한 볼일이 있어 고속도로로 달리게 되면 심령 속에 살아있는 말씀(레마)이 역사하여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게 됩니다. 예배 시간이 가까울수록 그런 마음은 점점 더 심해 집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휴게소를 찾게 되고 마침내 휴게소를 발견하면 들어 와서 차를 세워놓고 회개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차츰 안정을 찾고 가능한대로 근처 교회를 찾게 되거나 아니면 다시는 앞으로 주일을 범치 않겠노라고 하나님께 두 주먹 불끈 쥐고 다짐합니다. 이것이 레마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레마가 아닌 로고스로 받아들인 사람은 주일을 범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보고 탓하듯이(마7;3) 다른 성도가 주일을 범할 때 비판하고 비난하는 말을 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경 66권이 완비된 문서 계시 시대에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로고스)을 레마로 받아들이는 것이 확실하고 건전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 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7) -계속 -
원로 Essay 중에서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http://cafe.daum.net/y9144 http://y9144.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