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열한 번째 콘서트를 마치고
조 인 숙
한낮의 땡볕은 남아 있지만, 아침저녁 서늘한 바람이 가을을 알리고 있다. 3월부터 준비하고 여름을 지나 가을의 시작인 9월에 열한 번째 콘서트가 공연장 타종 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트럼펫 연주자가 영화 ‘미션’ 주제곡 ‘가브리엘 오보에’ 연주와 비올라 합주가 귀에 익은 가요를 들려준다. 그 연주를 따라 첫 콘서트 때를 떠올리며 따라가 본다.
낭송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 몸담고 있는 낭송가 협회의 일곱 번째 콘서트를 관람하게 되었다. 콘서트를 보고 난 후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치의 전율로 남았다. 시 낭송 공연을 처음 보게 된 내가 시간이 지나 열한 번째 콘서트 진행을 맡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낭송가 협회에 가입 후 참여한 첫 공연은 코로나가 시작된 해여서 관객이 없는 무대였다. 무관중으로 진행하면서 영상으로 담아 유트브로 방송했다. 관객의 유무는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모여 같은 주제와 생각으로 연습하는 순간순간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공연 역시 코로나가 진행되고 있어서 관객 동원이 여의치 않았다. 많지 않은 관객들이 거리 두기를 하면서 떨어져 앉아 있어야 했다. 세 번째는 조금 더 많은 관객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가 올해 열한 번째 콘서트를 열게 되었다. 나에게는 네 번째 콘서트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경북문화재단의 보조금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공연장을 알아보러 다녔다. 코로나가 막 풀리기 시작한 후여서 공연장 찾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예정됐던 예술회관 공연장이 취소되면서 날짜도 공연장도 변경해야만 했다. 공연일이 예정보다 조금 앞당겨지고, 공연장도 관객 접근성이 조금 아쉬운 곳으로 정해졌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럴수록 팀원들은 조금 더 힘을 냈다. 시간을 아껴 더 자주 모였고 서로를 다독여 갔다. 1차, 2차 리허설을 지나 3차 최종 리허설을 하면서 열정은 더 뜨거워져 갔다.
합주가 연주되면서 지난 콘서트 때를 잠시 흘려보냈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의 박수 소리와 함께 조명이 켜지면서 200석 정도의 객석에 관객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시의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주제를 알리는 나의 멘트와 함께 열한 번째 콘서트가 시작된다. 먼저, 시인이며 협회를 창립하시고, 나를 협회로 이끌어주신 구은주 고문님이 나태주 시인의 「오늘의 약속」으로 가을을 열었다.
이어서 관객석에서 낭송가가 시를 읊으며 무대 위로 등장한다. 김용택 시인의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를 시작으로 네 명의 낭송가가 합송을 들려준다. 십여 년의 낭송 실력에 원숙미와 노련미가 묻어난다. 관객은 숨죽이며 어느새 시 속으로 빠져들었다. 남성 회원이 여느 해보다 많이 참여했다. 네 명의 회원은 상희구, 복효근 시인의 경상도와 전라도 버전 사투리 시 낭송으로 객석의 웃음을 만들어 냈다.
코로나로 잠시 보여주지 못했던 어린이 낭송은 4학년 1학년 남매로 구성되어 손을 꼭 잡고 나와 나태주 시인의 「풀꽃」, 정여민의 「꽃」을 낭송하고, 노래 「모두가 꽃이야」를 부른다. 연습하는 동안 기량만큼 키도 훌쩍 자랐다. 정이 많이 들었다.
시인의 시를 네 사람이 이어서 낭송하는 윤송 순서이다. 「얼굴 밥상」을 주제로 한 가족의 정을 들려준다. 색색의 맞춰 입은 의상과 네 편의 시가 조화를 이룬다.
잠시 쉬어 가는 순서로 기타 연주자가 연주와 함께 송창식의 「푸르른 날」 신형원의 「사람들」을 불러 관객들의 호응을 받는다
시의 선율과 노래가 가을을 맞는 관객들에게 따뜻한 울림으로 다가가면서, 시 퍼포먼스 무대로 이어진다. 조지훈 시인의 시로 구성된 「꽃잎에 입 맞추다」를 주제로 무대가 펼쳐진다. 입체적인 영상과 여성 회원들의 퍼포먼스가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남성 회원의 담담한 낭송이 어우러져 마치 한편의 작은 뮤지컬을 본 느낌이다. 잠시 넋을 놓고 빠져들었다. 콘서트가 절정으로 치닫는다.
순서에는 없었던 임종식 교육감님의 특별 무대가 이어졌다. 자연스레 무대로 이끈다. 지역 시울림 학교 시책을 펴시면서 학생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애써 오고 계신다.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정감어린 목소리로 낭송한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더욱 소중히 느껴지는 무대다.
남녀 중학생 세 명이 무대를 만든다. 학원 갈 시간을 아껴가며 준비한 한용운 시인의 「나룻배와 행인」,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들려준다. 격려의 박수가 힘이 될 것이다. 아이들과는 다시 만나 낭송하자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내가 수필을 낭독하는 순서다. 이번 콘서트에는 진행은 물론 수필 낭독에도 참여했다. 이일배 수필가님의 수필 「외로움과 고독」을 수필가님과 함께 낭독한다. 외로움과 고독의 의미를 찾아보는 시간이다. 외로움의 너울을 벗어버리고 고독 속으로 가뿐하게 들자는 수필가님의 울림 있는 음성에 관객은 숙연해진다.
감동의 한 장면, 한 페이지를 지나 마지막 무대 시극이다. 극 연출가로 무대마다 시극을 올리신 부회장님의 연출로 두 여성 회원과 함께 김윤현 시인의 「가위바위보 세상」과 여러 편의 짧은 시로 엮어낸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극 흐름이 이어진다. 세 명의 회원이 주고받는 대사와 낭송이 긴 여운으로 남은 무대였다.
콘서트를 마무리할 싱어롱 순서다. 박학기의 「아름다운 세상」을 회원이 노래하면서 출연자 관객 모두 한목소리가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부른다. ‘아름다운 시 외며, 그 행복 찾아가자’는 협회가를 마지막으로 모든 순서가 끝이 났다. 출연진, 스태프 모두 한마음이 되어 오늘을 기억하기를 바라본다.
객석에 관객들이 빠져나간다. 기념촬영을 위해 출연자와 관계자들만이 분주할 뿐이다. 콘서트의 막이 내리고 무대에 홀로 남아 비어 있는 객석을 바라본다. 콘서트 진행에 있어서 놓치는 부분이 더러 있었다. 사회자로서 내 멘트를 챙기느라 정작 함께 무대에 있는 동료를 보지 못한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시간을 거슬러 관객이 되어 객석에 있었던 그 마음을 떠올려본다. 손님에서 이제는 무대를 지키는 주인이 되었다. 변해 가기야 하겠지만, 전율로 다가왔던 지난날의 기억은 잊지 않겠다.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그 날까지 처음 콘서트를 마주했을 때 그 무대를, 그 전율의 감동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