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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성격과 한국교회
딤후3:1-2
요절: 1-2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디모데가 시무하고 있던 에베소 교회에 거짓 교사가 들어와서 말썽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들과 교리 싸움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이 논쟁을 걸어오면 물리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그들을 온유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여기에 많은 인내심과 지혜가 요구됩니다.
우리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세상과 교회가 더 악해지고 나빠질 것을 예언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미국과 한국의 거짓 목사들은 이와는 반대로 교회가 더 잘 되어나갈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가 커지고 부흥하여, 전 세계를 비추이고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몰려 올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잘 배워서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잘 통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말세는 구약, 신약의 가르침에 의하면, 메시아께서 이루실 평화의 왕국이 오기 전,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바로 전의 시기를 말합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에 의하면, 이 시기는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벌써 도래했습니다:
행2:16-17: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따라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일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그 시각부터, 다시 오실 그때까지의 시기가 말세입니다. 간단히 말해 예수님이 오신 이후부터는 늘 말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세의 기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는지 모르므로, 그분이 바로 내일 오실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사도들도 이렇게 가르치고, 또 실제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바로 직전의 시기가 또 말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바로 이때를 뜻하는 말세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이 말세의 때가 어떻다고 가르칩니까? 나쁘고 악하고 신자로서는 매우 어려운 때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것을 알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말세는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이 벌써 말세이며, 또한 곧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세는 긴박한 시대입니다. 우리는 모두 말세에 살고 있으므로 항상 긴박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슬기로운 처녀처럼, 예수님이 급작스럽게 다시 오실 때에 바로 등불을 들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졸지 않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말세는 신자에게 어려운 (나쁜)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된 세상에 진리와 복음을 가져다 주셨으면, 세상이 계몽되고 진보해서 점차로 좋은 세상으로 변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혹은 계몽주의가 인류에게 빛을 가져온 이후로, 인간은 어둠에서 깨어 이성을 사용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 말대로 인간은 시대를 만들어갑니다. 계몽된 인간은 계몽된 밝은 시대를 만듭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세상은 더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계몽주의 이후로 계몽되지 않았음을 봅니다. 인간은 소위 계몽주의 이후로 오히려 더 황폐하게 된 면도 있습니다.
인간이 시대를 만들어가는 시대의 주인인 것 같지만, 또한 인간은 시대의 영향을 받습니다. 한 시대는 그 시대의 사람을 만듭니다. 인간의 죄성은 죄된 사회를 만들고, 죄된 사회는 또한 인간의 죄성을 긍정하고 오히려 부추겨서, 인간을 더욱 악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극도에 이르면, 전쟁과 혁명과 같은 파국이 오고, 그 이후에 사회는 다시 정화됩니다. 이러한 일은 인류의 역사에서 늘 국지적으로 반복되어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다가 세상 전체가 그렇게 극심하게 타락한다면, 아마도 진정한 말세가 올 것입니다. 계몽주의자들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세상은 전체적으로 볼 때에 계속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 세상의 복음화는 망상이요 착각이며, 오히려 반기독교적입니다. 우리는 거룩하여져 세상에 빛을 내어, 사단에 잡힌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는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믿게되어 그들을 추수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세상은 항상 하나님과 하나님 자녀에 대해 적대적입니다. 세상에는 결국 도덕이 최악으로 가고, 국가 간에도 이기심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자연은 파괴되고, 신자들은 증오의 대상이 됩니다. 따라서 신자가 근본적으로 편하고 부하게 되고 명망을 얻는 것에 힘쓴다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마24:7-10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 바울은 마지막 때가 나쁜 때라고 가르치며, 오늘 본문에서 말세가 나쁜 이유를 들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도덕성이 피폐되며, 이것이 교회에까지 들어와서, 교회를 망치게 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이러한 풍조가 교회에까지 들어와서 교인을 미혹합니다. 이러한 일은 거짓 교사가 주동을 합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2:3)
말세에 불법(anomia)의 사람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세상 모든 사람이 이를 따를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도 큰 유혹을 받습니다. 불법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불법의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아니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 사람 중에 누구도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말세의 최 현대인도, 불법의 사람을 좇으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법을 저촉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고 살면서도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하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좇으려고 노력하며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5까지 긴 죄 목록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인간의 불법이 그 모습을 얼마나 다양하게 나타내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인간의 죄 목록을 들고있는 것이 아니라, 말세에 이러한 인간의 죄가 두드러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악해지면 대다수 사람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말세의 징조입니다.
2.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자기를 사랑하며: 인간의 모든 생각과 의지는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타고난 원초적인 것입니다. 인간은 어릴때부터 올바른 교육과 많은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이러한 성향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인간이 가르치는 것을 훨씬 넘어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 대신에,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교육을 잘 받아 고상한 사람은 자기 절제를 잘 하므로 자신의 생각과 욕망이 고상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사회와 시대가 악해지면, 그 영향으로 그들마저도 절제를 잃게 되므로 사회가 전반적으로 균형을 잃습니다.
5절까지 등장하는 모든 악덕은, 자기애가 다른 모습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면 자기애가 밖으로 드러나게되어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4-5). 또한 이웃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자기애의 가장 일반적인 표현은 돈과 명예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과거에 한국에서는, 가진 것이 별로 없으나 똑똑하고 재주가 있는 한국사람으로서 그나마 가장 쉽게 돈과 명예를 얻는 길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이 60, 70대가 되어 목회에 큰 성공을 거두어, 많은 돈을 벌게되고 큰 명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중에서도 특히 조용기 목사는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막강한 권력을 갖게되고, 그의 재산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의 부인, 아들, 손자, 며느리, 사돈, 사돈의 팔촌까지 부와 권력을 누립니다. 그들은 많은 세속 회사를 운영하여, 가족, 친척들이 돌아가며 회장 직을 갖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아들은 탈세하여 일본으로 도주하고, 그들 중에는 많은 검은 돈이 돌아갑니다. 조용기 목사가 나이가 들자 가족끼리 재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요즘은 순복음 교회 장로 40여명이 조목사 부인에게 400억원을 돌려달라고 공개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 매스컴에 보도됩니다. 이 돈은 조용기 목사 기념관을 지을 돈으로 지급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항상 많은 경호원으로 둘러 쌓여 있기 때문에, 그에게 접근하기도 어려운 사람입니다. 목사가 현세에서 부귀 영화를 마음껏 누린 것도 부족해서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영원히 남기기 위해 자신의 기념관을 짓고자 합니다.
그는 자신의 교회를 키워서 출세하기 위해 기독교 신앙에 무속신앙과 심령술, 번영복음을 섞어서 한국인 종교심성에 가장 잘 맞는 상품을 내어 놓았고, 이것이 히트하여 오늘날 대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그의 교회는 70만의 종교인이 등록되어 그는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이끈 사람입니다. 그는 순결한 기독교를 더러운 세속 종교로 만들고 기독교에 무속종교와 세속주의를 혼합시킨 장본인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종교인으로서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한국인의 정서를 더럽히고 수많은 악행으로 일반 믿지 않은 사람의 지탄의 대상까지 되었습니다. 그는 거짓말의 명수로서 무슨 죄를 지어도 사과하지 않고, 전부 합리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교회에서 설교하면 수십만 명이 아멘 합니다!
그뿐 아니라 한국인 과반수의 목사와 신자가 그를 부러워하여, 그를 닮으려고 노력합니다. 교회가 커지면 전부 크고 화려한 교회당을 짓고, 목사는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까지 남기려고 합니다. 이것이 말세에 나타나는 종교인의 변태적 자기자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생전에 거처할 곳도 마땅히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커지고 유명해지면서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 영광스럽게 된다고 스스로도 속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만방에 드러내기 위해 자신이 유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져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결코 피조물과 나누지 아니하십니다.
„한민족 재외동포 세계선교대회“는 2011년 7월 11-15일에 열렸는데, 신문에 광고된 강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용기, 이동원, 홍정길, 하용조, 김상복. 대회를 주관하는 측은, 이들이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강사진이라고 선전했습니다. 신자는 결코 악한 자들과 어울리면 안 됩니다(„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고전15:33). 어울린다는 것은 그들의 악함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강단에서 악한 자와 설교를 함께 한다는 것은 명백하게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이동원, 홍정길, 하용조, 김상복 목사는 무당과 같은 조용기 목사와 강단을 함께 함으로써 거룩한 강단을 더럽혔습니다.
유명한 목사 중에서 돈은 사랑하지 않을지도 명예를 사랑하는(자신을 자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명예를 지나치게 좋아하면, 이미 얻은 명예를 잃지 않기 위해 거짓과 타협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대부분 유명한 한국 목사들이 하는 일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상품으로 포장해서 팔아서 큰 명예를 얻었기 때문에, 이 명예를 계속 유지하려고 할 뿐 아니라, 역사에도 길이 남기려고 하기 때문에, 기념관과 큰 교회를 짓습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높이는 일은 하나님이 매우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것이며, 사회적으로 볼 때에도 악한 종교인에게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을 볼 때, 한국에는 말세의 징조가 뚜렷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를 두고 보면 국지적인 현상이 될 수 있으므로, 말세가 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교회를 개혁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고, 교회의 개혁은 우리가 진심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좇을 때,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