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성지가 위치한 수원 화성(華城 : 아름다운 성)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의 명을 받아 다산 정약용(요한) 선생이 설계, 시공한 성으로 1794년(정조 18년) 1월 착공하여 2년 9개월 뒤인 1796년(정조 20년) 9월에 완성된 둘레 총길이 5.743km, 직경 평균 1.8km의 성곽이다.
그런데 수원 화성은 정조대왕이 승하하고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천주교 신자들이 끌려와 취조와 고문을 당하고, 피를 흘려 주님을 증거한 거룩한 순교지가 되었다.
수원 화성은 다산 선생의 천주 신앙을 뿌리로 하여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설계되었는데, 성벽은 외측만 쌓고 내측은 자연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운 축성술로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하느님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룬 수작으로써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2000년 대희년에 수원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에 의해 북수동 성당을 중심으로 하는 천주교 수원 성지로 선포되었다.
수원 화성은 현재까지 78명의 순교자 명단이 기록에 의해 전해지고, 이름 없이 죽어간 천주교 신자들까지 합하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천 명의 무명 순교자들이 주님 나라 건설을 위해 박해를 당하고 처형된 곳이다.
현재까지 신앙의 증거지로 밝혀진 곳은 '화성행궁', '화청관 이아', '중영', '동남각루', '남암문', '형옥', '팔달문 밖 장터'와 '장안문 밖 장터'이며 그 외에도 '종로 사거리', '화령전과 화서문 사이 사형터', '동장대'도 순교지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다산 선생이 수원 8경 중의 하나인 화홍문과 그 위쪽에 방화수류정을 세웠는데 화홍문은 아름다운 무지개 문이란 뜻으로 하느님께서 노아와 맺은 구약의 계약을 상징하고, 화홍문을 떠받치고 있는 7개의 수문은 예수님께서 인간과 맺은 신약의 계약인 7성사를 상징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방화수류정은 “꽃을 쫓고 버드나무 길을 따라가는 아름다운 정자”란 의미이다. 서쪽 벽에 십자가 문양이 86개(기둥 때문에 5개는 반쪽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데, 당시 천주학이 서양의 학문인 서학이라 하여 서쪽 벽에 새겨 넣었고, 해가 져 어두워질 무렵에 십자가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만들었다. 이는 세상 어둠이 드리우는 곳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광명의 빛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하겠다. 지붕도 8각을 기본으로 남북에 합각을 더 세워 십자(十)형으로 되어 있고 방화수류정 안으로 올라서서 위를 바라보면 천정을 받치고 있는 서까래들이 십자가형으로 되어 있다.
구 수원 성당(북수동 성당) 4대 주임 심응영(뽈리데시데라도, 파리 외방 전교회) 신부는 일제 강점기인 1932년에 수원 화성의 거룩한 순교를 기념하고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 수원 최초의 근대 건축양식의 고딕식 성당을 지었는데, 6.25 때 몸을 피하지 않고 의연히 성당 안에서 기도하던 중 인민군에게 끌려가 순교하였다.
수원 성지를 순례하면 첫째, 순례자 자신과 연옥 영혼을 위한 전대사와 한대사를 받게 된다. 둘째, 시간에 쫒기는 현대인들이 주일 상설고해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고 마음의 위안과 휴식을 얻으며, 순례미사를 통해 순교자들의 전구에 힘입어 모진 세파를 잘 이겨나갈 영적인 힘과 은혜를 얻게 된다. 셋째, 다산 선생이 설계한 수원 화성 108개 건축물을 포함, 세계적인 수원 화성 문화재를 통한 문화체험과 함께 우주만물의 주님께 대한 충(忠)과 효(孝)의 순교자 신심을 체험하고 배우게 된다. 넷째, 수원 성지 안에 있는 구 소화 초등학교 건물이 순교 박물관과 종교 미술관으로 리모델링되어 자랑스런 천주 신앙과 문화의 유산을 자자손손 이어받을 수 있게 된다. 수원 성지를 순례하는 발걸음이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맺어 주님의 영광이 온누리에 두루 퍼져나갈 것이다. [출처 : 수원 성지 홈페이지, 내용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