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체스키크룸로프성 보리수나무
아메리카 원주민은 빙하기에 베링해를 건넌 아시아 북방민족이다. 인디언은 인도인들이 자기를 부르는 이름이다. 집시(Gypsy)는 서아시아와 유럽의 인도아리아계 유랑민족이다. ‘집시’를 비하어라 여겨 북인도에서 기원한 민족 이름인 롬인(Romani people)이라 한다. 이들도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1933~1945)에 가스학살 및 강제 노역으로 60~80만여 명이 죽었다.
영국 작가 에밀리 브론테(1818~1848)도 소설 ‘폭풍의 언덕’에서 이들 롬인을 부랑아로 묘사했다. 인구 1천 40만 중 30여만 명의 롬인이 거주하는 체코에서도 1999년 10월 ‘수치의 벽 사건’이 있었다. 보헤미아 북부 산업도시인 ‘우스티나트라벰’의 시 의회는 롬인과 주민들을 분리 시킨다며 황색과 갈색으로 칠한 높이 2m에 길이 65m의 벽을 세웠다. 그러나 국내외의 거센 비난에 이 수치스런 장벽은 한 달여 뒤 철거되었다.
이 롬인을 보헤미안이라고도 부른다. 로마시대에 체코의 서부와 중부를 보헤미아(Bohemia)라 했고, 15세기 무렵 롬인들이 이 지역에 많이 살아서다. 또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 ‘프라하’는 16세기 말, 17세기 초까지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다.
체스키는 ‘보헤미아’이고, 크룸로프는 ‘활처럼 구부러진 강의 습지’이다. 이 체스키크룸로프성은 프라하 남서쪽 200여km 오스트리아와의 이웃 도시 ‘크루마우’에 있다. ‘블타바강’이 체스키크룸로프성 마을에서 S자 형태로 기다랗게 두 번 굽어지며 흐른다. 어찌 보면 태극문양이고 두 마리 거북이 머리 내밀어 물을 마시는 듯싶다. 젊은이들이 래프팅을 즐기는 맑은 강물에는 송어 떼가 물 반 고기 반 지천이다. 그렇게 맑고 푸른 블타바강 언덕의 붉은 지붕 둥근 탑이 어우러진 체스키크룸로프성은 ‘유럽 제일의 아름다운 성’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이 아름다운 성에 슬픈 이야기가 있다. 신성 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와 궁녀 카테리나 사이에 사생아 ‘율리우스’가 있었다. 1605년, 루돌프는 체스키크룸로프성을 사서 조현병이 있는 율리우스에게 주었다. 1607년, 율리우스는 다리 옆 ‘라제브니키 이발관’의 아리따운 이발사의 딸 ‘마르케타’를 무자비하게 폭행한 뒤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다행히 마르케타는 목숨을 구했으나, 율리우스는 그녀를 다시 성으로 데려가려 했다. 이를 거절한 이발사는 감옥에 갇혔고 마르게타는 율리우스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 1608년 마르게타를 끔찍하게 죽인 율리우스는 범인을 찾는다며, 날마다 마을 사람들을 죽였다. 이에 마르케타의 아버지는 자신이 범인이라 나섰고 처형당했다. 루돌프는 율리우스에게 종신형을 선고했고, 이듬해 감옥에서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발사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서 ‘체스키크룸로프성’에서 마을의 큰 광장 ‘스보르노스티’로 가는 블타바강의 다리를 ‘라제브니키교’, ‘이발사의 다리’라고 불렀다.
이 다리에 성민을 위로하듯 예수의 십자상과 ‘얀 넵포묵’ 상이 마주하고 있다. 얀 넵포묵은 보헤미아 왕 ‘바츨라프 4세’가 왕비의 고해성사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등 자신의 뜻을 거역했다며 혹독한 고문 뒤, 1393년 3월 20일 산채로 블타바강에 던진 체코의 순교 수호성인이다.
또 여기 체스키크룸로프성에 ‘에곤 실레’ 미술관이 있다. 에곤 실레는 ‘키스’ 그림의 ‘구스타프 크림트’와 함께 오스트리아 근대미술의 거장이다. 이곳은 에곤 실레가 자주 찾아 여러 장의 그림을 남긴, 어머니 ‘가틴 마리 실레’의 고향 외갓집 마을이다.
어딘들 이야기가 없으랴? 그저 흐르는 세월이 그 이야길 묵묵히 가슴에 담고 있을 뿐이다. 그걸 꺼내느냐 마느냐는 선택이다. 체스키크룸로프성의 아름드리 보리수나무 앞에서 그 세월의 이야기들을 잠시 꺼내 본 뒤 다시 소중히 간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