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답사안내
답사코스
6시광주비엔날레주차장출발--10시경복궁-고궁박물관----인사동(점심)--종묘--서울중앙박물관--오후9시광주착
서울의 5대궁궐
조선왕조 500년의 도읍지로서 서울의 역사와 위용을 자랑하는 유적은 무엇보다도 궁궐이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등 5대 궁궐은 비록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 때의 파괴로 원 모습을 잃었지만 현재 남아있는 건물 만으로도
조선왕조의 기품과 궁중 문화의 장려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5대 궁궐이 있기에
서울은 서울일 수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제1궁궐이며 법궁인 경복궁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경복궁(景福宮)은 조선의 정궁(正宮)이다. .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태조는 궁궐과 종묘, 사직이 들
어설 자리를 정하고 태조 3년(1394) 10월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겨 왕궁을 창건하기 시작하여. 태
조 3년 12월 4일 개토(開土)를 시작하여 태조 4년(1395) 9월 경복궁이 조성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왕조 최초의 궁궐인 경복궁이 창건되고 태조의 명을 받은 정도전이 궁궐의 이름을
경복궁이라 지어 올린다.“景福은 詩經 大雅의 旣醉 편”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
불렀으니 군자는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리”에서 따온 말로 큰 복을 누리며 번성하라는 뜻을 지니
라는 뜻으로 경복궁의 이름을 붙였다.
현재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을 지나 흥례문. 영제교를 지나면 기능에 따라 영역이 나뉜다.
흥례문 영역
흥례문과 근정전 사이에서 근위병 교대식을 하고 있네요 .시간에 맞춰가면 화려하고 근엄한 근위
병교대식을 볼 수있어요
.
흥례문은 근정전으로 들어가는 첫 번 째 문이다. 경복궁 창건 당시 지어졌던 건물로 문의 이름은
세종때 홍례문으로 했던 것을 고종 때 흥례문이라한것같다.
근정문
근정문은 근정전과 더불어 왕위 즉위식을 비롯한 왕실의 행사가 치러지던 곳으로 왕이 승하하면
왕세자는 근정전에서 즉위식을 하고 근정전의 옥좌에 오르곤 한다. 근정전에서 즉위식을 치룬 역
대왕으로는 단종, 성종, 명종이 있다.궐안에 있는 문으로는 유일한 중층 건물로 그 웅장한 품새가
법전의 문으로참으로 당당
근정전
임란때 불탄것을 고종 3년에 재건 조선조 최후의 대작으로 국보 제 223호이다.월대는 상월대와 하
월대로 이루어져있는데 월대마다 난간을 두르고 그 엄지기둥(문로주)에 화강석으로 돌짐승을 장
식해 놓았다.공간을 방위하는 사방신과 시간과 공간을 상징하는 십이지신상(열두 동물중 용,개 돼
지는 빠져있다) 그리고 상서로운 동물 서수(소맷돌 상하월대 난간 모퉁이와 기단모퉁이위의 돌짐
승가족-해태도 찾아보자
2층구조의 지붕에 정면5칸 측면5칸.외부에서보면 2층이지만 내부로보면 통층구조북쪽 중심에 용
상 용상위 정교한 조각을한 보개 용상뒤로 섬세하게 조각된 삼면의 목조병풍(왕권의 무궁한 번영
을 기원하고 칭송하는 일월오악병풍. 여전히 왕실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근정전 천정 칠조룡
높고 높은 천장 중앙에 제왕을 상징하는 용.제왕을 상징하는 용의 발톱은 보통 5게 오조룡인데여
기 근정전에는 발톱이 일곱 개 .왕조가 무너져가는 시기에 만든것이라 더욱가슴이 아프다.
강녕전
왕의 사적인 공간으로 강녕전 이 강녕전의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이랍니다.왜냐구요 왕이
용이기때문에 왕이 쉬시는 곳에는 용마루를 놓으면 안되겠지요왕의 사적인 공간 강녕전 좀 쉬고
싶을땐 이곳에서쉬고 잠도자요.이건물의 지붕엔이 없어요 .집안에 용이 계시기 때문이죠
아미산
강녕전뒤에는 왕의 부인인 왕비의 거처가 이겠지요 교태전이랍니다 이교태전 뒤뜰을 아미산이라
하는데 꽃으로 수놓은 굴뚝이 여성이 있는 공간으로 보이지요 .백두대간의 정기가 북악에 내려 그
기운이 중전마마계시는 교태전 뒷마당에 있는 연못에 스며들어 다음 대대로 보위에 오를 왕손에게
맑은 정기가 다 들어가도록 심혈을 기우려 만든 신령스러운 산입니다
자경전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아들 명복(고종)을 왕위에 앉혀줘서 얼마나 고마왔겠어요. 멋을 아는 대원군
께서 조대비를 위해 정성스레 만든 건물입니다.자경전의 꽃담과 굴뚝은 세계어디에도 없는 아름다
운 것이지요 .십장생의 그림들도 찾아보면 재미있어요. 대비마마가 계신 자경전 .이 자경전의 꽃
담과 십장생굴뚝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대비마마께서는 꽃밭속에서 살았어요
향원정
고종황제가 왕실 가족들 그리고 비빈들과 노닐던 사적인 정자입니다 .
고종황제께서 중전마마 후궁그리고 왕실의 가까운 분들 과 노닐던 곳이랍니다 .이 향원정은 마치
하나의 공예품을 보는거 같애요.
향원정너머에 중국풍의 건물이 하나보이고 그너머에 북문인 신무문. 신무문 너머에는 청와대가 가
까이 보입니다
경복궁의 화려한연못 향원정
묘
종묘(절제,단순,반복)
외대문(정문) >
종묘의 정문은 남쪽에 사묘(祠廟)의 표문(表門)답게 정면 세 칸의 평삼문(平三門)으로 되었고, 정문 좌우로는 종묘외곽을 두르는 담장과 연결되어 있다. 정문 안 서쪽으로는 본래 종묘를 지키는 수복방이 있었다. 정문은 원래 전면 중앙에 난 계단으로 오르내리게 되어 있었는데, 일제시대에 도로를 조성하면서 도로 면이 높아지게 되어 땅에 묻히고 지금은 단벌의 장대석 기단만 있다.
종묘 정문은 외대문(外大門) 또는 외삼문(外三門)이라고도 한다. 정문은 궁궐 정문과는 달리 구조 형태가 아주 검박하고 단순하다. 정문밖에는 하마비(下馬碑)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된 어정(御井)이 있다.
신로
신이다니는길. 가운데신로 왼쪽 세자로 오른쪽 어로
<
지당 천원지방
망묘루>
향대청 남쪽에 위치하는 망묘루는 제향(祭享)때 임금이 머물면서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先王)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망묘루는 건물 중 한 칸이 누마루로 되어 있다.
<향대청>
종묘 정문을 들어서면 지당(池塘)이 있고, 그 동쪽으로 망묘루, 공민왕 신당, 향대청 일곽이 있다.
향대청은 종묘에 사용하는 향축폐(香祝幣)와 제사 예물을 보관하고, 제향(祭享)에 나갈 헌관들이 대기하던 곳으로 남북으로 긴 뜰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재궁>정전 동남쪽에 위치한 재궁은 어숙실이라고도 하며 국왕이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재궁 북쪽에는 임금이 머무는 어재실, 동쪽에는 세자가 머물던 세자재실(世子齋室)이 있고, 서쪽에는 어목욕청(왕이 목욕하는 건물)이 있다.
<공신당
조선 왕조 역대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정전 울타리 안 월대 남쪽의 동쪽에 있으며 창건 때는 5칸에 불과하였으나 나중에 9칸으로 늘렸다가 지금은 16칸의 긴 건물로 되었다.
칠사당과 같은 구조 형식으로 매우 간소하게 되어 있는데 왕의 신실과 한 울타리 안에 있어서 일부러 그 형식을 낮추었다고 생각되며 16칸이라는 보기 드문 건축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정전에 와서도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쉬운 건물이다.
<칠사당
창건 때부터 정전 울타리 안 월대 남쪽의 서쪽에 있던 것으로 봄에 모시는 사명과 사호, 여름의 사조, 가을의 국문과 공려, 겨울의 국행과 그밖에 중류의 7사에 제사 지내는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 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판문과 격자창을 두고 나머지 3면은 전돌로 벽을 쌓았다.
<정전
종묘 정전은 매칸마다 신위를 모신 신실인 감실 열아홉 칸, 신실 양 옆으로 각각 두 칸의 협실, 그리고 협실 양 끝에서 직각으로 앞으로 꺾여 나와 마치 신실을 좌·우에서 보위하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동·서월랑 다섯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문인 신문에서 보면 동서 109미터, 남북 69미터나 되는 묘정 월대가 넓게 펼쳐있고, 월대 가운데에는 신실로 통하는 긴 신로가 남북으로 나 있으며, 그 북쪽 끝에 상월대와 기단이 설치되어있다. 종묘 건축이 다른 건물과 다른 점은 건물 내부에 모실 신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몇 차례에 걸쳐 건물을 옆으로 증축하여 길게 늘린 점에 있다.
판위;세자판위, 전하판위
<전사청
전사청은 종묘제사에 사용하는 제수의 진찬 준비를 하던 곳으로, 뜰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로 건물을 ㅁ자형으로 배치하였다.
주실은 정면 7칸, 측면 2칸이고 옆에 온돌과 마루방을 들여 행각으로 꾸몄다
제정제정은 향제(享祭)에 사용되는 우물을 말하는데 정전 전사청(典祀廳)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찬게 특이하다고 한다. 네면을 담장으로 둘렀고, 남쪽에 우진각지붕의 일각문(一脚門)이 있다.
찬막단,제사지낼음식검사
성생위제사에쓸소나 양검사
영녕전>
영녕전은 신실 하나하나의 구성은 정전과 크게 다름이 없지만 부재의 크기가 정전보다 약간 작고 전체 건물 규모도 정전보다 작기 때문에 정전에서와 같은 장대함을 느끼기에는 뒤지는 감이 있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공간이 한눈에 쉽게 들어와 친근감을 더해 준다.
네모난 아랫부분에 원형 주좌를 둔 주춧돌에 둥근 기둥과 간단한 초각을 한 익공을 짜고, 퇴칸 안에 두 짝 판문을 달고 뒤는 화방벽으로 쌓고 서까래는 부연 없는 홑처마로 꾸미는 등 세부 구성은 정전과 거의 같으며 역시 부재 표면도 단청 없이 간단히 주칠로 마감하였다.
정전과 좌우 익실 앞으로 동·서월랑이 뻗어 나와 ㄷ자 형태를 이루고 있고 박석을 덮은 상·하월대가 울타리를 가득 메우는 점도 동일하다. 이곳은 부재의 처리나 건물의 규모가 전체적으로 종묘 정전보다는 작지만 건축 공간 자체의 장엄한 공간 구성은 여기서도 잘 나타나고 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친근감 있는 장인들의 솜씨는 이곳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정전악공청>
종묘제례시에 주악하는 악사들이 대기도 하고 연습하기도 하는 건물이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건축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영녕전악공청종묘제례시에 주악하는 악사들이 대기도 하고 연습하기도 하는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건축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
용산에 있는 중앙박물관
.각 도시마다 박물관이있어 그지역의 문화의 특성을 알아볼 수 있는데 우리 광주에는 국립 광주박물관이 있어 먼 예날 마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지역의 변천을 알아볼 수있다
박물관은 우리 문화의 진수를 모아놓은곳
서울 중앙박물관은 내부에 진열해 놓은 것만이 아니라 박물관 건무 물체도 우리 문화의 종합체 한옥의 특징인 마루와 마당. 그리고 우리문화 중에서도 문화의 꽃은 한글이라는 것
집을 지을 때 배산임수의 원칙도 잊지않고 ......
박물관을 둘러 보면서 잔잔한 문화의 상징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 중앙박물관엔 바로 우리 문화의 꽃이라 부를 수 있는 문화유산을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청동기-선삼국-삼국 시대를 지나 고려- 조선시대의 유산까지 한 곳에서 총망라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용산중앙박물관이야말로 우리민족문화의 정수를 모아놓은 곳이라 할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