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란 가사가 정겨운 목로주점을 비롯, 포장마차, 무시로, 말태우리,
에닝껭" 등등은 우리들이 즐겨 부르던 대중가요의 제목 입니다.. 그 중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포장마차는 "난전 노점상"에서 유래된 것이기에 소개합니다 >>
*길바닥에 벌여놓은 소규모 가게가 노점(露店)이고 그렇게하는 장사를 露店商, 그렇게 장사하는 사람을 露店商人이라고 한다. 난전(亂廛)이라고도 한다.
난전은 조선시대에 *육주비전(六注比廛)에서 파는물건을 몰래 팔던 가게다.
(*육주비전:조선시대에 서울 종로에 있던 백각전(百各廛) 가운데서 으뜸가던 여섯전으로 선전(선廛), 면포전(綿布廛), 지전(紙廛), 면주전(綿紬廛), 저포전(紵布廛), 내외어물전(內外魚物廛)등 육의전(六矣廛)을 말한다.)
얼마전만 해도 종로의 街路邊에는 노점들이 즐비했다.
흔히 노점상 하면 길거리에서하는 가게로 생각 路店으로 생각하기 쉽다.
겉으로 드러내는것이 露出이며 한데서 잠을 자는것은 露宿이다.
비우(雨)자 밑에 길로(路)자로 陰之液霜之始:이를로(露)자를 쓴다.
옛부터 이슬(露)은 때묻지 않은 신성수(神聖水)였다.
떡갈잎의 이슬을 털어 눈을 씻으면 눈이 밝아진다 했고 한무제는 金盤에다 이슬을 받아 옥가루를 타 마셨고 양귀비도 아침마다 꽃이슬을 털어 옥가루를 타 마셨다고 한다.
이슬은 달빛타고 하강한 월궁(月宮)의 항아(姮娥)이기도 하다.
국사를 다스리는 옛 조관(朝官)들이 매미날개를 단 익선관(翼蟬冠)을 쓰는 이유도 매미가 때묻지 않은 가장 순수하고 청결한 이슬만 먹고사는 곤충이기에 청백을 표상코자 씌운 모자인것이다.
그토록 至高至上으로 깨끗하고 순수한 이슬인 것이다.
그렇다면 露店은 길바닥 한데에서 비나 이슬을 맞으며 하는 아니면 순수하게 다 드러내고 하는 가게란 뜻인가? 아무래도 좋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니까요---?
조상들은 감로주(甘露酒)라 하여 이슬을 받아 술을 빚어 마시면 장수한다 했다.
오늘날 시중 최고의 술도 참이슬/眞露 아니던가?
노점상들은 그후로 운반과 이동기능이 추가된 개량형으로 나온것이 포자마차(布帳馬車)다.
서양은 어땠을까?
서독시절로 보면 큰 도시들의 중심부에는 광장이 있고 그 광장에는 저녁까지 노점천국이다.
검약정신이 강한 독일사람들은 그 노점에서 감자튀김이나 소시지로 끼니를 때운다.
파리의 세느강 양쪽에는 간이식과 세간살이 점쟁이 노점이 즐비해 있다.
로마에도 노점은 즐비하다.
이들 노점들은 그 도시를 인상적이게 하는 풍물시(風物詩)로 관광객들의 환심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유럽에서 牛馬가 주된 교통수단이었을때 우리나라의 주막같은 역할을 노점이 했기에 노점문화가 발달해 있다.
태국에는 "루아지"라는 나룻배노점이 길과 운하를 메우고있다.
되돌아보면 우리나라 상업의 대본은 바로 노점이나 가가(假家)였다.
서울만 보더라도 남대문에서 종로까지 동대문에서 서대문에 이르는 길은 본래 폭이 80척이나 되는 대로였는데 양편에 길 깊숙히 노점과 가가들이 들어서 길을 반으로 좁혀놓곤 했던 것이다.
구 한말때만 해도 여러번 철거를 시도 했지만 성안 사람의 거의가 여기에서 생활필수품을 조달했기로 임금님이 행차할때만 철거한다는 조건부로 묵인하지 않을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같이 정착된 노점상 말고 지게에 지거나 엿판처럼 목에 메거나 수레에 밀고다니는 노점상인을 "무시로"라고 했다.
무시로는 여러 가정에서 무시(無時)로 쓰는 생활도구라는 뜻이라 한다.
서강이나 뚝섬에 이 무시로 客主가 있어 貨主로부터 위탁받아 장사를 했다고 한다.
아직도 종로 거리에는 그옛날의 모습과 냄새가 물씬 풍기는 노점문화와 인심을 느낄수 있다.
문제는 무엇인가?
보행자들에게 불편을 주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등 외국관광객에도 좋지않은 인상을 주게 한다는것이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 좋은가?
특히 최근 외국 관광객 유치에 홍보전이 뜨겁다. 觀光이란 무엇인가?
그말의 어원을 보더라도 다른나라의 잘된 모습을 잘 살펴본다는 뜻인 "觀國之光"에서 비롯되고 있다.관광에서 山水를 유람한다는 뜻이 가세된것은 최근의 일이요
본래는 다른나라의 문물제도나 풍속, 인심을 살펴 자국에 도움이 되게한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청암관광(聽闇觀光)이란 말을 썼다.
청암은 어둠을 듣는다. 곧 형상이 있는 보이는것도 보지만 형상이 없는 보이지 않는것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심같은것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것이다.
그것을 느끼는것도 청암일것이다.
그런 인심이 옛날 옛것에서 뒷골목이나 재래시장거리 등에서 베어 나오는 것이다.
바로 옛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종로거리의 노점문화도 그런것이 아니겠는가?
그런것들이 변했다.
조선시대부터 시공(時空)을 초월해서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온 종로거리의 460여개가 넘는 노점들이 시에서 마련해준 정해진장소(뒷골목이나 집단지)로 이전했다.
부득이한 경우의 점포들은 통일된 규격 "Haechi Shop"이라는 이름으로 새단장을 했다.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 하여 철거당하거나 이리저리 쫓기고 쫓기던 露店商들!
실은 가꾸기에 따라서는 외국인이라면 접하고 싶은 그나라 서민문화의 체온이지 치부(恥部)는 아닐것이다.무엇보다도 서민들의 생계수단이 걸린 문제이고 보면 당국의 정책배려에 의한 아주잘된 일이라고 본다.
많은 보행자들의 편의를 위하고 도시미관도 살리고 하여 관광객도 몰리고---
그야말로 누구좋고 누구좋은 "Hi - Seoul!"이다.
露店과 포장마차(布帳馬車)!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길거리 문화인 것이다.
Hi -Seoul, Smart Korea의 모습을 보입시다.
걸인도 전방이 있어야---?
길모퉁이에서 거지가 모자를 양손에 든채 구걸을 하고 있었다.
행인:왜 모자를 두개나 들고 있는거죠?
거지:요즘 이곳은 장사가 잘되서 체인점을 하나 더 냈습니다.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