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의 밀알로 봉헌되신 예수님 (요한 12:20-33)
한상윤 프란시스 신부 / 부대동교회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하늘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리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를 위해서 들려온 말씀이라고 하시며, 수난과 죽음으로 높이 들리게 될 때에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
영광(doxa/ glory)이란 단어는 하느님의 능력에 의한 하느님의 현현, 임재를 뜻합니다. 그 영광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떻게든 인간에게 보여주시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만, 정작 죄를 짊어진 채 살아가는 인간은 하느님 앞에 결코 설 수 없음을 알려줄 뿐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느님을 눈으로 뵙다니, 이제 나는 죽었다’(이사 6:5)고 생존을 부르짖었고, 모세도 ‘불타는 떨기나무 가까이에서 하느님 뵙기가 무서워 얼굴을 가렸다’(출애 3:6)고 합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친히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주의 영광이 나타나리니 모든 사람이 그 영화를 뵈리라’(이사 40:5)
영화로우신 하느님의 영적인 신성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현현과 임재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보여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너희들의 하느님이 되고 너희들은 내 백성이 될 것’(예레 31:33)이라는 새계약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하느님과의 언약이 담겨 있고, 그것을 성취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합니다. 하느님은 인류가 죄악으로 인해 잃어버린 당신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시켜,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로 옮아가게 하였습니다(2고린 3:18). 뿐만아니라,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이자, 상속자가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있으니 영광도 그와 함께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 실현되기를 기도하면서도 고난은 빼버리고 자신의 영광만을 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에게 자기 십자가를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은 자기 영광만을 구하는 길이 아닙니다. 거짓되고 죄악으로 점철된 옛습성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는 십자가의 이치를 큰 사랑으로 성취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 생명을 구걸하지 않고, 오히려 당신 자신이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로 봉헌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고난의 시간을 겪으러 세상에 온 것이라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셨고,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신 사랑의 삶을 실행하셨다.
우리를 위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흘려야할 눈물과 간절한 기도를 주님께서 대신 하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죗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희생제사의 희생양이 되신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밀알로 봉헌하셨습니다.
밀알이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순교자와 신앙의 인물도 열매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역시 열매를 누리는 삶은 거절하고, 한 알의 밀알이 되었으며,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선포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