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수스 여행4 - 타르수스에서 쿠르드족 소년을 만나고 조각상이 늘어선 거리를 걷다!

5월 22일 가지안텝 에서 버스를 타고 아다나 를 거쳐 13시 10분에 타르수스 Tarsus
오토가르 에 도착해 택시로 시내로 들어가서는 호텔에 체크인을 합니다.


호텔에서 잠시 쉰후 밖으로 나와 로터리에 선 쿠탈미쉬 슐레이만 샤 동상 을 지나....
사도 바울의(St. Paul) 의 집터 Antik Sehir 와 우물 St Paul Kuyusu. 을 봅니다.


바울의 옛일 을 회상하고 밖으로 나오니 조금전 여기 골목앞에서 길 안내 를 해주었던
소년 이 우릴 기다린듯 서 있는데..... 그 눈빛이 애수 를 뛴듯 하면서도
너무나도 강열해 선뜻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데.... 자기는 "쿠르드인" 이라고 말하네요?


쿠르드인, 네가?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서 5리라(2천원) 를 꺼내 주니
소년은 얼른 받아 재빨리 달아나는데, 마눌은 아이에게
큰 돈을 주었다고 물정 모른다고 나무래는데... 당신이 쿠르드인 을 아니?


쿠르드족 은 아리아 계통으로 터키, 이란, 이라크 및 시리아 에 걸쳐 거주하며...
이슬람교의 수니파 에 속하고 반(半)유목민과 농경 에 종사하는데
이란어계의 방언인 쿠르만주어 를 사용하며 특히나 민족의식 이 강하다고 합니다.


현재 터키 공화국 은 단일 민족이 아니니 투르크인이 다수로 70% 를 차지하지만
나머지 30% 는 60여개 소수민족 이 있는데 그중에 2위는 쿠르드족 으로 7%
가량 된다고 하는데 고대 수메르 문서 에 나타나는 구투(Gutu) 를 조상으로 봅니다.

혹은 그리스 · 로마의 고전 에 나오는 카르두치(Carduchi) 가 그 원조라고도 하는데
중세에는 아라비아인의 지배를 받았으나 11∼12세기에는 자립 하였으며 그 분파에서
십자군 시절 아랍의 영웅인 살라딘의 아이유브 왕조 (1169∼1250) 가 출현 하였습니다.

16세기에 오스만 투르크제국 에게 정복되었으나 사파비 왕조와의 조약으로 터키와 이란령
으로 분할되었으며... 터키령의 쿠르드족 은 1919년 케말 아타튀르크의 민족 항전에
대립해 1922년 세브르 조약으로 자치정권 이 약속되었으나, 로잔조약으로 취소 되었습니다.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 는 터키를 구한 국부 이지만 쿠르드족에게는 원수 이니
일본과 조선 에서 평가를 달리하는 이토 히로부미 와도 같은데
쿠르드족 은 1925년에는 술탄제의 부활을 요구하며 무장 반란 을 일으킵니다!


쿠르드족의 봉기 는 터키군에 의해 진압 되었으며 이란령 쿠르드족 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자치정부를 수립 하였으나 소련군 철수와 함께 이란군에 의해 해체 됩니다!

이라크령의 쿠르드족 은 1991년 걸프전후 기회를 잡아 이라크 북부 산간지대의 자치지역
을 통치하는데 쿠르드족 민병대 인 페슈메르가 (Peshmerga) 는 IS 와의 전쟁 에도
맹활약하고 있으며 유전에 대한 통제권 을 확보해 완전한 독립국가를 지향 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에서는 IS 에 대항해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족이 혈전 을 벌였었는데
역시 미국의 지원을 받는 터키 공군기는 양쪽 모두를 폭격 하였으며....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군 은 IS 를 공격한다면서 엉뚱하게 시리아 자유군을 맹폭 했네요?

오랜 숙원인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터키와 이란, 이라크 및 시리아 네나라
에 흩어져 독립 무력투쟁으로 피의 악순환 을 반복하고 있는 현실에서
저 어린아이 가 느끼는 분노와 좌절 은 팔레스타인 어린아이 와 같으리라....


쿠르드족 이 낳은 위대한 안물은 살라딘 이니 1137년 이라크 티크리트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나즘 앗 딘은 모술의 장기 휘하로 들어가 그 아들인 누레딘의 휘하 에서도
출세가도를 달리니 살라딘은 1163년에 숙부 시르쿠를 수행하여 이집트 원정 에 나섭니다.


원정 6년째인 1169년에 시르쿠는 카이로 에 입성해 이집트를 정복 하지만 바로 죽으니...
26세의 청년 살라딘이 총독 자리를 이어받음으로써 이집트에서 아이유브 왕조 의 막이
오르는데 1174년 누레딘이 사망하자 살라딘은 이집트와 시리아를 지배하는 술탄 이 됩니다.


살라딘 은 십자군전쟁후 수립된 예루살렘을 압박하게 되었으니 성전(지하드)을 선포하고
1187년 6월 무슬림군은 하틴 전투 에서 더위와 갈증으로 무력해진 기독교군대를
대파 하고 이어 아크레, 베이루트, 시돈을 가쳐 마침내 10월 드디어 예루살렘 에 입성합니다.

예루살렘 은 보통은 기독교의 성지 지만 한 뿌리를 지닌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성지 이기도
한데 특히 이슬람교의 입장에서는 메카와 메디나 다음 가는 성지 였으니 아브라함과
예언자의 활동 무대였으며... 무함마드 가 이곳에서 천상에 다녀왔다고 전하기 때문 입니다.


1099년 제1차 십자군 이 예루살렘성의 아랍인들에게 항복하면 살려준다고 약속해 놓고는
성이 함락되자 아랍인과 유대인을 구분하지 않고 더우기 어린이와 늙은이 까지 죽이며
심지어 생명체는 동물 까지도 모두 죽여서 "더렵혀진 성지를 피로써 정화" 했는데 비해...


1187년에 살라딘 은 "킹덤 오브 헤븐" 영화에서도 보듯이 기독교인 기사 발리앙 과 협상을
벌인 끝에 88년만에 무혈입성 하는데 약속대로 목숨은 물론 재산까지 반출 을 허용하니
가톨릭 대주교는 마차에 바리바리 금은보화 를 싣고 나가자 살라딘은 야파에 호송해 줍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함락으로 유럽 각국은 경악해 마지않았고 그 결과 제3차 십자군 이 결성
되니 독일 황제 와 프랑스왕 필립 에다가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 1세 와 살라딘의
대결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명한 전쟁인데, 결국 이슬람은 예루살렘을 지켜내었던 것입니다!


1차 십자군 이 예루살렘의 이슬람교도 아랍인들과 약속을 배반하고 살륙한데 대해 기독교인
들은 이교도와 약속과 맹서는 기독교 교리에 위배되지 않는다 고 궤변을 늘어 놓습니다?
약속을 지킨데다가 무사히 돌아갈수 있도록 호위대 까지 붙여준 이슬람의 신사 쿠르드족
살라딘 을 생각하는데... 그 후손들은 아직도 독립전쟁에 피를 흘리는 현실 을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걸어서 대로 를 나와 호텔과 반대 방향인 오른쪽으로 구부러지니.....
거기에 도로 한 복판에 화단이 조성되고 여러 인물들의 동상 이 서
있는 모습을 보는데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여기가 무슨 역사 광장 이지 싶습니다.



첫번째는 할머니고 두 번째는 칼을 든 여자 입상 그리고 세 번째는 클레오파트라
이며 네 번째는 좀전에 보았던 터키 셀주크조의 술탄 쿠탈미쉬
슐레이만 샤 Kutalmisoglu Suleyman Sah 그리고 어어지는 무수히 많은 동상 들.....



그러고는 여러 조형물들 을 구경하면서 역사광장 을 지나
"클레오파트라 문" 을 찾는데 보이지 않기로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


여기가 아니고 저 옆 블록 으로 가야한다기에..... 좀 내려가서는 다시 죄회전을
해서 걷는데 길거리에 양탄자 를 지나니 보이는 사진은 예니체리 군악대 이네요?


그러고는 운동장 을 지나 나무들이 늘어선 거리 를 걸어 물어가며 좌회전을 하여.....


걸어서 오스만 투르크의 장군 기마상 을 지나 저 너머에 허물어지다만
오래된 돌로 된 성문 인 이른바... "클레오파트라의 문" 을 발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