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 여행을 생각하니 날씨면에서는 완벽했습니다. 다시 언제 갈 수 있을지 또다시 미래세월을 기약해야 하지만 오랜 세월 지내도 참으로 좋겠다싶을 정도로 제주도를 많이 알게된 여행이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영흥도나 대부도도 여기저기 탐방을 해보며 몰랐던 자연의 장소들을 살펴보아야 되겠습니다. 행복은 멀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까이에 있는데도 찾지 못할 뿐이죠.
이번 여행동안 가장 힘든 것은 역시 준이의 심각한 수준의 외계어남발이었습니다. 이만하면 잘 자라주었고 우리 세계에서 이 정도면 특급 모범생인데도 양육자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손을 써야할 지 좀 화도 나고 다음번 여행에 동반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드는 대목이기도 하지요. 준이의 손대기 어려운 문제행동은 역시 시도때도 없는 외계어남발과 예측하기 어려운 고집불통의 반항입니다.
물을 너무 좋아하기에 해수욕장에 데려갔는데 바다해수욕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물에 들어가기를 거부합니다. 어떤 수를 써도 고집을 꺾을 수 없으니 태균이만 즐길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와 함께한 경험은 일천하고 (주말에는 늘 집으로 가지만 집안에만 있다가 옵니다) 새로운 경험에의 즐거움을 알려주려 하지만 이제 머리가 너무 굵어져서 거부감을 보이는 활동에 끌어들이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특히 준이는 음식도 늘 같은 것만 먹으려하니 새로운 음식에의 시도는 당최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늘 밥과 고기, 찌개 외에는 손도 대지 않습니다. 집에서도 딱히 즐기는 게 없어서 태블릿이라도 하도록 해주었더니 이게 지연반향어의 산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원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외계어 남발증세는 있었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비례해서 많아지고 심각해집니다.
원래 휴대폰이나 태블릿에서 유튜브영상보기에 집착하는 아이들은 역시 시각정보처리 기능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태균이처럼 시각정보처리 기능이 괜찮은 아이들은 유튜브 보기와 같은 휴대폰 태블릿 영상보기기능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태균이와 같은 감각처리 기능의 경우에는 청각자극용으로 활용이 많아서 노래위주로 볼륨을 높여 시끄럽게 보는 경우가 많지만 오래하진 않습니다.
똑같이 휴대폰과 태블릿을 하는데도 아이들이 가진 감각문제에 따라 그 행태가 이렇게 다르게 나타나게 됩니다. 청각기능은 거의 정상에 가깝지만 전정과 시각처리 기능이 큰 걸림돌인 준이는 그래서 영상보기에 늘 집착하고 그 영상에서 나오는 소리나 대화를 그대로 입으로 발설하는 지연반향어 남발행동을 수시로 합니다.
문제는 전정기능이 아직 시원치 않으니 청각자극에 대해 이해를 하고 해석하는 기능이 안되다보니 무수히 입력된 청각자극들은 이상한 외계어를 변질이 됩니다. 한 때 어디선가 들었었을 '다 사라져버려'라는 말의 무한반복은 참을만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고 듣기거북한 외계어의 무한반복은 때로 견디기 어려운 고문이 됩니다.
차를 타고 이동해야하는 시간에 특히 심해지는 외계어남발은 때로 운전자에게 고문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저걸 어떻게 하지않도록 해줄까 고민을 해보지만 먹을 것을 주어도 잠시 뿐 먹으면서도 외계어를 하곤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이럴 때 눈을 많이 자극해주는 것인데 제가 옆에 붙어 있을 수 없으니 그냥 참고 인내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아직 어린데도 외계어남발 증세를 벌써 보인다면 고쳐줄 수 있는 좋은 시기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눈을 자극하는 활동이나 창밖보기 등인데, 휴대폰으로 영상보기는 지연반향어를 폭발시키는 부작용이 있기에 가능하면 큰 화면으로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간단명료한 말이나 노래를 보게하는 게 좋습니다.
원래 상태가 아주 좋음에도 이런 부분에 대한 수정이 되지 못하면 사회적 활동 참여가 심각하게 어려워집니다. 자신의 문제행동을 인식할 사고수준은 못되기 때문에 주변에서 보이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 피드백에 대해 분노하고 반항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준이를 보면서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볼 때가 많아서 남의 자식키우기가 보통 어렵지 않음을 느끼곤 합니다. 내 자식이다 생각하고 강하게 대응해보려니 이미 힘에서 밀려버려 힘의 대립에서 질 수 밖에 없는 세월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려니숲길을 가면서 너무나 움직이려 하지않는 준이를 힘으로 끌고가자니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제가 힘들게 준이를 끌고가는 장면을 동창이 사진으로 남겨놓았네요. 하는 수 없이 휴대폰을 주니 그 때부터 독립적으로 발을 떼어놓습니다. 점점 자신이 하고싶은 방향으로 자기 행동을 제어해가니 이걸 지켜봐야하는 저도 참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아닌 양육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부모만이 가장 좋은 양육자이자 방향지도자임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부모의 역할,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한번 절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