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어둠이 가시고 있었다.
희미한 형태로 벽에 매달려 있는 시계의 바늘이 보이지 않는다.
대충 잡아 여섯시즘 된것 같다는 생각으로 발아래 떨어진 리모컨을 발가락으로 힘주어 집어든다.
눈뜨면 고정으로 박히는 채널이 있다.
히스토리 채널이다. 밤새 공부하고 연구하다 새벽녁에 잠든 아내는 아직 자고 있다.
그런 아내의 잔잠을 방해 하지 않기 위해 볼륨을 죽이고 자막과 화면만 본다.
우중충한 하늘이 오늘은 비라도 내릴 듯 무겁다.
내가 살고있는 아파트가 12층이지만 실제는 바닥으로 부터 8층 높이 위에 있으니 보이는 풍경은 20층 밖이다.
3년전 목동에서 16년을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이곳 금호동으로 이사를 왔다.
회사가 코 앞이라 아침 시간은 물론이고 출퇴근 시간만해도 하루 2시간이상을 벌었다. 게다가 연료비를 절약하니 일석이조다.
젤 좋아하는 "판 스타스" 가 끝나면 나는 일어나 운동기구에 매달린다. 꺼구리다.
5년정도 해오는 정말 좋은 운동기구다.
이 꺼구리 덕분에 허리와 무릎 그리고 위장병, 빈혈까지 확실하게 잡았다.
매일 아침 밤으로 거꾸로 매달려 천정을 보며 하루를 구상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아침 먹기 전에 박동진의 쾌도난마를 보면서 경제신문을 본다. 경제와 정치판 돌아가는 걸 입체로 본다.
살아 있는 마케팅이다. 수많은 정치인들과 전문가 교수들의 그 잘난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들의 예측을 지켜보는 것이다.
아침은 여유가 있다.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 한그릇 그리고 과일 후식까지 마치고 출근 준비를 한다.
차를 가지고 가면 10분이면 도착한다. 그러나 가끔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다리만 아프지 않으면 걸어 다니면 걸어 다닐 거리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동호대교를 건너기가 불편해서 그렇지.
요즘은 두 정류장을 걷는 것만 해도 내게는 큰 행운이다.이제는 자칫 불편한 동작을 취하거나 무리하면
통증이 무릎에서 좌골로 허리로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40년전 사고로 망가진 다리로 이만큼 사용했으면 내 스스로도 대단하다고 본다. 의사들도 혀를 흔든다.
십자인대 파열에 연골은 오래전 다 닳아 89년에 관절경을 통해 한번 깨끗하게 청소를 했는데 다시 한번 해야 한다고 한다.
무릎에서는 뼛조각 5개가 제멋대로 돌아 다닌다. 이것들이 가끔 관절사이에 끼어 통증을 유발하지만...
요즘은 구두를 안신고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꾸준한 운동 덕분으로 무릎에 통증이 거의 없다.
날아 갈 것 같다. 물론 상상이지만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오르막 내리막 길만 아니면....
9시쯤 출근하여 직원들하고 간단한 업무회의를 하고 하루 일을 준비한다.
오늘은 매주 컨설팅해주는 스포츠업체 방문일이다. 소개할 내용을 머리 속에 정리하고
보름 이상 끌어오고 있는 지하철 역사안의 벽면 디스플레이를 아직도 디자인 컨셉을 잡지 못해 머리들을 맞대고
회의를 한다. 어제 놓친 아이디어를 다시 상기하며 더이상 나올 것 같지않아 버린 아이디어 중 하나를 정리한다.
좀더 바레이션하면 좋겠네라고 던져주고 다른 업무를 본다.
바이오디젤 신규회사의 CI건이다. 이미 만들어져 등록까지 한 경우이나 그걸로 회사의 이미지를 전달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지금이라도 새로 작업을 해야한다고 그리고 그에따라 사인물 설치나 기타 메뉴얼을 잘 할 수 있다고
광고주를 설득해주길 부탁하고 전화를 끊는데 모 도서관에서 전화가 온다.
3년전 설치해준 공공디자인 도색 보수공사를 부탁한다.
설치한 캐릭터와 책모양의 주차관리실 도색이다. 당시 너무 서둘러 만들어 제대로 완성하지 않고 설치하여 여기저기 균열이가고
녹이 슬고 색들이 벗겨졌다. 모두들 이런 일은 싫어한다. 돈이 안될 뿐더러 귀찮고 현장에 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주에 작업을 해주겠노라고 대답을 하고 돌아서는데 고객의 방문이다.
동갑인 한복 디자이너다. 몇년 전 환생의 날개라고 하여 내가 만들어준 도록이 있었다.
다른 디자인 업체에서 너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책을 완전히 뜯어고쳐 고급으로 만들어 줬다.
숫제 걸레를 행주로 만들어 줬으니 클라이언트는 신이 난 것이다.
그리고 그 책으로 많은 덕을 본 모양이다. 대학원에도 특강을 나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두차례 떨어진 명장도전에 내년에는 꼭 한복명장이 될거라고 한다.
새로운 책을 한권 더 하겠다고 기획제작을 부탁했다.
대충 전체 아웃라인 러프스케치를 하고 서산에 출장 촬영을 가야하고 다음 주말에는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기로
포토그라퍼와 약속을 잡고 12월중으로 책을 완성 하기로 하고 보냈다.
점심시간을 놓쳐 뜨거운 물로 때우고 낙성대에 있는 스포츠용품회사로 바쁜 걸음을 한다.
2시간 가량 디자이너들과 미팅하면서 지난 주의 디자인을 체크하고 수정등 그리고 다음 진도를 지시한다.
다시 사무실에 돌어오니 5시다. 오전에 작업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어가지 더 바레이션하느라고 늦고 있었다.
일전에 마크디자인을 해준 업체의 사장이 볼수록 마음에 든다며 오늘 대금을 입금했노라며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방문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디자이너가 만든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수정을 해달라고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 아는 것이 재산이지 꼭 계산적으로 살 것은 아니라고 믿는바라 무료서비스해준다.
죽으면 다 썪어 문드러질 몸뚱이 아껴서 뭐하랴. 일 할수 있으면 축복이지.
건축디자인을 전공하지 않고 혼자서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왔다. 이책저책 들여다보며
좋은 건축물들의 아쉬운 부분들만 파헤쳐 보았더니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림을 그려다 1/100 스케일로 만들어보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간다.
문제점들이 나오는데 답답하다....하부 토목 부분에서 답이 안나온다.
기울기 각도에서 버티는 빔의 무게등 전문가를 불러야 겠다.
한쪽 구석부터 불이 꺼진다. 모두 가고 남양주에 사는 직원과 나만 남았다.
저녁은 만두국으로 때우고 계속 작업이다.한시간 후에는 들어 갈 수 있겠다.
내일 제시하려고 했는데 좀 어려울 것 같다. 같이 제출할 기획서와 견적서등 기관 일에는 갖춰 내야 할 서류가 많다.
하루 업무를 정리해본다. 내일은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어떤 일을 의뢰할까.
내가 30년 가까히 이 일을 하면서 배운 것은 단 한번도 같은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같지 않고 다른 것처럼 지금 어두운 밤하늘이 어제와 다르듯이 내일 아침이
오는 여명도 어제와 다를 것이다.
아트 디렉터로 크리에티브 디렉터로 세상을 살아 가는 것이 고달품 이다.
창작하는 이들의 고통이 이런 것 아닐까.
적어도 한 시간 후에는 퇴근 해야겠다.
대충 씻고서 운동기구에 매달려 5분 정도 운동하면서 하루를 다시 뒤돌아 보고
감 두개를 먹고서 그리고 늦께까지 소파에 가로로 누워 티브이 영화채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영화 한편 켜놓고 졸아 가면서 보다가 리모컨을 바닥에 떨어뜨린체 잠이 들 것이다.
첫댓글 안백
하루가 매우 다양하고 빽빽하구먼
그 수많은 경험과 노력 그리고 타고난 자질 존경스러우이 ~~~
별말씀. 그렇게 보일 뿐 살기위한 몸부림 안닌가 싶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삶이구먼 !
창회의 일상이 눈에 선하네.
이 나이에도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 할수 있다는게 참 좋지 않은가 ?
운동으로 건강도 다지며 알차게 사는 모습이 참 아름답네.
전생에 노비인 탓이제...ㅋㅋ
늦게 창회의 글을 읽었네.
타고난 재능을 아주 잘 쓰면서 살아가는 생활을 그림처럼 펼쳐놓았구먼.
밖은 지금 봄비가 내리고 그 빗속에 자네의 글이 자연스럽게 녹아가는 느낌이네.
아름답게 잘 살고 있네 자네. 자랑스러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