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운동 외 9편 / 남유정
모운동
모운동*의 밤은
절벽처럼 떨어진다
별 속에 별이 있고
그 별 속에 또 별이 있는 걸
모운동에 살며 알았다는 사람은
별이 뿌리를 들썩이며
구름 사이로 반짝인다고 했다
10년째 모운동에 산다고 했다
모운동에서 이 생을 넘을 거라고 했다
잠을 밀어내고 폐교 운동장에서
하늘을 보았다
구름 속으로 달이
자꾸 숨었다
달을 찾다가 눈에 밟히는 별들을
한 개씩 몸에 심었다
나는 누구에게서
이 생을 넘어야 할까
골똘히 별이 깊었다
* 모운동 : 구름이 모이는 동네
모운동 2
모운동에 가는 것은
구름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일
세상에 없는 길을 찾아가는 일
이윽고 밤이 되어
구름 사이로 별이 깜박이면
멀리서 오는 눈빛이
어찌하여 사랑을 이토록 빛나게 하는지
가슴에 손을 얹어 생각하는 일
내가 너를 향해 살아가는 것을
가만히 손길을 통해 전하는 일
모운동 3
구름이 저녁을 가만히
풀어 놓았지요
바람이 외로움의 이력을 읽는 저녁에
어떤 나뭇잎은 나뭇가지를 그만
놓아버렸지요
한 사람의 손을
놓아버린 적 있는 꿈이
소스라쳤지요
조팝나무
소담 한정식 담벼락을 지날 때
조팝나무가 팔을 뻗어 나를 만질 때
연두에서 연두로
연두에서 꽃으로
꽃에서 초록으로
징검다리처럼 건너뛰어 볼 때
내일 몰라보게 자란 연두가 오늘의 내게
말을 걸 때
흰 담벼락에 온몸으로 쓰는
한 생이 있어
말없이 그윽한 눈길을 읽으며 지나갈 때
감꽃은 연해서
꽃철이 조용히 지나가서
언제 왔다 가는지 모르게 문득
고개를 들면 이미
감이 자라고 있었지
큰 감잎 속으로 언제 익었는지
붉어진 후에야
골목길 옆 철제담 너머에
감나무가 자라는 걸 알았지
감꽃은 초록으로 스며드는 연두여서
연두로 스며드는 흰빛이어서
감꽃은 연해서
비
물에 떨어지는 맑은 빗방울은
눈으로 들어오는 애잔한 소리여서
둥글게 가슴 안으로 번지는 울림이어서
멍하니 바라보다 시간을 다 보냈지
연못이 비 듣는 걸 바라보는 것으로도
내 한나절은 족해서
빗소리
구름을 걸어온 말들이
자박자박
울타리를 치리
다정한 말이
마음을 간질여 주어
한나절 깊은 잠에 들리
섬에 갇히리
세상에 둘만 남으리
추억은 힘이 세다
어김없이 봄이 나무마다
꽃을 살리는 것은
걸어온 힘이 있기 때문이지
산딸기를 타고 흐르던 봄 언덕 향기를
내가 잊지 않은 것처럼
나무에게도 기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
우리가 평화로이 늙어가는 것은
추억이 마음 한편에 쌓여 가만가만
노래를 불러주기 때문이지
오래 살아남아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옮겨가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지
너에게 내가 살기 때문이지
나에게 네가 살기 때문이지
달 아래
상가를 다녀오는 길
죽음과 삶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서로 이름을 부르는
밤길
몽울몽울 구름이 번지는데
누구도 말이 없다
밤이 저 혼자
달을 한껏 부풀려 놓고
발아래가 너무 환하고
남해
쏟아지는 장대비에 꽃이 젖어 화분을 들여 놓았다
비 지나간 뒤 다시 내놓으며 수그린 꽃의 이마를 들어 주었다
민박집 주인이 길게 자란 풀을 자르며 숨어 있는 길을 찾아 주었다
꽃양귀비를 따라 바다로 내려가는 길에서 젖은 풀냄새가 났다
파랗게 말리는 중인 하늘 아래 몽돌 구르는 소리가 마음을 잡았다
둥글게 달은 돌들이 한결같이 들려주는 속엣말에 귀를 열어 두었다
오랜만에 귓속에서 시가 달그락거리며 속삭였다
ㅡ『우리詩』2017년 9월호
첫댓글 셋집에선 와이파이 신호가 약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일날 교회 마치고 스타벅스에 와 폰을 그간 못들었던 그리운 추억들을 불러옵니다
문명을떠난 삶은 이만저만 불편 한게 아니군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면 편 할텐데
스포츠 뉴스로 부터 국내외 뉴스까지 목마른 사슴이 갈즘을 면하기 위해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듯 목마름을 갈증을 상쇄 시키기 위해 마셔댑니다
커피 다운 카페 라떼 한잔에 목마름이 가시고 이제야 제정신이 드는군요
그간 읽지 못 했던 좋은글에 머무르며 고국을 그려봅니다
"어떤 나뭇잎은 나뭇가지를 그만
놓아버렸지요"
모운동!
함 찾아가보고 싶군요.
이름 자체가 매력이 있어요.
"한 사람의 손을
놓아버린 적 있는 꿈이
소스라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