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최용현(수필가)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는 복제인간을 제거하는 특수경찰을 의미하는데, ‘에이리언’ 시리즈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를 각색하여 만든 영화의 제목이다. 거금 2,800만 달러를 들여서 제작하였으나 내용이 너무 난해하다는 의견이 많아 마무리 부분을 다시 촬영하고 내레이션을 덧붙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극장판 ‘블레이드 러너’(1982년)는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이 쏟아진 데다, 2주전에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1982년)에 밀려서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당해 할리우드 역사상 손꼽히는 불우한 영화가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이 영화의 비디오테이프 대여횟수가 입소문을 타고 급속히 늘어나더니 혹평이 호평으로 바뀌면서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자신감을 얻은 리들리 스콧 감독은 덧붙였던 내레이션을 지운 새로운 감독판(1992년)을 공개했고, 15년 후에는 다시 감독판을 수정한 최종판(2007년)을 내놓았다. 이제 ‘블레이드 러너’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 ‘스타워즈’ 시리즈, ‘에이리언’ 시리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SF 영화의 걸작 반열에 올랐다.
2019년 11월, 외견상 인간과 구별이 불가능한 복제인간(replicants) 6명이 우주개척지(off-world)에서 탈출하여 지구로 들어온다. 신체적인 기능은 인간을 능가하고 정신적인 기능인 지능은 인간과 대등한 이들은 복제인간을 생산하는 타이렐사에 침입했다가 2명은 제거되고, 4명은 LA로 숨어든다.
경찰 당국에서는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은퇴한 복제인간 제거 전문가 데커드(해리슨 포드 扮)를 블레이드 러너에 복직시킨다. 데커드는 탐문수사를 위해 타이렐사를 찾아갔다가 회장실의 여비서 레이첼(숀 영 扮)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홍채반응을 보고 그녀가 최신형 복제인간임을 밝혀낸다. 레이첼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얘기하며 자신이 인간임을 주장하지만, 데커드는 그녀의 모든 기억이 이식(移植)된 것이라고 말해준다. 충격을 받은 레이첼은 그길로 회사에서 나가 사라진다.
데커드는 차이나타운에 있는 술집 화장실에서 입수한 비늘을 분석하여 거기서 뱀 쇼를 하는 쇼걸 조라가 암살용 복제인간임을 밝혀내고 찾아가는데, 이를 눈치 챈 조라가 도망치자 끝까지 추적하여 사살한다. 이때 현장에 있던 전투용 복제인간 레온의 공격을 받은 데커드는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으나, 때마침 나타난 레이첼이 레온을 사살하면서 위기를 모면한다. 데커드는 생명의 은인인 레이첼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데, 서로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은 함께 밤을 보낸다.
한편, 복제인간의 두목격인 로이(룻거 하우어 扮)는 복제인간의 눈을 만드는 기술자를 찾아가 자신들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을 물어보는데, 그는 타이렐 회장을 만나보라고 말한다. 로이의 사주를 받은 위안부용 복제인간 프리스(대닐 한나 扮)는 조로병(早老病)을 앓고 있는 타이렐사의 유전과학자 세바스찬에게 접근하여 그의 집에까지 따라간다. 프리스는 그의 집에서 로이를 부른다.
로이는 세바스찬과 함께 타이렐 회장을 찾아가 복제인간의 수명 4년은 너무 짧다며 수명을 더 연장해달라고 요구하는데, 타이렐 회장은 ‘네 생명은 만들 때 이미 결정되었기 때문에 수명을 더 연장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분노한 로이는 타이렐 회장과 세비스찬을 그 자리에서 잔인하게 죽인다.
이 소식을 들은 데커드는 세바스찬의 아파트에 찾아가 마네킹으로 위장하고 있는 프리스를 찾아 사살하는데, 돌아온 로이는 프리스의 시체를 보고 격노한다. 로이에게 발각된 데커드는 옥상으로 도망쳐 건물을 뛰어넘다가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된다. 이때 로이가 다가와 ‘공포 속에서 사는 기분이 어때? 그게 복제인간의 삶이야. 죽으면 내 모든 기억이 사라지겠지. 빗속의 눈물처럼….’ 하면서 데커드의 손목을 잡아 위로 끌어올려주고 그 자리에 앉아서 숨을 거둔다.
데커드는 자신을 구해주고 죽은 로이를 보면서 수명이 고작 4년인 복제인간의 숙명과 아픔에 대해 공감과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이제 남은 복제인간은 집에 두고 온 레이첼 뿐이다. 집으로 달려간 데커드가 레이첼과 함께 집을 나서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에는 초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가운데 도심 뒷골목에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 아래 퇴폐적인 술집이 늘어서 있고, 스모그가 자욱한 거리에는 늘 비가 내리고 있다. 아울러 ‘불의 전차’(1981년)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반젤리스가 맡은 음악도 계속 을씨년스러운 사운드 트랙을 이어주고 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이런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어두운 미래에 대한 암시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마지막 부분에서 복제인간 로이가 데커드를 구해주는 장면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복제인간의 존재를 통해 누가 더 인간다운지, 인간답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또, 데커드가 복제인간 레이첼과 함께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인간과 복제인간의 공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 영화의 주제 내지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이 영화에서 논란이 된 부분은 블레이드 러너인 데커드가 인간인가 복제인간인가 하는 논쟁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문제에 대한 확실한 답을 주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데커드가 복제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에 나온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면 이런 의구심이 해소될 수 있을까?
‘블레이드 러너’가 그려내고 있는 2019년은 이미 지났다. 다행스럽게도 영화에서 예측했던 디스토피아(dystopia), 즉 우울한 미래사회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혹시 우리 주변에 인간과 똑같이 생긴 복제인간들이 활개를 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첫댓글 CGV에 재개봉 했더라고요! 극장에서 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극장에서 보면 훨씬 좋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