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靑瓦臺)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 서울에서 역사성과 국가의 존엄을 지닌 대통령의 집무실인 청와대만큼 더 좋은 곳이 또 있을까요?
청와대를 둘러보기 전에 역사를 좀 살펴보자:
1990년 2월 20일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 신축 공사를 위해 대지를 조성하던 중 청와대 관저 신축공사장 바로 뒤에서 커다란 바위가 발견되었다. 가로 2m, 세로 1.3m 크기의 거대한 바위로 전면이 풀에 가려 보이지 않는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이 바위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위에 새겨진 글씨 때문이었다. 이 바위에는 해서체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글씨와 함께 낙관 자리에는 ‘연릉 오거(延陵 吳据)’라는 이름이 새겨 있었다.조선시대경복궁의 후원 터로 청와대 자리가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도읍을 옮기자는 주장이 시작되면서 부터였다.조선의 첫 임금인 태조 이성계는1394년 새로운 서울을 세우기 위한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이라는 특별 기구를 만들었다.태조는 그 해 12월 정도전으로 하여금 궁궐 짓는 일을 시작하도록 했고 이듬해에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9월에 궁을 완성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궁이 바로 경복궁이다.경복궁이 완성된 뒤 세종 8년인 1426년 현재의 청와대 자리에 경복궁의 후원(뒤뜰)이 조성되었다.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경복궁과 이곳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경복궁과 그 후원인 지금의 청와대 근처는 270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고종 2년인 1865년 흥선대원군의 노력으로 다시 지어졌다.일제 강점기 시대일제는 1937년부터 1939년에 걸쳐 조선박람회 이후 한동안 공원으로 남아있던 옛 후원 자리(청와대 자리)에 조선 총독의 관사를 지었다. 이후 조선 총독의 관사 일대를 경무대(警務臺)라고 불렀다.
일제 강점기 1939년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는 경무대에 새 관저를 지었다. 이 건물을 지었을 때의 공식 명칭은 그냥 ‘총독 관저’였다. 경무대는 1960년 제4대 윤보선 전 대통령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푸른 기와의 ‘청와대(Blue House)’로 불리고 있다.경무대에서 청와대로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이승만 대통령 내외는 이화장에서 일제 총독 관저였던 경무대로 거처를 옮겼다. 경무대는 제4대 윤보선 전 대통령 시절부터 ‘청와대(Blue House)’라는 지금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푸른 기와의 청와대로 불리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 되어서야 본관과 관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을 신축하여 2년 2개월간의 공사 끝에 1991년 9월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공사는 현대건설이 맡았는데, 경복궁, 창덕궁 등 궁궐을 많이 참고했고,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외국 유명 호텔들과도 비교해가며 직접 문고리 모양까지 고를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청와대 관저를 신축하는 과정에서 150년 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9]라고 쓰인 표석이 발견되기도 했다.청와대 소풍청와대는 북악산을 배경으로 경복궁 뒤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시청과 종로·을지로 등 도심 사무실 밀집지역의 북쪽에 있다.현재 청와대의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로 1번지이다."청와대(靑瓦臺, 영어: Cheongwadae)는 대한민국 종로구 청와대로(세종로)에 위치한 시민공원이다. 1948년부터 2022년 5월 9일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기거하는 대통령 관저이자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 헌법기관으로서의 대통령부(大統領府)와 관계된 행정기관이었다. 별칭은 블루 하우스(Blue House)이다.관저로서 청와대는 집무 공간인 본관, 공식 행사 공간인 영빈관, 주거 공간인 관저, 외빈 접견 장소인 상춘재, 비서 부속기구인 대통령비서실,경호 부속기구인 대통령경호처, 청아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여민관, 대언론 창구인 춘추관 등을 포함한다."“청와대는 대한민국의 역사요, 영욕의 공간이다. 그 모든 시대가 아름다웠던 것은 물론 아니다. 지우고 싶고, 가리고 싶고, 숨기고 싶은 역사도 그 안에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역사다. 미국이 백악관을 영국에게 점령당했었다고 폐쇄하지 않았듯이, 역사는 그러한 치욕까지도 유지하고 보존해 새로운 시대 새로운 권력에게 엄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며 “우리는 역사의식과 인문적 소양이 없는 정치권력이 얼마나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릴지 슬프지만 우리는 지속적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