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보세요. 또 빛나기 시작합니다. 바람과 해님이 섞이며 갑자기 저렇게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겁니다.어쩌면 당신도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저것과 비슷한 빛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7년전 어느 날 백일된 어린 아들과 자신만을 남겨두고 철도길에서 사라진 남편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유미코는 그렇게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죽음으로 인해 뒤에 남겨진 자의 상실감과 기억을 다루고 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이 자신의 수필집 <걷는 듯 천천히>에서 밝혔듯이, 죽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도 아니고 눈물을 부추기는 장면도 하나 없는데 시종일관 서늘한 아픔이 배어나옵니다. 오히려 담담하고 처연한 유미코의 표정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깊은 슬픔을 겪게 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그녀가 문득 동작을 멈출 때, 그리고 허공의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할 때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습니다. 언어가 절제된 영화 속 효과음들, 즉 파도소리와 들판의 바람소리는 남겨진 자를 위한 한편의 진혼곡과 같고, 자연광을 최대한 살린 장면은 하나하나가 스틸사진처럼 아름답습니다.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소설 <환상의 빛>은 결이 고운 서간체로 쓰여져 있습니다. 유미코가 죽은 남편 이쿠오에게 쓴 일기 같은 편지를 읽어내려가면 영화에서는 침묵으로, 눈빛으로, 손끝으로 표현된 유미코의 마음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중간중간 빈 괄호들이 채워졌다고나 할까요? 다만 빈칸을 그냥 남겨두고 싶은 분들은 굳이 책을 읽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또 반대로 상실감을 극복하려는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싶은 분들은 책만 읽으셔도 됩니다. 두 작품 모두 각각 독립적으로 빛나는 예술작품이니까요.
첫댓글 많은 경우에 영화가 원작으로 인해 폄훼(?)되기도 하는데 환상의 빛은 두 장르가 행복하게 만난 모양입니다. 늦은 시간이나 이른 시간에 한번 보러가야 겠네요.
제 경험으로도 원작소설이 좋다고 영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어요. 반대로 영화가 재미있어 뒤늦게 원작소설을 찾아 읽어보았지만 재미없었던 경우도 많았구요. 그러나 <환상의 빛>은 달랐어요. 영화와 소설의 조우가 감동의 진폭을 확장시켜주는 좋은 사례였습니다. 저는 늦은 밤에 보았는데 새벽에 더 잘 어울리는 영화에요. 이왕이면 이른 시간에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아, 이영화 봤어요.
영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느날 갑자기 남편을 잃은 여인
그 가슴에 남아있는 트라우마가 잘 느껴지더라구요.
너무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저도 가을아침님과 같은 생각이에요. 참으로 아름답고 고운 영화입니다. 게다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세계를 특징짓는 요소들이 데뷔작인 이 영화에 모두 들어있는 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작품 주제, 인물 묘사, 빛의 처리, 화면 분할, 부감숏 등 촬영기법 등 이미 처음부터 히로카즈 감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