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차(24.05.09)
책에 난 딴 세상으로의 출입문
판타스틱 스릴러 장르의 대가인 미국의 작가 ‘스티븐 킹’의 어느 작품을 보면 허공 어딘 가에 현실과 다른 세계로 넘나드는 문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책을 몰입해서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어제는 1930년대 영국 사회로 들어갔다가 오늘은 어제와 판이하게 다른 현대 스코틀랜드의 어느 도시의 지역도서관으로 들어가 ‘저자의 시각’이라는 카메라가 움직이는 대로 펼쳐지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적 세계로 편입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을 때 너무 수준 낮거나 너무 유치하거나 너무 단순하거나 짧거나 시시한 책은 없다는 사실이다. (p153)
-도서관은 신뢰할 수 있는 공적 영역이다. 도서관 이용자들에게는 예측 가능성이 필요하다. 구직원서를 내기 위해 매주 평일마다 특정 사이트에 접속해야 하는 구직자들부터, 매주 다양한 행사와 교실에 아이들을 데려오는 부모들과, 다 읽은 책 더미를 안 읽은 신착도서 더미와 교환하러 매주 수요일 똑같은 시간에 버스를 타고 오는 연금생활자까지, 도서관은 정말이지 지역사회의 맥동하는 심장이다. (p156)
내가 책을 빌리러 다니는 지역 도서관도 스코틀랜드에 사는 주인공이 경험한 지역 도서관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지역사회에 다양한 문화(역사 기행, 작가 초빙 강연 등)를 접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고 갖은 서비스(인터넷 사용, 노인 공부, 다양한 동호활동 공간제공)를 제공한다.
책을 빌리러 대개 주말인 토요일을 이용하는데, 저번 주에는 많은 젊은 부모들이 1층 로비에 마련된 쉼터공간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공간 한쪽 벽면에는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이나 노인들이 쓴 시, 그리고 동화작가들이 그림과 함께 펼쳐놓은 동화 작품들 등이 매번 시간을 달리하며 전시되어 눈길을 끈다.
1층은 인터넷 정보화실과 주변이 환하게 꾸며진 어린이 열람실이 자리하고, 2층은 내가 자주 이용하는 성인용 열람실이 자리하고 있는데, 최근에 새롭게 리모델링을 하면서 군데군데 일반 가정처럼 모양이 다양한 응접세트나 테이블, 편안한 의자 등을 배열해 보고 싶은 책을 뽑아 마음에 드는 자리에 가서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화려한 영상을 보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오디오 시설까지 설치되어 고급스럽고 안락한 카페를 방문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3층은 아예 소규모 카페를 연상하는 열람실과 공부를 할 수 있는 열람실, 세미나 및 동호회 활동을 할 수 있는 회의실 등이 꾸며져 지역민들의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몇 년 전 어느 여름 날 소설가 ‘정여울’씨를 초빙해 대회의실에서 지역민들을 상대로 한 강연회에 참여한 기억이 난다.
이처럼 도서관은 지금 현대 사회에서 유일하게 차별과 소외를 느끼지 않고 남녀노소 및 계층, 계급(굳이 있다면)을 떠나 모든 지역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동체 문화공간일 것이다. 일용직에 종사하는 분들이 아침에 그 날 일을 얻지 못해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려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이용해서 문화 활동을 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늘 대견스럽고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곤 한다.
이 글 《사서 일기》를 쓴 저자 ‘엘리 모건’(가명)은 신경 정신적 장애를 겪는 바람에 자살에 이를 정도로 악화되기도 했으나(여전히 약을 복용하고, 심리상담가의 정기적 상담을 받는다) 도서관에서 ‘사서’직을 얻게 되면서 삶에 희망적인 반전과 아울러 도서관 사용자들을 위한 보다 나은 질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어려운 주변 여건에도 불구하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자신이 어려운 처지임에도(물론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해나가는 과정이 자신의 악화된 건강을 치유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지역 사회의 빈곤층과 장애인, 노약자 같은 약자들을 위해 여건을 개선하고 상담도 솔선해서 하는 등, 이 모든 활약의 밑바탕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도서관 이용자들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에 힘껏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에 점점 더 다가갈수록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이 책은 실명을 밝히지 않는 ‘앨리 모건’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쓴 ‘에세이’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모두 가명임에 틀림없을 것이다(지명이나 도서관명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점은 웬만한 장르 소설 못지않게 스릴과 흥미가 넘치는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게다가 저자가 도서관 이용자나 사회적 약자의 고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감동스러운 장면에 있어서는 이 모든 이야기가 실화라는 점에서 더욱 감동스럽다는 것이다. 읽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2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