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 KBS 역사추적 – 최강 수군의 비밀, 이순신의 사람들 - YouTube
조선 스페셜KBS 역사추적 – 최강 수군의 비밀, 이순신의 사람들
KBS역사저널 그날
구독자 69.5만명
조회수 1,689,831회 최초 공개: 2019. 10. 4.우리 역사 속 최고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충무공 이순신. 그는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 임진왜란 전승을 거두었던 기적 같은 사건의 주인공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업적을 이순신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것일까? 우리가 이순신에게 열광하는 사이, 주목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 임진왜란 최고의 선봉장이자, 돌격장 정운 임진왜란 첫 해전부터 최후의 현장 노량해전의 숨은 공신, 송희립 80세의 나이로 이순신의 군사(軍師)로 참전했던 해전의 명장, 정걸 거북선 건조의 핵심 책임자였던 나대용까지 최강 수군으로 불렸던 전라좌수군 핵심참모들을 만나 본다. - ‘이순신 수군의 최고 선봉장이자 돌격장’ 녹도만호(鹿島萬戶) 정운(鄭運) 이순신의 최측근이었던 정운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가 된 비슷한 시기에 녹도지역의 만호가 된다. 왜구의 주 침략지역인 녹도를 완벽하게 방비하였고, 이순신이 임진왜란 첫 출전을 할 수 있도록 가장 강력하게 요청했다. 녹도 만호(鹿島萬戶) 정운(鄭運)과 군관 송희립(宋希立)만은 강개하여 눈물을 흘리며 이순신에게 진격하기를 권하여 말하기를‘적을 토벌하는 데는 우리 도(道)와 남의 도가 따로 없다. 적의 예봉을 먼저 꺾어놓으면 본도도 보전할 수 있다.’ 하니 순신이 크게 기뻐하였다. - 선조수정실록 25년(1592년) 5월 1일 중에서 - 첫 출전부터 해전에서 전공을 세우던 정운은 임진년 그 해 부산포 해전에서 적탄을 맞고 전사하게 된다. 정운의 죽음에 이순신은 직접 제문을 지어 추모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깊었다. - ‘80세 노장인 이순신 수군의 스승’ 조방장(助防將) 정걸(丁傑) 팔순의 노장 정걸은 이순신 보다 20년 앞서 수군절도사를 여러 번 했던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임진왜란 전까지 해전 경험이 없었던 이순신은 노련한 백전노장이 필요했고, 정걸은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좌수군의 스승 역할을 했다. “그날 묘시(卯時)로부터 신시(申時)에 이르도록 싸우느라 화살이 거의 떨어져 가는데 마침 충청 병사(忠淸兵使) 정걸(丁傑)이 화살을 운반해 와 위급을 구해주었습니다.” - 선조실록 26년 2월 24일 중에서 - 또한 정걸은 행주대첩에서 화살을 싣고 한강을 건너온 공으로 승리를 이끌었던 숨은 영웅이었다. 한편, 정걸은 그의 아들 정연과 정홍록 까지 3대가 3년에 걸쳐 전장에서 순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순신 전승 신화의 스타, 거북선을 만들다’ 군관(軍官) 나대용(羅大用) 거북선은 임진왜란에서 탁월한 전투무기였다. 당시 일본군의 주전술인 등선육박전술에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북선 건조의 실무 책임자가 바로 나대용이었다. 거북선을 만들 수 있도록 이순신은 군관이었던 나대용을 배를 만드는 책임자로 임명한다. 신묘년(1591년) 연간에는 수사(水使) 이순신(李舜臣)의 감조 전선 출납 군병 군관(監造戰船出納軍兵軍官)이 되었다. 임진 왜변의 초기에 옥포(玉浦)에 머물고 있던 왜적이 진격해와 싸움을 벌일 때 발포 가장(鉢浦假將)으로서 앞장서 돌격해 들어가 적선 2척을 포획하였고 - 선조실록 39년 12월 24일 중에서 - 필요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이순신의 리더십이 발휘된 것이다. 또한 나대용은 군관으로서 해전 승리의 큰 공을 세운다. 현재 그는 거북선 제작의 공로로 소충사에서 매년 과학의 날에 제사 지내고 있다. - ‘이순신의 최후의 현장에 함께하다.’ 군관(軍官) 송희립(宋希立) 이순신의 사람들을 이야기 할 때, 좌(左)정운 우(右)희립을 손꼽는다. 이 중 송희립은 이순신의 그림자처럼 임진왜란 첫 해전부터 최후의 현장 노량해전까지 함께 했다. 이순신의 갑옷과 투구를 벗겨 붉은 담요로 주검을 싸고, 또 다시 초둔으로 덮었다. 그리고 이내 이순신의 갑옷과 투구를 입고 초둔 위에 가리고 앉아서 대신 깃발과 북을 잡고 더욱 급히 싸움을 독촉하니, 왜적의 배는 크게 패하여 대포에 의해 부서지거나 갈구리에 걸려 침몰된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 은봉전서 권7 노량기사(露梁記事) 중에서 - 이순신이 전사한 후, 송희립은 이순신 대신 북채를 들고 해전을 지휘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그의 전공은 뒤늦게 알려져 후에 전라좌수사 자리에 오르게 된다. 역사추적 19회 최강 수군의 비밀 - 이순신의 사람들 (2009.4.18.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