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는 도민들은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갖는다. 새해를 맞아 어려운 가운데서도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경남도의 서민자녀 교육지원 4단계 사업과 서민복지 7대 시책으로 삶에 활력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다.
중학생 박진민(15)양, 직장 새내기 황재훈(26)씨, 주부 김미진(33)씨, 자영업자 최도환(58)씨, 홀로어르신 우임순(85) 할머니 등 세대를 달리하는 각계각층 도민들의 삶과 새해 소망을 들어본다.
황숙경·이한나 편집위원
"공부·운동·소설가 세 마리 토끼 잡겠다"
'여민동락카드'로 꿈 찾은 박진민 (마산의신여중)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진민이는 해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진민이가 매일 들르는 곳은 창원시 마산회원구 소재 지역아동센터. 이곳에서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공부한다. 따로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학업성적은 우수한 진민이는 보기와 다르게 운동을 즐긴다. 10살 때부터 태권도를 배워 3품 자격도 땄다. 지난 여름 참가한 전국 태권도 품새 대회 중등부 결승전에서 은메달을 거머쥐기도 했다.
체육보다 더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은 한국사. 조선왕조 계보를 술술 읊을 뿐만 아니라 왕들의 자세한 업적과 시대별 주요 사건까지 꿰뚫고 있을정도다. 마치 머릿속으로 역사지도 한 장을 줄줄이 그려내는 듯하다. '암기력이 대단하다'는 칭찬에 "책을 많이 읽어서 그렇다"고 비결을 전했다.
진민이는 주말이면 집 근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한다. 책 한 권 손에쥐고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배고픈 줄도 모르고 집중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1년에 적어도 100권은 읽었다고 한다. 독서를 사랑하는 진민이의 장래희망은 소설가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난 1년 동안 한 웹사이트에 자신이 지은 판타지 소설을 200화 가까이 연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플롯도 제대로 짜이지 않은 '초짜'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일부 비난 댓글에 상처를 받아 애써 쓴 글을 지우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독'과 '다작'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처럼 해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진민이에게 경상남도의 여민동락 교육복지카드는 '꿈을 향한 사다리' 같은 존재였다. 지난해 3월 경상남도 서민자녀 교육지원대상자에 선정된 진민이는 여민동락카드를 받자마자 공부하는 데 필요한 참고서와 문제집을 가득 구입했다. 꼭 소장하고 싶었던 소설책 몇 권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올해부터는 학업에 투자하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야 할 것 같다. 문예창작과로 이름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학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공부와 운동 두 마리가 아닌 '소설가'라는 꿈을 향한 준비까지 '세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게 진민이의 목표다.
"뚜렷한 목표 갖고 '기업트랙' 도전하세요"
'경남형 기업트랙'으로 KAI 입사 황재훈씨
오는 2월 창원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예정인 황재훈(26)씨는 1월 1일자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정식 입사했다. 경남도가 도내 대학생 취업지원을 위해 지난 2013년 전국 최초로 시행한 '경남형 기업트랙'으로 미래 신성장산업 대표기업에 대학 졸업 전 취업한 것이다. 2013년 'KAI트랙' 40명으로 시작해 지난해까지 130개 기업 1206명의 채용협약을 체결한 경남형 기업트랙의 주인공으로 정유년 새해를 시작하는 황씨의 감회와 새해 소망은 남달라 보인다.
전공을 살려 KAI를 취업목표 기업으로 삼았던 황씨는 '기업트랙이 없었다면 KAI 입사의 꿈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KAI 입사를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입시지옥에서 해방됐다는 들뜬 기분에 젖어 대학 새내기 시절을 보냈다. 그 결과 1학년 1학기 평균 학점이 2.8이었다. 그러다 군대부터 다녀오자는 생각에 입대했다. 제대 후 학교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 열패감을 느꼈다. 그때 기업트랙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경남도가 KAI와 협약하고 기업트랙을 시작한 2013년이다. "지방대 출신은 서류심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탈락의 고배를 마십니다.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기업트랙은 저에게 한줄기 빛이었어요." 그때부터 KAI 입사를 목표로 정했다. 우선 기업트랙 장학생이 돼야 했다. 선발기준은 토익 600점 이상에 3학년 1학기 평균학점 3.5 이상, 학과성적 상위 10명. 황씨는 휴대폰도 쓰지 않고 성적을 올리는 데 집중했다. 확실한 목표 덕에 기업트랙 장학생이 된 그의 졸업 성적은 평점 4.0, 토익성적은 910점이다. 황씨는 기업트랙의 최대 장점으로 취업시험에서 서류전형 면제를 꼽았다.
취업전선에서 지방대 출신으로서 가장 넘기 힘든 서류전형 장애물을 기업트랙이라는 사다리로 넘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업트랙 장학생으로 공부하면서 '열심히'보다 '잘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표가 뚜렷하면 결과는 좋아집니다. 원하는 기업에 취업했으니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매진할 생각입니다. 후배들도 안주하지 말고, 자기계발을 위해 계속 노력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임신과 출산, 시골서도 걱정 없어요"
'찾아가는 산부인과'서 만난 임신부 김미진씨
부산이 고향인 김미진(33)씨는 지난해 산청군 단성면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낯선 시골생활에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다고 한다. 현관문만 나서면 뭐든 구할 수 있는 도시생활에 익숙해 있던 김씨로서는 산 좋고 물 좋은 산청의 자연환경도 황량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지난해 5월 초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혼자 고민을 많이 했다. "가까운 곳에 산부인과가 없으니까 막막했죠. 시어머님이 옆에 계셨지만 옛날 분이라 제가 느끼는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진주시내까지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러 다녀야 하는 일이 부담스러워, 먼저 남편과 산청군 보건의료원을 방문해 상담했다. 거기서 알게 된 것이 '찾아가는 산부인과'. 경남도가 지난 2008년부터 전국 최초로 시행하고 있는 이동식 차량 산부인과 사업이다. 출산율 저하로 농촌지역에서 사라진 산부인과를 대신해 연 간 2500여명을 진료하고 있다. 2009년도에는 보건복지부의 분만 취약지 지원 국가사업으로 채택될 만큼 전국 우수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어요. 버스 병원이라 미심쩍었지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굉장히 친절한 것은 인상적이었지만…."처음 검사를 받은 후 결과지가 우편으로 오고, 다음 검진을 위해 전화 연락이 오는 것을 보고 김씨는 안심하기 시작했다. 출산예정일이 1월 3일인 김씨는 그동안 매달 2번씩 꼬박꼬박 '찾아가는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다. 이제는 도심의 산부인과 못지않은 장비와 시설을 갖춘 병원이라고 믿는다. '찾아가는 산부인과' 차량이 산청읍에 있는 군 보건의료원에 정차해 진료하므로 진주까지 장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수고를 안 해도 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정말 고맙지요. 산청에 살아야 되고 애도 낳아야 되는데, 큰 걱정거리를 덜었잖아요" 진주까지 다니며 산부인과 진료를 받고 출산한 이웃들이 산청읍에서 산전 진료를 받고 있는 김씨를 보고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도 한단다. 김씨는 시골로 시집오는 걸 망설이는 새댁 후배들에게 "찾으면 누릴 것도 많고, 없는 것도 없다"며 "촌으로 시집오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딸이 학업에 전념하도록 하는 게 소망"
'경상남도 서민자녀 대학생 장학금' 학부모 최도환씨
지난해 큰딸이 최고 명문대에 진학한 후 최도환(58·진주시)씨는 지인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수없이 받았다.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어느 학원 보냈냐' 같은 질문도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때마다 최씨는 웃고 말았다. 학원이나 과외를 시켜 본 적도, 그 정도로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의 직격탄을 맞았던 최씨는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진주시 망경동에서 컴퓨터 수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딸 선영씨는 지난해 서울대 화학교육과에 입학했다. 입학 당시 우수한 성적으로 경상남도 서민자녀 대학생 장학금 지급 대상자에 선정돼 혜택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씨는 딱히 내세울 일도 아니라고 말한다. "요즘은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이 어려우니 자만하지 말라"고 딸에게 조언한다.
사실 그는 딸을 집에서 가까운 교대에 보내고 싶었다. 경제적인 부담도 있었지만, 어린 딸을 홀로 타지에 보내는 게 가장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더 큰 지역에서 식견을 넓히고 싶다는 딸의 의견에 따랐다. 딸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기는커녕 오히려 "쉬어가면서 하라"고 말하는 최씨는 초·중·고 12년 동안 그 흔한 사교육 한 번 받지 않고도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딸에게 늘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컸다. 대입을 앞둔 고3이 되자 더욱 그랬다.
경기가 어려워 만원이 훌쩍 넘는 문제집 가격도 사실상 부담스러웠던 때, '기적'처럼 다가온 경상남도의 여민동락 교육복지카드는 입시를 준비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작은 딸도 경남도의 서민자녀 지원 정책 덕분에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한다.
하지만 최씨는 여전히 딸에 대한 미안함으로 마음이 무겁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우수 인재들이 모인 환경에서 주눅 들어 사는 것은 아닌지, 아르바이트 하지 않고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최씨가 매일 아침 일터로 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씨는 경남도가 건립 중인 재경대학생 기숙사 '남명학사'에 기대를 걸며 "앞으로도 서민자녀를 위한 교육 정책이 중단 없이 지속되길 바란다" 고 바람을 전했다.
"함께 오순도순 행복한 시간 보냈으면"
'홀로어르신 공동생활가정'서 만난 우임순 할머니
"동무가 생겨서 너무 좋지. 외로움이 없어졌어. 아플 때 서로 챙기고, 밥맛없을 때 같이 먹고, 우울할 때 위로도 되고. 맨날 혼자 앉아서 자식들전화 기다리는 게 일이었는데, 모여 사니 정말 좋아."
창녕군 계성면 계교마을경로당에 설치된 '계교홀로어르신 공동생활가정'에서 만난 우임순(85) 할머니는 '공동생활 이후 뭐가 달라졌느냐'는 물음에 뻔 한걸 뭐 하러 묻느냐는 표정이다.
'홀로어르신 공동생활가정'은 홀로 사는 어르신들의 고독사 예방과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경남도가 지난 2014년부터 전국 최초로 시행하고 있는 공동주거시설이다.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홀로 사는 어르신 자택 등을 개·보수해 5~10명의 어르신들이 함께 생활하도록 하고 있다. 도는 시설 개·보수비를, 시군은 공과금과 냉·난방비 등의 운영비를 지원한다. 창녕군 9, 의령군 10, 산청 8곳 등 도내 76곳에 설치돼 있다. 지난해 11월 공동생활가정이 개설된 계교마을경로당은 마을 할머니들의 쉼터이자 혼자 사시던 할머니 7분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다. 손님 왔다고 내온 간식거리를 가운데 두고, 우 할머니는 경로당에 모인 할머니들을 소개한다. 공동생활가정에서 함께 사는 분도 있고, 경로당에 마실 나온 분도 있다. 누가 언니인지, 동생인지 따져 순서대로 이름과 나이를 꼼꼼하게 소개한다. "막내가 허리가 안 좋아서 언니들이 잘 봐줘야 해. 그래도 막내가 일은 잘 하지. 제일 깔끔해"라며 그 자리에 없는 막내 할머니 칭찬에 맞장구를 친다.
할머니들은 내친김에 공동생활가정을 꾸리기 위해 했던 일들을 얘기했다. 같이 살기 전에 보건소에서 건강검진 받은 일, 경로당 싱크대를 교체하고 창호와 안방을 수리·확장한 일, 가전제품과 이불 등 살림살이 장만한 일 등등. 이야기 중간 중간 웃음꽃이 핀다.
"같이 버스타고 병원 가는 거나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 가는 것까지 다 재미있다"면서 "웃을 일이 많아져서 우울증이 싹없어졌다"는 우 할머니. 혼자 있는 엄마를 걱정하던 타지의 자식들이 더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공동생활가정이 더 많이 생겨 외로운 노인들이 함께 오순도순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